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이 아닌 작가 유시민의 효과 좋은 글쓰기 비법
2015년 4월에 출간된 책을 2016년 7월에 전자책으로 구입해 처음 읽었고, 이번에 종이책으로 구입해 다시 읽었다. 10년 전에 열심히 읽고 효과를 봤던 이 책을 이번에 다시 구입해 읽은 이유는 내 인생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글쓰기를 한 번 정리할 필요가 생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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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 관심이 생긴 후 처음 읽은 글쓰기 자체를 다루는 책이었다. 이후 글을 쓸 때마다 책에서 배운 것들을 하나씩 적용해 보려고 노력했고, 어느 날 이 책을 읽기 전에 내가 썼던 글을 다시 찾아보다가 내 글쓰기 실력이 부쩍 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최근에 쓴 글이 과거에 쓴 글보다 훨씬 이해하기 쉽고 읽기 편했기 때문이다.
이후 몇 년에 걸쳐 이 책에서 소개한 여러 책을 읽으면서 가치관도 많이 바뀌었다. 의식하지 못하고 살고 있던 여러 개념을 알게 됐고, 옳다고 굳게 믿고 믿던 것이 실은 허상이었다는 것을 깨닫기도 했다. 좋은 책은 늘 또 다른 좋은 책을 소개한다. 그렇게 독서 목록을 확장해 나가는 과정에서 세상과 인생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이 책의 가장 큰 단점은 저자이다. 저자가 유시민이기 때문에 무작정 읽어 보는 사람도 많을 테지만 한편으로는 저자가 유시민이어서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고 배척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분명 이 책은 저자의 정치 성향이 확실하게 드러나는 책이다. 예를 들어 저자는 잘 쓴 글 예시로는 진보 성향 인사의 글을 제시하고, 못 쓴 글 예시로는 보수 성향 인사의 글을 제시한 다. 다만 예시만 그러할 뿐 저자가 안내하는 논리 글쓰기 방법에는 정치 성향이 묻어나지 않는다. 이 책과 이 책에서 소개하는 다른 책을 몇 권 읽는다고 소위 의식화 교육이 되지는 않는다. 그저 글쓰기 실력이 부쩍 늘 뿐이다.
저자는 논리 글을 쓸 때 꼭 지켜야 할 세 가지로 다음을 꼽는다.
취향 고백과 주장을 구별한다.
주장은 반드시 논증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주제에 집중한다.
첫 번째는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는 취향에 속하는 사안과, 옳고 그름을 따지며 각자의 주장을 펼칠 수 있는 사안을 잘 구별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예를 들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과일은 대추야자다’라는 문장은 취향 고백을 주장처럼 잘못 전개한 문장이다. 입맛은 우열을 가리거나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다. 취향을 이야기하고 싶다면 ‘나는 이제껏 먹어 본 과일 중에서 대추야자가 가장 맛있다’와 같이 내 경험이나 취향을 이야기한다는 것을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혹은 사안을 ‘맛있다’에서 측정할 수 있는 ‘단 정도’로 바꾼다면 ‘대추야자는 세상에서 가장 단 과일이다’라고 주장할 수 있다.
두 번째는 널리 공리로 인정받은 것이 아닌 무언가를 주장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근거와 이론을 제시해 논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대추야자는 세상에서 가장 단 과일이다’라는 문장은 아직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나 이론을 제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현재 상태에서는 근거를 밝히라고 요구할 수 있을 뿐 옳고 그름을 따지거나 반박할 수 없다. 제대로 주장하려면 적절한 근거나 이론을 제시해 논증해야 한다. 예를 들어 보통 과일의 당도 측정에 널리 사용하는 ‘브릭스 당도(Degrees Brix)’ 수치를 근거로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논증하면 독자는 브릭스 당도 수치가 과연 단 과일의 측정 기준으로 사용할 만한 수치인지 혹은 브릭스 당도 수치가 더 높은 과일은 없는지 등을 확인해 이 주장이 옳고 그른지 따지며 받아들이거나 반박할 수 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고려해야 할 점은 독자에 따라서 알고 있거나 인정하는 기반 지식이 다르다는 것이다. 따라서 글을 작성할 때 독자에 따라 근거와 이론을 제시해야 할 사안이 달라지거나 사용할 수 있는 근거나 이론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아직 브릭스 당도를 모르는 독자를 대상으로 글을 쓸 때에는 브릭스 당도 설명을 짧게 곁들이거나 잘 설명돼 있는 링크(https://en.wikipedia.org/wiki/Brix)를 찾아 추가로 제공하는 것이 좋다.
