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실 배변 사건

by 남영은

지하실 배변 사건


남영은


나는 교직생활 34년 가운데 학생부장 업무를 8년간 수행했다. 이는 보직교사 19년 중 절반에 가까운 기간이니 꽤 많은 햇수라 하겠다.

예나 지금이나 생활지도를 주 업무로 하는 학생부는 기피 부서 제1호로, 교사들 사이에서는 3D업무의 하나로 통한다. 학생들을 지도하고 돕는 일은 시공을 넘어야 하는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모든 학생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할 수 있도록 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학생인권조례’가 2010년을 기점으로 발표되었다. 이는 참으로 마땅한 내용이었다. 학교 안팎에서는, 학생 존중이라는 기본 권리를 외치는 목소리에 힘이 실렸고 이를 실행으로 옮기는 여러 가지 기틀이 마련되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반대급부의 문제점이 속출하였으니, 그 한 예로, 교사들의 교육 행위와 의지는 상상 이상으로 위축됨과 동시에 설 자리가 심히 흔들리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학생부장 업무를 담당하는 동안 이 일을 필요 이상으로 즐겼다.

내게 있어 교직이 천직이라면 학생부 업무는 한 수 위인 성직인 듯했다. 학생 상담이나 교화 업무에 보람을 얻었고 사안 처리도 기꺼이 감당하였다. 지금의 문화와는 조금 다르게 정 많고 붙임성 있던 당시의 학생들은 나를 무서워하면서도 믿어주었고, 주먹질을 하거나 남의 물건에 손대는 일 등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적어도 내가 아는 한에서는 그랬다.


그해의 졸업식도 학생과 학부모와 교사들의 보람과 축하 속에서 치러졌다.

식이 끝난 후 교무실로 돌아와 커피를 마시고 있던 중이었다. 한 남학생과 학부모가 나를 찾아왔다. 그였다. 나는 하마터면 못 알아볼 뻔했다. 한 달 후면 고등학생이 되는 그는 이제 훤칠한 청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와, 참 잘 크고 있네. 졸업하면서 인사하려고 일부러 찾아오다니 참 고맙구나.”

나는 손을 꼭 잡아주었다. 그는 아직도 멋쩍다는 표정으로 그저 빙그레 웃기만 했고 그의 부모님은 고마웠다며 연거푸 인사를 했다.


2000학년도 2학기의 일이다. 나는 그해에도 중학교 학생부장 보직을 맡았다.

어느 날이었다. 3층 학생부 교무실로, 행정실의 주무관님이 벌건 얼굴로 씩씩거리며 올라오시는 것이었다. 본관 건물의 발길 뜸한 지하실 한구석에 언젠가부터 배변물이 놓여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처음 서너 번 정도는 혼자 말없이 치웠다는 것이다.

학교란 워낙 인구도 많고 별의별 사건들이 일어날 수 있는 곳이니, 학생 중 짓궂은 누군가가 선생님들을 골탕 먹이려고 벌인 일이라는 단순한 생각이 들었다.

‘참으로 웃기는 놈이네, 참으로 고약한 놈이네…….’

나는 어이없는 이 상황에서 열이 올랐으나 한편으론 키득키득 웃음도 나왔다.

그런데 이런 일은, 발생 순간의 현장을 목격하지 않고서는 해결하기 어려운 사안이었다. 허나 현장 목격이 어디 쉬운 일인가? 그리고 그놈인들 가슴 죄는 이 위험한 행동을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겠나? 그러다 그만두지 않겠나?

일단은 방송을 통해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으니 지하 계단 쪽은 출입하지 말라는 내용을 학생들에게 강조하여 주의시켰고, 몇몇 학생부 교사들과만 이 배변 사건을 공유했다. 그런데, 아, 미치겠다. 이 일은 이후로도 두세 번 거푸 일어났고. 귀신이 곡을 할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쯤해선 적극적인 대응책이 필요했다. 관리자와 상의한 결과, 우선 빠른 시일 내에 계단 입구에 출입 통제문을 설치하기로 했다. 마침 진작부터 필요한 시설물이었기 때문에 서두를 수 있었다.

그런데 문을 설치하기로 계획한 바로 전날이었다.

인터폰이 울렸다. 사안이 또 발생했다는 것이다. 지하실에서 일을 하다가 자리를 비운 잠깐 사이를 틈타 배변물이 떡 하니 또 놓여 있다는 것이다. 마침 나는 공강이었기 때문에 현장으로 급히 뛰어 내려갔다.

아, 과연 그 과감한 결과물은 지하실 한 구석을 당당히 자리 잡고 앉아 있었다. 남학생의 것이었다. 대소변의 위치가 그걸 말해주었다. 그런데 바로 그 옆에, 처리 후 생각 없이 던져놓은 종이 한 장이 눈에 띄는 것이 아닌가. 여러 번 접힌 그것은 영문과 한글이 번갈아 적힌 공책을 급히 찢어 사용한 것임이 분명했다. 그야말로 ‘밑 닦은 종이’였다. 나는 그 증거물을 조심조심 펴서 투명비닐봉지에 넣었다. 면장갑을 낀 나의 손에서부터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는 행정실로 올라가 글씨 부분을 복사했다. 비닐에 넣었다고는 해도 숨기고 싶은 물건이라 민망하여 몰래몰래 가리면서.


