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균, 쇠, 독서록

Guns, Germs, and Steel

by gnug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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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왜 다 같이 고르게 발전하지 못했는가

‘세계의 극한직업’이라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극한의 상황에서 일하는 전 세계의 다양한 사람들을 취재해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에서 극한의 상황에서 운전하는 아프리카 혹은 중앙아시아의 운전수들을 여러 번 소개했다. 보다 보면 많은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에서는 잘 포장해 놓고 졸지 말라고 도로 노면에 요철을 내 멜로디까지 들려주는 도로 위를 최신 ADAS가 탑재된 전기차를 타고 다니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여기저기 웅덩이가 깊게 파인 진흙길을 엔진에 쇠막대를 껴서 힘껏 돌려 시동을 걸어야 하는 연식을 파악하기도 힘든 낡은 트럭을 타고 다닌다.

한 번은 비 내린 진흙길을 힘겹게 지나가던 트럭이 결국 웅덩이에 빠지는 장면이 나왔다. 바퀴가 헛돌기 시작하더니 트럭 기사의 온갖 노력에도 트럭은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그러자 갑자기 어디선가 한 무리의 청년들이 나타나 도와주겠다며 트럭 주위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훈훈한 풍경인 것 같았는데 트럭 기사의 표정이 썩 밝지만은 않았다. 알고 보니 이 청년들은 이렇게 길목에 빠진 트럭을 도와주고 받는 보상으로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었고, 종종 일부러 웅덩이를 파놓기도 하는 것 같았다. 트럭 기사는 어쩔 수 없이 그들의 도움을 받고 대가를 지불한 뒤 다시 출발했다. 다시 출발하면서 그는 자신이 지금 어느 마을로 기름을 배달하러 가는 길이라고 했다. 그 마을은 기름이 다 떨어져서 마을의 발전소를 가동하지 못해 마을 전체에 전기 공급이 중단돼 있는 상태라고 했다. 그래서 자신이 꼭 가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장면에서는 한 트럭이 산길을 오르고 있었다. 포장도 안 돼 있고 울타리도 없는 좁은 산길 위에는 군데군데 낙석이 놓여 있었다. 낙석과 낭떠러지 사이로 조심조심 아슬아슬하게 운전하던 운전수가 창문 밖 낭떠러지 아래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낙석을 맞고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져 심하게 파손된 차가 한 대 있었다. 종잇장처럼 구겨져 트럭이었는지 승합차였는지 형체를 알아보기도 힘든 차는 사고 상태 그대로 방치돼 있었다. 시신을 수습하기는 한 것인지 의문이었다. 정말 열악하구나, 하고 생각하던 그때 운전수가 문득 낭떠러지 계곡 넘어 건너편 산을 가리켰다. 카메라가 건너편 산길을 비추니 저 멀리 희미하게 몇 명의 사람들이 짐을 가득 실은 낙타를 몰고 걸어서 산을 오르는 것이 보였다. 운전수는 이 낭떠러지 계곡이 국경이라고 알려주면서 그래도 저쪽보다는 이쪽 상황이 낫다고 했다. 이쪽에는 차가 지나갈 수 있는 길이라도 있지만, 저쪽은 60년째 나라의 발전이 멈춰 있어서 아직 차가 다닐 수 있는 길조차 닦아놓지 못했다고 했다.

연이어 패어 있는 이 깊고 불편한 간극. 무엇이 동시대에 같은 지구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이런 간극을 만들었을까? 왜 지구의 인류는 모두 같은 속도로 발전하지 않았을까? 무엇 때문에 발전 속도에 차이가 발생해 어느 한 진영이 다른 진영보다 앞서 발전하고, 그래서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지배하거나 착취하고, 그것도 모자라 학살하는 역사가 반복되는 것일까? 그 차이는 어디에 기인하고 있을까? 혹시 특정 인종이나 민족 간의 생물학적 차이 때문일까?


이 책은 위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한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여정이다. 이 책은 미국에서 태어나 뉴기니로 조류생태학을 연구하러 간 조류학자 재레드 다이아몬드에게 뉴기니인 ‘얄리’가 던진 아래 질문이 그 시작이었다고 한다.

