중고인생

2 번째 이야기

by 우두커니

대학생이 된 이후로 나는 중고로 물품을 사는 일이 잦았다. 일단 물건을 잘 안 사기도 했거니와 어쩔 수 없이

사야 할 때면 중고로 살 수 있는지부터 검색했다. 빠듯한 생활에 비용을 아껴야 한다는 명분도 충분했지만, 어렸을 때부터 보고 자란 관성을 벗겨내기는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릴 적 아빠는 주변에서 헌 옷가지, 선풍기 혹은 전기장판 따위를 얻어오곤 했는데 물건들 뒤에는 항상 이 문장이 따라붙었다.


“앞으로 한 5년은 더 써도 될 것 같은데, 버린다고 해서 달라고 했지“


그리고는 머쓱한 듯 웃곤 했던 아빠.


새것과 폐기물의 경계에 있던 그것들은 선택받은 후 새 주인을 만난 것에 고마워하며 그럴싸한 역할을 해냈다. 특히나 아빠가 얻어온 전기장판은 겨울을 나는 우리 식구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물건이었다. 중학생 때 한 번은 겨우내 전기장판 속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전 날 학교 수업시간에 과학 선생님이 한 말이 갑자기 떠올랐다.


“여러분, 전자파가 신체에 정말 안 좋은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나요? 그러니 최대한 멀리하는 게 좋아요 전자파가 나오는 물건이랑은”


전자파가 몸에 그렇게 안 좋다는데 지금 전자파랑 밀착해 있는 나는 어떤 상태일까를 생각하다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더욱이 과학선생님의 말에 의하면 전자파는 남자의 정자에 특히나 해로웠다. 나는 괜스레 미래에 만날 내 2세에게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는데 해괴한 상상으로까지 이어졌다. 전자파의 영향으로 꼬리가 두 개인 정자가 만들어지고, 막 꼬리가 두 개인 정자는 꼬리가 한 개인 정자보다는 더 빠르게 난자를 향해 헤엄쳐가는.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실생활에 적용한 꽤나 그럴싸한 고민이었지만 그렇다고 달리 선택지가 없었던 나는 자신을 불사르는 노년의 전기장판에 의지해 그해 겨울을 났다.


다시 대학생 때로 돌아와서, 그때의 나는 이미 새 제품과 중고 제품 사이에 꽤나 합리적인 함수방정식을 정립한 후였다. 이를테면 새 제품이 중고가 되어가는 과정을 Y축과 X축을 이용해 도식화하였는데 그것은

가치하락의 기울기가 초반에는 가팔랐다가 점점 줄어드는 구조였다. 방정식이 나에게 던져준 메시지는 두 가지였는데 첫 번째는 나의 중고 구매 결정이 매우 합리적이라는 옹호의 메시지였고, 두 번째는 중고로 구매한 제품은 일정기간 사용 후 다시 중고로 팔아도 감가상각이 적다는, 교양 시간에 들었던 내용과 믹스된 그런 류의 재무적 메시지였다.


이 쯤되니, 나는 내가 새 제품 그 자체가 아닌 것에 고마울 지경에 이르기까지 하였다. 만약 내가 새 제품이었다면 박스의 개봉부터 시작되는 자신의 급격한 가치하락을 마주해야만 할 텐데. 그것은 실로 통탄할 일이었다. 그래서 나에게 만약 물건으로 다시 태어날 기회가 주어진다면 중고로 태어나리라 다짐했다. 처음부터 중고면 쭉 중고라서 새 제품이 겪는 그런 통탄한 일을 겪을 필요가 없을 테니.


당시에는 요즘처럼 당근마켓 같은 것이 없어서 나는 중고물품이 필요할 때면 주로 학교사이트의 벼룩시장을 애용하곤 했는데 하루는 방에 선풍기가 정말이지 사용할 수 없을 상태로 고장이 나버려서 중고 선풍기를 사야 할 일이 생겼다. 나에게 선풍기는 생활필수품이었는데 그것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쓸모가 많았다. 여름과 가을엔 에어컨의 조력자, 겨울과 봄엔 화장실 앞에서 수건으로 미처 닦지 못한 물기를 말끔하게 말려주는 건조기. 이렇게 1년 내내 돌아가다 보니 그것이 정말로 고장이 나버린 모양이었다.


