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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nugeun Jul 13. 2021

달까지 가자, 독서록

소년등과일불행같은건 잘 모르겠고, 일단 가즈아!

이 독서록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볍고 경쾌한 소설

 어디서도 느낄 수 없는 가볍고 부드러운 식감과 독보적인 달콤함을 자랑하는 솜사탕 같은 소설이었다. 솜사탕을 맛있게 먹으려면 눈앞에 둥실 떠오른 구름이 그저 설탕을 녹여 만든 것이라는 사실은 잠시 접어두고 일단 크게 한입 베어 물어야 한다. 입안 가득 들어찬 설탕 구름이 사르르 녹아내리며 전달하는 기분 좋은 달콤함을 느끼고 나면 다 먹을 때까지 쉽사리 멈출 수 없다. 

 이 소설을 읽을 때도 가상 화폐 투자가 정말 건전하고 가치 있는 투자인지 혹은 과연 우리 사회의 건강한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인지와 같은 의문은 잠시 접어두자. 대신 당장 자기 한 몸 건사하는 것은 물론 부모님의 노후까지 걱정해야 하는 고단하고 위태로운 삶을 살다가 우연히 마주친 코인 포탈에 ‘에라 모르겠다’라는 심정으로 몸을 던지게 된 세 청년(혹은 몇 년 전부터 몰아치고 있는 코인 광풍에 휩쓸린 이 땅의 수많은 청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책장을 넘겨보자. 어느 순간 책에 몰입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너무나 현실적인 세 친구들

 이 책의 주인공인 ‘마론제과’ 직원 다해와 그녀의 단짝 동기 은상, 지송이는 흙수저를 물고 태어나 제 나름의 노력으로 전 국민이 다 아는 제과 기업에 취업한 건실한 청년들이다. 현재 우리 사회의 상황을 생각해 봤을 때 여기까지의 스토리만으로도 누군가에게는 흙수저가 대기업에 취업한 성공담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잘 알고 있다. 자고 일어나면 억 단위로 집값이 뛰어오르는 요즘 세상에서 그저 취업했다는 것만으로 마냥 기뻐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거기에 TV나 SNS 등 온갖 매체에서 쉴 새 없이 접하게 되는 누군가의 플렉스를 볼 때마다 문득 가슴에 찾아오는 상대적 박탈감은 또 어떻고. 

 소설 속 인물들도 그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다. 게다가 그들의 어깨 위엔 학자금 대출이나 아무리 생각해도 불공정한 것 같은 인사 평가, 물가 상승률을 고려하면 동결이나 다름없는 연봉 상승률, 진짜 정규직과는 조금 다른 자신의 직렬 같은 게 하나둘씩 덤으로 얹혀 있다. 그들이 보기에 이런 상황에서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면 아무리 허리띠를 꽉 졸라맨다고 한들 도무지 생활이 나아질 것 같지 않다. 그들이 뭐 대단한 것을 원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화장실에서 샤워할 때 물이 거실로 흘러 들어갈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집이나 다른 조건 따지지 않고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 사람과 마음 놓고 사귈 수 있는 상황 같은 소박한 것을 원할 뿐이다. 

 어떻게든 이 답답한 현실을 개선해 보려고 발버둥 치던 그들은 결국 하나둘씩 코인 열차에 탑승한다. 이 과정에서 작가의 능력이 빛을 발한다. 코인에 진심이든 아니든 작가가 창조한 지극히 현실적이면서 활기 넘치는 세 인물이 주고받는 티키타카를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들의 감정을 이해하며 모험담에 빠져들어 그들이 제발 ‘투자 성공’ 스테이션에서 내리길 바라게 되기 때문이다.


드디어 읽게 된 장류진 작가의 장편 소설

 장류진 작가의 등단작인 ‘일의 기쁨과 슬픔’을 너무나도 재밌게 읽고 나서 이 작가의 장편을 손꼽아 기다리던 와중에 드디어 출간된 장편의 내용이 가상 화폐 투자 얘기라는 것을 알게 됐을 때, 가상 화폐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입장에서 잠시 구매를 망설이기도 했었다. 그러다 결국 등단작을 읽으며 느꼈던 희열에 가까운 재미를 잊지 못해 구매했고 첫 장을 펴자마자 업무와 육아를 병행하는 와중에도 이틀 만에 다 읽어버렸다. 

 등단작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 책에서도 장류진 작가가 선보이는 2~30대 직장인의 심리와 생활 묘사는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몇 번이고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다 읽은 뒤엔 해설과 작가의 말까지 꼭 챙겨 읽기를 바란다. 해설을 읽으면 장류진 작가의 소설이 갖는 의미를 좀 더 넓은 관점에서 보다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고, 작가의 말을 읽으면 이 소설의 결말을 좀 더 긍정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소설을 읽고 난 후에도 코인 열차에 탑승하고 싶다는 마음은 들지 않았다. 대신 장류진 작가의 다음 작품에는 또 탑승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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