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잔이란 술을 따라 마시는 그릇을 말한다. 술잔의 생김새와 크기는 술의 종류에 따라, 시대나 나라에 따라 모두 다르다고 한다. 흔히 사람들과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함께 술을 마시는 것을 우리는 ‘술잔을 나눈다’라고 하기도 한다. 술잔을 나누는 것에는 다양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성년이 되어서부터 지금까지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술잔을 다양한 사람들과 나누었고 그 안에는 기억에 남는 의미 있는 술잔부터 후회가 가득한 술잔, 아무 의미 없이 나눈 버리는 술잔이 있었다.
내게 있어 의미 있는 술잔은 크게 세 종류이다. 처음 나누는 술잔, 깨달음을 주는 술잔, 마지막으로 함께한 시간이 담긴 술잔이다. 처음 나누는 술잔은 아까 말했듯이 처음 경험하거나 오래 알았든 안 지 얼마 안 됐든 그 사람과 처음 가지는 술자리에서 나눈 술잔 또는 살면서 처음 배우는 술잔을 말한다.
처음 나누는 술잔만의 매력은 익숙하지 않음이다. 상대방에 대해 몰랐던 것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는데 새롭고 설레는 그런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다. 모름지기 그 사람을 알려고 하면 술잔을 나눠봐야 한다고 한다. 술잔을 나누며 이 사람이 나와 맞는지 맞지 않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처음 나누는 술잔은 그만큼 의미가 있다. 이 사람과의 관계를 어느 정도 선까지 유지해야 할지 가늠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고 상대방을 대하는 나의 태도 또한 돌아볼 수 있다. 부담스럽고 불편할 수 있지만 술잔을 나누는 것에 두려움을 갖지 않았으면 한다.
내 인생에서 첫 술잔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유년시절 가족 모임으로 다 같이 모여 고깃집에서 밥을 먹었다. 어른들은 술잔을 나누기 시작하셨고 아버지가 술을 좀 드시기 시작하자 어머니께서 그만 마시라며 아버지의 소주잔에 있는 술을 물컵에 따라 버리기를 몇 번 반복하셨다. 신나게 고기를 먹던 어린 나는 목이 말라 물 잔을 잡고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고 목부터 뱃속까지 뜨거워지는 이상한 느낌을 받자마자 밖으로 뛰쳐나가 가게 앞 나무에 술을 뱉어 냈고 내가 집었던 물 잔엔 어머니가 따라 버렸던 소주가 담겨있었다.
뒤늦게 내가 소주를 마신 것을 알게 된 어머니는 당황해하셨지만 이내 크게 웃으셨고 어른들도 하나 둘 웃기 시작하셨다. 살면서 처음 느껴 본 쓴 맛이었고 한동안 물 잔에 따라져 있는 물을 마실 때면 냄새를 먼저 맡곤 했다.
술은 보통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배운다고들 하는데 나 또한 실수로 마신 술을 제외하고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에게 배운 술이 첫 술이라고 할 수 있겠다. 보통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술을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술 마시는 것을 허락을 받고 마시는 것이 아닌 주도라고 하는 술잔을 나눌 때 갖추어야 할 예의를 배우게 된다.
오른손으로 술병의 상표 부분을 가리며 감싸 쥐고 남은 왼손은 오른손을 받쳐준다. 술잔에 술을 따를 때면 가득 따르지 말고 술잔의 2/3 정도 따른다. 어른과 마실 때는 술잔이 보이지 않게 술잔을 잡지 않은 반대 손으로 술잔을 살며시 가리고 고개를 돌려 마신다. 이것이 아버지와 술잔을 나누면서 내가 아버지에게 배운 기본적인 주도이자 살면서 처음 배우는 술잔이었다.
다음으로 깨달음을 주는 술잔은 술잔과 함께 대화를 주고받는 것이 기본이다. 하지만 꼭 많은 대화를 나눠야 하는 것만은 아니다. 사람은 때로 짧은 단어나 문장만으로 깨달음을 얻곤 한다. 헤밍웨이는 단 6개의 단어만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충분히 움직였다. 이처럼 짧은 대화만으로 깨달음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은 충분히 의미 있는 술잔이다.
