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후밀 흐라발
49세라는 늦은 나이에 소설을 쓰기 시작해 체코의 국민 작가 반열에 올랐다는 보후밀 흐라발은 이 책이 자신이 쓴 책 중에서 가장 사랑하는 책이며 자신은 이 책을 쓰기 위해 세상에 왔다고 말했다. 나에게 이 책은 다음 발췌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나라면, 내가 글을 쓸 줄 안다면, 사람들의 지극한 불행과 지극한 행복에 대한 책을 쓰겠다.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다는 것을 나는 책을 통해, 책에서 배워 안다. 사고하는 인간 역시 인간적이지 않기는 마찬가지라는 것도, 그러고 싶어서가 아니라, 사고라는 행위 자체가 상식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 책은 내게 파괴의 기쁨과 맛을 가르쳐주었다.
이 책의 주인공 한탸가 책을 통해 지극한 불행과 지극한 행복을 배운 것처럼 나 역시 이 책을 통해서 지극한 불행과 지극한 행복을 맛봤다. 한탸의 삶이 인간적이지 않았고 그가 살던 세상이 늘 상식과 충돌하는 세상이었던 것처럼 내 삶 역시 인간적이지 않고 내가 사는 세상도 끊임없이 상식과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 무엇보다, 내가 인간적이지 않고 내가 상식적이지 않다.
한탸는 삶의 중심에 놓인 폐지 압축기 주위를 맴돌며 끊임없이 심신을 책과 술로 채웠다. 그렇게 차오른 책과 술은 한탸의 현실과 기억과 환상을 압축해 경계를 무너뜨리고 버무려 추하면서도 아름다운, 너무 시끄러운 고독을 탄생시켰다.
책을 혐오했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상상도 하지 않았던 무언가가 되었던 만차와는 다르게, 책들에 둘러싸여 살면서도 끊임없이 투쟁하며 제자리를 맴돌 수밖에 없었던 한탸에게 부브니의 거대한 기계는 불행이 아니었다. 기계를 본 뒤 한탸는 자신이 순응해야 할 운명이 무엇인지 깨달았고 어느덧 닥쳐온 시대의 마지막을 마주했다. 스스로 시대의 마지막을 장식할 막을 내릴 버튼을 누른 한탸는 자신의 모든 것을 압축해 시끄러운 고독의 대미를 장식했다.
보후밀 흐라발은 이 책을 쓰기 위해 세상에 왔다고 말했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생각났다. 그 시절의 체코는 도대체 어떤 나라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