세 번째는 다루고 있는 주제와 관련 없는 이야기를 글에 끌어들이지 말라는 것이다. 말과 마찬가지로 글도 일단 쓰기 시작해 몰입하다 보면 어느 순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진다. 이때 유혹에 넘어가 주제와 관련이 있는지 따져보지 않고 자신이 알고 있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나 둘 추가하다 보면 주제를 향해 뻗어나가는 힘이 약해지고 때에 따라서는 불필요한 논란이 발생하기도 한다.
한 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이 책의 저자는 2004년 11월 3일 중앙대학교에서 ‘학생과 정치’라는 주제로 열린 특강에서 강연 중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인간의 뇌세포는, 그러니까 노화라는 것은 20세가 지나면 노화가 바로 시작됩니다. 한 50대에 접어들게 되면 죽어나가는 뇌세포가 새로 생기는 뇌세포보다 많죠. 사람이 멍청해집니다. … 저는 개인적으로 갖고 있는 원칙 중에 하나가 가능하면 60세가 넘으면 책임 있는 자리에 있지 말자, 65세가 넘으면 때려죽여도 책임 있는 자리에 가지 말자, 이게 제 소신 중에 하나입니다. … 20, 30, 40대에 엄청난 업적을 이루었던 사람이 … 65, 66, 67, 68이 돼가지고 … 전혀 다른 인격체가 된다. … (과거의 뇌와) 뇌세포의 일치 정도가 몇 %나 될지 모르겠다.
이 강연은 세간에 이른바 ‘60세 넘으면 뇌가 썩는다’는 표현으로 널리 알려진 강연이다. 저자는 주제와 크게 상관없는 사안을 끌어와 발언하는 바람에 이후 평생 ‘뇌썩남’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니고 있다. 위 발언 외 실제 특강 내용은 현재 검색이 잘 되지도 않는다. 나무 위키에 따르면 본인 역시 썰전이라는 TV 프로그램에서 하지 말았어야 할 말 중 1위로 이 발언을 꼽았다고 한다.
주제에 집중하지 못한 탓에 이 책의 저자가 평생 겪고 있는 일을 생각하면 저자의 다음 조언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글을 쓸 때에는) 마지막까지 철저하게 주제를 의식하고 논리적 긴장감을 유지해야 한다. … 자기 자신의 감정까지도 객관적으로 바라보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주제에 집중해야 한다.
그렇다면 세 가지 원칙을 만족하는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어떤 훈련을 하면 좋을까? 이 책에서 제시하는 방법을 요약하면 대략 다음 두 가지를 많이 실행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독해
발췌 요약
먼저 독해. 잘 쓰려면 우선 좋은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이때 단순히 저자가 전달하는 정보를 파악하고 논리를 이해하며 저자가 의도한 대로 감정을 느끼는 공감적 독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글을 ‘독해’할 필요가 있다. 글의 주제와 구조를 분석하고, 저자의 논리에 허점은 없는지 살펴보며, 이 글을 읽으며 내가 왜 이런 감정이 드는지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궁극적으로 저자가 독자를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고 싶어 하는지 저자의 의도를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며 읽는 것이다. 좋은 책을 골라 충분히 시간을 들여 이와 같이 독해하는 훈련을 반복하면 글쓰기 선배들이 사용한 어휘와 표현, 서로 어울리는 단어 조합, 여러 개념과 개념 간의 관계, 논리를 전개해 나가는 방법 등을 자연스레 익힐 수 있다.
