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독서록

Tyranny of the Minority

by gnugeun

이 책은 2018년에 출간돼 큰 인기를 끌었던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의 저자인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이 다시 뭉쳐 2023년에 출간한 책이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3228336

원제는 'Tyranny of the Minority: Why American Democracy Reached the Breaking Point'.


전작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는 8년 전인 2017년에 제45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가 뮤즈 역할을 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진보 성향인 두 저자가 그의 대통령 당선과 이후 그의 행보에 깊은 감명(?)을 받아 쓴 책이기 때문이다. 전작에서 두 저자는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를 강조한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헌법과 같은 제도를 만들어 운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실적으로 모든 시점의 모든 상황을 완벽히 고려해 제도를 설계할 수는 없기에 그 빈틈을 유동적으로 메우고 있는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실제 사례와 함께 쉽게 설명한다.

이 책 역시 전작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민주주의가 당면한 문제를 짚어보고 그 해결 방법을 제시하는 책이다. 다만 전작의 뮤즈였던 트럼프가 백악관을 떠난 후 민주당의 조 바이든이 백악관을 차지하고 있던 시절에 집필된 책이기에 책의 뮤즈가 바뀌었다.

새로운 뮤즈는 미국의 헌법이다. 즉 이 책의 목표는 개헌이다. 개헌을 들고 나온 이유는 책의 제목과 이어진다. Tyranny of the Minority. 이 책은 소수의 횡포와 폭정을 막기 위해서 개헌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건강한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다수의 힘을 제한하는 규칙이 반드시 필요하나, 현재 미국의 헌법을 비롯한 여러 제도는 다수의 지배와 소수의 권리 사이의 균형추가 소수의 권리 쪽으로 지나치게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다수가 소수의 의지에 지나치게 휘둘리는 상황이 빈번히 발생하며, 따라서 개헌과 제도 개혁을 통해 이를 바로잡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책 줄거리 요약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 저자는 세계 여러 나라의 사례를 먼저 살펴본다. 태국이나 헝가리, 프랑스 등 민주주의 국가였으나 소수의 힘이 지나치게 작용한 탓에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데 큰 위기를 겪었거나 혹은 위기를 넘기지 못하고 끝내 독재 국가로 전향된 사례를 소개한다.

여러 사례 중 태국의 사례가 특히 흥미롭다.

첫 번째 이유는 그동안 우리나라 언론에서 상당히 부정적인 뉘앙스로 소개한 태국 친나왓 가문의 긍정적인 면을 소개하기 때문이다.

https://www.khan.co.kr/article/202412181515001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5010453247

탁신은 북부의 가난한 농촌 지역을 겨냥한 정책으로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는 사실을 파악한 눈치 빠른 정치인이었다. 2001년 탁신은 농민을 대상으로 3년간 부채 상환을 면제하고, 농촌 경제를 쌀농사를 넘어서 다각화하도록 보조금을 지원하고, 또한 보편 의료보험 프로그램을 야심 차게 실시하는 등 새로운 ‘사회 계약’ 사업을 추진했다. 그리고 결국 성공을 거뒀다. 탁신 행정부는 가난한 유권자를 위한 공공 정책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했고 태국을 보편 의료보험을 갖춘, 그리고 세계적인 기준의 중간 소득 국가로 처음으로 바꿔놓았다. 빈곤율은 특히 농촌 지역에서 크게 낮아졌다. 그리고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불평등 수준이 완화되었다.


태국의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이 변질되는 과정 또한 흥미롭다. 당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민주주의를 최우선 가치를 두고 결성됐을 태국의 민주당과 그 열성 지지자들은 떠오르는 신흥 세력에게 자신들의 기득권을 빼앗길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어처구니없게도 민주주의를 저버리고 군부 독재 국가 탄생에 이바지한다.

