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번째 이야기
”너는 왜 그러고 사니?“
요즘 사람들을 만나면 듣는 말이다. 문장 표현은 조금 다를지언정 그들이 나에게 품는 핵심 의문은 그러하다. 가끔은 그들이 직접 입으로 꺼내지 않더라도 그들의 눈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올 때도 있는데 신기할 노릇이다.
그들이 보기에 나는 ‘그러고 사는 놈’인가 보다. 그렇다면 그들이 말하는 ‘그러고 사는 놈’의 정의는 뭘까? 대부분의 내 나이 또래의 사람들이 군말 없이 따르는, 사회가 정해준 일정의 궤도를 벗어난 삶이라고 감히 정의해 볼 수 있을까. 사회는 왜 궤도라는 걸 만들어가지고 나를 눈총 받게 하는 걸까. 아니다 생각해 보니, 궤도라는 게 없으면 사실 더 문제일 듯 싶었다.
과학시간에 배운 내용에 따르면, 지구는 태양을 일정한 궤도로 공전하는 중인데 그렇기 때문에 인류는 생존에 필요한 적절한 환경을 제공받을 수 있다. 이를테면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온도, 습도 및 계절의 변화 등이 그것이다.
2호선 지하철 첫 차는 05시 34분에 운행을 시작하고 은행은 9시부터 문을 열고 젊은이는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한다. 세상은 질서와 규칙 속에 일정한 궤도를 형성하고 그 궤도는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일상을 만든다.
궤도가 없으면 세상은 너무 불편해질 테니. 궤도 탓을 할 건 아니다 싶었다.
태양계 궤도 유지의 핵심은 태양과 지구 사이에 존재하는 중력과 원심력의 균형인데 끌어당기는 힘과 미는 힘의 균형 속에서 질서는 탄생한다. 역시나 사랑은 태양계를 닮아있었다.
가끔 궤도의 한 부분은 미는 힘이 너무 세서 나처럼 자의 반 타의 반 밖으로 튕겨 나오는 소수의 사람도 존재하긴 하겠지만, 어쨌든 그것은 소수여야만 의미가 있다.
우리 모두의 일상을 위해 오늘도 궤도를 지키는 대부분의 다수에게 이 자리를 빌려 고마움을 표한다.
"부모님은 잘 계시지?"
"응. 잘 지내시지"
"요즘 사는 건 괜찮고?"
"응. 난 항상 잘 지내지 뭐"
뭐라도 말하고 싶었는데,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몰라서 그동안은 미적지근하게 얼버무리곤 하였다. 근데 이제는 한번 정리해야 할 때가 된 듯 싶었다. 세탁기에 가득 찬 빨래, 어쨌든 한 번은 돌려야 하는 것처럼. 계속 미루다 보면 빨랫감에서는 쉰내가 진동하고 곰팡이가 필 것이다. 내 옷에 곰팡이가 피게 둘 수는 없었다.
이제는 세탁 버튼을 누를 때가 되었다.
"띠리리, 세탁이 준비되었습니다"
세탁기 전원 버튼을 누르니, 이제는 세탁 시간을 결정해야 하는 선택지에 직면했다. 최대한 빨리 빨아버리고 싶은데 그러면 때가 좀 덜 빠질 것 같아서 일단은 적당히 세탁기에 있는 표준세탁 버튼을 눌러 버리기로 했다.
"세탁 시작"
토해내듯 떠오르는 말을 붙잡기 위해 시작한 글쓰기였지만, 그것은 마치 비행기표를 이미 질러버린 후 32인치 캐리어에 짐을 정리하는 것과 같았다. 설레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막상 눈앞에 펼쳐진 짐들을 정리하려니 머리가 지끈거린달까.
“가만 보자, 뭐가 필요할까, 어디부터 채워 넣어야 할까...”
글을 쓴다는 것, 그것도 시처럼 짧은 글이 아닌 소설, 에세이같은 긴 글을 쓴다는 것은 정말이지 미쳐버릴 노릇이었다. 그동안 다른 작가들의 소설을 읽으면서 허술한 문장을 집어낸 후 우쭐했던 내 스스로가 기가 찼다. 그와 동시에 국가대표 축구경기를 보며 한국 국가대표를 욕했던 내 자신을 반성했다. 미안해요 조규성 선수.
그래도 어쩌겠어. 이미 질러버린 비행기표, 어떻게든 짐을 싸서 여행을 가는 마음으로 나는 자판을 두드렸다.
글을 쓰다 보니, 남들에게 정말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은밀한 부위까지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지 않고서는, 상상으로 꾸며내서는 도무지 글쓰기를 이어나갈 수가 없었다. 소설의 형식을 일부 빌려 조금은 예쁘고 조금은 그럴싸하게 다듬긴 했지만, 정말이지 군중 속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고 서있는 벌거숭이 임금이 된 기분이었다. 이것은 마치 평소에는 팬티도 잘 입지 않는 나에게는 오롯이 알몸으로 수 백 명 앞에 놓인 것과 다름이 없는 일이었다. 나름의 용기가 필요한 글쓰기였다는 점을 일러두기 위해 조금은 앙큼한 내용을 덧붙여봤다. 물론, 내 발언이 팩트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있는 사람은 나 혹은 나의 전 여자 친구들 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독자들이 내 알몸 중에 특정 부위 한 곳에만 시선을 두는 것은 원치 않는다. 전체를 봐주세요 여러분, 어차피 거기 별로 볼 것도 없습니다요.
빠른 세탁 버튼을 눌러 글쓰기를 빨리 해치워 버리라는 내 안의 성격 급한 나를 뭉개고 어쨌든 여기까지 글쓰기를 이어온 내 안의 그럴싸한 나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여하튼, 지금까지는 앞으로 나올 꽤 긴 글에 앞서 나름 흥미를 유발해야 하는 부분이었기에 조금 유난을 떨어봤고 이제는 정말 내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한다. 내가 앞으로 할 이야기들에 대한 약간의 힌트를 주자면 그것은 똥과 관련된 것이다. 무슨 시작부터 똥 이야기냐고 인상을 찌푸리지는 마시라.
초등학교 국어 시간에 수미상관 구조에 대한 완벽한 이해를 바탕으로 선생님께 왕따봉 칭찬을 받았던 나는 이번 글에도 수미상관을 적용했다. 마지막 장에 다시 똥으로 돌아올게요! 마지막 장에서 다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