나는 내 주변의 많은 인생 선배님들께 깨달음이 담긴 술잔을 받았다. 인생에 있어 선배는 꼭 나이가 많다고 해서 선배가 아니다. 친구이기도 나보다 나이가 적기도 하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그 부분에 있어서는 무조건 나보다 인생 선배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기에 나이에 상관없이 배울 점은 배우려는 자세를 항상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하루는 친한 친구이자 자기는 항상 철이 안 들었다고 말하지만 내가 보기엔 누구보다 일찍 철이 들고 대단한, 만날 때마다 적어도 하나 이상은 내게 깨달음을 주는 친구와 술잔을 나눈 적이 있었다. 이 친구와는 서로 바빠 많은 술잔을 나누진 못했는데도 그 안에서 나는 나를 사랑하고 챙기는 방법에 대해 배웠다.
치얼쓰~
다른 사람을 챙기고 생각하는 방법은 알아도 정작 나를 챙기는 방법을 몰랐던 나에게 친구는 “지훈아 나는 네가 다른 사람을 생각해주는 만큼 너를 좀 더 생각했으면 좋겠어, 네가 너를 생각해주지 못하면 정작 네가 힘든데 누군가 옆에 있어주지 못할 때 혼자 무너지기 쉽고 그것을 극복하기는 더 어려워. 그러니까 나는 네가 너를 좀 더 생각하고 챙겨줬으면 좋겠어”라고 말해주며 친구는 자기가 사용하는 ‘나를 생각하고 챙기는 방법’을 말해주었고 나는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쌔게 맞은 것 같으면서도 다시 한번 친구의 대단함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깨달음을 주는 사람은 깨달음을 줌과 동시에 항상 겸손한 자세를 취하는 것 같다. 깨달음을 받은 사람은 준 사람에게 대단함을 느끼며 감탄하거나 감사를 표하는데 이때마다 깨달음을 준 사람들은 별 거 아니라는 듯,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이야기이고 자기도 누군가에게 배운 것일 뿐이라며 겸손한 자세를 취해 다시금 대단함을 느끼게 해 준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될 때마다 똑같이 행동하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함께한 시간이 담긴 술잔은 가장 나누기 쉬운 술잔이면서도 언제 나눠도 좋지만 동시에 가장 나누기 어려운 술잔이기도 하다. 함께한 시간이 담겼기에 기본적으로 기억의 공유를 전제로 깔고 들어간다. 기쁘고 좋은 기억만 있으면 정말 좋겠지만 인생은 균형을 맞추듯 좋은 것이 있으면 나쁘거나 슬픈 것이 있기 마련이다.
나는 보통 이 술잔을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거나 같이 일을 하면서 고된 하루를 보낸 동료들과 함께 나눈다. 오랜 시간을 함께할수록 나눌 수 있는 이야기도 많아지고 사소한 것도 이야깃거리가 되어 언제든 나눌 수 있게 된다. 나는 새로운 이야기도 좋아하지만 옛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아해서 친구들과 만나 술잔을 나누는 날이면 옛이야기를 꼭 한 번 이상은 꺼내곤 한다.
각자의 술잔
웃긴 것은 지금 술을 마시면서 지난번 술자리 이야기를 하고 다음번에 술자리를 가지면 오늘 나눈 술자리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기억에 강하게 남고 웃픈 사건들은 매번 회자된다. 예를 들어 술을 마시다 너무 취해 3층에서 1층까지 앞 구르며 계단을 내려간다던가, 아침에 일어나 보니 길바닥이었다던가, 옷을 훌러덩 벗어던지곤 뛰어다니는 그런 이야기들.
함께한 시간이 담겨 있지만 나누기 힘든 술잔에는 대개 슬픔이 담겨 있다. 그 슬픔은 주로 오해와 이별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오랜 시간을 함께한 사람일수록 사소한 일이 서로에게 큰 상처로 돌아오기 쉽다. 그 사소한 일이 오해로 번져 서로를 멀리하게 되는데 이럴 때 오해를 풀기 위해 나누는 술잔은 정말 나누기 힘들다. 각자의 입장과 서로의 이해관계, 그동안 쌓여왔던 감정들을 풀어놓아야 하기에 어느 때보다도 조심스러우면서도 공격적이다. 그동안 함께한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진다면 대부분 좋은 방향으로 풀려가지만 함께한 시간도 포기할 수 있을 만큼 감정이 상하고 오해를 풀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채 시간만 지체됐다면 서로에게 상처만 남긴 채 끝을 맞이하게 되고 그렇게 이별을 하는 것이다.