교육 수준이 높고 전문직에 종사하는 중산층에 해당하는 민주당 지지자들을 2013년과 2014년에 거리로 쏟아져 나가게 만든 것은 단지 민주당의 선거적 무능만은 아니었다. 또한 잉락 정부의 부패 혐의나 망명 중인 탁신이 태국에 돌아올 수 있도록 허용하는 사면 법안 때문도 아니었다. 그들의 분노는 뿌리 깊었다. 방콕의 엘리트 집단은 태국 사회 내에서 권력과 부, 지위의 균형점이 이동하는 흐름에 점차 분노하고 있었다. 그들은 태국의 정치, 경제, 문화적 수직체계의 꼭대기에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 유명 대학들 모두 방콕에 집중되어 있었다. 부자들은 자녀를 방콕이나 영국, 혹은 미국의 대학으로 보냈다. 그리고 이러한 엘리트 교육 기관들은 민간 및 정부 분야에서 높은 지위로 올라가기 위한 주요 통로로 기능했다. 20세기에 수차례 정권이 바뀌었음에도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던 엘리트 집단은 안정적이고도 폐쇄적인 모습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탁신 행정부하에서 변화가 시작되었다. 2001년 이후로 국민 소득 중 가난한 계층이 차지하는 몫이 증가하면서 불평등이 완화되었다. 그러나 도시 중산층은 그만큼 압박을 느꼈다. 탁신과 잉락은 시골 지역의 가난한 사람들에 집중하면서 수십 년간 태국의 정치를 편안하게 지배했던 방콕 중심의 세상을 소외시켰다. 탁신 행정부는 부패와 조세 회피, 권력 남용에 대한 고발로 평판에 금이 갔지만, 선거에서 계속 승리하면서 그의 안정적인 대중적 인기는 의심할 수 없게 되었다.
탁신의 승리와 관련해서 방콕의 사회, 정치 엘리트를 큰 충격에 빠트린 것은 또 다른 영역에서 승리를 거두고 있던 인물들이다. 싱하 맥주 상속녀이자 2014년 시위에서 매력적인 운동가로 활동했던 치파스 비롬바크디는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감지했고, <재팬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태국 사람들, ‘특히 시골 지역’ 사람들은 민주주의에 대한 진정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시위에 참여했던 또 다른 유명 인물이자 문화계 인사, 그리고 태국의 에너지 드링크 기업 CEO인 페치 오사타누그라는 한 기자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줬다. ‘민주주의를 전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아닙니다. … 우리가 민주주의를 실행에 옮길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중국이나 싱가포르와 같은 강력한 정부를 원합니다. 독재와 비슷하지만 국가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정부 말이죠.’ 시위자들 대부분이 이러한 생각에 동조했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태국인들이 민주주의에 대해 드러낸 반감은 쫓겨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 자신이 소수로 전락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제 똑똑한 정치 사업가들이 집결시킨 주변부 지역이 모든 선거에서 손쉽게 승리를 거뒀다. 사회, 정치적 삶에서 온전한 참여를 요구한 시골 지역 중산층의 성장을 눈치채지 못한 중심부 중산층은 평등한 권리와 공공의 이익에 대한 요구를 ‘가난한 자들이 탐욕스러워졌다’라는 식으로 치부해 버렸다. … 기존 엘리트 집단의 주된 목적은 ‘여전히 지배 네트워크와 그 지지자들이 사회를 장악했던, 지방 유권자를 배제했던 상상 속 탁신 이전의 시대’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 민주주의가 방콕 엘리트의 사회, 문화, 정치권력에 도전하기 시작했을 때, 민주당은 민주주의에 등을 돌려버렸던 것이다.
두려움은 때로 사회를 독재로 되돌리려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정치권력을 읽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더 중요하게는 기존의 지배적인 사회적 지위를 잃어버리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바로 그러한 힘으로 작용한다.

