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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훈 Jun 01. 2020

김세희 <가만한 나날>을 읽다.

우리는 불편하다

회사라는 회색의 공간은 마치 사회의 구조와도 닮아있다. 회사와 사회는 동시에 개인에게 프로가 되기를 강요한다. 이러한 공간에서 개인 간의 사적인 친분은 요구되지 않으며, 그저 그들에게 주어진 일만 잘 해내면 인정을 받게 된다. 어떻게 본다면 이 소설에 나오는 포털사이트와 더불어 모든 요소들이 비슷한 모습을 가진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양질의 콘텐츠의 보유라는 효율성만을 위하여 벌점 제도를 운영하는 포털사이트는 공개된 바 없이 추측과 속설 속에서 이러한 작업을 계속해가는 사회의 대표적인 모습으로 보인다. 실질적으로 어떠한 이해관계가 적용되었는지, 다른 이에 의하여 매크로 공격과 같은 해를 입었는지에 대해서는 그들의 고려사항이 아니다. 이러한 사회 속 요소들은 마치 개인 간의 진정한 관계보다는 효율과 비효율의 사이에서 편협한 관계만을 맺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회 초년생은 "경진"은 이러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써 이러한 구조에 무의식적으로 순응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녀뿐만이 아니다. 프로가 되라는 그녀의 언니도, 마치 채털리 부인이 저품질 블로그가 되어 죽어나가는 것처럼 회사에 적응하지 못하고 상사에게 좋지 않은 인상을 남긴채 떨어져 나간 "예진"도 이러한 사회 속에서 순응하는 모습만을 보여준다. 그들은 일을 잘 하거나 못하는 사람이라는 단순한 잣대로만 평가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경진"은 이래도 되는 건가하는 감각은 사라진 채 일을 잘 하지 못하는 대상이 자신이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거나, 자신이 세상의 이치를 목도한 사람처럼 경이로움과 체념을 느낀다는 등의 인간적인 관계와는 동떨어진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더불어 "뽀송이"와 관련된 사건이 발생했을 때에도 쪽지를 준 그 여자의 상황이 걱정되는 것이 아닌 ‘이 사람이 나를 찾아오면 어떻게 할지’에 대해 고민하며 자신 때문에 회사가 해를 입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모습을 보여주기까지 한다.


이러한 상황을 바라보며 "경진"은 점차 당황감에 휩싸인다. 이전까지는 느끼지 못했던 혐오감을 가지기까지 한다. 회색의 사회 속에서 나타난 이러한 일말의 변화는 포털사이트의 블로그에서 본 쪽지라는 작은 경험에서부터 촉발된다. 하지만 "경진"은 짜증을 내거나 혐오감을 가지기만 할 뿐이다. 복잡한 감정의 변화만이 존재할 뿐, 실질적인 변화를 이끄는 기회는 놓쳐버리고 만다.


우리는 소설을 읽으며 계속하여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때로는 사회와 너무나도 맞닿아있는 사건에 대해 분노하기도 한다. 이러한 불편함과 분노는 우리가 속해있는 사회의 구조의 모순됨을 우리가 이미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어서가 아닐까. 그렇기에 아무것도 모르는 경진의 모습을 보며 불편함과 안타까움을 곱씹고 있는 것이지는 아닐까. 예린을 쫓아가 자신이 했던 말을 정정하고 싶었지만 그녀를 놓쳐버린 채로 멍하니 서있는 "경진"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그녀의 불편한 감정이 어디서부터 촉발되었는지 과연 그녀가 알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알지 못한 채로 책을 덮을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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