그렇게 나는 고장 난 선풍기를 대신해 중고 선풍기를 사야겠다고 마음먹고 매물이 올라올 때까지 며칠 동안 벼룩시장 게시판을 들락날락했다. 매물이 꽤나 희귀했는지 한동안은 글이 올라오지 않았는데 선풍기 없이 지내는 시간은 장마철인 마냥 찝찝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한 판매자의 글을 보게 된 나는 그에게 구매 의사를 표했고 약속 시간이 되어 그의 집 앞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선풍기를 들고 있던 그는 사실 그녀였다. 운동복차림에 모자를 푹 눌러쓴 그녀에게 나는 인사를 가장한 멋쩍은 말을 건넸다.


“맞으시죠?”

“네, 선풍기 사러 오신 거죠?“


그리고는 ’혹시 하자 있는 제품을 저에게 판매하시는

것은 아니시죠‘라는 말을 3번은 돌려서 순화시킨 회심의 질문을 건넸다.


“근데 선풍기는 왜 정리하시는 거예요?”

“더 작은 집으로 이사를 가야 해서요“


그녀는 프로였다. 사실, 그녀가 나에게 고장 난 선풍기를 판다고 한들 길 위에서 전기코드를 꽂아서 확인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달리 방법은 없었다. 그래도 중고물품을 거래할 때 익숙하게 듣는 문장을 귀로 확인한 나는 꽤나 안심을 하고 선풍기를 가져왔다. 그리고 일단 그가 아니고 그녀였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상대적 안심 포인트였다. 남성분들 죄송합니다. 저도 남자지만 중고거래할 때는 우리 서로 조심하는 게 사실이잖아요. 그렇죠?


중고거래를 할 때 익숙하게 듣는 문장은, 이를테면 ‘작은 집으로 이사를 가서요’ , ‘새 제품을 사게 되어서요’ , ‘다른 제품을 선물 받아서요’ 등이 있다. 하지만 만약 ’더 이상 필요가 없어서요‘라는 문장을 듣는다면 그것은 정황상 꽤나 의심이 가는 문장이긴 하다. 그냥 참고만 하시길.


아무튼 나는 그렇게 새 집에 함께 따라가지 못한 배경을 가진 중고 선풍기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서 작동시킨 선풍기는 다행히 잘 돌아갔지만, 그전 선풍기와 다르게 소리가 좀 컸고 가끔 끼익 소리가 나는 듯했다. 판매자에게 다시 연락해서 확 환불을 요청해 버릴까 하다가도 사실 생각해 보니 큰 문제는 아닌 것 같아서 일단은 그냥 사용하기로 했다.


계속 사용하다 보니 처음 켰을 때 귀에 들어왔던 소음과 끼익 소리는 더 이상 거슬리지 않았다. 분명 처음 가지고 왔을 때는 소리가 꽤나 컸던 것 같은데 하며 신기해하다가 괜히 내 오른쪽 어깨가 이 선풍기랑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학생 때 다친 후 멍청하게 병원을 가지 않아서 그대로 굳어버린 오른쪽 어깨, 그래도 지금 내 어깨는 그것대로 나름 자리를 잡았다. 조금은 불편하기는 하지만 사용하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는 수준으로. 끼익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선풍기, 팔을 돌릴 때마다 툭툭 뼈 맞추는 소리가 들리며 돌아가는 어깨. 이제는 그 소리를 들으려고 집중해야 들린다니. 내가 일부러 관심을 두지 않으면 그것들은 그것 나름대로 그것의 역할을 꽤나 착실히 수행하고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서 일을 시작한, 진짜 어른이

된 이후로 나는 잠자리에 조금 예민해졌었다. 어려서 단칸방에 살 때는 작은 삼촌이 코를 심하게 골아도, 아빠가 TV볼륨을 큰 소리로 키우고 인간극장을 봐도 그때의 나는 눕자마자 잠들었는데. 역시 사람이 등 따시고 배부르면 나태해진다더니 내 잠자리는 그렇게 나태해졌을까.