주로 교육받은 중산층으로 구성된 시위대가 거리를 메웠다. 시위대는 수개월에 걸쳐 방콕의 도심 광장과 쇼핑몰, 그리고 주요 교차로에서 축제와 같은 분위기로 집회를 이어나갔다. 정치 발언이 음악, 그리고 대형 스크린과 함께 어우러졌다. 하루 일과를 마친 대학생과 교수들은 얼굴에 태국 국기를 그려 넣고서 거리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사진을 찍어 페이스북에 올렸다. 배우와 팝스타, 태국의 부잣집과 유명 가문의 자제들도 시위에 함께 참여했다. 그렇게 유행이 된 시위 현장에 26억 달러 규모 기업인 싱하 맥주 가문의 28세 상속녀 치파스 비롬바크디가 불도저를 몰고 와서 경찰의 바리케이드를 뚫었다. … 시위 장면을 찍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 집회는 축제 분위기 속에서도 진지한 목표에 주목했다. 시위자들은 잉락 친나왓 총리의 부패를 비난하고 사퇴를 요구했다. 이후 잉락 총리가 선거를 요청하자 시위자들은 이에 ‘반대’하기 위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시위를 조직한 이들 중 많은 사람이 놀랍게도 민주당 출신이었다. 전 민주당 총서기 스텝 트악수반이 이끄는 국민민주주의개혁위원회(PDRC)는 선거를 저지하기 위한 캠페인을 벌였다. PDRC와 민주당 출신 운동가들은 후보자들이 등록을 하지 못하도록 몸으로 막아섰고, 시위 지도부는 선거 거부를 요구했다. 시위대와 분명히 협조하고 있던 민주당은 결국 선거와 거리를 두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선거 이틀 전에 민주당 소속 변호인단은 헌법재판소가 그 선거를 무효로 선언하도록 청원했다. 시위자들은 선거 당일에 투표용지 배부를 방해했고, 투표소를 폐쇄하도록 선거 담당 공무원들을 압박했으며, 유권자들이 투표하지 못하도록 위협했다. 투표장 다섯 곳 중 하나꼴로 투표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많은 선거 담당 공무원들이 시위대에 가로막혀 투표소에 도착하지도 못했다. 좌절한 유권자들은 유권자 등록 카드를 손에 들고 줄을 서서 기다리면서 이렇게 외쳤다. ‘선거! 선거! 우리는 오늘 투표를 원한다!’ 그러나 대부분 중산층인 방콕 시민들은 선거를 포기했다. 시위대가 내걸었던 슬로건 중 하나는 부동산 거물 스리바라 이사라가 시위대에 합류하면서 내놨던 ‘도덕적 올바름이 민주주의에 앞선다!’는 것이었다.
시위자들은 2014년 2월 선거를 성공적으로 막아냈고 헌법재판소는 결국 이를 무효로 선언했다. 5월, 잉락 총리는 세부 조항을 근거로 탄핵되었다. 그러나 2주일 후, 왕의 지지를 등에 업은 군부가 계엄령을 선포하고 헌법을 폐기했다. 그리고 국가평화유지위원회라는 군사 정권을 수립함으로써 태국의 민주주의를 끝내버렸다. PDRC 운동가들은 이를 축하하면서 군인들에게 장미를 건네고 그들의 등장에 감사를 표했다. 시위대 지도자 삼딘 레트버트는 이렇게 말했다. ‘승리의 날입니다. 군대는 그들의 역할을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역할을 했습니다.’ 민주당 역시 이후에 군부가 주축이 된 정부에 합류하면서 쿠데타를 사실상 인정했다.


태국의 민주당 지지자들은 민주주의의 꽃이라 부르는 선거를 방해했고, 지지자들에게 자제하라고 촉구하며 진정시켰어야 할 태국의 민주당 정치인들은 오히려 그들의 행보에 힘을 보태는 것도 모자라 헌법재판소에 선거 무효 선언을 청원했다. 헌법 재판소가 선거 무효를 선언한 뒤 총리를 탄핵한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은 마지막 결정타로 군부가 계엄령을 선포한 뒤 헌법을 폐기했을 때, 쿠데타를 일으켜 헌법을 폐기한 이들에게 감사를 표하며 그들의 세력에 합류했다. 민주당이라는 이름을 걸고 행동하던 자들이 뻔뻔하게도 태국 사회 곳곳에 자리하고 있던 소수자들과 힘을 합쳐 민주주의를 박살 낸 것이다.


여기서 책은 ‘충직한 민주주의자’와 ‘표면적으로만 충직한 민주주의자’라는 개념을 소개한다. 이름만 들어도 대략 어떤 개념인지 짐작할 수 있다.

충직한 민주주의자가 민주주의에 반하는 행동을 일관적이고 확고하게 거부하는 데 반해, 표면적으로 충직한 민주주의자는 다소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한다. 그들은 두 가지 방식으로 움직인다. 즉, 민주주의를 지지한다고 주장하면서, 동시에 폭력이나 반민주적 극단주의에 눈을 감는다. 이러한 애매모호한 태도야말로 그들이 그토록 위험한 이유다. 뚜렷하게 독재적인 인물은 쉽게 확인이 가능하다. 그들은 자신의 힘만으로 민주주의를 무너뜨리기 위한 여론의 지지나 정당성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다. 그러나 표면적으로 충직한 민주주의자가 그들과 협력할 때, 노골적인 독재 세력은 훨씬 더 위험해진다. 주류 정당이 전제적인 극단주의자를 용인하고, 묵인하고, 혹은 이들에 대해 애매모호한 입장을 취할 때, 민주주의는 곤경에 빠진다.


