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때문에 내 속이 더 아픈데

기억에 남는 주사에 대하여

by 김지훈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은 내가 금주를 시작한지 공식적으로 21일 되던 날이다. 딱히 사고를 치거나 건강이 급격하게 안 좋아져서 금주를 한 것은 아니고 앞으로 나의 미래를 결정 지을 수도 있는 이 기간동안 '나 자신과의 약속을 한 번 지켜보자, 이것조차 하지 못하면 나는 앞으로 그 어떤 것도 하지 못한다'는 마인드로 이번 금주 챌린지를 시작하였다.

금주 챌린지 전 마지막 막걸리

신기하게도 금주를 한지 2주가 넘어가니 술 생각이 나질 않는다. 2주 밖에 안되서 그런 거라고 할 수 있지만 나는 2주나 넘게 술 생각이 나지 않다니 대단한 걸? 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긍정적으로 생각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금주를 하면서 여러 생각들이 났었는데 그 중 하나가 '예전엔 술을 정말 많이 마셨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마셨지?'하는 생각이었다. 진짜 일주일의 반 이상 술을 마신 적도 많았고 술 마신 다음날 술을 왜 마셨을까 후회를 하면서도 그 날 저녁에 친구들과 술을 마시러 간 적도 정말 많았다. 누구나 다 혈기 왕성할 때는 있는 법이라고 생각하니까 아련해진다. 벌써 늙었나.


술에 절여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술을 자주 마셨던 과거를 회상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주사가 떠올랐다. 나는 아직까지도 내 주사를 모른다. 왜냐하면 주사를 부릴 정도로 취하기 전에 항상 자리가 파하거나 집에 갔다. 또래 친구들에 비해 어느 정도 술을 잘 마셨던 것도 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을 싫어하여 술자리에서는 어떻게든 정신줄을 부여잡는다.


없는 주사를 어떻게든 찾아보라고 한다면 나의 주사는 '분실물 수거'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챙기고 그들이 남기고 간 것들을 빠짐 없이 체크한 뒤 놓고 간 게 있으면 챙긴다. 여러 명이 모여 술을 진득하게 마신 뒤 필름이 끊긴 채로 집에 들어가 다음 날 자신의 소지품이 사라진 것을 인식하고는 단톡방에다가 다급하게 톡을 날린다.


"혹시 내 가방 본 사람...???"

"내가 챙겼다 이 놈아 가방만 두고 어딜 그렇게 사라지는겨..."

"헤헤 미안!"


같은 레퍼토리가 자주 발생했다. 여태까지 수거한 분실물들은 흔하게는 핸드폰, 충전기, 지갑, 주민등록증, 화장품부터 여름엔 손풍기, 겨울엔 패딩까지 다양하게 수거했었다. 이제는 일일히 챙겨서 갖다주기 힘들어서 미리 미리 챙겨주곤 한다.


내 주사에 대해 쓰면 이렇게 별로 재미가 없다. 왜냐면 주사라고 하기에도 민망하고 진정한 주사는 훗날에도 회자되며 항간에는 '누군가의 흑역사'로 이야기가 전해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부터 지금까지 겪어 본 많은 주사들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들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대부분의 주사가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았기 때문에 빌런이라고 표현하겠다.


1. 수도꼭지 빌런

가장 싫어하는 빌런 유형 중 하나, 뒷처리가 너무 힘들다. 여기서 수도꼭지란 무엇이냐 바로... 자신이 먹은 술과 안주를 게워내는... 즉, 토를 하는 것을 말한다. 술에 취하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20살 새내기들은 자신의 주량도 잘 모르면서 자신이 술을 잘 마신다고 착각하며 술을 들이 붓는다. 그러다 보면 3명 중 1명은 어디선가 토를 하고 있는데 나는 친구들과 그걸 '수도꼭지를 튼다'라고 표현하곤 했다.


이 유형이 가장 싫은 유형 중 하나인 이유는 뒷처리가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화장실 변기에 하면 그나마 양반이다. 세면대, 소변기, 화장실 길목, 테이블, 가방까지 아주 그냥 다양하다. 이 빌런들은 수도꼭지를 한번 거하게 틀고나면 세상 편하게 뻗어 버리는 애들이 대다수다. 그나마 정신 붙들어 메고 뒷정리하는 애들은... 죽을 맛이다. 직원들과 사장님께도 죄송하고 다른 손님들께도 죄송하다.


