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 2장. 새해 첫날, 우리는 '영혼' 대신 '오뎅'을 팔았다
“지수야, 너는 새해 일출이 왜 저렇게 시뻘건 줄 아냐? 저건 작년 한 해 동안 인간들이 쏟아낸 구질구질한 욕망이랑 미련을 태우느라 불타오르는 거야. 근데 사람들은 그걸 보면서 또 염치없이 새로운 욕망을 빌지. 참 지독하게도 이기적이고 아름다운 굴레 아니냐?”
2025년 12월 31일, 그리고 2026년 1월 1일로 넘어가는 찰나의 새벽. 바닷가 유리 집 ‘3시의 요새’ 앞에는 낡은 플라스틱 의자 네 개가 바다를 향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영하 10도. 해안가의 칼바람은 사람 살결을 회 뜨듯 날카롭게 베어냈지만, 의자에 앉은 세 남자는 약속이라도 한 듯 미동도 없었다. 장팔 아저씨의 입에서는 끊임없이 희뿌연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이게 지독한 추위 때문인 입김인지, 아니면 손가락 사이에 끼워진 돗대 담배 연기인지 도무지 분간이 안 갔다. 아저씨는 그 연기 너머로 수평선을 멍하니 응시할 뿐이었다.
바닷바람에 젖은 앞치마는 이미 판자처럼 빳빳하게 얼어붙어 무릎을 칠 때마다 서글픈 소리를 냈다. 장갑을 꼈는데도 손가락 끝은 감각이 죽어버린 지 오래였고, 눈가엔 차가운 바람에 맺힌 눈물이 고드름처럼 매달려 따끔거렸다.
해변은 이미 난장판이었다. 전국에서 꾸역꾸역 몰려든 사람들은 저마다 두툼한 패딩에 몸을 구겨 넣은 채, 작년 한 해의 액운을 털어내고 새해 복을 낚아채려 눈에 불을 켜고 있었다. 추위도 잊고 모래사장을 뛰어다니는 아이들, 낭만이라도 파는 건지 폭죽을 터뜨리며 사랑을 맹세하는 연인들, 그리고 지나온 세월을 말없이 되새기며 서로의 손을 꼭 잡은 노부부들까지.
하늘 위로는 구름들이 파노라마처럼 우리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갔다. 어지럽게 뒤섞인 발자국들이 해변 모래 위에 층층이 포개지며 기괴한 무늬를 만들었다. 그 무늬들은 꼭 우리가 작년 한 해 동안 아등바등 살아온 삶의 흔적 같아 보였다.
“야, 태풍. 너 아까부터 입술을 달싹거리면서 무슨 기도를 그렇게 열심히 하냐? 넌 빌어봐야 사기꾼 전용 지옥밖에 더 가겠어?”
적막을 깬 건 장팔 아저씨의 걸걸한 목소리였다. 아저씨는 다 탄 꽁초를 모래바닥에 짓이기며 툭 내뱉었다. 태풍 사장이 귀마개를 매만지며 대꾸했다.
“장팔, 넌 내 야망을 너무 무시해. 내가 지금 비는 건 내 안위가 아니야. 이 대한민국 경제의 평화, 그리고 우리 식당의 수직 상승하는 매출 그래프지. 봐라, 저 저글링 떼처럼 몰려온 사람들을. 저게 다 돈이고, 저게 다 기회라고.”
태풍 사장의 눈이 번뜩였다. 평소의 능청스러움과는 다른, 아주 잔인할 정도로 투명한 물욕의 눈빛. 나는 옆에서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새해 첫날부터 이 아저씨들 머릿속은 평강이나 안식 같은 우아한 단어랑은 백만 광년쯤 떨어져 보였다.
“지수야, 곰탱아. 해 뜬다. 이제 슬슬 준비할까? 우리가 지난 한 달 동안 비밀리에 준비해 온 그 ‘거사’를.”
태풍 사장이 비장하게 일어났다. 새해의 첫 태양이 수평선 너머로 붉은 머리를 들이밀기 시작했다. 그 환한 미소는 해변의 모든 이들에게 평등한 축복을 내리는 듯했지만, 우리 세 남자의 눈은 이미 딴 곳을 향하고 있었다.
“시작하지.”
장팔 아저씨가 비장하게 조리복 소매를 걷어붙였다. 그러자 곰탱 아저씨가 기다렸다는 듯 주방 뒤편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나르기 시작했다. 그건 도미를 조각하던 칼도, 샴페인을 붓던 팬도 아니었다. 거대한 육수통과 산더미처럼 쌓인 나무 꼬치였다.
“자, 목청 가다듬고! 지수야, 너도 크게 질러! 오늘이 우리 식당 올해 최고 매출 찍는 날이다!”
태풍 사장의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식당 앞 매대에서 허연 김이 폭발하듯 피어올랐다.
“오뎅 드세요! 따끈한 오뎅! 명품 육수로 우려낸 오뎅 있습니다! 추운데 속 좀 채우고 가세요!”
외침이 파도 소리를 뚫고 퍼져 나갔다. 순식간이었다. 해돋이를 보며 감동에 젖어 있던 사람들은, 일출의 낭만보다 더 강력한 ‘추위’라는 본능에 처참히 무너졌다. 사람들은 자석에 끌리는 쇳가루처럼 우리 매대 앞으로 몰려들었다.
“와, 죽겠다! 아저씨 여기 오뎅 5개요!”
“국물 좀 많이요, 손가락이 안 펴져요!”
