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 밸리의 역사 지식과 경험에 기반한 솔직하고 재밌는 자기 계발서
보통 마키아벨리라고 하면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것’을 떠올린다. 그의 대표작인 군주론을 읽고 나니 그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마키아 밸리는 이 책에서 군주가 되고자 하는 사람에게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조언한다. 그 조언을 읽다 보면 마키아 밸리의 관심은 오로지 자신이 지지하는 사람이 군주가 되어 그 권력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외 모든 것은 그것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관련해서 대표적인 조언 몇 개를 가져왔다.
피해를 주려거든 확실히 주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유념해야 할 것은, 사람을 다룰 때에는 그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게 다정하게 대하거나, 그것이 아니라면 아주 철저하게 짓밟아 뭉개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사소한 피해에 대해서는 쉽게 보복하려고 들지만, 엄청난 피해에 대해서는 감히 복수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피해를 주어야 한다면, 복수를 걱정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아예 확실히 주어야 합니다.
꼭 필요하다면, 악덕을 행하고 나쁜 평판에 개의치 말라
그러나 훌륭한 성품 모두를 갖추기란 불가능하고, 현실적 상황들은 그 성품들을 전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미덕의 삶을 용납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군주는 자신의 지위를 잃게 할 정도의 나쁜 평판만은 피하도록 신중해야 합니다. 또 정치적으로 위험을 초래하지 않는 악덕일지라도 가급적 피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데 만약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정치적으로 위험을 초래하지 않는 악덕은 별다른 불안을 느끼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더 나아가 그러한 악덕 없이는 지위를 유지할 수 없다면 그 악행으로 인해서 나쁜 평판이 발생하는 것도 개의치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신중하게 고려할 때, 미덕으로 보이는 어떤 일을 실행하는 것이 자신의 파멸을 초래하는 반면, 악덕으로 보이는 일을 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자신의 안전을 확보하고 국가의 번영을 가져오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받는 것보다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바로 여기서 ‘사랑을 느끼게 하는 것과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것 중에서 어느 편이 더 나은가’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군주라면 사랑도 느끼게 하는 동시에 두려움도 느끼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지만, 동시에 둘 다 느끼게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굳이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사랑을 느끼게 하는 것보다는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 훨씬 더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마키아 밸리는 군주는 자비와 신의, 정직, 휴머니즘, 신앙심 같은 것이 ‘보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갖춰야’가 아니라 ‘보여야’다. 군주가 되기 위해 그렇게 보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지 그것 자체가 목적이 되지는 않는다. 만약 실제로 그 덕목을 실천하는 바람에 군주의 자리가 위협받을 수 있다면, 실천한 것처럼 보이기만 하면 된다며 기꺼이 대중을 기만하라는 조언도 서슴지 않는다.
약속을 지키는 방법
술책이 진실을 이긴다
군주가 신의를 지키며 남을 속이지 않고 정직하게 사는 것이야말로 칭송받을 만한 일임은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험에 따르면 우리 시대에 위대한 업적을 이룬 군주들은 신의를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오히려 기만을 통해 사람들을 혼란시키는 데에 능숙했습니다. 그들은 신의를 지키는 자들을 제압하고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또한 군주는 약속을 지키지 못할 정당한 이유들을 언제나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최근 우리는 수많은 평화 협정과 약속들이 신의 없는 군주들에 의해서 파기되고, 무효화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들 중에서 여우의 기질을 가장 잘 모방한 군주들이 가장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미움받는 일은 남에게 미루고, 자비로운 일은 직접 하라
그러므로 군주는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들이 앞서 언급한 다섯 가지 성품들로 가득 차 있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군주를 대면하는 사람들에게 지극히 자비롭고 신의가 있으며 정직하고 인간적이고 신앙심이 깊어 보여야 합니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면 마키아 밸리가 왜 이와 같은 조언을 하게 되었는지 알 수 있다. 두 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첫 번째는 당시 이탈리아의 상황이다. 네이버에서 검색해서 찾은 전문가(서울교육대학교 교수, 역사저술가 함규진 님)의 말을 빌려왔다.
15세기에서 16세기에 이르는 이탈리아는 유럽의 특별한 존재였다. 독특한 영광과 독특한 굴욕이 함께 있었다.
…
북부는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지배권을 주장하다가 13세기 이후 베네치아, 밀라노, 제노아 등 여러 도시들이 할거하는 상황이 되었고, 중부는 로마 교황청의 세력이 앞서는 가운데 피렌체, 시에나 등이 분립했으며, 남부는 비잔티움, 노르만, 이슬람 등에게 계속 정복되던 끝에 나폴리 왕국의 지배하에 있었다. 이처럼 잘게 갈라진 이탈리아는 서로 대립하고 전쟁을 벌이는 일이 끊이지 않았으며, 정치체제도 군주국, 공화국, 신정정치체제 등 다양하여 “하나의 정부와 하나의 체제를 갖춘 강력한 통일 이탈리아”를 바라는 목소리가 나올 만도 했다.
