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fête de l'insignifiance
무의미의 축제는 2013년에 발행된 작품으로 2023년에 세상을 떠난 밀란 쿤데라의 마지막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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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밀란 쿤데라의 책을 다섯 권 읽으면서 깨달은 것 하나는, 밀란 쿤데라는 삶을 이 책의 제목과 같이 무의미의 축제로 여겼다는 것이다.
다음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나왔던 문단이다.
뒤집어 생각해 보면 영원한 회귀가 주장하는 바는, 인생이란 한번 사라지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한낱 그림자 같은 것이고, 그래서 산다는 것에는 아무런 무게도 없고 우리는 처음부터 죽은 것과 다름없어서, 삶이 아무리 잔혹하고 아름답고 혹은 찬란하다 할지라도 그 잔혹함과 아름다움과 찬란함조차도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농담’에는 이런 문단이 나오기도 한다.
내게는 언제나 너무도 현재적이고 생생한 그와 나 사이의 투쟁 위로 모든 것을 잠재우는 위무의 물결이 파도처럼 덮쳐 오는 것을 나는 보았다. 시간의 물결, 그것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모든 시대들 사이의 차이들마저 다 씻어 가 버리는데, 하물며 보잘것없는 두 개인 사이의 차이는 얼마나 쉽게 씻어 가겠는가.
이 책 역시 위 두 책과 비슷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다만 위 두 소설이 개개인의 인생의 가벼움과 무의미함을 조금 더 무거운 소재로 보다 처절하게 풀어냈다면, 이 소설은 소재와 분위기 모두 상당히 가볍다. 좋게 말하면 조금 더 편하게 읽을 수 있고, 나쁘게 말하면 깊이와 울림이 덜하다.
이 소설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다음 두 문단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의 가치,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말입니다, 존재의 본질이에요.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와 함께 있어요. 심지어 아무도 그걸 보려 하지 않는 곳에도, 그러니까 공포 속에도, 참혹한 전투 속에도, 최악의 불행 속에도 말이에요. 그렇게 극적인 상황에서 그걸 인정하려면, 그리고 그걸 무의미라는 이름 그대로 부르려면 대체로 용기가 필요하죠. 하지만 단지 그것을 인정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고, 사랑해야 해요,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
우리는 이제 이 세상을 뒤엎을 수도 없고, 개조할 수도 없고, 한심하게 굴러가는 걸 막을 도리도 없다는 걸 오래전에 깨달았어. 저항할 수 있는 길은 딱 하나, 세상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 것뿐이지. 하지만 내 눈에는 우리 장난이 힘을 잃었다는 게 보인다. 너는 기를 쓰고 파키스탄어를 해서 흥을 돋우려 하고 있어. 그래 봐야 안 돼. 너는 피곤하고 지겹기만 할 뿐이야.
두 문단 모두 인생의 무의미함을 말하는데 첫 번째 문단은 다소 희망적인 분위기가 느껴지는 반면 두 번째 문단은 무기력하고 절망적인 기운이 느껴진다. 이 두 문단의 공존이 내가 느낀 밀란 쿤데라의 소설이다. 희망과 절망을 모두 끌어안고 아무것도 없는 무의 세계로 침잠하는 혹은 행진하는 소설.
이 책은 프랑스의 다르델로라는 남자가 주최하는 칵테일파티에 각자의 이유로 모여든 사람들의 이야기와, 어쩌다 그 파티에 엮인 라몽과 샤를, 칼리방, 알랭이 다 함께 신나게 상상하는 스탈린과 칼리닌의 이야기가 서로 얽혀 번갈아 진행되는 소설이다.
밀란 쿤데라의 책을 읽는 즐거움 중 하나는 인물의 사소한 감정이나 행동을 순간적으로 파고들어 그 내면을 낱낱이 파헤치고 분석해 동인을 밝혀내는 장면을 만나는 것이다. 소설 속 인물들은 그런 장면을 거치면서 생생하게 살아나 머릿속에서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엄마에게 버림받은 슬픔을 여자 배꼽에 대한 성찰로 승화시키는 착하고 소심한 사과쟁이 알랭, 다른 사람 눈에 비친 자기의 모습이 더 멋있어 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히 대하는 나르키소스 다르델로, 그런 다르델로와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자신은 나르키소스가 아니라고 자위하며 다르델로를 경계하고 멀리하는 라몽, 그런 알랭과 라몽과 친구들의 머릿속에서 귀여운 폭군으로 재창조되는 독재자 스탈린과 그의 그늘 아래에서 오줌을 참다가 끝내 바지에 지려버리는 동반자 칼리닌.
소설을 읽으면 머릿속에서 이 모두가 저마다의 가슴 아픈 사연을 바닥에 늘어놓은 뒤 일제히 사연에 불을 붙여 하늘 위로 쏘아 올려 터뜨리고는 모든 게 무로 돌아갔음을 기념하고 축하하며 서로 기쁨의 축하 인사를 건네는 한바탕 무의미의 축제가 눈앞에 생생히 펼쳐진다.
앞서 읽었던 ‘느림’에서도 이런 부분이 등장했는데 이 책에도 중간에 다소 느닷없이 작가가 개입하는 부분이 몇 군데 등장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이.
옛 동료 둘의 만남은 그런 흐뭇한 몸짓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나는 무엇 때문에 다르델로가 거짓말을 했을까 하는 질문을 피할 수 없다.
내가 같은 말을 되풀이한다고? 이 소설 첫머리에 쓴 것과 똑같은 단어들로 이번 장을 시작하고 있다고? 나도 안다. 알랭이 배꼽의 수수께끼에 열중해 있다는 말을 이미 했지만 그래도 나는, 여러분도 몇 년까지는 아니어도 몇 달 동안 같은 문제들(알랭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그 문제보다 분명 훨씬 더 별 볼 일 없는 문제들)에 골몰하기도 하듯이, 이 수수께끼가 여전히 그를 사로잡고 있다는 것을 감추고 싶지 않다.
위 문단과 아래 문단에서의 '나'는 소설 속 등장인물이 아니라 밀란 쿤데라다. 위와 같이 중간중간에 갑자기 나타나 상황을 설명하거나 인물의 감정을 대신 전달하는데 익숙한 기법이 아니라서 그런지 강한 거부감이 들었다.
또한 이 소설에서도 결말에서 ‘느림’이나 ‘정체성’ 같이 현실과 상상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하나로 융합되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앞 두 소설에서는 그 장면에서 순간 소설 전체가 부자연스럽게 느껴지면서 몰입이 깨져버렸는데 이 소설에서는 그래도 적당히 참고 넘어갈 만했다는 것.
그 당시 이런 이상한 기법이 유행이었을까. 뭐가 됐든 나랑은 잘 맞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