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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nugeun Oct 06. 2021

2019, 2020, 2021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퀴어와 페미니즘

 

 지난 3년간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실린 총 20편의 단편을 읽으며 머릿속에 새겨진 키워드는 퀴어와 페미니즘이다. 2019년에는 퀴어 주인공이 등장한 박상영 작가의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이 대상이었고, 2020년에는 페미니즘이 주제였던 강화길 작가의 ‘음복’이 대상이었으며, 2021년에는 페미니즘을 주제로 막판에 퀴어 이야기가 살짝 첨가된 전하영 작가의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가 대상이었다. 이 외에도 2019년 수상작인 김봉곤 작가의 ‘데이 포 나이트’, 2020년 수상작인 장희원 작가의 ‘우리의 환대’, 2021년 수상작인 김멜라 작가의 ‘나뭇잎이 마르고’, 김지연 작가의 ‘사랑하는 일’ 등이 이런 주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좋았던 단편들

 2019년 수상작들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백수린 작가의 시간의 궤적이다. 비단 2019년뿐 아니라 지난 3년간 읽은 모든 단편 중에서 가장 내 취향이었던 작품이다. 아름답고 서정적인 배경을 현실이 관통하는 이야기였는데 등장인물에 깊이 이입하며 그들의 고민과 아픔에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었다.


 같은 해 수상작인 정영수 작가의 ‘우리들’도 인상 깊었다. 작중 화자가 ‘어른’이라고 생각했던 커플의 반전이 밝혀지며 사랑과 글쓰기의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이 이야기가 화자 자신의 사랑과 글쓰기의 이야기와 결합되면서 ‘끊임없이 다시 쓰기의 과정만 거칠 뿐 도무지 완성되지 않’는 글쓰기가 되어 버리는 이야기다. 화자는 결국 완성되지 못하고 파국을 맞이한 어른의 사랑을 지켜보며 계속해서 과거에 매달리며 이를 재해석하고 재창조하려고 시도한다. 그런 화자가 ‘어쩌면 내가 영원히 혼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빠지면서 참을 수 없는 두려움을 마주하며 끝나는 결말이 인상적이었다. 나도 그런 적이 있으니까.


 2021년 수상작 서이제 작가의 ‘0%를 향하여’도 흥미로웠다. 소설을 읽으면서 동네 삼겹살 집에서 독립영화 빠꼼이를 만나 고기를 굽고 술잔을 나누며 우리나라 독립영화의 현실에 대해 끝없이 늘어지는 하소연을 듣는 기분이 들었다. 빛. 어둠. 빛. 어둠. 미래가 없고, 미래가 없다고 말하는 그에게 난 무슨 말을 해 줄 수 있을까. 조용히 고기를 굽고 잔에 술을 따라주며 한없이 듣고 싶은 이야기였다.


 같은 해 수상작인 박서련 작가의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은 내용과 문체가 상당히 독특한 작품이었다. 고구마를 입에 잔뜩 넣은 것 같은 답답하고 분한 승리로 끝나는 이 소설은 ‘NGUM’이라는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들을 위해, 철저하게 힘의 논리에 바탕을 둔 순수하게 악한 초등학생들의 세계에 뛰어든 엄마의 너무도 현실적인 결말을 읽고 난 뒤, 곧 학부모가 되는 입장에서 조만간 닥쳐 올 현실이 두려워졌다. 이제 1년도 남지 않았는데…


 그 외에 2019년 대상작 ‘우럭 한 점, 우주의 맛’과 2020년 대상작 ‘음복’도 기억에 남는다.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은 주인공의 스피디한 감정 변화 묘사와 개인의 상처를 찐득하고 유쾌하게 돌아보는 방식이 아주 인상적이었던 소설이다. ‘음복’은 반전의 재미가 넘치는 소설이었다. 오은교 평론가가 해설 제목을 ‘여성주의 가족 스릴러’이라고 정했는데 정말 딱이라고 생각한다. 모르는 게 힘이 되어 버리는 상황이 많은 젠더 문제를 잘 짚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해하기 어려웠던 단편들

 ‘데이 포 나이트’와 ‘사랑하는 일’을 읽고 나서는 이런 소설이 수상했다는 사실에 놀라면서, 내 사유 세계가 젊은작가상 수상작을 읽기에는 낡고 늙은 것인지 돌아보게 됐다. 

 

 ‘데이 포 나이트’는 대학에 진학해 영화 관련 공부를 하던 한 청년이 스스로가 게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인정해 나가는 과정에서 우연히 가학적인 성관계를 즐기는 게이 선배를 만나 큰 상처를 받고 변화하는 이야기다. 이 소설 해설에서 평론가는 ‘나는 한 인물의 성장담을 서술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이 작품이 갖는 특유의 호소력에 주목했’다고 평했는데 도대체 이 소설의 어느 부분에서 ‘성장’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적나라하게 펼쳐지는 가학적인 성애 묘사만 기억에 남을 뿐이었다.

 

 ‘사랑하는 일’은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소설이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피해의식에 빠져 세상 모든 것을 혐오하는 듯한 태도로 모든 것을 비꼬아서 바라보며 ‘음란한 헤테로’나 ‘한남’ 같은 혐오 표현을 입에 달고 사는 공격적인 레즈비언이다. 등 따습고 배부르게 자라왔고 현재도 그렇게 살고 있는 주인공은 아직 아무 능력도 없으면서 내 집은 마련하고 싶어서 경제적으로 성공한 아버지에게 집을 물려받고 싶어 한다. 그렇다고 아버지에게 아쉬운 소리는 하기 싫어서 기회를 엿보고 있던 주인공에게 딸이 그리웠던 아버지가 집 상속을 미끼로 같이 밥 먹으며 얼굴이나 한 번 보자고 제안한다. 그 자리에 자신의 연인과 함께 나간 주인공이 해프닝을 겪는 게 이 소설의 주요 사건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자신을 제외한 다른 모든 것들은 부조리와 불공평과 몰이해의 산물이라고 여기는 이가 자신의 아버지의 약점을 공격해 눈물을 쏟게 만드는 이 이야기에서 대체 작가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강약약강의 대표 주자 같은 이 주인공은 무엇을 표상하고 있는 걸까.


 이 두 소설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 봤다. 네이트 판 같은 곳에 올라오는 자극적인 고민 상담 글을 굉장히 빼어난 작문 실력으로 다듬은 글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보다 문학에 훨씬 조예가 깊은 사람들이 쓰고, 평가하고, 수상작으로 선정한, 사회에서 인정받은 작품들인데 이를 이해 못한다면 내가 어떤 흐름을 놓쳤거나 감각이 무뎌지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세상에는 이런 삶도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게 목적이었을까. 그런 삶을 알려서 얻는 게 무엇일까. 무언가를 얻어야만 한다는 내 생각이 잘못일 수도 있다. 잘 모르겠다.


내년에도 꼭

 각 단편들이 내 취향에 맞고 안 맞고를 떠나서, 이 책을 사면 신선하고 독특하면서 문장력이 보장되는 단편 소설 읽는 재미 하나는 확실히 보장받을 수 있다.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꾸준히 출간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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