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독서록

강지나 작가의 '빈곤과 청소년, 10년의 기록'

by gnugeun

올해 상반기에 2024 서울 국제 도서전 주최 측에서 ‘한국에서 가장 좋은 책’ 40권을 선정해 발표했다. 세부적으로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 ‘한국에서 가장 즐거운 책’, ‘한국에서 가장 재미있는 책’, ‘한국에서 가장 지혜로운 책’으로 나눠 각 10권씩 선정해 놓았다.

네 분야 중에서 ‘한국에서 가장 지혜로운 책’이 내 취향이었고, 그중에서도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라는 책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와서 구입했다.

https://sibf.or.kr/page/13_exhbn?idx=32&gbn=1&year=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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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강지나 작가는 고등학교 영어 교사로 근무하면서 여러 가난한 청소년을 만났고, 그들을 돕고 싶지만 교사라는 직업으로는 한계를 느껴 보다 적극적으로 활동하고자 사회 복지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나라 곳곳의 사회 복지 센터에 자원봉사 활동을 나가 여러 청소년을 만났는데 이 책은 그중 8명의 청소년과 청년의 이야기를 인터뷰 형식으로 담아낸 책이다.


책을 읽으며 좋았던 점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은 이 책에 쌓여 있는 기간이다. 저자는 여덟 명의 청소년과 무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정기적으로 만나면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청소년에서 성인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에서 가난한 환경이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고 주변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게 만드는지, 그래서 인생의 중요한 변곡점에서 어떤 선택을 했고 그 결과가 그 사람의 인생에 어떤 피드백으로 돌아왔는지를 과장하지 않고 감정을 절제하며 담백하게 담아냈다.

여기에 이들의 사연이 단발성으로 소비되고 끝나지 않도록 이들의 사연을 통해 알 수 있는 우리나라 청소년 정책의 문제를 짚어보고 이를 어떤 식으로 보완하면 좋을지 전문가 관점에서의 해설을 곁들여 놓았다. 사연을 떠올리며 저자의 해설을 읽으면 향후 우리가 어떤 정책을 지지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있다.

이 책의 또 하나의 장점은 소개된 여덟 명의 청소년이 가난해서 지역 사회 복지 센터의 도움을 받았다는 공통점 외에는 외모도 성격도 모두 각양각색이라는 것이다. 이 책에 나온 청소년 중에는 가난한 환경 속에서도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어내기 위해 외향적으로 활동하며 주변 사람과 사회 시스템을 적극 활용해 단 한 번의 방황 없이 올바른 사회인으로 어엿하게 자리 잡는 친구들도 있고, 마치 낚시를 하듯 조용히 때를 기다리며 자신을 탐구하다가 취향에 맞는 입질이 왔을 때 그동안 아껴온 에너지를 폭발하듯 분출해 자신의 길을 찾아내는 친구들도 있다. 혹은 혈기를 주체하지 못하고 뉴스에 나올 법한 큰 사고를 여러 번 치며 교정 시설을 들락거리다가 특별한 계기가 없는데도 마치 벼가 가을을 맞아 자연스레 고개를 숙이듯 나이가 들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며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친구들도 있다.

개인의 성향뿐 아니라 주변인의 성향 또한 천차만별이다. 부모로서 자신이 제공해 줄 수 없는 것들을 어떻게든 자녀에게 제공해 주고자 적극적으로 사회 복지 센터나 주민 센터를 돌아다니면서 도움을 청하는 케이스도 있었고, 그냥 방치하는 케이스도 있었으며, 폭력으로 집안을 지옥으로 만들어 놓은 케이스도 있었다.

이런 개개인과 그 주변 환경의 다양성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문제를 인식하는 포커스를 각 개인이나 그들의 지엽적인 사정이 아닌 가난에 두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누가 아닌 우리 자신을 위해

이 책에 등장한 8명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결국엔 올바른 사회인의 길을 걷고 있거나 적어도 그 길로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낸다. 그 긴 시간 동안 꾸준히 저자의 인터뷰에 응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를 방증한다. 반면 이들의 인터뷰에 스치듯 등장하는 많은 친구들은 아직도 방황하거나 좌절하면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 과정에서 적절히 해소되지 못하고 내면에 켜켜이 쌓이고 있는 외로움과 분노, 상실감과 상대적 박탈감은 자신의 인생을, 나아가 주변 사람의 인생까지 집어삼키고 있다.

책을 읽다 보면 다른 누가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을 위해 이들이 올바른 사회의 구성원으로 합류할 수 있도록 돕는 여러 제도와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의 말처럼 인생은 길고 우리 모두는 언제든 그런 시기를 맞을 수 있다. 비상시에 대비해 보험을 드는 것처럼 끝없이 추락하는 것을 막기 위한 제대로 된 안전망과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돕는 디딤돌 및 손잡이를 준비해 놓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다른 관점에서는, 저자의 말처럼 ‘사회에 불평등한 현상들이 쌓이고 이에 대한 분노와 좌절감이 사회 전반에 누적되면 누구에게도 안전하고 좋은 사회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이들을 도와야 할 것이다. 분노와 좌절감이 집어삼킨 사회가 어떻게 되는지 우리는 여러 매체를 통해서 수시로 접하고 있다. 우리 사회를 아이들이 등하교할 때 무장한 경호원을 대동해야 하거나, 길거리에서 휴대폰을 들고 통화하는 것조차 어려워지는 사회로 만들고 싶지 않다면 사회에 쌓이는 분노와 좌절감을 적극적으로 해소할 필요가 있다.