또 다른 이별은 누군가를 다시는 볼 수 없는 곳으로 떠나보내는 이별, 사별이다. 누군가를 떠나보낸다는 것은 언제나 슬프다. 심지어 다시는 볼 수 없다고 한다면 말할 것도 없이 슬프다. 몇 해전 친할머니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내 드린 후 사무치는 슬픔을 술잔에 담아 쓸쓸한 마음 달래기를 반복하다 할머니와 함께한 시간과 추억을 마음 한편에 담아두고 일상으로 돌아가 어느 정도 무뎌졌을 무렵,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날씨 탓인지 할머니의 기일이 가까워 와서 그랬는지 알게 모르게 우울감이 올라와 술을 마시고 싶던 날이 있었다.
평소 근무지의 선생님들께 먼저 술을 마시자고 한 적이 거의 없었는데 그 날 따라 유독 술을 마시고 싶어 평소 자주 술잔을 나누던 선생님들께 시간이 되시는지 여쭤보았고 퇴근 후 가까운 술집에서 술잔을 나누었다. 처음엔 가벼운 이야기로 시작해 어쩐 일로 먼저 술을 마시자 했는지 물어 봐주시고 예전 같았으면 내 이야기를 잘 안 하기에 “그냥요”라고 대답했을 텐데 그 날은 이상하게도 내 이야기를 힘들지 않게 꺼냈다.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이야기하다 괜스레 울적해져 술잔을 들었는데 선생님 한 분께서 내 이야기에 크게 공감하셨는지 눈물을 훔치시곤 자신의 이야기를 해 주셨다. 술잔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한 시간과 함께하지 못한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 나누면서 누군가 나의 슬픔에 공감해주는 것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알게 된 정말 의미 있는 술잔이었다. 어떻게 보면 함께한 시간에 대해서는 이야기하기 쉬운 편이지만 함께하지 못한 시간에 대한 이야기는 대개 후회를 동반하여 쉽사리 이야기하지 못한다.
하지만 같이 헤아려 줄 사람이 있다면 용기를 얻어 조금이라도 이야기할 수 있게 된다. 이기주 작가님의 산문집 중 ‘언어의 온도’에 이런 문장이 실려 있다. “위로는 헤아림이라는 땅 위에 피는 꽃이다.”,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기에 위로해줄 수 있다는 뜻인데 나는 이 문장을 정말 좋아하고 공감한다. 이 날 나눴던 대화를 떠올리다 보니 문득 생각이 났다.
나와 함께 나눈 술잔이 상대방에게 의미 있는 술잔으로 기억에 남았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술잔을 나눠오면서 얼마나 많은 술잔을 나눴을까. 그중에서 나에게 의미 있는 술잔은 몇 잔이었을까. 후회가 가득하거나 버리는 술잔은 몇 잔이었을까.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글을 읽으면서 한번 생각해봤으면 졸겠다. 나는 어떤 술잔을 기억하고 어떤 술잔을 버리기로 했는지 말이다.
사실 나도 버리는 술잔에 대해 크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여느 때와 같이 별생각 없이 하루를 보내던 2020년 1월, 사회복무를 하던 시절 나를 담당해 주셨던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이젠 형님이라고 부른다. 사실 아직 형님이라 부르기 어색한데 술이 들어가면 그렇게 부른다.) 종종 생각이 나서 전화를 했다며 전화를 주곤 하신다. 그러지 않으실 때도 있지만 거의 매번 술잔을 많이 나누신 후에 전화를 주신다.
“지훈아 형이야~~ 뭐 하고 있었어~~~”
“그냥 누워있었슴다~”
“짜식, 얼마 전에 생일이었잖어~~ 축하하고~ 공부는 잘 돼가??”
“감사합니다, 공부는 여전히 어렵네요ㅋㅋ”
“어렵지 어렵지~ 근데 형은 네가 잘 해낼 거라고 믿는다. 잘 될 거야”
“감사합니다. 한잔 하셨어요??”
“그럼 인마~ 요즘 형이 바빠서 술 한잔 못 나누네, 예전엔 많이 마셨는데” 하며 아쉬움을 토로하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 예전에 술잔을 나누었던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조만간 술 한잔 해야지~ 예전엔 자주 마셨는데 그러질 못하니까 아쉽네. 근데 나는 너랑 나눈 술잔이 다 기억에 남는다.”