이어서 ‘헌법적 강경 태도’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이 부분은 전작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의 요약판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법과 절차의 허점을 이용하거나, 최대한 자제해야 하는 법(예를 들어 사면권)을 과도하거나 부당하게 사용하고, 법을 선택적으로 적용해 경쟁 정당을 공격하거나, 새로운 법을 만들어 운동장을 기울이는 행위들을 ‘헌법적 강경 태도’라고 설명한다.

우리나라에도 이 책에서 말하는 헌법적 강경 태도를 남발하는 표면적으로 충직한 민주주의자들이 많다. 요즘 정치판에서는 그렇지 않은 사람을 찾는 게 더 어려울 것 같다.

허위 이력에 주가 조작에 그 외 온갖 논란이 파다한 유지 김명신에게 놀아나면서 맨날 술이나 처먹고 무속인에게 상담받고 극우 유튜버 방송이나 보다가 거기에 심취해 뜬금없이 계엄을 선포한 뒤 뜻대로 되지 않자 잔뜩 겁먹고 구석에 처박혀 숨어 있다가 이제야 뻔뻔한 변명과 함께 끌려 나온 사람과, 그 사람을 옹호하면서 의견이 다르면 출당하라고 협박했던 사람들, 끌려 나온 사람을 두고 의연하다고 표현하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반대편도 크게 다를 게 없다. 이미 무고와 공무원 사칭, 음주운전, 특수공무집행방해 및 공용물건손상이라는 전과를 통해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 폭력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한 데다가 여죄를 감추고 어떻게든 혼자 살아보겠다고 주변 사람들을 몇이나 자살시켜가며 제1야당 당수 자리를 붙들고 앉아 대선의 꿈을 놓지 못한 사람과, 그 사람을 어떻게든 대선에 내보내 구해보겠다고 온갖 수를 다 쓰고 있는 사람들도 다 똑같은 사람들이다. 자녀 입시비리 등의 혐의로 대법원의 징역형 판결을 확정받고 아내와 바통 터치하듯 감옥에 들어간 주제에 반성은커녕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마치 독립 운동하다 투옥된 사람처럼 옥중서신을 보내고 앉아 있는 사람도 같은 부류라고 할 수 있겠다.


두 저자는 여기까지 설명하고 나서 마지막으로 드디어 자신들의 이야기, 즉 미국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야기는 미국의 헌법이 처음 만들어진 미국의 건국 시점으로 올라가서 미국의 헌법이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살펴본 후 시간의 흐름을 따라 내려오며 국내외 정세에 따라 양당의 세력이 어떻게 변화했고, 그 변화에 따라 헌법이나 선거 방식 혹은 관련 제도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큰 줄기 중심으로 죽 훑어내려온다. 선거를 중심으로 미국의 정치 역사를 간략하게 줄인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이 상당히 긴 이야기를 늘어놓는 이유는 이 책에서 주장하고자 하는 변화(개헌, 개헌 절차 완화, 대법관 종신재직권 철폐 등)에 대한 반감을 줄이기 위해 각각을 에워싸고 있는 신성함을 걷어내기 위함이다. 보통 사람들은 무엇이든 과장해 자극적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하기 마련이다. 좋은 것은 더욱 좋은 것으로, 나쁜 것은 더욱 나쁜 것으로, 특별하고 신성한 것은 더 특별하고 신성한 것으로 만들고 싶어한다. 우리나라 역사에 알에서 나온 왕들이 많은 것처럼.

이런 신성함을 걷어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 책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막연하게 알고 있을 미국 헌법의 탄생 과정과 이후 진화 과정을 구체적으로 자세히 설명한다. 위대한 성인들이 모여 오직 선한 마음으로 모든 것을 고려해 설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 다수의 지배와 소수의 권리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위한 숭고한 노력의 결과물이라기보다 변화를 가로막겠다고 위협하는 강력한 소수를 달래기 위한 일련의 구체적인 양보의 타협안이라 하겠다. … 미국의 건국 과정 역시 다르지 않았다. 1787년 여름 미국의 건국자들이 필라델피아에 모였을 때, 두 가지 중대한 사안이 헌법적 합의를 가로막고 있었다. 그것은 연합에서 작은 주들의 역할, 그리고 노예제였다.