장팔 아저씨의 손놀림은 신들린 시절 그대로였다. 하지만 영하의 기온은 무자비했다. 국물을 담는 국자 손잡이가 손바닥에 쩍쩍 달라붙을 정도로 추웠고, 아저씨의 거친 손등은 이미 붉게 터져 피가 비쳤다. 아저씨는 그 와중에도 25년 내공으로 국물 염도를 맞추며 입으로는 거친 덕담을 쏟아냈다.
“이봐요, 총각! 국물만 먹지 말고 오뎅도 좀 사 먹어! 이게 그냥 오뎅인 줄 알아? 내가 멸치 똥까지 다 따서 우려낸 영혼의 육수라고! 자, 여기 따뜻할 때 드셔!”
곰탱 아저씨는 거구의 몸으로 오뎅 꼬치를 끼우는 기계가 되어 있었다. 차가운 나무 꼬치를 쥐는 손가락이 마비되어 제대로 접히지도 않았지만, 그는 묵묵히 꼬치를 찔러 넣었다. 0.1mm 오차를 논하던 정교한 손놀림은 이제 살기 위해 꼬치를 쥐는 처절한 노동의 미학으로 변해 있었다. 태풍 사장은 옆에서 돈통을 끼고 연신 싱글벙글하며 사람들의 주머니를 털었다.
“어이쿠, 어르신!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오뎅 국물 한 컵에 건강이 깃듭니다. 잔돈은 됐다고요? 역시 새해부터 기부가 넘쳐나네요! 아주 평강 하실 겁니다!”
태풍 사장의 눈은 물욕의 화신 그 자체였다. 그는 내 귓가에 대고 낮게 낄낄거렸다.
“지수야, 봤지? 인생은 타이밍이야. 남들 일출 보며 눈물 짤 때, 우리는 그 눈물을 닦아줄 오뎅을 판다. 이게 비즈니스야. 이러다 금방 건물 올리겠어. 해돋이 오뎅은 진짜 신이 내린 기회라니까.”
나는 오뎅 국물을 담아 나르며 그들을 한심하게 쳐다보았다. 물욕에 찌든 세 남자의 모습이 새해 첫 태양 빛을 받아 아주 눈부시게 번들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참 이상한 일이었다. 장팔 아저씨의 독설 섞인 오뎅을 받아 든 사람들의 얼굴에는 말 그대로 ‘평화’가 깃들기 시작했다.
추위에 파랗게 질렸던 연인들의 입술이 불그스레 돌아오고, 칭얼대던 아이들이 뜨거운 국물을 호호 불며 웃음을 되찾았다. 거창한 기적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그 어떤 고해성사보다 더 확실한 구원처럼 보였다.
오전 9시. 전쟁 같은 장사가 끝나고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매대 앞엔 텅 빈 육수통과 버려진 종이컵 잔해만 남았다. 태풍 사장은 돈통에 가득 찬 만 원짜리 뭉치를 세며 입이 귀에 걸렸다.
“야, 장팔. 오늘 매출이 지난달 보름 치랑 맞먹는다. 우리 그냥 식당 때려치우고 해돋이 명당만 돌면서 오뎅이나 팔까?”
장팔 아저씨는 앞치마에 묻은 국물을 닦아내며 곰탱 아저씨가 건네준 담배를 물었다.
“이 미친 사기꾼 놈아. 요리사가 가오가 있지, 평생 오뎅만 팔라고? 그래도 뭐… 오늘 국물 맛은 내가 봐도 좀 예술이긴 했다. 그 비평가 놈이 왔어도 이건 무릎 꿇었을걸.”
곰탱 아저씨는 감각 없는 손을 서로 비벼대며 나를 보며 웃었다.
“지수야, 새해 복 많이 받아라. 오늘 고생했다.”
나는 기진맥진해서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뜨거운 육수를 담느라 종이컵이 들러붙었던 손가락 끝이 화끈거렸지만, 묘한 해방감이 몰려왔다. 온몸에선 오뎅 냄새가 진동했고, 발가락은 여전히 내 것이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내 눈에 비친 세 남자의 뒷모습은 평소보다 훨씬 더 인간적이었다. 돈독 오른 사기꾼 사장과, 욕쟁이 셰프, 그리고 말없는 거구의 보조 요리사.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의 온도와 인생의 간을 맞추고 있었다.
나는 오늘 일지에 이렇게 적었다.
[번외 일지: 2026년 1월 1일. 구원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었다. 그건 누군가의 시린 손을 녹여주는 종이컵 속 오뎅 국물 한 모금에서 시작되는 거였다. 물욕에 찌든 세 남자의 덕담은 거칠고 세속적이었지만, 그 안에는 사람을 향한 가장 원초적인 온기가 담겨 있었다. 그들에게,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에게 정말로 따뜻한 평강이 깃들기를.]
하늘 위로 새해의 첫 태양이 중천에 박혔다. 바다는 언제 그랬냐는 듯 고요해졌고, 3시의 요새는 다시 평소의 평온을 되찾아갔다. 태풍 사장은 벌써 저녁 메뉴로 뭘 비싸게 팔아먹을지 고민하며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었고, 장팔 아저씨는
“새해 첫날부터 주방 청소 똑바로 안 해!”라며 곰탱 아저씨에게 고함을 질렀다.
나의 2026년은 그렇게 시끄럽고, 짭조름하고, 아주 따뜻하게 시작되었다. 지극히 ‘3시의 요새’ 다운 시작이었다. 파도는 여전히 해안선을 닦아내며 새해의 첫 페이지를 열고 있었고, 그 너머로 우리들의 삶은 또 한 겹의 간을 맞춰가고 있었다.
"모든 분들께도 2026년 새해에는 쓴맛보다 달큼한 맛이 더 많은 한 해가 되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