“당신네 백인은 그렇게 많은 화물을 발전시켜 뉴기니까지 가져왔는데 어째서 우리 원주민은 그런 화물을 만들지 못한 것인가?”

책의 결론부터 말하자면 발전의 차이는 인종이나 민족과는 상관없었다. 책에 따르면 어떤 민족이나 인종인지와는 상관없이 우연히 자리 잡은 터의 지리적 환경이 그 지역에 자리 잡은 집단의 발전의 속도나 혹은 발전의 시작 자체를 결정했고, 이를 통해 각 집단의 흥망성쇠와 역사를 결정했다.


내용 요약

이 두꺼운 책에는 저자가 이런 결론에 도달하게 만든 증거와 논리가 한가득 실려 있는데 이는 크게 두 갈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무엇이 한 진영이 다른 진영을 압도하게 만들었는지 밝혀내는 증거와 논리다. 이는 이 책의 제목인 총, 균, 쇠와 연결된다(참고로 제목은 독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곁가지를 조금 많이 쳐낸 느낌이고 식량, 가축, 문자, 사회 조직, 기술 등이 총, 균, 쇠 옆에 괄호로 들어가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태초의 인류로 거슬러 올라가 인류의 발전을 죽 훑어보면서 우연히 자리 잡은 환경에서 위와 같은 것들을 먼저 발견하거나 발명, 구축한 진영이 그렇지 못한 진영을 내쫓거나 지배하고, 말살하거나 착취해 왔다는 사실을 주요 사건 중심으로 하나씩 짚어준다.

또 하나는 위와 같은 뛰어난 무기들을 왜 몇몇 지역의 집단이 다른 지역의 집단보다 먼저 얻게 되었는가를 밝혀내는 증거와 논리이다. 이 부분이 이 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의 안내에 따라 어떻게 누군가가 남들보다 먼저 그런 무기들을 얻었는지를 살펴보면 그 이유가 인종이나 민족의 특성이 아니라 지리적 환경의 영향이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같은 민족이나 인종이라도 우연히 정착해 터를 잡은 곳이 어떤 곳이었느냐에 따라 운명이 갈린 여러 사례들을 다양한 증거와 함께 살펴볼 수 있다.


이 책의 특징과 매력

이 책의 특징이자 매력은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는 책 초반에 등장하는 폴리네시아의 역사 이야기다. 보스턴에서 태어난 미국인이지만 새를 관찰하고 싶어 뉴기니로 건너가 그곳에 정착해 살았던 저자는 인근 폴리네시아 지역에 산재한 수많은 섬의 지리적 특성과 그곳에 살고 있는 섬주민들의 역사까지도 통달한 듯 보인다. 이를 기반으로 저자는 마치 기업에서 대규모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에 소규모로 개념 증명(proof of concept, PoC) 프로젝트를 진행하듯 폴리네시아의 역사를 짧게 먼저 살펴본다. 각 섬의 지리적 환경과 그 환경이 섬 주민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그 결과 서로 다른 환경에 정착했던 두 집단이 충돌했을 때 각 집단의 운명이 어떻게 갈렸는지 살펴본다.

이 이야기는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마치 요약본을 보듯 적은 분량으로 빠르게 한 번 훑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이를 통해 이후 설명할 방대한 내용(지난 13,000년 동안 세계 곳곳의 인간 사회에 지리적 환경이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가)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마중물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두 번째는 여러 분야를 넘나드는 풍부하고 깊은 저자의 식견과 이에 기반해 홍수처럼 뿜어져 나온 과학적 근거들이다.

예를 들어 어느 지역에서 어떤 종류의 식량이 어느 정도의 규모로 생산됐는지를 설명할 때 그 지역에서 그 식물이 언제쯤 인간의 손에 작물화됐고, 그 작물의 단백질 함량이 어느 정도였으며, 그래서 그 지역 사람들이 어떤 신체적 사회적 특성을 갖게 됐는지를 함께 설명한다. 이때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법이나 가속 질량 분광법 등 어떤 기법을 사용해 시료를 조사했으며, 해당 기법에는 어떤 문제가 있어서 어떤 방법으로 이를 보완해 증거로써의 효력을 보강했는지까지 설명한다.