종신 재직권과 관련해서는 아래와 같은 사실을 알려주기도 한다.

종신 재직권은 판사가 왕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국에서 고안된 제도였다. 헌법 설계자들이 임기 제한이나 정년을 따로 정하지 않은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사실 그들은 판사들의 오랜 임기에 대해 아무런 걱정을 하지 않았다. 미국 건국 당시에 기대 수명은 훨씬 더 짧았고, 중요하게도 대법원 판사라는 지위에는 오늘날과 같은 명예와 이익이 따르지 않았다. 대법원은 따로 건물조차 없었고, 공화국 초기 시절 판사들은 대부분 ‘순회 재판’을 도는 과정에서 여인숙에 묵어야 했다. 그래서 그들은 대법원 판사들이 그 자리에 오랫동안 머무를 것이란 기대를 거의 하지 않았다.


이 이야기에서 흥미로웠던 부분은 상황의 변화에 따라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의 입장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살펴볼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흑인의 인권과 관련된 측면에서 예전에는 공화당과 민주당이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입장이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재건 시대의 개혁은 오로지 하나의 정당, 즉 공화당만의 노력으로 이뤄진 결과물이었다. 민주당은 수정헌법 제13조가 재산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반대했다(한 켄터키주 민주당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노예를 소유할 권리를 포기한다면, 우리에겐 무슨 권리가 남아 있단 말인가?’). 그리고 제14조에 대해서는 미국 정부가 ‘백인을 위해 수립됐고’ 시민권은 ‘코카서스 인종’에게만 보장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워 반대했다. 또한 제15조는 흑인들이 열등하다는 근거로 반대했다. 의회 내 어떤 민주당 인사도 수정헌법 제14조와 제15조에, 그리고 그에 따른 재건 시대의 모든 투표권과 시민권에 찬성하지 않았다.
KKK는 1866년 초 테네시주에서 등장한 이후로 남부 전역에 걸쳐 급속히 세력을 넓혀나갔다. 클랜은 폭력적인 테러 물결을 주도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흑인들의 집과 기업, 교회, 학교가 공격을 받았다. 그리고 수천 명의 흑인 미국인이 살해당했고, 더 많은 이들이 구타와 채찍질, 강간을 당하고 지역에서 쫓겨났다. 공화당 정치인들은 흑인이든 백인이든 상관없이 신체적 공격을 받았고 암살을 당하기도 했다.
클랜의 테러 행위는 공화당 조직을 불구로 만들었고 흑인 유권자들이 투표를 하지 못하게 막았다. 그리고 선거 제도를 농락하고 민주당 정치인들이 위헌적인 방법을 동원해 남부 지역에서 권력을 잡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
에잇박스법(이 법에 따라 유권자는 각각의 공직별로 마련된 투표함에 서로 다른 투표용지를 집어넣어야 하며, 잘못 넣은 투표용지는 무효 처리된다. 이는 실질적으로 글을 모르는 유권자의 투표권을 박탈하는 조치였다).... 남부 지역 모든 주에서 민주당은 바로 그러한 시도를 했고, ‘독창적인 고안품’, 즉 인두세와 읽고 쓰기 능력 시험, 혹은 재산 및 거주증명 요건처럼 헌법에 명시적으로 위배되지 않는 새로운 조항을 만들어냈다. 이를 엄격하게 시행할 때, 흑인 미국인 대부분은 유권자 등록이나 투표를 할 수 없었다.
이후 남부 지역에서는 한 세기에 걸쳐 독재 시대가 이어졌다. 흑인 선거권이 사라지면서 정치적 경쟁이 무너졌고, 남부 전역은 일당 지배 체제로 전락하고 말았다. 민주당은 테네시주를 제외한 이전 남부연합의 모든 주에서 70년 넘게 권력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다섯 개 주에서는 ‘한 세기 넘게’ 이어졌다.
공화당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20세기 중반에 시민권법과 투표권법 개혁안을 통과시키는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미국이 더욱 민주화된 사회로 나아가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런 역사를 보면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이 떠오른다.

만물은 움직이고 있어서 무릇 모든 것이 머물러 있지 않는다. 선(善)도 악(惡)도 하나인 것이다.