물론 그렇다고 우리 모두가 지금 당장 저자처럼 자원봉사를 나가거나 이 문제를 연구할 수는 없을 것인데, 책을 읽다 보면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지역의 사회 복지 센터가 생각보다 큰 역할을 잘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직접 나서기 어렵다면 이런 일에 뜻을 두고 자신의 인생을 투자하는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지원하는 형태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력이 된다면 여러 가지 형태의 기부를 진행해도 좋을 것 같고, 제대로 된 정책을 제시하고 실행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인물에게 투표하는 것도 좋은 방식이 될 것 같다.


발췌

마지막으로 읽으면서 발췌해 놓은 몇 문단을 옮겨 오는 것으로 마치겠다.

단순히 필수적인 생존 자원을 끌어오는 수준에 머물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명확하게 파악하려 했고 자신의 사회적 욕망을 긍정할 줄 알았다. ‘생존하는 나’를 넘어서 ‘살아서 욕망하는 나’, ‘사회적 존재로서 의미 있게 살아가는 나’를 추구할 줄 알았고 이를 실현시키고자 하는 열망과 에너지가 풍부했다. … 풍족한 환경 속에서도 사람들은 사회적 압력을 넘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명확히 파악하기 어려운데, 지현은 성장기에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꿋꿋하고 성숙하게 ‘살아서 욕망하는 나(자아) 발견하기’를 잘 해내고 있었다. … 나는 이를 ‘성찰하는 힘’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수많은 청소년 인터뷰이 중에서 성공적으로 가난에서 벗어난 친구들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점이다. 성찰하는 힘은 인간이 사회적 정신적으로 성숙해지고, 독립적인 인간이 되기 위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나는 우리 사회가 외적인 지식(예를 들어, 학력)과 외형적 모습(예를 들어, 재산, 직장)에 대해서는 과도하게 평가하면서 자신을 돌보고 스스로 자기 욕망과 사회적 위치를 사고하고 판단하는 내면적 성숙도, 즉 성찰하는 힘에 대해서는 참 소홀하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우리의 교육체계는 청소년에게 이 성찰하는 힘을 어떻게 길러야 하는지 교육 과정 안에서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다.
청소년 범죄에 대한 사회의 인식은 매우 과장돼 있다. … 청소년 범죄에 대한 과잉된 인식은 바로 언론의 선정적인 기사 때문이라는 내부의 목소리도 있다. 서울신문 기자 세 명이 일 년 동안 100여 명의 소년범들을 만나 심층 취재한 내용을 엮은 ‘우리가 만난 아이들’은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 행태가 10대들의 범죄를 보도하는 것이 언제나 ‘잘 팔리는 기사’였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1990년부터 2020년까지 30년 동안 발생한 소년 범죄 관련 기사의 제목을 분석해 봤더니 2010년 이후 ‘잔혹’, ‘흉포화’, ‘악마화’, ‘무섭다’ 등의 주관적이고 자극적인 단어의 사용 빈도가 높아져 있었다. 사람들은 이런 언론 보도를 통해 청소년 범죄가 실상보다 훨씬 많이 일어나고 흉포해지고 있다고 확신했다고 한다.
다른 OECD 국가들에 비해 한국 사회의 공공영역 지출은 여전히 매우 적다. 저소득층이나 소외계층을 도와주는 대부분의 인프라는 종교 시설, 개인 독지가에 의한 사회복지시설, 사회단체 등이 담당하고 있다. 이렇게 공공부문보다 민간부문이 많다 보니 ‘사회복지’는 보편적이고 제도적인 시스템이라기보다는 가난한 사람들을 선별해서 ‘시혜적’ 시선을 담아 도와준다는 의미가 강하다. 이런 구조는 빈곤층이 직접 ‘가난을 증명’하고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 해야 하는 사회 풍토를 만든다. …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서 타인과의 관계가 중요한 존재이다. 사회 안에서 자신의 위신과 자존심,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인식(정체감)이 삶에 필수 바탕이 된다. 그러므로 이를 훼손하면서까지 경제적 도움을 얻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가난에 대한 ‘적극적인 의사 표현’과 ‘도움 요청’은 자칫 위신과 자존심을 상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어떤 계층, 어떤 연령이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표현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인습적으로 ‘가족 공동체’ 단위에 여전히 젖어 있기 때문이다. 경제체제나 생활구조는 이미 ‘개인’ 단위의 분화가 일어났지만 인습과 문화가 그것을 따라오지 못해서 생기는 문화 지체 현상이다. 빈곤가족은 ‘가족 공동체’로 묶어서 바라보면 사회적 인습 속에서 두 가지 어려움을 직면한다. 그것은 자녀의 양육 책임, 그리고 부모의 노후 봉양을 개별 가족 공동체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제도적 관행이다. … 우리가 언론을 통해, 빚에 몰리고 생활고에 시달려 ‘동반자살’을 했다는 가족의 뉴스를 심심찮게 접하는 것도 그런 맥락 속에 있다. 자신은 괴로움에 세상을 하직하더라도 남은 아이들은 사회가 잘 키워줄 수 있다고 믿었다면 그런 살인 행위는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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