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nugeun Jun 24. 2023

도덕경, 독서록

무위와 도의 세계로 가는 길

 도덕경을 읽고 나면 머리에 두 단어가 남는다. 무위와 도.  


 이 책 해제에는 ‘결국 노자가 도덕경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요체는 사람들에게 수도의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나와 있다. 그 수도를 통해 이르고자 하는 경지가 무위이고 도이다.


무위란 무엇인가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무위’의 뜻으로 다음 세 가지가 올라와 있다.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음. 또는 이룬 것이 없음.

인연을 따라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생멸의 변화를 떠난 것

중국의 노장 철학에서, 자연에 따라 행하고 인위를 가하지 않는 것. 인간의 지식이나 욕심이 오히려 세상을 혼란시킨다고 여기고 자연 그대로를 최고의 경지로 본다.


 세 번째가 이 책에서 주로 말하는 무위의 뜻인데 세 번째 뜻을 궁극으로 이룬다면 첫 번째 뜻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노자는 인위(자연의 힘이 아닌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일)를 배척하고 무위를 추구한다. 여기서 노자가 말하는 인위의 범위가 상당히 넓다. 인, 의, 예, 지, 충, 효와 같이 흔히 사람이 갖춰야 할 덕목이라고 여기는 것들도 인위에 포함된다.

 노자는 도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평화로운 부쟁의 사회가 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지엽적인 덕목이 마치 특별한 덕목인양 주목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대도가 없어지니 인의가 생겨난다.
지혜와 총명이 나타나니 곧 허위와 사기가 횡행하게 된다.
가족이 화목하지 않으니 효자가 생긴다.
국가가 혼란스러우니 충신이 나타난다.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유교의 덕목들이다. 노자는 유교의 덕목을 하급의 덕이라고 여겼다. 도에서 비롯된 상급의 덕을 얻지 못해 인위적으로 겉모습이라도 따라하게 만드는 행위규범에 불과한 것이라고 여겼다.


 궁극적으로 위정자를 포함해 모두가 인위적으로 무엇을 하지 않아도 행복하게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무위의 세상이 노자가 바라던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옮긴이는 노자가 말하는 무위가 앞서 본 표준국어대사전의 첫 번째 뜻이 아니라고 말하는데 나는 궁극적으로 그곳에 도달하는 게 노자의 목표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음. 또는 이룬 것이 없음.


 생존하기 위해, 꿈을 이루기 위해, 또는 그 무엇을 위해 제한된 자원을 놓고 모두가 경쟁하듯 달리는 세상이 아니라 무언가를 이룰 필요 없이, 일을 한다는 자각조차 없이 자연스럽게 그저 물 흘러가듯 살아도 문제없이 살 수 있는 세상. 끊임없이 전쟁이 벌어지며 수없는 사람들이 누군가의 무언가를 위해 목숨을 잃어야만 했던 춘추 전국 시대에 노자가 꿈꾸던 세상은 그런 세상이었던 것 같다. 어쩌면 노자는 지금이야말로 그런 세상에서 살고 있겠지.


도란 무엇인가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도’의 뜻으로 다음 세 가지가 올라와 있다.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

종교적으로 깊이 깨친 이치. 또는 그런 경지.

무술이나 기예 따위를 행하는 방법.


 첫 번째와 두 번째 뜻에다가 무위를 결합하면 이 책에서 말하는 도의 의미에 근접할 것 같긴 한데 사실 노자가 말하는 도가 무엇인지 정확히 정의하지 못하겠다. 옮긴이는 중간중간 노자가 이해하기 쉽게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나는 읽으면서 도가 무엇인지 노자가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느꼈다. 대부분 아래와 같이 비유나 상징을 통해 추상적으로 묘사하고 있다고 느꼈다.