이 부분에서 얻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재미는 미국 정치 제도의 특징과 그 기원에 대해서 알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이 선거철을 맞이하면 우리나라 뉴스도 미국 선거 소식으로 가득 차는데 그 소식을 읽다 보면 같은 민주주의 국가임에도 미국과 우리나라가 제도 측면에서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상원과 하원으로 나뉘어 있는 의회 시스템이나 대통령을 선출할 때 선거인단이라는 것을 통해서 뽑는다는 것을 그 예로 들 수 있겠다. 이 책을 읽으면 그와 같은 제도가 무슨 이유로 생겨났으며,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는지 대략 알 수 있다.


이렇게 미국의 정치 역사를 한 번 살펴본 뒤에는 자신들이 어떤 방향으로 헌법과 제도를 바꾸고 싶은지 방향을 제시한다. 그 방향은 아래와 같다.

투표권 확립

선거 결과가 다수의 선택을 반영하도록 만들어야 함

지배하는 다수의 힘을 강화

이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대통령 선거에서 선거인단 제도를 없애고 직접 투표하는 방식으로 바꾸고, 모든 주가 인구수에 상관없이 상원에서 동등한 대표권을 갖는 제도를 고쳐서 인구수에 비례해 대표권을 갖게 만들어야 하며, 종신 재직권을 없애야 하고, 입법 과정에서 수시로 장애물로 등장하는 상원의 필리버스터를 제한하는 등의 여러 조치와 변화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이를 통해 미국의 민주주의가 더욱 건강하고 단단하게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자기반성을 통해 스스로를 구원해야 할 시점

표면적으로 이 책의 목표는 소수에게 지나치게 휘둘리지 않는 민주주의를 갖춘 미국을 만드는 것이다. 실제로 책의 전반부까지는 그 목표에 충실한데 후반부로 넘어오면서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껴진다. 소수에 휘둘린 세계 여러 나라와 과거 미국의 사례를 소개할 때까지는 진보와 보수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던 저자들이 현대 미국 이야기로 넘어오는 순간 소수의 힘을 악용한 사례를 얘기하면서 오직 공화당의 사례만 나열하기 때문이다.

진정 현대 미국의 민주당은 소수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나 정책의 혜택을 누리거나 악용한 적이 없을까? 당장 이 책에서 살펴본 미국의 정치 역사를 떠올려봐도 현실적으로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게 합리적일 것이다.

따라서 이런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의 두 저자는 만약 보수와 진보의 상황이 지금과 반대였다고 하더라도 똑같은 주장을 펼쳤을 것인가?

이런 의심이 들기 시작하면 논리적이고 타당하다고 생각했던 제안이나 설명을 모두 다시 재고하게 된다. 예를 들어 이 책에서 지적하는 상원이나 선거인단 제도 같은 경우가 그렇다.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미(합중)국은 각자 독립적인 삼권을 갖고 있는 50개 주가 모인 연방국이다. 이와 같은 정치 체제에서는 인구수에 상관없이 대표권을 갖는 현재의 상원 제도가 지리적, 환경적 요인으로 인구가 적어 힘이 약한 소수의 주를 배려하고 보호하기 위한 합리적인 장치라고 볼 수도 있다. 승자독식 방식을 택하고 있는 선거인단 제도 역시 각 주를 하나의 독립적인 정치 단위라고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는 제도이다. 우리나라 대선 때 득표율이 얼마 차이 나지 않았다고 51% 득표율의 제1대통령과 49% 득표율의 제2대통령 두 명을 선출해서 각자 득표율에 맞게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하지는 않지 않은가.

미국 민주당의 그동안의 행보도 하나 둘 머리에 떠오른다. 사실 이 책은 제목으로 내건 의제부터 진보 진영의 측면에서는 양날의 검과 같은 의제라고 생각한다. 비록 남부 지역에서 노예 제도를 사수하기 위해 발버둥 쳤던 과거가 있다지만, 적어도 내가 성인이 된 이후로 미국의 민주당은 그 어느 집단보다도, 최근에는 특히 PC(political correctness)를 기치로 걸고 소수를 위해 고군분투해 온 집단이었기 때문이다.

