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베란다에는 어머니의 작은 화원이 있다. 평소에 산 타는 것을 좋아하시고 꽃이나 나무 등의 식물을 키우시는 취미를 가지고 계신 어머니는 베란다 한편에 화분을 하나씩 늘려 가기 시작하셨다. 처음에는 몇 개 안되던 화분이 이제는 20개가량으로 늘어났고 종류 또한 다양해졌다. 나 또한 화분이나 꽃을 선물 받으면 어머니께 드리기 일수였고 그렇게 어머니의 화원에서 어머니의 사랑을 받으며 지금도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다.
행운목, 선인장, 복숭아꽃, 고무나무, 나비 난 등 어머니의 작은 화원에는 다양한 나무와 꽃들이 살아 숨 쉬고 있다. 어머니는 때가 되면 양분이 가득한 흙으로 분 갈이를 해주고 햇빛이 잘 드는 자리에 화분들을 놓아주어 베란다를 통해 비추는 따사로운 햇살을 맞을 수 있도록 해 주셨다. 또한 식물들이 마르지 않도록 주기적으로 물을 뿌려 주셨는데, 이러한 어머니의 사랑을 받으니 식물들은 무럭무럭 자라났고 꽃이 있는 꽃들은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하루는 선인장의 꽃이 노란빛을 뽐내며 활짝 피자 어머니께서는 거실에서 과제를 하고 있던 나에게 꽃 좀 보라고 하시면서 말씀하셨다.
“사람이든 식물이든 관심을 가지고 보살펴 준다면 저마다의 꽃을 피우게 되어 있단다. 부모가 자식을 키우는 것 또한 같은 거야, 부모가 아이에게 사랑을 주면 아이는 그 사랑을 받고 무럭무럭 자라 어느덧 이쁜 꽃으로 피어 있지, 너희들도 그랬어”
노란빛을 머금은 선인장 꽃
어머니의 말을 듣곤 생각에 잠겼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도 부모님은 우리를 키우기 위해 정말 많은 고생과 노력을 하셨다. 우리에게 있어서 부모님은 양분이 가득한 흙이셨고 따사로운 햇살이었으며 단 비와도 같은 물이셨다. 뿐만 아니라 혹시라도 다치진 않을까 들여다보시고 잘못된 방향으로 크진 않을까 걱정하시며 못해준 것은 없는지 필요한 것은 없는지 생각하신다.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자식들을 보면서 부모님은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궁금해진다. 울기만 하던 아이는 어느덧 배를 뒤집고 기어 다니기 시작한다. 시간은 또 흘러 아이는 두발로 서서 걸음마를 걷기 시작하고 이유식을 먹던 아이는 밥을 먹기 시작한다. 아이는 유치원을 지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어느덧 대학생이 되어 있다. 아이는 성인이 되어 키가 몰라보게 자랐고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게 되었다.
부모님의 시간 또한 계속해서 흘러간다. 아이가 자하고 시간이 흐를수록 부모님의 어깨엔 짐이 늘어가고 허리는 굽어가며 머리에는 흰 머리카락이 늘어간다. 얼굴엔 어느새 주름이 자리 잡고 있었고 움직일 때마다 “아이고”하는 곡소리가 따라붙는다. 태산과도 같아 보였던 아버지의 등이 이제는 많이 왜소해지셨고 누구보다 강한 줄만 알았던 어머니도 다른 사람과 다를 바 없이 눈물을 흘릴 줄 알고 걱정거리가 가득해서 주름이 늘어가는 그런 사람이셨다.
하지만 달라지지 않는 사실이 있다면 보이는 것만 달라졌을 뿐 아버지는 나에게 여전히 태산과도 같고 어머니는 여전히 내가 아는 사람들 중 누구보다도 강하시다. 단지 그 모습이 두 분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뿐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여전히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는다. 달라지지 않는 또 한 가지, 나는 아직 부모님이 주신만큼의 사랑의 반의 반도 드리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부모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실 수 있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고 부모님 고생만 시키는 불효자식이라는 사실이다.
