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는 초·중·고·대 전부 관악, 동작에서 보낸 완전 찐 서울 사람이다. 전학도 한 번 안 갔고, 다른 지역에서 살아본 적도 없다. 그러니까 이번 독립은 내 인생에서 큰 이벤트였다. 첫 자취, 첫 독립. 진짜 이제 시작이다.
이야기는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나는 한 영어학원에서 데스크 보조 알바를 하면서 졸업 준비 때문에 토익 공부를 하고 있었다. (토익 썰은 나중에 진짜 따로 풀겠다. 해커스만 여섯 번 등록한 이야기는 소중한 콘텐츠니까.) 근데 토익 점수가 너무 안 오르는 거다. 아무리 공부를 해도 그대로라서, 나는 졸업요건 다른 길을 슬슬 살펴보기 시작했고 그때 딱 눈에 들어온 게 정부출연연구소 인턴이었다.
두 군데 넣었고 둘 다 떨어질 줄 알고 토익학원 한 달 더 등록하려던 순간, 갑자기 한 군데서 연락이 왔다. 그게 바로 재료연구원. 면접까지 남은 시간은 6일. 6일 동안 거의 모든 걸 쏟아부어서 준비했고, 결국 최종 1명 안에 들어버렸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이제… 토익을 안 해도 된다. 합격보다 이 사실이 더 행복했다는 점은 인정한다.
재료연구원은 창원에 있다. 즉, 나는 집을 구해야 했다. 기숙사도 있었지만 나는 기숙사가 정말 너무너무너무 싫었다. 그래서 사실 떨어지길 바랐고, 진짜로 떨어졌다. 임시기숙사가 배정되긴 했는데 그냥 안 갔다. 부모님은 기숙사 가라고 하셨지만 ‘지금 아니면 언제 혼자 살아보냐’ 하는 생각이 더 컸다.
10월 1일, 드디어 집을 보러 갔다. 첫 번째 집은 창문이 없었다. 말 그대로 동굴이었다. 가격은 200/20이라 굉장히 매력적이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창문은 있어야 사람이 사는 곳 아닌가. 전 세입자가 청소도 안 하고 떠나서 더 지저분했다. 바로 패스. 두 번째 집은 오피스텔 8층이었는데, 다 괜찮은데 수압이 너무 약했다. 샤워할 때 스트레스 받을 것 같아서 이것도 패스. 세 번째 집은 같은 건물 4층이었고, 수압도 괜찮고 채광도 적당하고 크기도 딱 적당했다. 단점은 옵션 가구가 하나도 없다는 거였는데, 나는 이미 지쳐 있었고 발품 더 팔 생각도 없었고 신축은 월세가 너무 비쌌고, 결국 ‘여기저기 가봤자 거기서 거기겠지’ 싶어서 그냥 계약했다.
그날 바로 마트에 가서 청소기, 전자레인지 같은 큰 가전 사서 집에 넣고 비밀번호까지 바꾸고 나왔다. 공실이라 다행이었다. 그리고 10월 25일, 드디어 입주를 했다. 문 열자마자 나는 멈췄다. 방이 너무 더러웠다. 바닥을 닦고 또 닦고 다시 닦았다. 네 번째에서야 걸레가 깨끗하게 나왔다. 화장실은 진짜… 머리카락 청소를 한 번도 안 한 것 같았다. 그리고 싱크대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상태였다. 거름망을 그대로 두고 떠나서 우엑거리면서 버리고 새 걸로 바꿨다.
문제는 옵션 가구가 없다는 거라 침대도 없었다. 그래서 이불을 깔고 맨바닥에서 잤다. 10년 넘게 침대 생활을 했던 사람은 바닥에서 자면 바로 허리에서 반응이 온다. 소파베드를 샀지만 이것도 불편해서 결국 침대를 살 예정이다. 엄마는 하루 있다가 서울로 돌아갔고, 나는 남아서 행거 조립, 책상 조립, 샤워기 헤드 교체 등등 혼자 다 했다. 원래 아빠가 해주던 일들이라 혼자 하려니 힘들었지만 그래도 뿌듯하긴 했다. 근데 내가 조립해서 그런지 책상이 아주 약간 기울어져 있다. 기분 탓이길 바란다.
집을 어느 정도 세팅하고, 10월 31일 첫 출근을 했다. 근데 첫날 가자마자 내 자리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박사님이랑 단둘이 방을 쓰게 됐다. 컴퓨터도 처음엔 켜지지 않아서 오전 내내 고치고 오후에서야 내 컴퓨터를 받았다. 비품들이 다 투박해서 전부 바꾸고 싶지만, 나는 가난한 자취생이기 때문에 그냥 집 꾸미기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리고 집 꾸미느라 첫 일주일 만에 쿠팡에서 100만 원 썼다.)
출근한 지 일주일이 지난 지금, 일주일 동안 배운 건 식당 가는 길, 안 들키고 딴짓하는 법, 논문 빨리 훑어보기 정도다. 중요한 일은 아직 맡기지 않는데, 인턴이고 대외비도 많아서 여기 적을 수도 없다. 그냥 아주 쉽고 아주 헷갈리는 일들을 하고 있으며, 가끔 설거지도 한다.
창원에 와서 가장 놀랐던 건 생각보다 인프라가 좋다는 것이다. 서울 본가는 사실상 외딴섬이라 편의시설이라고 할 만한 게 거의 없었는데, 여기는 집 앞에 메가박스 있고, 10분 거리에 이마트, 롯데마트, 다이소, 올리브영까지 있다. 솔직히 조금 놀랐다.
그리고 본격적인 창원살이 이야기는 앞으로 이 목차에 차근차근 올라올 예정이다. 좀 더 살아보고, 이 도시랑 조금 더 친해지면 그때 제대로 후기를 써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