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16일 아빠가 되었다
5월의 어느 날 나는 아빠가 되었다.
아빠가 된다는 계획은 단 한 번도 구체적이지 않았다.
순서가 있는 일처럼 결혼 다음 마주하는 선택의 문제 정도로 여겼다.
다행히 우리 부부 둘 다 아이에 대해선 그런 느슨한 생각을 지녔고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이어나갔다.
그런 어느 날 나는 2.76kg의 핏덩이를 안았다.
결혼생활은 충분히 행복했다.
아내는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나는 그랬다.
특별할 것 없이 무탈하게 이어가는 하루하루가 만족스러웠다.
종종 아이를 안 가지냐는 주변의 물음엔 열심히 기도하고 있다고
어느 한 목사의 기도 임신 성공사례를 비꼬아 말했다.
그런 어느 날 우리는 젤리라는 태명을 가진 아이를 신기하게 바라본다.
자기 전엔 언제나 사사로운 생각이 불면을 일으킨다.
그날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라도 나중에 아이가 간절해졌을 때 정작 난임이라는 벽에 부딪치지는 않을까?
지금은 특별할 것 없는 일상에 만족한다지만 특별함 없는 평생을 견딜 수 있을까?
이렇다 할 부자간의 정이 없었던 나의 아버지가 그토록 그리운 것처럼
내가 없는 이 세상에서도 나를 그리워해 줄 한 사람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젤리는 아빠의 이기심이 낳았다.
불순함 섞인 동기도 용서한다는 듯 다행히 아이는 건강하게 태어나 주었고
2020년 5월 16일 15시 49분 나는 그렇게 아빠가 되었다.
아빠라... 사실 실감이 나지 않는다.
수술실 밖에서 아이의 첫 울음소리를 들었을 때 지금껏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뭉클한 감정이 찾아왔지만
이내 곧 얼떨떨한 상태로 곱창 같은 탯줄을 달고 나온 아이와 마주했다.
정말 어이없지만 곱창이 생각났다.
친구들과 소주 한잔에 질겅질겅 껌처럼 씹던 그 곱창 말이다.
겨우 새끼손가락 굵기 정도의 탯줄이 거대한 밧줄처럼 보일 정도로 아이는 너무 작았다.
어떻게 인간이 이토록 작을 수 있는지 신기하기만 했다.
그 작은 몸뚱이에 더 작은 손과 발이 달렸고
산도에 짓눌려 뾰족해진 머리에는 날 닮은 눈과 코와 입이 한대 어우러져 한 껏 울고 있었다.
아빠가 된다는 게 정확하게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겐 평생을 함께 할 또 한 명의 친구가 생긴 거다.
결혼으로 맺어진 아내가 그 첫 번째고 지금 우렁차게 울고 있는 젤리가 두 번째다.
앞으로 가족이란 이름으로 살아갈 날들이 궁금하다.
귀찮음을 무릅쓰고 그 날들을 기록해보려 컴퓨터를 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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