많이 읽어야 잘 쓸 수 있다. 책을 많이 읽어도 글을 잘 쓰지 못할 수는 있다. 그러나 많이 읽지 않고도 잘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음으로 발췌 요약이다. 모든 글은 무엇인가의 요약이다. 일기는 하루를, 뉴스는 사건을, 논설은 주장을, 제품 사용 설명서는 제품의 특징과 사용 방법을, 소설은 작가가 머릿속에서 창조한 인물/사건/배경을 요약한 글이다. 따라서 발췌 요약은 모든 글쓰기에 대비할 수 있는 좋은 훈련법이다. 책을 읽으며 깊이 공감했거나 생각이 달랐던 부분을 발췌 요약해 정리하다 보면 글쓰기 실력이 눈에 띄게 향상된다.
저자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가능하면 여럿이 모여 발췌 요약하기를 권장한다. 열심히 써서 나 혼자 보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평가나 피드백을 받은 뒤 이를 반영해 글을 고치는 작업을 반복하면 글쓰기 실력이 훨씬 더 빠르게 향상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요약은 단순한 압축 기술이 아니며 요약하는 사람의 사상과 철학을 반영하며 생각과 감정을 표현한다’고 말한다. 즉 같은 책을 읽어도 사람마다 서로 다른 발췌 요약이 나온다는 뜻이다. 다 함께 모여 책을 하나 선정해 읽은 뒤 서로의 발췌 요약을 평가하면 색다른 재미와 함께 글쓰기 실력을 더욱 빨리 늘릴 수 있다. 이때 평가나 피드백을 줄 상대방이 꼭 나보다 글쓰기 실력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어도 된다. 우리가 유명한 셰프가 아니어도 음식을 먹고 나름의 기준으로 맛을 평가할 수 있듯 글 쓰는 실력이 뛰어나지 않더라도 자기 나름의 기준으로 글을 평가하고 피드백을 주는 것이 가능하다. 물론 글쓰기 실력이 뛰어난 사람에게 보다 깊이 있고 섬세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막 글쓰기에 관심을 갖고 시작하는 단계에서는 그런 사람을 찾아 헤매는 시간에 글 하나 더 쓰고 피드백 한 번 더 받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인터넷을 활용하는 방법도 적극 권장한다. 브런치와 같은 블로그 서비스나 SNS를 이용해도 좋고 즐겨 찾는 게시판에 글을 올리거나 책을 구매한 서점 사이트에 댓글이나 책 후기를 남기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겠다. 꼭 오프라인이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보여준다고 의식하면 더 좋은 글을 쓰게 되며 온라인 독자가 남긴 코멘트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실력을 늘리는 데 도움이 된다.
또 한 가지 팁으로 저자는 ‘써야 해서 쓰는 글을 잘 쓰려고 노력하면 쓰고 싶어 쓰는 글도 잘 쓸 수 있다’고 말한다. 따로 시간 내기 어렵다면 평소 학업이나 업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써야 하는 글을 개선하는 것부터 시작하라는 이야기다. 깊이 공감한다. 일단 무슨 글이라도 좋으니 계속 써야 는다. 더구나 학업이나 업무 때문에 쓰는 글은 원하든 원치 않든 피드백을 받을 확률이 높은 글이다. 내 글을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읽고 피드백까지 주는 기회는 흔히 오지 않는다. 글쓰기 실력을 늘리고 싶다면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훈련을 거쳐 사회적 자아를 잘 표현할 수 있게 되면 사적 자아 역시 잘 표현할 수 있게 된다.
