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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nugeun Dec 30. 2021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감상문

재미없음

재미없었다.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aver?code=208077

 사실 마블 영화는 애초에 유치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많은 능력자들이 거미에 물린다거나 방사능에 노출된다거나 원자력 연구소 실험장에 떨어진다거나 전기뱀장어에게 물리는 등의 비논리적이고 상식 밖의 이유로 능력을 얻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차라리 아직 밝혀지지 않은 외계에서 온 종족이나 신이라는 영웅이 더 설득력 있게 느껴지기도 한다. 확률은 낮지만 어쨌든 그곳은 아직까지 진짜 미지의 영역이니깐.


 거기다 그런 능력들을 체계적으로 만든 게 아니라서 종종 스스로 구축한 세계관 안에서조차 능력들 간의 균형이 잘 맞지 않는다. 그런 그들을 한 영화에 등장시켜 선악 구도로 대립시킨 뒤 이야기를 진행하거나 분량을 뽑거나 선을 대변하는 세력이 승리하게 만들기 위해 “아니 저기서 왜 저런 행동을 하지?”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뻔히 보이는 논리적 허점을 드러내기도 한다. 


 영웅과 악당의 균형뿐 아니라 영웅들끼리의 균형도 잘 맞지 않는다. 그래서 인피니티 워를 볼 때는 이런 불만도 있었다. 아니 왜 아이언맨은 자신의 슈트를 블랙위도우와 호크아이를 비롯해 자기보다 약한 다른 영웅들 혹은 사람들에게 입히지 않는 것인가. 전편에서 이미 대량 생산이 가능한 설정으로 나왔기 때문에 슈트를 좀 많이 만들어서 아이언맨 슈트를 1,000명 아니 100명에게만 입혔어도 아주 손쉽게 이겼을 텐데. 

 

 아래 이미지에서 저 뒤에 배경으로 나온 사람들의 10분의 1만 아이언맨 슈트를 입고 있었어도 엔드게임은 나올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타노스는 손가락을 튕겨 우주 생명체의 절반을 저승으로 보내기 전에 자기가 먼저 저승으로 갔겠지. 


 그럼에도 그동안 마블 영화를 즐겼던 이유는 그런 유치함을 캐릭터 본연의 매력으로 절묘하게 잘 숨겨왔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자아도취형 천재이자 군수업체 대표인 아이언맨이 있다. 아이언맨은 우연히 뭐에 물리거나 뭐에 노출돼서가 아니라 군수업체 대표로 일을 하다가 테러 단체의 습격을 받고 동굴에 갇혀 강철 슈트를 만들게 된다는 설정부터 (그나마) 현실적이고 매력적이다. 

 그리고 그 설정의 개연성을 시리즈의 마지막까지 잘 살려 나간다(앞서 말했듯 슈트를 대량 보급하지 않은 것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거기에 어른의 멋을 물씬 풍기는 로다쥬의 외모와 언행, 패션 감각이 더해져 그동안 내가 마블 영화를 볼 때 태생적 유치함을 느끼지 못하도록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해왔다.

이게 바로 어른의 멋


 아이언맨과는 정반대의 성격이지만 앤트맨 캐릭터도 좋아한다. 

센스 넘치는 앤트맨 포스터


 전형적인 딸바보 캐릭터로 딸과 잘 살아보겠다고 설치는 앤트맨과 그런 앤트맨을 도와주는 좀 모자란 친구들은 현실감 있는 웃음을 선사한다. 캐릭터를 일관성 있게 잘 설정해 놓고 유지하기 때문에 그들의 언행에 의문이 생기지 않는다. 덕분에 스토리는 개연성을 잃지 않고 잘 흘러간다.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 친구 1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 친구 1, 2, 3


몰입을 방해하는 스토리

 그에 반해 이번 스파이더맨은 주인공이 나이 어린 학생이란 점을 감안하더라도 너무 이해하기 힘들었다. 자기 주변만 챙기며 모든 사건에 즉흥적이고 감정적으로 대처하면서 세상의 구원자인 척하는 스파이더맨을 계속 보고 있기가 힘들었다. 캐릭터에 공감하지 못하니 자연히 영화에 몰입할 수 없었다. 배우들의 연기나 CG는 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훌륭했다. 스토리가 문제였다. 






스포일러 주의








 몰입과 감정이입을 방해하는 스토리가 몇 개 떠오른다. 