특히 1494년에 프랑스가 이탈리아를 침공했을 때는 중세를 거의 졸업한 통일왕국의 위력에 이탈리아가 맥을 못 추는 모습이 만천하에 드러나, 그런 염원이 더욱 커졌다.
[네이버 지식백과] 니콜로 마키아벨리 [Niccolò Machiavelli] - 이탈리아의 통일과 번영을 꿈꾸며 새로운 정치사상을 모색한 정치사상가 (인물세계사, 함규진)
당시 국운이 흔들리던 피렌체 공화국의 외교관으로 활동하며 여러 강대국을 오갔던 마키아 밸리는 다른 많은 철학자들이 꿈꾸고 외쳐왔던 이상적인 세상과는 판이하게 다른 원리로 돌아가는 국제 정치의 현실을 목격했다. 유럽의 역사에도 해박했던 마키아 밸리는 입으로는 정의와 같은 그럴듯한 명분을 떠들어 대는 강대국의 지도자들이 어떻게 꼬투리를 잡아 다른 나라를 집어삼켰는지 그 과정을 아주 잘 파악하고 있었을 것이다.
약소국의 외교관으로 활동하며 그런 현실을 누구보다 상세하게 피부로 느꼈을 마키아 밸리는 뜬 구름 잡는 방법으로 이상을 추구하기보다는 비도덕적인 방법일지라도 당장 눈앞의 현실을 헤쳐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조국이 살기 위해서는 (자신이 보기에) 자격을 갖춘 군주가 수단을 가리지 말고 일단 군주가 되어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해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개개인의 생존을 뛰어넘어(사실 마키아 밸리가 구성원 개개인의 생존에 관심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탈리아라는 국가의 생존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그런 관점에서 다른 모든 가치보다 군주와 군주의 권력 유지가 최우선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자신과 이탈리아의 살 길이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는 마키아 밸리가 깨달은 인간 군상의 모습이다. 마키아 밸리는 기본적으로 성악설의 입장이었던 것 같다. 사람은 근본적으로 악하며 현명하지 못해서, 근본을 성찰해 이치를 깨닫기보다는 현상을 관찰하는 데 그치고, 그렇게 관찰한 현상마저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한다는 게 마키아 밸리의 생각이었다.
다수의 사람들은 겉모양으로 판단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손으로 만져보고 판단하기보다는 눈으로 보고 판단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모두가 군주를 바라볼 수 있지만, 직접 만져볼 수 있는 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대다수는 군주가 밖으로 드러내는 외양만 볼 수 있고, 군주가 진실로 어떤 사람인지를 직접 경험해볼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소수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소수는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군주를 모시는 대다수의 견해에 감히 반대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모든 인간의 행동에 대해서, 특히 직접 경험해볼 수 없는 군주의 행동에 대해서는 결과에만 주목합니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보통 일의 겉모습과 결과에 현혹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는 일반적인 사람들이 대다수이며, 그러한 다수가 군주에 의지해 하나가 될 때 소수는 선택의 여지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름을 굳이 밝히지는 않겠지만(아라곤 왕국의 페르난도 2세), 우리 시대의 어떤 한 군주는 실상 평화와 신의에 대해 적대적이면서도 입으로는 항상 이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그가 평화와 신의를 말 그대로 실천에 옮겼다면 그는 자신의 명성이나 국가를 여러 번 잃었을 것입니다.
인간 군상을 이와 같은 관점으로 파악한 마키아 밸리는 다음과 같이 결론 내렸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실제 그렇게 살고 있는가?
이제 군주가 자신의 백성 및 동맹에게 어떻게 행동해야 마땅한지를 고찰하겠습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 주제를 논해왔습니다만, 특히 이 주제에 대해서는 그들이 제안한 원칙과 제가 말하려는 바가 상당히 다르기 때문에, 혹시 제가 주제넘다고 생각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운 마음이 앞섭니다.
그러나 저는 이 문제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쓰고자 하기 때문에, 이론이나 사변보다는 실제적 진실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제까지의 많은 사람들은 현실에서 결코 한 번도 확인되지 않은, 알려지거나 목격된 적조차 없는 공화국이나 군주국을 상상만으로 제시해왔기 때문입니다.
(<국가>에서 이상국가(철인통치)를 제시한 플라톤 같은 고대 저술가들, 지배자의 이상과 의무를 강조하는 당대(르네상스 시대) 인문주의자들을 지칭한다.)
그러나 ‘인간이 실제 어떻게 사는가’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인간사에서 보통 행해지는 것을 행하지 않고 마땅히 행해야 할 것을 행하겠다고 고집하는 군주는 권력을 잃고 말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나 선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고집하는 사람은 선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곧 몰락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군주가 자신을 보존하고자 한다면 상황에 따라 선하지 않게 행동하는 법을 배워서, 필요에 따라 그것을 사용하거나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두 가지 생각을 바탕으로 마키아 밸리는 언뜻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말로 단순하게 요약하기 쉬운, 하지만 그렇게 요약하면 안 되는 생각을 쏟아냈다.