대학교 1학년 때 가장 많이 수도꼭지를 틀었던 친구는 수도꼭지를 틀 때마다 '아유...미안하다...'를 반복해서 '미안하다좌'로 불리기도 했다.


2. 탈주닌자 빌런

어떻게 보면 가장 어이 없거나 난감한 빌런이다. 술 마시다 어느 순간 사라진다. 말이라도 하고 가면 다행인데 이 빌런들은 말도 없이 사라진다. 이 빌런들은 대게 귀가본능이 강하거나 탈출 의지가 강한 경우가 많다. 자기 주량보다 술을 조금이라도 더 마시면 바로 사라진다. 살아남기 위해서.


이 빌런들은 걱정을 가장 많이 하게 해서 짜증이 난다. 집에 무사히 갔는지 알 수가 없으니 걱정이 아주 이만 저만 삼만이다. 만에하나 사고라도 나는 날엔 골머리가 아파온다.


지금까지 정말 많은 탈주 닌자들을 만났는데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탈주 닌자를 꼽아 보자면 자기가 불러놓고 자기가 가장 먼저 탈주하는 닌자, 갑자기 내 귀에 트림을 하고 탈주한 닌자가 아닐까 싶다. 트림하고 베시시 웃던 그 얼굴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걸리기만 해 아주.


3. 분조장 빌런

수도꼭지 빌런이 뒷처리가 힘들다면 분조장 빌런은 뒷감당이 힘들다. '분조장'이란 '분노 조절 장애'로 자신의 화를 주체 못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술이 들어가면 왜 그렇게 화를 주체 못하는지 나로썬 이해가 안된다. 시비는 기본 옵션이고 말싸움에 몸싸움까지 하기도 한다. 그중에 몇몇은 사물에 화를 풀곤 한다. 정말 싫다.


20살 초반엔 단체로 모이는 것을 좋아했는데 단체로 모일때마다 사건이 터지고 서로 죽일듯이 물어 뜯는걸 보고 그 뒷처리를 주로 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단체로 모이는 것이 진저리가 났다. 나이가 먹을수록 소수로 모이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뭐 이 빌런들 덕분에 경찰차, 구급차도 타보고 가게 사장님들, 손님들에게 정중히 사과하느라 예의가 더욱 발라졌으니 좋은 경험이었긴 개뿔 앞으로 또 그러면 싹 다 고쳐줄 생각이다.


4. 잠자는 숲속의 빌런

모 아니면 도인 빌런, 아니 도는 아니고 적어도 개 정도는 되는 것 같다. 가끔 개 같기 때문이다. 흠흠.


술 마시다 스르르 잠이 든다. 테이블에서 잠이 들면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이 빌런들은 주로 화장실에서 잠이 든다. 큰 화장실이거나 사람이 좀 많으면 그나마 다행인데 화장실도 작고 사람도 없으면 대략 난감이다. 거기에 만약 이성이다? 그러면 말 다했다. 직원분들께 sos 요청하고 90도로 인사를 드려야 한다.


이 빌런들은 다음날 어제의 기억은 잊은 채 어제 무슨 일 있었냐고 묻는다. 묻어버릴 수도 없고 말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화장실에서 잠든 친구를 다른 손님께서 꺼내 주시고 혼자 옮길 수가 없어 친구와 함께 낑낑대며 옮기다가 가게에 들어온 2년만에 만난 친구와 눈이 마주쳐 머쓱하게 웃으며 마저 옮긴 일이 아닐까 싶다. 카톡으로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는 친구에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 빌런들말고도 '나 오늘 집에 안가 빌런', '만지작 빌런', '도벽 빌런' 등 정말 다양한 빌런들이 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빌런들은 저 네 유형의 빌런들이다.


어떻게 보면 재밌는 추억이 되기도 하겠지만 이 빌런들과 함께한 술자리는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들이 많다. 그래서 더욱 취하지 않으려 하고 주사도 부리지 않았나 싶다. 내 친구들과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취한 모습 좀 보고 싶다고 말들 하지만 난 취한 모습을 보여줄 생각이 없다. 도전해 온다면 어떻게든 정신력을 붙잡고 허벅지를 꼬집으며 취하지 않을 것이다. 썰은 나만 수집해야 하니까.


이 글을 마무리하는 오늘은 금주를 한지 54일 되는 날이다. 앞으로 70일은 더 할 생각인데 잘 해낼지는 모르겠다.

부디 성공할 수 있길 응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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