아는 자는 말하지 않고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한다.
날카로움을 무디게 하여 둥글게 하고, 분란을 화해시키며 빛을 부드럽게 하고 속세와 함께 한다.
이를 일러 심오한 현동, 즉 ‘도’라 한다.
능히 굽어질 수 있어야 온전하다.
능히 구부릴 수 있어야 곧을 수 있다. 
능히 패일 수 있어야 채울 수 있다.
낡고 해져야 비로소 새로울 수 있다.
...
스스로를 옳다고 하지 않으므로 시비를 분명하게 분별한다.
스스로 뽐내지 않으므로 공을 이룬다.
스스로 자랑하지 않으므로 장구할 수 있다. 
...
사람으로 하여금 원만하게 함으로써 대도의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또는 도를 깨치거나 깨치지 못한 사람이 어떠한지 그 결과를 피상적으로 나열하기도 한다.


인위적으로 행하는 자는 실패하고, 집착하는 자는 잃는다.
그러한 까닭에 성인은 무위로 행하여 실패하지 아니하고, 집착하지 않으므로 잃지 않는다.
옛날 도를 지닌 사람은 얕은 지혜로써 백성을 다스리지 아니하고 질박과 무위로써 하였다.
백성들을 다스리기 어려운 까닭은 이익을 추구하려는 지혜가 만연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혜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재앙이고, 지혜로 나라를 다스리지 않는다면 나라에 복이 있다.


 이런 설명으로 도가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나에게는 불가능했다. 아마도 내가 이해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도는 사람마다 상황마다 달리 표현해야 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예를 들어 질박이나 지혜는 구체적인 사례에서는 사람마다 기준이 다를 수 있다. 누군가에겐 꾸민 데 없이 수수한 언행이 누군가에겐 지혜로운 언행이 될 수 있고, 그 반대도 성립할 것이다. 

 노자가 도를 물에 비유한 것처럼 도는 추상적인 것으로 어떤 그릇에 담느냐에 따라, 어떤 사람이 닦느냐에 따라 각자 다른 과정과 모습으로 형성되는 것일 수도 있겠다. 만약 그렇다면 노자는 그저 방향만 제시할 뿐 실현 과정은 각자의 몫이겠지.

 그런 의미에서 도'교'와 같이 


노자의 성선설과 마키아 밸리의 성악설


 이 책을 읽다 보면 마키아 밸리의 군주론이 떠오른다. 둘 모두 전란이 극심했던 시절에 나고 자란 사람이었고, 리더는 되지 못했지만 본인이 생각하기에 그 시대에 꼭 필요한 리더를 책에 그려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서로 극과 극인 리더를 그려냈다.


 노자는 근본적으로 성선설을 믿었다고 생각한다. 모두의 원천에는 이미 도가 있어서 각 개인의 수련과 더불어 리더가 이런저런 개인적 사회적 인위를 걷어내주면 모두가 욕심 없이 평화롭게, 자연과 더불어, 자연을 닮아가며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무위의 사회가 도래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책에는 '도의 역할은 바로 부단히 그 자체로 돌아오는 것이다.'라는 말이 나온다. 이 말은 원래 있던 곳, 원래 그 자체가 선하다는 가정이 있어야 성립할 수 있는 말이다.  


 반대로 마키아 밸리는 성악설을 믿었다고 생각한다. 마키아 밸리는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들을 언제든 남을 배신하거나 속일 수 있는 사람으로 생각했다. ‘사람들은 사소한 피해에 대해서는 쉽게 보복하려고 들지만, 엄청난 피해에 대해서는 감히 복수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고 표현한 것처럼, 사람은 근본적으로 악하고 현명하지 못해서 근본을 성찰해 이치를 깨닫기보다는 현상을 관찰하는 데 그치고, 그렇게 관찰한 현상을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한다는 게 마키아 밸리의 생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리더에게 하는 조언이 지극히 현실적이고 심지어 악하기까지 하다. ‘다수의 사람들은 무엇이든 겉모양으로 판단하니 미움받는 일은 남에게 미루고 자비로운 일은 직접 하라’던가, ‘필요하다면 기꺼이 잔혹해져야 하고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약속을 지킬 필요가 없으며, 신의를 저버릴 때 죄책감을 느낄 필요도 없다’와 같은 내용이 그렇다.


