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천역산타마을, 철암탄광역사촌, 삼성인력개발원 명상센터
크리스마스에 가족과 여행을 다녀왔다.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전입 신고한 주소가 아닌 다른 곳으로 선물을 배달해 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여행 일정은 늘 그렇듯 아내가 수립했다. 동선은 다음과 같았다.
서울 - 분천역 산타마을 - 철암 탄광 역사촌 - 분천역 산타마을 - 삼성인력개발원 명상센터
‘분천역’ ‘산타 마을’이라니. 이 무슨 어울리지 않는 조합인가. 핀란드 산타 마을의 동아시아 거점 오피스라도 되는 것일까. 처음에는 영 어울리지 않는 조합 같아서 마뜩지 않았는데 막상 가보니 묘하게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탓에 모든 곳에 반짝이는 전구가 감겨 화려하고 빛나는 크리스마스 풍경에 익숙해져 있었는데 적당히 디톡스한 듯한 분천 산타 마을의 풍경이 내 몸과 마음을 적당히 느슨하게 만들었다. 아무 연고도 없는데 이상하게 편안한 기분.
토속적인 듯 이국적인 듯 어느 한쪽으로 정의할 수 없는 이 오묘한 산타 마을의 분위기를 가장 잘 표현하는 오브제가 바로 분천역 근처에 위치한 분천 산타 우체국의 간판이다.
서울 도심에서는 간판은 물론 메뉴에서조차 한글을 찾기 어려운 시대에 전통적인 서체의 한글로 달아 놓은 이 간판에서 조그마한 시골 마을의 기백을 느낄 수 있었다.
마을에 즐길거리가 아주 많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래도 독특한 외관의 전망대 한 번 보고, 거대한 비닐돔에서 진행되는 행사도 구경하고, 그 근처 푸드 트럭에서 닭강정과 스테이크도 사 먹고, 그러다 기차 시간에 맞춰 분천역 근처로 와서 생선 구이도 사 먹고, 작고 아담한 역사 근처도 구경하고, 그러다 보니 두어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우리는 분천역에서 백두대간협곡열차를 타고 철암 탄광 역사촌으로 향했다. 여유롭게 기차 그 자체를 함께 즐기는 기차 여행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좌석은 지정석이었고, 관광 열차답게 창가를 바라보고 여럿이 나란히 앉을 수 있는 벤치형 좌석이 있었다. 벤치형 좌석은 위 사진 기준으로 오른쪽 창가쪽 좌석이 더 좋았다. 왼쪽에는 주로 산이, 오른쪽에는 강이 나타나는데 강 풍경이 더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열차 후면이 커다란 유리창으로 되어 있어서 이곳에서 보는 풍경도 색다르고 아름다웠다.
철암역까지 가는 길에 양원역과 승부역에 한 번씩 정차했다. 아래 사진은 양원역에서 과거에 사용했던 대합실을 보존해 놓은 것을 찍은 것이다. 참고로 진짜 역사는 반대편에 있다.
승부역을 지나면 안내 방송과 함께 열차는 관광 모드를 종료하고 조금 빠르게 달리기 시작한다. 무엇이든 빠른 게 미덕인 세상에서 빨라지는 게 아쉬운 것 또한 오랜만이었다. 그러다 이윽고 철암역에 도착한다. 철암역은 분천역과는 다르게 규모가 꽤 큰 역이다.
철암역에서 나와 길을 건너 왼쪽으로 몇 분 걸으면 낙동강을 따라 늘어선 철암 탄광 역사촌이 나온다. 탄광촌이 흥했던 시절의 주택과 상가를 한 블록 정도 보존해 놓은 곳인데 민속촌의 한옥들과는 달리 외양이 현대의 건축물들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언뜻 보면 관광용 건물인지 알아채기 어렵다. 덕분에 처음에는 반 블록 정도를 그냥 지나쳤다가 건물 문에 붙어 있는 들어가도 된다는 안내문을 보고 이곳이 역사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건물 안에 들어가면 이런저런 전시를 볼 수 있다.
전체적으로 전시의 질이 높지는 않지만, 그래도 성인이 되어 자신의 힘으로 먹고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즐거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고달픈 일인지 알게 된 지금 그 시절 어르신들의 애환을 엿볼 수 있어 좋았다.
전시관에는 이 지역 광부뿐 아니라 파독광부의 이야기도 담겨 있다. 독일로 광부를 파견한 계기부터 파견 조건, 파견 경로, 전체 인원 목록, 파견지에서의 생활 모습, 계약 종료 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사람의 비율(생각보다 훨씬 적었다) 등 상당히 자세한 자료가 준비돼 있어 읽는 재미가 있었다.
내부를 둘러보고 난 뒤에는 강 건너편에서 건물의 외관도 꼭 한 번 구경해 보기를 권한다. 왜 이 건물들을 '까치발 건물'이라고 부르는지 단박에 알 수 있다.
지금은 그나마 철근 등으로 보강해 놓았지만 아래 과거에 찍은 사진을 보면 무너지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로 부실하게 증축해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그야말로 까치발이다.
건물 바깥에서는 감성 넘치는 동상 두 점도 만나볼 수 있다. 아내와 어린 아기를 뒤로 하고 강을 건너 탄광으로 출근하는 남편과 그런 남편을 집에서 배웅하는 아내가 서로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모습을 동상으로 제작해 놓았다.
그 밖에도 거리 곳곳에서 흥미로운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 아래는 언제 적힌 것인지 알 수 없는 심길원 광부의 낙서다.
거리의 가로등도 탄광촌 콘셉트로 장식돼 있었다.