이러다 다시 내가 단칸방으로 떨어져도 그 방에서 다섯 명이 살아도 잠이 잘 오려나, 아닌가 그때는 그냥 어려서 잠이 많을 때라서 그랬나 하는 쓸데없는 생각들이 잠들지 못하는 내 머릿속을 메아리쳤다.


잠 못 드는 날이면 냉장고의 모터 돌아가는 웅 소리가 그렇게 크게 들릴 수 없었다. 냉장고 안의 모든 냉장, 냉동 음식을 당장 포기하더라도 냉장고를 밖에 던져버리고 잠을 선택하고 싶은 심정이기도 했다.


냉장고의 모터소리가 내 귀에 의미 있는 인지를 남기는 날이면 나는 선풍기를 켰다. 선풍기 돌아가는 규칙적인 모터소리가 불규칙적으로 급습하는 냉장고 웅소리, 바깥의 소음을 덮었다. 소음을 제어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가 큰 안도감을 주었고 나는 적어도 내 방 하나정도는 통제할 수 있다는 퍽이나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마냥 한결 편한 기분으로 잠을 청할 수 있었다.


최근에는 오랜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들어와서 단기임대방을 구했다. 방에는 선풍기가 없었고 나는 늘 그랬듯이 당근마켓을 켜서 중고 선풍기를 검색했다.


8,000원에 올라온 탁상용 선풍기, 나는 서울대입구역에 가서 선풍기를 사 왔고 그 선풍기는 지금 타자를 치는 내 옆에서 돌아가고 있다. 규칙적으로 돌아가는 선풍기 모터소리가 내 마음을 고요하게 만든다. 근데 가만 들어보니 탁상용이라서 그런지 왠지 모터소리가 가벼운 것 같기도 하고.


계속 중고, 중고 하다 보니깐 내가 정말 중고가 된 것 같은 기분이다. 사실 이제 적은 나이도 아니고 하니 영 틀린 말은 아니다. 그래도 아직 쓸만하긴 한데 그렇다고 제 값을 받기는 애매한 어떤 경계에 다가온 느낌이랄까. 이렇게 날이 갈수록 중고에 대한 나의 사유는 깊어만 간다.


최근에 아는 동생으로부터 교보문고 50,000원권을 선물로 받았다. 자기 딴에는 나한테 큰 실수라도 한 줄 알고 미안한 마음으로 준 선물인데, 선물을 받은 그날 밤 나는 사실 그 동생 몰래 매우 중대한 가치판단의 기로에 놓였었다.


“당근에 45,000원에 올려서 회로 바꿔먹을까”


회 때문에 감히 신성한 영적 교환물을 중고거래하려고 하다니. 그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동시에 안될 것도 없지라는 생각이 한편에 차올랐다. 정신이 한창 어지러워지던 차에 머릿속 소음을 잠재우기 위해 탁상용 선풍기를 틀었다. 가벼운 모터 소리가 들리니 역시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그러다 한기가 느껴졌다. 아 맞다. 지금 겨울이지.


단기임대방에는 집주인이 미리 준비해 둔 전기장판이 있었는데 나는 그것에 손도 대지 않았다. 전자파 총량의 법칙과 함께 어릴 적 과학선생님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여러분, 전자파가 신체에 정말 안 좋은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나요? 그러니 최대한 멀리하는 게 좋아요 전자파가 나오는 물건이랑은”


나는 그렇게 회선생님이 선물한 선풍기를 당근해서 정자로 바꾸는 꿈을 꾸며 이불을 깊숙이 덮고 잠에 들었다.

이전 01화프롤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