교무실로 올라와 영어선생님들을 만났다. 적힌 문장으로 보아 1학년 교과 내용이라고 했다. 마침 교과서 한 단원의 본문을 공책에 적고 해석하도록 한 선생님이 계셨고, 이로써 범인은 해당 선생님이 가르치는 1학년 네 개 학급 안에 있는 남학생으로 축소되었다.

수행평가를 한다는 군색한 변명을 하며 급히 걷어다 준 영어공책이 내 책상에 높이 쌓였다. 200여 권의 공책을 일일이 펴, 뜯기다 남은 종이쪽이 붙어있는지 확인하고 복사본의 글씨체와 비교하기 시작했다. 지금 와서 하는 고백이지만, 그 작업을 하는 몇 시간 내내 나는 땀이 흐르고 눈도 아팠지만, 사실 한편으로는 가슴도 설레었다. 이놈아, 선생님들을 놀려? 이번에는 내가 너를 놀라게 해 주리라. 곧!

아, 그런데 이게 웬일이란 말인가. 어느 공책 하나를 펴는 순간, 나의 손에서는 전율이 튀어 오르는 것이었다. 바로 이것이었다. 종이의 뜯겨진 줄 모양은 복사본에 드러난 형태와 똑 같았고 해석 부분의 한글 글씨체와 본문의 영어 글씨체도 영락없었다.

몇 달간 계속되었던 얄궂은 수수께끼가 드디어 해결되면서 승전고를 울리는 순간이었다.


나는 해당학생의 담임선생님을 만나 이 사실을 조심스레 말씀드렸다. 그리고 방과 후에 그를 조용히 보내 주시도록 했다. 담임선생님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공책의 주인공은 말썽을 부리기는커녕 온순하고 성실하고 더구나 차분하기까지 한 학생이라는 것이다.

나는 상담 장소에 먼저 가서 그를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렸다. 내가 더 긴장되는 시간이었다. 드디어 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그리고 곧이어 고개를 푹 떨어뜨린 채 죽을 모양새로 쭈뼛쭈뼛 들어오는 남학생이 있었다. 꼬맹이였다. 아, 이 녀석이 이렇게 허다하게 장난을 치다니, 수많은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무려 일곱 번씩이나 행패를 부리다니.

그런데 담임선생님의 말대로 이런 저급한 장난을 칠 인물이 아닌 듯했다. 마주앉은 그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무슨 사연이 있음을 직감했다. 잔뜩 겁먹은 얼굴과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간신히 털어놓은 전말은 이러했다.


초등학교 6학년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갑자기 배가 아파 쉬는 시간에 학교 화장실에서 다급히 용변을 볼 때였다. 그런데 같은 학년의 힘센 남자아이 세 명이 화장실 옆 칸에 숨어 있다가 청소용 바가지에 물을 가득 담아 머리 위로 마구 쏟아 부었다는 것이다. 그는 도망은커녕 일어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이 끔찍한 사건을 순식간에 고스란히 당하고야 만 것이다.

아무에게도 이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수치스럽고 무서웠다. 한동안 꿈에서도 그들이 나타나 괴롭혔다. 학교 화장실 가까이에만 가도 식은땀이 흘렀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시간이 지나면서 집밖의 화장실은 아예 사용조차 못할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배를 움켜쥐고 엉덩이에 힘도 주며 참거나 점심시간에 급히 집으로 달려가 해결했다. 그러나 그럴 수 없는 경우엔 다른 방도가 없었다. 결국 아무도 없는 캄캄한 지하실로 내리달려야만 했던 것이다.


힘든 고백이 끝났다.

그의 작은 몸은 서러움과 외로움으로 흐느끼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떨리는 작은 손을 잡아주었다. 아, 미안하구나. 우리가 정말 미안하구나. 너를 좀 더 일찍 찾아낼 걸, 좀 더 일찍 도와줄 걸. 학교생활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두려웠을까? 배설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욕구를 해결할 자유조차 가질 수 없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해석하고 이해할 수 있겠는가?

다음날 그의 어머니가 학교에 오셨다. 면담 후 곧장 아들을 데리고 전문의를 찾아갔고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약 복용과 병행하여 몇 차례의 상담을 진행하면 상황이 개선될 것이라는 진단 내용을 전했다. 고마운 일이었다.

이로써 몇 달 동안이나 학교를 뒤숭숭하게 만들었던 사건은 다행스러운 결말로 일단락되었다. 그리고 이 비밀스런 사안을 공유했던 몇몇 교사들은 안도의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그렇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배변 장소가 학교 지하실이었던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밑 닦은 종이가 영어공책이었던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그리고 그를 찾아내어 도울 수 있었던 것이 또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나는 훌쩍 커버린 그의 손을 힘주어 다시 잡아 주었다. 그리고 부모님이 안겨준 졸업 축하 꽃다발을 들고 벙글대며 교문을 나서는 그를 교무실 유리창 너머로 오랫동안 지켜보며 서 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 내게 학생생활지도 업무라는 것이 얼마나 보람된 일이냐. 얼마나 고마운 일이냐.



- 수필집 <우리의 사랑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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