내용 측면에서 좋은 글을 쓰기 위한 원칙과 훈련 방법을 알려준 저자는 이제 글의 외양으로 초점을 옮긴다. 내용 측면에서는 ‘어떻게 해야’ 좋은 글을 쓸 수 있는지 알려줬다면 외양 측면에서는 ‘무엇을 하지 말아야’ 못난 글을 벗어날 수 있는지 알려준다. 그 이유는 외양 측면에서는 못난 글의 기준만 벗어나면 그 이후는 각 개인의 스타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저자는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을 차용해서 ‘못난 글은 다 비슷하지만 훌륭한 글은 저마다 이유가 다르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못난 글의 기준은 하나씩 살펴보자.
저자는 ‘시간순으로 보면 감정과 생각이 먼저고 언어는 그다음이다. 언어에서는 말이 글보다 먼저다. 말보다 먼저 글을 배우는 사람은 없다. 직접 읽을 때 자연스럽게 읽히는 글이 그렇지 않은 글보다 더 좋은 글이다.’라고 말한다. 편하게 읽혀야 이해하기도 쉽다.
‘에의’, ‘으로의’, ‘에서의’, ‘에로의’, ‘으로부터의’, ‘에 있어서의’도 일본어(の)의 영향을 받은 표현으로 앞뒤 관계를 명확하게 파악하기 어렵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제대로 뜻을 전달할 수 있는 다른 표현으로 고치자.
모놀리식 아키텍처에서 마이크로서비스로의 전환 -> 모놀리식 아키텍처에서 마이크로서비스로 전환
클라우드로의 이전 과정에서 -> 클라우드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데이터에의 접근 권한 -> 데이터 접근 권한
외부 시스템에의 연결 -> 외부 시스템에 연결
서비스 안정성에 있어서의 핵심 요소 -> 서비스 안정성의 핵심 요소
보안 설계에 있어서의 고려 사항 -> 보안 설계 시 고려 사항
사용자로부터의 요청 사항 -> 사용자 요청 사항
외부 서비스로부터의 데이터 -> 외부 서비스에서 전송한 데이터, 외부 서비스로부터 전달받은 데이터
영어 표현에서 유래된 피동문을 남용하지 말자. 피동문을 사용하면 행위의 주체가 누구인지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시스템을 설계하고, 인프라를 구성하고, 기능을 구현한 주체가 자신이나 자신의 팀이라면 능동 표현을 사용해서 ‘우리가 한 것’이라고 자신 있게 밝히자.
설계되었습니다. -> 설계했습니다.
구성되었습니다. -> 구성했습니다.
구현되었습니다. -> 구현했습니다.
설정되었습니다. -> 설정했습니다.
제목이나 목록처럼 어쩔 수 없이 줄여아 하는 곳이 아니라면 ‘-성(性)’을 붙이는 등의 방법으로 명사화하는 표현을 남발하지 말자. 조사를 적절히 사용해서 뜻이 더욱 명확해진다.
서비스 운영 안정성 확보를 위한 장애 대응 프로세스 최적화 방안 수립을 진행했습니다. ->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장애 대응 프로세스를 최적화하기 위한 방안을 수립했습니다.
데이터 처리 효율성 향상을 위한 성능 개선 작업을 수행했습니다. -> 데이터 처리 효율을 높이기 위해 성능을 개선했습니다.
서비스 운영 효율성 향상을 위한 모니터링 시스템 구축 작업을 수행했습니다. -> 서비스 운영 효율을 높이기 위해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서비스의 방향성을 정의했습니다. -> 서비스의 방향을 정의했습니다.
여러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중의적 단어 대신 대상을 정확히 구별해 표현할 수 있는 말을 쓰자.
저자가 제시한 예: ‘거시기’, ‘부분’
일본어(の)나 영어(of) 표현의 영향을 받아 '의'를 남발하는 경우가 많다. 불필요한 관형격 조사 ‘의’를 줄이면 같은 내용을 더 짧고 깔끔하게 전달할 수 있다.