이와 같은 일방적인 비난을 통하여 마키아벨리는 정치가는 그의 정치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어떠한 수단을 사용하여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인 것처럼 일반인에게 인식되었고, 그러한 생각이 마키아벨리즘을 낳게 되었다. 그리하여 역사상의 모든 음흉하고 비열한 행위는 모두가 마키아벨리즘의 실천이라고 간주되었으며, 마키아벨리 자신이 마치 무슨 음모가인 것처럼 생각되기도 하였다. 이는 어떤 인간의 사상이 그 인간의 참다운 의도를 떠나서 세상 사람들에게 단편적으로만 이해되고 비난받는 것의 본보기라고 할 수 있다. 마키아벨리의 사상이 그의 사후에 이와 같은 운명에 처해진 것을 빗대어서 “마키아벨리의 인생은 그의 사후에 새로 시작되었다”는 말이 생겨나기도 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마키아벨리즘 [Machiavellism] (두산백과)
1532년에 출간되었으니 처세와 자기 계발에 관해서는 그야말로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책이다. 꾸준한 공부와 풍부한 현장 경험에 기반해 깊이 있게 성찰해서 자신의 명운을 걸고 군주에게 바치기 위해 작성한 이 책은, 비록 목적은 군주를 위해서였지만 인간 사회에서 생존하고 싶은 모든 이에게 도움이 되는 조언으로 가득하다.
평화로운 시기에도 나태해서는 안 된다
군주는 지적인 훈련을 위해서 역사서를 읽어야 합니다. 특히 위인들의 행적을 연구하고, 위인들이 전쟁을 수행할 때 어떻게 처신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실패를 피하고 성공을 본받기 위해 그들이 거둔 승리와 패배의 원인을 면밀히 살펴서 모방해야 합니다.
오히려 근면한 활동을 통해서 부지런히 자신의 역량을 강화함으로써 역경의 시기에 처할 때를 대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운명이 변하더라도 그는 그 변화에 맞설 준비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운명의 범람은 통제할 수 있다.
저는 운명의 여신을 격렬하게 넘실대는 험난한 강에 비유합니다. 모든 것은 그 험난한 물결 앞에서 도망가버리고, 그 난폭함에 굴복해 어떤 방법으로도 맞서지 못합니다.
그러나 강물의 특성이 그러해도, 사람들은 평온한 시기에 제방과 둑을 쌓아 예방 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이로써 훗날 강물이 불어 넘쳐도 수로를 따라 물줄기를 흐르게 해서 제방을 넘어오지 못하게 하거나, 물이 제방을 넘어 통제할 수 없어져도 피해가 덜 가도록 할 수는 있습니다.
운명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운명은 자신에게 맞서 싸우기 위해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은 곳에서 그 위력을 드러내며, 운명을 막기 위한 제방이나 둑이 마련되지 않은 곳에 집중해서 덮칩니다.
시대의 흐름을 외면하면 몰락한다
또한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자신의 행동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성공하고 반대로 자신의 행동을 시대에 맞추어 조화롭게 이끌지 못한 사람은 실패합니다. 인간은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영광과 부)에 접근하는 방식이 상이합니다. 신중하게 접근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공격적으로 접근하는 사람이 있고, 힘으로 난폭하게 얻으려는 사람이 있는 반면 교묘하게 얻는 사람도 있으며,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사람과 그 반대로 성급하게 행동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각각의 개인들은 다양한 행동방식으로 자신의 목표를 이룰 수 있습니다.
신중한 두 사람 중에서도 한 사람은 목표를 달성하지만 다른 사람은 실패하기도 합니다. 또한 다른 성향을 가져서 한 사람은 신중하게, 다른 한 사람은 성급하게 행동했지만 두 사람 모두 성공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상이한 모든 결과들은 그들이 자신이 처해 있는 시대의 흐름에 맞게 행동했는가에 따라 달라진 것입니다.
요컨대, 전혀 다르게 행동하는 두 사람이 똑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똑같은 방식으로 행동하는 두 사람이 한 사람은 성공하고 다른 한 사람은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이로 인해서 인간사에서 흥망성쇠가 거듭되는 것입니다. 누군가 신중하고 참을성 있게 행동했는데 시대와 상황이 그가 행동했던 방법에 적합한 방향으로 변화하면 그는 성공합니다. 하지만 시대와 상황이 다시 변했는데 그가 자신의 행동 방식을 변화시키지 않으면 실패합니다.
마키아 밸리가 살던 당시와 비교하면 세상은 그야말로 천지개벽했지만, 마키아 밸리가 꿰뚫어 봤던 인간의 본성은 당시나 지금이나 별로 변한 게 없다. 현대 사회 역시 마키아 밸리가 예리하게 파악했던 바로 그 본성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된 사회이기 때문에 이 책은 아직도 유효하다.
오랜만에 재밌고 유익한 자기 계발서를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