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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조알 Aug 11. 2020

육아는 술을 부른다

아빠의 술냄새를 기억해줘

음주 육아 중입니다


내가 기억하는 혼술의 시작은 군대 가기 전 주점 알바를 할 때였다. 

갓 스무 살을 넘긴 나를 다들 삼촌이라 불렀고 다소 부담스러운 그 조카들 사이를 오가며 서빙을 했다. 

손님들은 하나같이 점잖게 들어와 추하게 퇴장했다. 

토사물을 치우고 흔들어 깨우고 소지품을 챙겨줘야 했다. 

복도를 가득 메웠던 향수 냄새가 시들해지면 그제야 나도 하루를 마무리한다. 

내 하루의 끝은 해가 뜨기 전 달빛이 제법 선명한 새벽녘에 위치했고 

일찌감치 거리로 나선 청소부의 비질에 쓸려나갔다. 


동물의 왕국 같은 그곳의 셔터를 내리고 집으로 향하는 길엔 30년 전통 돼지국밥집을 지난다. 

주인 할매의 사진 박힌 간판 아래로는 24시간 사골이 끓고 있다.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그 사골 김을 온몸으로 쐬면 고단했던 하루가 되살아 나고 

국밥 한 그릇으로 달랬으면 하는 간절함이 생긴다. 

그래서 퇴근 후 의식처럼 찾은 국밥집이었고

곁들이는 소주 한 병은 제단에 올리는 공물처럼 의식의 일부가 되었다. 


그때부터였던 거 같다. 

몸이 고되면 그렇게 술 생각이 난다. 

감히 내 새끼 보는 일을 술집 손님 상대하는 일에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그 고됨의 정도는 뭐가 더 낫다고 말 못 하겠다. 


그래서일까? 

하루 종일 육아에 매달리는 요즘 저녁이면 술 생각이 난다. 

휴직을 하고 일체의 사회생활과 단절된 터라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잠든 그 잠깐의 시간 언제 깰지 모르는 그 불안한 시간에 

어떻게든 한 잔을 비워내야만 하는 게 하루의 숙제가 되었다. 

딱 맥주 한 캔 혹은 소주 2~3잔 정도로 타협하지만 어쨌거나 음주 육아를 하는 셈이다. 

어릴 적 아빠의 술냄새가 불쾌했던 아내는 아이가 싫어하지 않을까 걱정하면서도 

나의 수고를 알기에 이해하는 눈치다. 


그러고 보니 나도 아버지의 술냄새를 기억한다. 

매일 저녁 반주로 곁들이는 소주는 그 양이 항상 일정한데 

눈금도 없는 컵에 계량하듯 술을 따르는 아버지의 모습은 사뭇 진지하기까지 했다. 

만학도의 삶을 살았던 아버지는 올라오는 술기운을 양치로 누르고 책을 펼쳤다. 

치약이 풍기는 싸구려 민트향과 양치로도 씻지 못한 소주의 알코올 향이 한데 섞여 아버지의 방을 가득 채웠다. 

그 방문을 열면 언제나 상쾌한 술냄새가 코끝에 먼저 닿았고 책 읽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눈에 맺혔다. 


냄새는 눈으로 기억되고 이미지로 저장된다. 

이제 갓 100일을 앞둔 제니에게 지금의 선명한 기억은 없겠지만 

고단한 육아를 술 한잔으로 달랜 아빠의 냄새는 어렴풋이 기억될 수도 있다. 

혹시 나중에 커서 아빠의 술냄새를 맡게 된다면 

마냥 싫다고 밀치지만 말고 아빠품에 안겨 물었던 달큰한 젖병의 기억을 떠올려줬으면 좋겠다.




유튜브: 그놈 김조알

이메일: 83gigogig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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