나의 집의 뒤의 산 -> 내 집 뒷산
영어 표현에서 유래된 완료시제를 남용하지 말자. 한국어는 대부분 과거 시제가 이미 완료 시제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굳이 완료 시제로 길게 쓸 필요가 없다.
다양한 장애를 경험해 왔습니다. -> 다양한 장애를 경험했습니다.
기존에는 이런 방식으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혹은 사용했었습니다.) -> 기존에는 이런 방식으로 사용했습니다.
접미사 '-들'은 꼭 붙여야 하는 경우에만 붙이자. 복수형 어미를 남발하면 문장이 쓸데없이 길어지고 읽기에도 어색해진다.
여러 서비스들에서 발생하는 문제 -> 여러 서비스에서 발생하는 문제
이런저런 방법들을 고민해 봤지만 -> 이런저런 방법을 고민해 봤지만
전체 모듈들을 -> 전체 모듈을
사용자들의 요청들을 -> 사용자 요청을
데이터들 -> 데이터
정보들 -> 정보
우리말은 우리말과 잘 어울린다. 우리말 용어가 있다면 우리말을 쓰자.
레이턴시 -> 지연 시간
유저 -> 사용자
단어나 표현을 조합할 때 서로 잘 어울리는지 잘 따져보자.
저자가 제시한 예: 정치적 숙고를 촉발시키고 -> 정치적 숙고를 북돋고
복문은 되도록 강조하고 싶거나 단문으로는 뜻을 정확하게 표현하기 어려울 때에만 쓰자.
저자는 ‘같은 내용을 전달한다면 짧을수록 좋다.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압축하면 논리가 탄탄해지고 글이 아름다워진다’는 조언도 덧붙인다. 이 조언은 특히 생성형 AI를 이용해 초안을 작성하는 최근 흐름에 딱 맞는 조언이다. AI는 같은 이야기를 표현만 살짝 바꿔 두어 번 반복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부분은 리뷰하면서 적절히 걷어내며 정리해야 한다. 이 조언은 앞서 살펴본 못난 글 예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예시를 보면 알겠지만 못난 글을 수정하면 대부분 글이 짧아진다.
곁다리로, 저자는 올바른 글을 쓰기 위해 모국어 능력을 강조하기도 한다.
언어는 생각을 담는 그릇이다. 말하고 글 쓰는 것뿐만 아니라 생각하는 데에도 언어가 있어야 한다. 모국어를 바르게 쓰지 못하면 깊이 있게 생각하기 어렵다.
여기서 저자가 ‘언어’가 아니라 ‘모국어’라고 강조하는 이유는 어린 나이에 외국어 교육을 시작하는 우리나라의 트렌드 때문이다. 지정학적 경제적 특성 때문에 사회 전반적으로 외국어 능력을 하도 강조하다 보니 외국어를 배우기 시작하는 나이가 점점 더 어려지고 있다. 저자는 아직 모국어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시기에 또 하나의 언어를 배우기 시작하면 두 언어 모두 제대로 습득하지 못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런 사람이 쓴 글이 논리적으로 탄탄하고 아름답기는 어려울 것이다. 저자는 언어 감각을 타고난 사람이 아니라면 일단 모국어부터 제대로 익힌 뒤에 외국어 공부를 시작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우리는 내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을 때 글을 쓴다. 다른 욕구와 마찬가지로 나를 표현하고 싶다는 욕구도 적절한 시기에 제대로 해결하지 않으면 가슴 한편에 응어리로 맺혀 해소될 때까지 나를 괴롭힌다. 하고 싶은 말을 제때 하지 못해 집에 와서 끙끙 앓거나 채팅창에서 똑같은 말을 이리저리 고치다 결국 보내지 못해 한숨을 쉬거나 SNS에나 단체 채팅방에 잘못 올린 한 마디 때문에 진땀을 빼며 해명해 본 경험이 누구나 한 번쯤 있을 것이다.