또 다른 예로는 문자의 탄생과 발전을 설명하는 부분을 들 수 있다. 어떤 지역에서 사용된 문자가 정말 고유하게 발명된 문자인지 아니면 다른 지역에서 먼저 탄생한 문자가 전해진 뒤 나름의 발전을 거친 것인지 설명하는 부분이 있는데, 수많은 문자의 특성을 하나하나 파악해 실제 문자의 생김새와 발음 방식 등을 예로 들면서 ‘이런 이유로 이 문자는 그보다 앞서 사용된 이 문자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결론 내리는 부분에서는 영어 하나 배우는 것도 벅찬 입장에서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참고로 저자는 라틴어, 그리스어, 독일어, 프랑스어, 러시아어를 구사할 수 있다고 하며, 책을 보면 한글도 꽤나 잘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세 번째는 저자의 완급 조절이다. 저자는 거시적 관점에서 마치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지구본을 관찰하듯 대륙을 넘나들며 설명하기도 하고, 어느 순간 특정 시대의 특정 지역에서 발생한 상징적인 사건을 마치 영화에서 카메라를 줌인해 클로즈업해서 보여주는 것처럼 서술하기도 한다. 방대한 근거 자료와 함께 유연하게 관점을 오가면서 필요한 순간에는 도표나 그림, 사진까지 곁들이는 저자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과연 발전의 차이는 인종이나 민족이 아니라 지리적 환경에 기인한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가축화된 동물을 설명하면서 톨스토이가 쓴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과 신약 성경 마태복음 22장 14절(“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많지만 뽑히는 사람은 적다”)을 인용한 것도 신선한 재미로 다가왔으며, 부록으로 실려 있는 “일본인은 어디에서 왔는가”도 한국인이라면 신나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이다.


마치며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정신없이 빠져 읽었다. 읽은 지 거의 반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많은 내용이 머리에 맴돌고 있다. 저자는 책 말미에 인류사를 하나의 과학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자신의 소망이라고 얘기했는데 이미 이 책으로 그 소망의 많은 부분을 이룬 것 아닌가 싶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고 나서 인류의 발전 속도의 차이가 지리적 환경에 기인한다는 사실 외에 또 하나 가슴 깊이 와닿은 사실이 있다.

책을 읽어보면 인류의 역사에서 자의든 타의든 간에 기술의 발전을 따라가는 것을 놓친 집단은 민족이나 인종의 우수성과는 상관없이 하나같이 불행한 결말을 맞이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흥선대원군의 쇄국 정책 같은 사례는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발생한 것이 아니다. 사실 우리나라는 어떻게 보면 운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이루 말할 수 없이 비참한 시절을 겪어야 했지만 결국엔 다시 떨치고 일어나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기 때문이다(어떻게 보면 이 역시 두 거대한 진영의 틈바구니에 자리 잡은 우리나라의 지리적 요건의 혜택을 받은 것일 수도 있겠다).

이 책에는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그대로 멸망해 역사 속으로 사라진 수많은 집단의 사례가 기록돼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기술의 발전을 받아들이지 않았거나 발전 속도에 발을 맞추지 못한 집단은 대부분 좋지 않은 말로를 맞이했다.

이는 그 단위를 기업이나 가족, 개인으로 바꿔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인공지능의 발전 때문에 여러 사람들이 제대로 인지하지도 못한 채 생업의 현장이나 삶의 터전에서 조금씩 소리 없이 내몰리고 있는 것을 보면 가슴이 아프고, 그래서 그런 기술에 거부감이 들면서도 흐름을 타고 무거운 속도로 발전해 나가는 기술을 배우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

이 책과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읽고 나면 한 번 흐름을 타고 발전하기 시작한 기술을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류의 숫자 및 평균 수명을 늘리는 것과 각 개체의 행복 지수를 높이는 것은 서로 상관없는 일이라는 것 또한 알 수 있다. 기술의 발전은 마치 영화 데스티네이션과 같다. 무슨 짓을 해도 벌어질 일은 벌어지고 발전할 기술은 발전한다. 니체처럼 자신의 몰락마저 긍정하는 자세로 살아야 하나. 그러기엔 난 니체처럼 똑똑한 머리와 강인한 정신을 타고나지 못한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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