꽃을 처음 키우는 사람들이 흔하게 하는 실수들이 몇 가지가 있다. 씨앗을 아무 흙에나 심거나 물을 너무 많이 주거나 햇빛이 들지 않는 곳에 화분을 두는 등의 사소한 것 같지만 꽃에게는 중요한 그런 실수들을 하곤 한다. 이런 실수들을 하는 이유는 대게 처음이라 잘 모르기 때문이다. 꽃을 키워본 적이 없어 관련 지식이 부족하고 어떻게 해야 할 줄 모르기에 나도 모르게 실수를 범하게 된다.
부모님도 마찬가지다. 부모님도 자식을, 우리를 키우는 게 처음이시기에 서투를 수밖에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부모님’이라는 이유로 당연하게 잘해야 한다고 생각해버리고 만다. 부모는 자식을 보호하고 교양하는 등 부양의 의무를 가지고 있지만 사람이기에 완벽할 수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해버려서 굳이 알려고 하지 않는다.
나 또한 그랬다. 부모님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당연하게 알아주길 원했고 몰라주면 서운해했다. 사랑받는 걸 당연시했고 받지 못하면 화를 내기도 했다. 부모님의 고생은 알려고도 하지 않은 채 나의 고생을 알리기 바빴고 거짓된 효도를 진짜 효도라고 착각하며 생색내기 바빴다.
그러다 우연히 보게 된 드라마의 한 장면으로 인해 부모님도 부모가 처음인지라 서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2015년에 방영된 응답 하라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 ‘응답하라 1988’에서 주인공 덕선은 88년 서울 올림픽에 마다가스카르의 피켓걸로 참여하게 되어 몇 개월간 열심히 연습했지만 마다가스카르의 올림픽 불참으로 인해 그동안 고생했던 덕선이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었고 덕선은 허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그런 와중에 덕선은 언니인 보라의 생일날에 자신의 생일까지 묶어서 함께 생일 파티를 해주는 엄마, 아빠의 모습에 그만 서러움이 폭발해 울분을 토하며 큰소리치고 만다.
덕선은 그동안 자신이 둘째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을 언니와 남동생에게 양보해야만 했던 것들 것과 자신 역시 생일파티를 하고 싶었던 마음에 서러움이 폭발하고 말았던 것이었다. 이후 덕선은 다행히도 기회를 얻어 우간다의 피켓걸로 올림픽에 참여하게 됐고 성공적으로 피켓걸 활동을 마친 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아빠 동일을 만나게 된다.
아빠인 동일은 생일을 맞은 덕선이에게 생일 케이크를 내밀며 말하는데 이 말을 듣는 순간 마음 한구석이 아려 오며 그동안의 나 자신을, 우리 부모님을 돌아보게 되었다. 덕선의 아버지 역을 맡은 성동일 배우님은 특유의 친근하고 착 달라붙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아빠가 미안하다. 잘 몰라서 그래, 아빠도 태어날 때부터 아빠가 아니잖아.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니까 이쁜 우리 딸이 조금만 이해해줘”
아빠와 엄마는 늘 항상 자신이 힘들고 지칠 때면 언제나 곁에 있어주는 그런 사람인 줄로만 알았던 덕선은 참아왔던 눈물을 보이고 마는데 처음에는 덕선이 보여주는 둘째의 서러움에 나도 모르게 공감을 해서 마음이 짠했다가 아빠인 동일의 말을 듣고 난 후 부모님의 마음을, 그동안의 고생을 아주 조금이나마 알 것만 같아서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몸은 컸지만 나는 아직 어렸고 부모님의 모든 마음을, 여태껏 하신 고생을 다 알지 못한다. 이런 나 또한 훗날 누군가의 아버지가 될 것이고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이를 위해 갖은 노력을 다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때가 된다면 부모님의 마음을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갑자기 뜬금없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 이 순간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잊지 말았으면 하는 한 가지가 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