돌아올 때에는 벤치형 좌석이 없는 일반 열차를 탔다. 기관실을 빼면 두 칸밖에 되지 않은 귀여운 열차였는데 그마저도 대부분의 좌석이 빈 채로 출발했다.
분천역으로 돌아오니 이미 마을 행사는 모두 종료돼 있었다. 가로등이 없어 해가 저물기 시작하자 바로 온 마을에 고요하고 신속하게 어둠이 내려앉았다. 그 모습이 약간의 두려움이 섞인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서울에서 이른 아침에 출발했지만 두 관광지를 들렀다 오니 ‘영덕’이란 글자가 적힌 도로표지판을 지나칠 무렵에는 이미 온 세상이 밤의 품에 쌓여 있었다. 고래불 해수욕장 즈음에서 좁은 산길로 접어들자 점차 인적과 인가가 드물어졌고 어느덧 지나다니는 차도 잘 보이지 않았다. 굽이진 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며 어둡고 차가운 자연의 품으로 점점 더 깊숙이 들어가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 내비게이터가 요란한 음성으로 곧 단속 카메라가 등장한다고 경고했다. 제한 속도 시속 20km. 차에서 내려 달리는 게 더 빠를 것 같다고 생각하며 천천히 올라가니 드디어 명상 센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스스로도 자연의 일부이면서 자신의 종족과 그 산출물이 아닌 여집합으로서의 자연을 보다 온전히 누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해 깊은 산속에 건설해 놓은 또 하나의 산출물. 기존 자연의 일부를 걷어내고 화려한 기교 없이 기능에 충실하게, 그러면서도 구석구석 깨끗하고 깔끔하게 만들어 놓은 이 명상 센터는 삼성 특유의 스타일로 이곳의 자연에 잘 녹아들어 있었다.
운전자(=나)의 실수로 예정보다 늦게 도착한 바람에 미리 예약해 놓은 연수원 저녁을 놓친 우리는 연수원 한쪽에 마련된 편의점에서 진라면 볶음밥과 순후추 돼지국밥 등 편의점 정식으로 배를 채운 뒤 숙소로 올라왔다.
그 후 2박 3일 동안 난 강제로 알랭 드 보통과 친구가 되었다. 처음부터 이곳에서 책을 읽을 생각은 아니었다. 아이들과 놀다가 시간이 남으면 이것저것 해 보고 싶은 게 있어서 랩탑을 가져갔었다. 숙소에서 랩탑을 열고 핫스폿으로 접속하려다 연거푸 실패하고 나서야 명상과 힐링이라는 콘셉트에 진심인 이곳은 와이파이와 핫스폿을 막아놓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덕분에 난 태블릿으로 구몬 학습을 할 수 없게 돼 신이 난 아이들과 함께 수시로 명상 센터 회의실 건물 한쪽에 마련된 커다란 독서 공간으로 향했다. 이곳은 층고가 상당히 높은 거대한 계단 형태의 공간이었다. 쿠션과 빈백을 계단마다 여유 있게 배치한 뒤 벽면 이곳저곳에 책장을 설치하고 책을 수십 권 정도 가져다 놓은, 널찍하지만 책을 잡고 드러눕듯 앉으면 왠지 아늑함이 느껴지는 그런 공간이었다.
계단을 오르내리며 이 책장, 저 책장을 어슬렁거리다 ‘The News, A User’s Manual’이라는 독특한 제목에 시선이 갔다. 수많은 매뉴얼을 봤지만 뉴스 사용자 매뉴얼은 처음이었다. 이런 제목으로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나 궁금해서 보니 작가가 그 유명한 ‘알랭 드 보통’이었다. 그렇게 처음으로 알랭 드 보통의 작품을 읽었다(The News: A User's Manual, 독서록).
이곳은 조식 식당도 아주 멋진 곳이었다. 질 좋은 급식 느낌의 아침을 적당히 식판에 담아 창가에 앉으면 켜켜이 겹쳐 있는 산과 산 사이로 바다가 보였다. 따뜻한 실내에서 맛있는 음식과 함께 산과 바다를 한 번에 즐길 수 있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춘 명상 센터다.
영덕하면 또 대게 아니겠는가. 한 끼는 숙소 밖으로 나가 대게를 찾아 먹었다. 원조대게후포리라는 곳이었다. 게는 크기와 출신지에 따라 가격이 거의 10배 가까이 차이 났다. 우리는 과연 맛도 그 정도로 차이 날지 비교해 보고 싶어서 2만 얼마짜리 러시아산 홍게와 10만 원 중후반대로 적혀 있는 국산 박달 대게를 한 마리씩 주문했다. 비록 갑각류 알레르기가 있는 나는 먹지 못했지만 가족들 말로는 홍게는 짭짤한 맛이고 박달 대게는 은근한 단맛이 배어 나온다고 했다. 그래서 과연 10배 더 맛있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크기도 컸던 국산 박달 대게가 양도 많고 먹기도 편하고 훨씬 더 맛있단다. 값은 대게를 못 먹는 나를 위한 모둠회까지 포함해서 총 22만 원 정도 지불했다.
밤에는 명상 센터에서 운영하는 별 보는 프로그램에도 참여했다. 사방이 칠흑같이 어두우니 하늘이 그야말로 별천지였다. 프로그램 선생님의 설명을 따라 맨눈으로 이런저런 별자리를 공부했고, 미리 세팅돼 있던 망원경으로 난생 처음 목성과 토성은 물론 그 고리까지 보았다.
언젠가 또 산타 할아버지를 집이 아닌 곳으로 모실 날을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