사실 글로 전달하려는 생각이나 감정이 항상 올바를 필요는 없다. 살다 보면 누군가를 흉보고 싶을 때도, 앞뒤 맥락 없이 그냥 욕을 늘어놓고 싶을 때도, 성인으로서 자신의 은밀한 욕망을 노골적으로 표현하고 싶을 때도 있다. 때와 장소와 상대만 잘 구별한다면 어느 것도 문제 되지는 않는다. 일단 내 의도와 생각과 감정을 상대방이 오해하지 않도록 있는 그대로 잘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
내면에 있는 생각, 감정, 욕망을 제때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면 삶이 답답해진다. 각자의 내면에 무엇이 있으며 또 어떻게 그것을 표현하느냐에 따라 사람의 인생이 달라진다. … 어떤 욕망이나 특정한 표현 방식이 다른 것보다 더 고결하거나 훌륭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 표현할 가치가 있는 그 무엇을 내면에 쌓아야 하고 그것을 실감 나고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
쓰고 싶어 쓰는 글마저 잘 쓰지 못하면 자기 삶에 온전히 만족하기가 어렵다. 자기를 표현하려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생각과 감정을, 욕망과 충동을, 기대와 소망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표현해서 타인과 교감할 때 우리는 기쁨과 성취감을 느낀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은 국가나 사회에서만 오는 게 아니다. 방법을 몰라서 내면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도 억압이다. 남이 그랬든 스스로 그랬든, 억압은 삶의 기쁨과 의미를 파괴한다.
그런데 만약 단순히 정확히 표현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의 글이 보다 많은 사람에게 공감과 지지를 받기를 원한다면 해야 할 일이 조금 더 늘어난다. 내가 속해 있는 사회가 옳다고 인정한 사실과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이해한 뒤 그 사실과 가치에 부합하는 내용을 담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더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지지해 준다.
이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훈련이 오랜 시간 널리 훌륭하다고 인정받은 인생 선배들의 작품을 읽고 발췌 요약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건강하고 올바른 내면이 가꿔지고, 올바른 내면이 갖춰지면 주제가 무엇이든 올바른 글이 나온다. 한 가지 팁이라면 마음에 들었다고 어느 한 작가만 파지 말고 되도록 다양한 성향의 여러 작가의 책을 두루 접하길 권한다. 그래야 여러 사상이 다듬어지면서 융합돼 진정으로 내 성정과 취향에 맞는 나만의 방향으로, 오직 나만의 생각이 자라난다.
힘들게 자기만의 생각을 가꿔냈다면 조금만 더 힘을 내서 꼭 글로 정리해 놓는 게 좋다. 지금 내 머릿속에 선명히 떠올라 있는 나만의 참신한 사상이 내일도 그 자리에 그렇게 선명하게 떠있으리란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글로 옮기다 보면 조금 전까지 분명 괜찮아 보였던 내 사상에 생각보다 훨씬 많은 허점과 오류가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 허점을 메우고 오류를 고치는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탄탄한 논리를 갖춘 나만의 사상과 논리를 완성할 수 있다.
문자로 쓰지 않은 것은 아직 자기의 사상이 아니다. 글로 쓰지 않으면 아직은 논리가 아니다. 글로 표현해야 비로소 자기의 사상과 논리가 된다.
저자는 자신이 비록 2002년에 동아일보를 절독했지만 자신의 ‘항소이유서’를 세상에 알려주고 동아일보에 칼럼도 연재할 수 있게 주선해 준 황호택 기자와 그 당시 동아일보는 여전히 자신의 마음속에 고마운 존재로 남아 있다고 했다. 나 역시 정치인 유시민의 이야기는 전혀 듣고 있지 않지만 자신의 글쓰기 비법을 정리해 이런 좋은 책을 내준 작가 유시민에게는 늘 고마워하고 있다.
작가 님. 잘 배웠습니다. 고맙습니다. 아무쪼록 올 한 해도 건강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