 첫 번째는 MIT에 합격하지 못한 친구들의 모습을 담아내는 장면이다. 세계에서 가장 경쟁률이 치열한 학교에 지원했다가 떨어졌다고 세상 다 산 표정으로 낙담하는 모습에 누가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까. 세상은 넓고 학교는 많다. 안 되면 다른 학교에 지원하면 된다. 그래도 안 되면 내년에 한 번 더 도전하면 된다. 한 번에 합격하지 못해서 재수나 삼수는 물론 그 이상 도전하는 사람이 수두룩한 세상이다. 그뿐이랴. 이런저런 사정으로 아예 대학에 갈 생각조차 못하고 바로 취업 전선에 뛰어든 사람들은 더 많을 것이다. 물론 목표한 바를 이루지 못하면 누구나 슬프게 마련이니 잠깐 그들의 감정을 담아낼 수도 있다. 문제는 이 사건이 앞으로 벌어질 모든 일에 시발점이 된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 그 유명한 빌런들이 이 세상에 소환돼서 자동차 수십 대를 박살내고 다리를 망가뜨리며 대규모 정전 사태를 발생시키고 건물과 랜드마크를 박살 낸 것도 모자라 사람까지 죽이게 된 이유가 스파이더맨의 친구 두 명이 MIT에 떨어졌기 때문이라니! 


 두 번째는 낙방한 친구들을 위해 스파이더맨이 MIT 입학사정관을 만나러 가는 장면이다. 스파이더맨이 공항으로 향하던 입학사정관을 찾아갔을 때 갑자기 옥토퍼스가 나타나며 입학사정관이 위험에 처한다. 옥토퍼스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분명 스파이더맨의 제안에 회의적이었던 입학사정관은 스파이더맨의 도움으로 위기에서 탈출하고나니 갑자기 자기 목숨을 구해줬다며 스파이더맨을 영웅으로 치켜세우고는 입학을 다시 고려해달라는 스파이더맨의 요청을 적극적으로 들어준다. 지극히 사적인 이유로 입학 기회를 한 번 더 제공해 준 것이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도 입학 비리로 굉장히 시끄러웠던 것으로 아는데 이런 장면이 설득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걸까. 아니다. 어쩌면 내 생각이 짧은 것일 수도 있다. 오히려 그런 현실을 꼬집기 위해 이런 장면을 넣은 것일 수도 있다. 작가는 입학 비리 문제를 널리 알리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파이더맨을 이용한 것이다! 내가 생각이 짧았네!

입학사정관과 옥토퍼스가 만나기 직전, 지가 만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스파이더맨

 세 번째는 스파이더맨과 닥터 스트레인지가 만나는 장면이다. 애초에 미국 유수의 대학에서 수학 능력이 아니라 스파이더맨과의 관계를 문제 삼아 입학을 불허했다는 것도 논리적으로 납득하기 힘들었지만, 자기가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불합격했다고 닥터 스트레인지를 찾아가 전 세계 사람들의 기억을 지워달라고 요청하는 스파이더맨의 사고방식은 더 납득하기 힘들었다. 사회 정의 같은 건 내팽개치고 내 능력으로 내 주변 사람들만 행복하게 만들면 된다는 마음가짐으로 문제를 자꾸 키워서 막으려고 하는 걸 보고 있자니 한숨이 나왔다. 이럴 거면 애초에 핸콕같이 대놓고 민폐 영웅을 그리던가. 

지인이 부탁하자 세계의 위험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바로 위험한 주문을 외는 닥터 스트레인지

 그런데 백번 양보해서 아직 어린 스파이더맨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고 치자. 어리고 철없는 영웅이라는 콘셉트이니까. 하지만 닥터 스트레인지가 그런 스파이더맨의 요청을 그냥 아무 고민 없이 받아주는 장면은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이기적인 천재 외과 의사로 이름을 날리다가 마법의 힘까지 얻어 미래를 몇 백만 가지의 경우로 나눠 살펴볼 수 있게 된 냉정한 지성의 아이콘이다. 마법사가 된 후에는 지구의 안전에 항상 신경 쓰는 덕분에 과거에는 로키가 지구로 접근하는 걸 직접 보지 않고도 귀신 같이 알아차리고 막아내기도 했다. 그런 사람이 전 세계 사람들의 기억을 지워달라는 스파이더맨의 요구를 아무 고민 없이 들어줄뿐더러, 그 과정에서 스파이더맨의 요구 사항을 하나씩 다 반영하다가 주문을 실패해서 위험을 초래한다는 전개는 좀 너무하지 않았나 싶다. 세상을 구하기 위해 기꺼이 아이언맨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미래를 선택했던 닥터 스트레인지가 이런 어처구니없는 선택으로 지구에 위험을 초래한다니. 