“헤헤 술 한잔 해야죠~ 저도 다 기억에 남아요~”
“근데 지훈아. 이렇게 우리가 나눈 술잔처럼 기억에 남는 술잔이 있다면 기억에 남기기 싫은, 남지 않는 버리는 술잔이 있기 마련이야. 버리는 술잔은 대게 후회가 남거나 아무것도 남지 않아. 네가 앞으로 얼마나 많은 술잔을 나눌지 모르겠지만 그 안에는 분명 버리는 술잔도 있을 거야. 인생이 좋은 것만 남기면서 살 수는 없잖아~ 모든 술잔을 다 담으려 하지 말고 버려야 할 술잔은 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해보면 그런 술잔들이 정말 있었어요. 앞으로 버릴 수 있는 건 버려보겠습니다.”
“형이랑 나눈 술잔은 버리면 안 된다?”
“아… 안돼요???ㅋㅋㅋ”
“뭐 인마…?”
조만간 술잔을 나누기로 약속하며 전화 통화를 마친 후 버리는 술잔에 꽂혀 생각을 곱씹어 봤다. 지금까지 나눈 술잔 중에 버리는 술잔은 없었는지, 있다면 어떤 종류였는지 말이다. 내가 생각하는 버리는 술잔은 다음과 같다.
먼저 쓴 맛 밖에 기억이 남지 않는 술잔이다. 쓴 맛 밖에 기억이 남지 않는다는 것은 그 자리에서 나눈 술잔에는 기억에 남는 이야기도, 사람도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술잔은 대개 내가 원하지 않았거나 예상치 못한 만남이 이뤄진 경우에 자주 느낀다. 동기들과 술을 마시는데 건너 테이블에 앉아 술을 마시던 사람들이 알고 보니 선배였을 때, 그 선배들이 우리를 알아보고 갑자기 한 명씩 우리 자리에 앉아 알고 싶지 않은 자기 인생에 대해서 얘기를 하며 라떼를 찾는 그런 경우 말이다.
다음으로는 힘든 술잔이다. 이 술잔의 경우 고단함이 담긴 술잔과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르다. 그냥 술잔을 나누는 것 자체가 힘이 드는 술잔이다. 상대방이 나의 듣는 귀 만을 원할 때 또는 듣기 싫은 말만 골라서 할 경우 자주 나타난다. 상대방에게 나는 그저 감정 쓰레기통이 되는 경우, 내 기분은 생각 안 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자기 상황에 대해서만 주구장창 떠들어대는 사람과 술잔을 나누고 집에 갈 때면 귀에서 토가 나오는 게 아닐까 싶고 상대방과의 관계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여러분도 한 번 생각해보기 바란다.
듣기 싫은 말만 골라서 하는 사람, 이런 사람은 인생에서 걸러야 하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한다. 조언이나 도움을 주기 위한 말이 아닌 그저 나의 자존감을 깎아내리기 밖에 하지 않는 사람, 내가 하고 있거나 해왔던 일을 부정하고 무시하기 바쁜 말들을 쉴 새 없이 쏟아낸다. 이런 사람들한테 가장 많이 들은 말 중 하나를 꼽아 보자면.
“에이 그거 해서 뭐하냐? 그거 하면 (돈) 얼마나 버는데?”
지금까지 살아가면서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기를 바라지만 종종 들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많이 들었다. 처음 대학에 들어갔을 때, 요리를 그만두고 사회복지를 선택했을 때, 취미 활동을 할 때. 하지만 이런 말에 주눅 들 필요 전혀 없다. 무시하고 내 갈 길 가면 그만이다. 어차피 내 인생 내가 사는 것이고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싫어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사서 고생은 할 수 있지만 사서 상처 받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나를 무시하는 친구보다 나를 응원해주는 친구를 곁에 두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거짓된 술잔이다. 나는 이 술잔을 가면을 쓰고 나누는 술잔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 술잔은 거짓된 관계에서 비롯된다. 그렇게 친하지도 않은데, 어설프게 친한데 어쩌다 술자리를 함께 하는 경우. 세상 친한 척하면서 근황도 물어보고 애인은 있는지, 직업은 뭐였는지 등 어설픈 추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기 싫어서 술잔을 권한다. ‘짠’ 소리와 함께 나눈 술잔은 술자리가 끝나면 기억도 ‘짠’하고 사라진다.
어떤 술잔이던 술잔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알코올에 취해가는 것만으로도 좋을 때가 있지만 살면서 한 번쯤은 이런 생각을 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감히 예상해본다. 당신의 인생에는 어떤 술잔이 남아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