 기저에 깔린 생각의 차이 때문에 노자의 조언은 자기희생적이고 마키아 밸리의 조언은 자기 방어적이다.

 현실적인 쪽은 당연히 마키아 밸리의 조언이다. 지금껏 살면서 국가의 이념이나 경제 상황과 상관없이 국가 단위의 리더가 노자 스타일인 경우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지정학적 특성 때문에 주변국들과 얽힌 지저분한 외교 관계를 생각해 볼 때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마키아 밸리의 다음 말로 대신하겠다.


 ‘인간이 실제 어떻게 사는가’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인간사에서 보통 행해지는 것을 행하지 않고 마땅히 행해야 할 것을 행하겠다고 고집하는 군주는 권력을 잃고 말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나 선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고집하는 사람은 선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곧 몰락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군주가 자신을 보존하고자 한다면 상황에 따라 선하지 않게 행동하는 법을 배워서, 필요에 따라 그것을 사용하거나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유비무환


 노자와 마키아 밸리가 한 목소리로 조언한 부분도 있다. 평온한 시기에 위기에 대비해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노자

 편안할 때 위태로운 것을 조심하면 유지하기가 쉽고, 아직 징조가 나타나기 전에 미리 대책을 세우면 계획하기가 쉽다.
 아직 아무 일도 없을 때 처리하고 어지러워지기 전에 다스려야 한다.


마키아 밸리

 저는 운명의 여신을 격렬하게 넘실대는 험난한 강에 비유합니다. 모든 것은 그 험난한 물결 앞에서 도망가버리고, 그 난폭함에 굴복해 어떤 방법으로도 맞서지 못합니다.
 그러나 강물의 특성이 그러해도, 사람들은 평온한 시기에 제방과 둑을 쌓아 예방 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이로써 훗날 강물이 불어 넘쳐도 수로를 따라 물줄기를 흐르게 해서 제방을 넘어오지 못하게 하거나, 물이 제방을 넘어 통제할 수 없어져도 피해가 덜 가도록 할 수는 있습니다.
 운명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운명은 자신에게 맞서 싸우기 위해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은 곳에서 그 위력을 드러내며, 운명을 막기 위한 제방이나 둑이 마련되지 않은 곳에 집중해서 덮칩니다.


 위대한 두 작가가 한 목소리로 유비무환을 외쳤다는 것은 내가 이렇게 넋 놓고 앉아 있을 시간이 없다는 얘기다. 요 몇 달간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속 편하게 잘도 쉬었다. 쉬면서 친 사고를 얼른 수습하고 이제 그만 털고 일어서서 성큼성큼 다가오는 위기에 부지런히 대비해야 하는데 디아블로 4가 너무 재밌어 보인다. 지금까지 디아블로는 무조건 야만용사로 시작해서 다음 캐릭터로 넘어가곤 했는데 이번엔 드루이드를 먼저 해보고 싶다.


원문을 직접 해석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도덕경 원문은 전부 한문이다. 따라서 내가 읽은 것은 실상 도덕경 원문이 아니라 원문을 누군가가(현대지성 판에서는 소준섭 님이) 자신의 관점에서 자신의 배경지식을 토대로 해석한 해석본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 책을 펼칠 때는 직접 원문을 해석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첫 장의 첫 구절을 보고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


 이 구절의 뜻은 다음과 같다.


도는 말해질 수 있지만, 그것은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도가 아니다. 명은 말해질 수 있지만, 그것은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명이 아니다.


 한 글자씩 떼어놓고 보면 모르는 한자가 없지만 문자가 이어져 글이 되는 구조를 잘 모르기 때문에 이것들을 붙여서 어떻게 뜻을 만들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포기.


매거진의 이전글 농담, 독서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