그들 덕분에 미국 사회는 그동안 소수를 배려하고 보호하기 위해 다수가 불편함을 감수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예를 들어 성소수자를 배려하기 위해 성중립 화장실을 만들거나 트랜스젠더 혹은 더 나아가 아직 수술을 하지 않았음에도 스스로 여자라고 생각하기만 하면 여성 스포츠 경기에 출전하는 것을 허락해 왔다. 영화나 드라마 같은 콘텐츠에도 적극적으로 이런 기조를 반영해 자신들의 생각이 세계 곳곳으로 확산되도록 노력해 왔다.

이와 같이 특정 소수를 배려하기 위한 제도 및 정책과, 지리적/환경적 영향으로 인구가 많이 모여들지 않은 작은 규모의 주들을 배려하는 현재의 상원 제도가 어떤 차이가 있는가? 그들은 왜 갑자기 이런 경우에만 소수의 횡포라는 타이틀을 붙인 뒤 개혁하자고 주장하는 것일까?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 아래와 같은 문단이 나온다.

미국의 헌법 시스템이 트럼프 임기 4년을 무사히 버텨냈다는 사실은 그러한 위협이 실제로 그리 심각하지 않았으며, 민주주의가 퇴보했다는 주장이 과장된 것이었다는 증거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한 주장은 기우였다. 민주주의의 생존을 걱정했던 미국인들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하나로 뭉쳤고, 그래서 민주주의는 살아남았다.
미국인들은 지난 7년 동안 탈진 상태에 빠졌다. 이는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민주주의 수호는 정말로 힘든 일이다. 장애물에 맞서 유권자들이 매번 선거에서 투표하도록 독려하는 일은 열성적인 활동가조차 지치게 만들 수 있다.
트럼프가 백악관을 떠난 지금,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고, 그리고 민주주의가 다시 균형을 회복했다고 결론을 내리고픈 마음이 든다.


아마도 이 책을 낸 목적에 트럼프의 재선을 막는 데 보탬이 되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으리라. 허나 내가 이 책을 본 시점에 그들의 목표는 이미 실패한 상태였다. 그것도 대실패였다. 트럼프는 또다시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워 백악관 입성에 성공한 것은 물론 상하원 모두 공화당이 휩쓸어 버렸다. 이번에는 이 책에서 주야장천 얘기하는 '만약 보통 선거였으면 우리가 이겼다'라는 말조차 통하지 않는다. 민주당은 그야말로 대패한 것이다.


최근 뉴스를 통해 트럼프가 ‘그린란드와 파나마 운하 합병을 위해 군사력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것을 보증할 수 없다’는 무시무시한 말을 했다는 것을 전해 들었다.

https://www.yna.co.kr/view/AKR20250112000500071?input=1195m

또한 바이든이 총기 및 탈세 문제로 기소된 자신의 아들인 헌터를 사면했다는 소식도 들을 수 있었다.

https://www.yna.co.kr/view/AKR20250107066300071?input=1195m

왜 많은 이들이 트럼프의 재선을 막고 싶어 했는지, 또한 그럼에도 어떻게 재선에 성공할 수 있었는지 알 수 있게 해 주는 소식들이다.


이 책은 훌륭한 제안임에도 편향된 시각 때문에 힘을 잃었다. 나는 미국 민주당이 실패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스스로를 돌아보는 법을 잊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정확히 같은 이유로, 무려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가 실패해 직무가 정지된 것은 물론 끝내 체포돼 구치소에 수감돼 조사를 받고 있는 대통령을 두고도 양당의 지지율이 얼마 차이 나지 않거나 오히려 역전되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https://www.khan.co.kr/article/202501121608001

우리나라의 민주당 역시 자꾸 상대방을 공격하려고만 할 뿐 스스로를 돌아보고 반성하며 자제하는 법을 잊었다. 그 때문에 개막장이라는 말로도 부족한 윤석열과 국민의힘을 상대로도 고전하는 것이다. 이재명과 개딸, 조국과 그 지지자들을 놓지 못하면 그들 역시 곧 미국 민주당 꼴이 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한국 번역판의 제목에 왜 ‘극단적’이라는 말을 넣었는지 모르겠다. 사실 책에는 ‘극단적’ 소수라는 표현은 잘 나오지 않는다. ‘극단적’이라고 할 만한 사례가 나오긴 하지만 책의 주요 줄기라고 할 수는 없다. 현재 미국의 공화당과 그 지지자들을 과연 ‘극단적’ 소수라고 할 수 있겠는가. 자극적인 제목으로 독자의 관심을 끌고자 했던 출판사의 행보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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