 이 영화에서는 오직 스파이더맨을 돋보이게 만들기 위해 닥터 스트레인지라는 캐릭터를 처참히 박살 냈다. 게다가 능력의 균형까지 무너뜨렸다. 악당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두고 스파이더맨과 닥터 스트레인지는 갈등을 빚다가 물리적으로 충돌하는데 이때 스파이더맨이 닥터 스트레인지를 이겨버린다. 그동안 보여준 능력으로 생각할 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스파이더맨에게는 유체이탈도 통하지 않았다

 이번 편에서 이 두 민폐 캐릭터의 조합은 수많은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린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스파이더맨의 참견이든 뭐든 결과적으로는 본인의 주문 실수로 다른 세상의 빌런을 (지금 세상의 빌런 처리하는 것도 힘든데!) 소환해 버린다. 앞서 입학사정관이 위험에 처한 것도 닥터 스트레인지의 주문이 잘못돼 다른 세상에 있던 빌런 옥토퍼스를 소환했기 때문이었다. 결과만 놓고 보면 스파이더맨은 친구들이 불합격했다고 난리를 치다가 어벤저스 동료와 같이 사고를 쳐서 수많은 사람들을 위험을 빠지게 만들어 놓고는 그 위험을 해결하는 것으로 영웅 대접을 받으며 다른 사람들에겐 돌아가지 않은 또 한 번의 입학 기회를 얻어낸 것이다. 


 스파이더맨은 그렇게 소환된 빌런을 치료해 보겠다고 수많은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린다. 스파이더맨(과 그의 이모 메이) 스스로는 그것이 선의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치기 어린 감정에서 비롯된 섣부른 판단으로 이미 다른 세상에서 죽음을 맞이했던 사람들의 운명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거대한 세계의 운명을 바꿔버린다. 이 영화에서 운명을 바꾼 다른 세상의 모습은 다루지 않는다. 이 영화의 꼬락서니를 보면 아마 제대로 다룰 능력도 안 됐을 것이기 때문에 차라리 다루지 않은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설정의 정점은 자기가 친 사고를 수습하는 거면서 마치 세계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 마냥 비장한 표정으로 모두의 기억을 지워달라는 스파이더맨과 역시 비장한 표정으로 그런 스파이더맨의 요구를 들어주는 닥터 스트레인지의 모습이 그려지는 장면이다. 누가 보면 둘이 대단한 결심을 한 것으로 알겠지만 실상 그들은 그저 자기들이 만든 문제를 자기들이 해결하는 것뿐이다. 내가 엎지른 물을 내가 닦는 건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감정 이입을 어디에 하느냐

 영웅 이야기를 만들 때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관객이 영웅이 아닌 엑스트라에 감정을 이입하게 만들면 안 된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상 우리 모두는 영웅 세계관에서 따져보면 아무런 능력 없이 영웅의 도움을 바라야 하는 일반 시민이다. 화면 저 구석에 자리 잡은, 제대로 보이지도 않아 비명 소리만 들리는 인간 형체들이 실제로는 바로 우리들의 위치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칫 영웅이 아니라 시민에 감정을 이입하게 만들어 버리면 그 순간 영화의 재미는 증발해 버린다. 무력하게 영웅의 손길을 기다리거나 멍청하게 언론에 선동돼 영웅을 욕하는 것으로 그려지는 시민에 감정을 이입하면 그 영화가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그렇게 되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우연히 얻은 능력으로 거미줄 타고 날아다니며 다리와 건물을 무너뜨리고 입학 비리를 저지르며 지 친구와 애인만 챙기는 힘센 멍청이가 나 대신 학교에 합격하는 것은 아닐까, 내 재산을 망가뜨리지는 않을까, 실수로 날 죽여버리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면서 영화를 보게 된다. 그 지경이 되면 오히려 이 분이 영웅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거봐. 내 말이 맞지?


 이번 영화는 스파이더맨과 닥터 스트레인지라는 두 캐릭터를 망쳐 놓으면서 재미도 같이 망쳐버렸다. 


 우연히 자기와 연이 닿은 악당들을 구하겠다고 전 도시를 박살 낼 수도 있는 악당을 풀어주기 위해 닥터 스트레인지와 싸우던 스파이더맨의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 이제 식상해진 너드형 영웅을 보여주겠다고 거미줄을 이리저리 뿌려대며 쉴 새 없이 수학 공식을 떠들어 댈 때부터 손발이 오그라들기 시작했는데 마지막에 마법을 이기는 건 과학이라고 자신감 넘치게 말하는 장면에서는 오랜만에 영화를 보면서 눈을 다른 데로 돌릴 수밖에 없었다. 


노 웨이 홈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이 자기 주변 사람들만 챙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게 무슨 영웅인가. 그냥 학연 지연 혈연 매니아지. 그렇게 관객들이 스파이더맨에게서 정을 떼게 하는 것이 목표였다면 아주 성공적이었다. 그런 스파이더맨이라면 진정 노 웨이 홈이길 바란다. 제발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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