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영업시간은 제멋대로, 맛은 천국대로

시즌1]03:00 PM, 촛불 성의 괴물들

by 산 사람


​1. 유리 감옥과 세 마리의 괴물


​우리 동네 사람들은 언덕 너머 바닷가에 딱 붙은 그 단층 건물을 ‘유리 감옥’이라고 부른다. 사방이 통유리라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데, 정작 그 안엔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곳을 ‘3시의 요새’라고 부른다.

​오후 2시 59분까지 그곳은 그냥 죽은 건물이다. 파도 소리만 빈집 담벼락을 핥고 지나갈 뿐, 사람의 온기라곤 1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시곗바늘이 정확히 3시를 가리키는 순간, 요새의 성문(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낡고 삐걱거리는 나무 문)이 열리며 세 명의 기괴한 괴물이 기어 나온다.


​“아, 씨…. 해가 왜 이렇게 밝냐? 눈 멀겠네.”


​제일 먼저 기어 나오는 건 ‘장팔’ 아저씨다. 본명은 장 폴(Jean-Paul). 프랑스 어디 미슐랭 식당에서 소스 좀 저었다는데, 내가 보기엔 그냥 니코틴에 찌든 골초 영감이다. 그는 나오자마자 습관적으로 가슴팍의 낡은 묵주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성호를 긋는다. 독실한 신자인 척하는 루틴인데, 문제는 성호를 긋자마자 입에 담배를 물고 라이터를 켠다는 거다. 성스러움과 타락이 공존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정확히 1초.


​“야, 장팔. 너 또 성호 긋고 담배 피우냐? 하나님이 너 폐암 걸리라고 특별 기도해 주시겠다.”


​뒤따라 나오는 건 이 식당의 실세이자 ‘구라’의 화신, 태풍 사장이다. 이 인간은 3시에 일어난 주제에 머리에 왁스를 얼마나 떡칠했는지 번쩍번쩍 광이 난다. 어제 바른 게 남은 건지, 자다 깨서 바로 바른 건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삶의 목적은 투명하다. 오늘 올 예약자 중 혹시나 섞여 있을 ‘미모의 여성’에게 간택받는 것.

​마지막으로 육중한 덩치의 ‘곰탱’ 아저씨가 하품을 하며 식재료 박스를 들고 나타나면, 기괴한 레스토랑 ‘03:00 PM’의 하루가 시작된다.

​나는 이 인간들을 한심하게 쳐다보며 카운터 옆 고양이 베르나르의 사료를 챙긴다. 베르나르는 나를 보며 ‘너도 참 팔자 사납다’는 눈빛을 보낸다. 그래, 나도 안다. 대학 등록금만 아니면 이 미친 아저씨들 틈에서 서빙 알바를 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걸. 내 전공은 경영학인데, 여기선 ‘인생 경영 실패 사례’들만 실시간으로 직관 중이다.


​2. 52도, 신이 허락한 뻘짓의 온도


​“김 알바! 오늘 예약 리스트 뽑아봐.”


​태풍 사장이 능글맞게 묻는다. 나는 태블릿을 펼쳤다.


​“오늘 8명 꽉 찼고요. 2명씩 네 팀입니다. 섬마을 보건소 간호사 언니 한 팀, 일본인 관광객 두 명, 나머지는 중년 부부예요.”


​그 순간, 담배 연기를 뿜으며 먼바다를 보던 장팔 아저씨의 눈이 번쩍 뜨였다.


​“니혼진? 와타시와… 와타시와… 오이시이 데스!”


“아저씨, 제발 좀…. ‘내가 맛있다’가 아니라 ‘음식이 맛있다’라고 해야죠. 일본인이면 한국말이나 영어 하겠죠. 제발 공부 좀 하세요.”


​나의 일침에 장팔은 칫, 하고 담배 연기를 뿜더니 주방으로 쏙 들어갔다. 이제부터가 진짜다. 오후 3시부터 7시까지, 이들에게 주어진 4시간은 전쟁이다. 메뉴판도 없는 이 식당에서 오늘 뭐가 나갈지는 오직 장팔의 기분과 오늘 시장 바닥에 나온 식재료의 ‘상태’에 달렸다.

​오늘 장팔이 선택한 메인 재료는 새벽 위판장에서 곰탱 아저씨가 공수해 온 거대한 대구와 한우 안심이었다.


​“오늘의 테마는 ‘결합’이다.”


​장팔이 주방에서 장엄하게 선언했다. 칼을 잡을 때만큼은 담배를 피우지 않는 게 그의 유일한 양심이다. 대신 몸에서 향긋한 허브 냄새와 버터 향이 나기 시작하는데, 이게 꽤 사람을 홀린다.


​“지수야, 잘 봐라. 요리는 과학이야. 이 대구 살을 그냥 프라이팬에 때려 붓는 건 생선에 대한 모욕이지. 우리는 여기서 ‘단백질 변성’의 정점을 찍을 거다.”


​그는 대구 살을 진공 팩에 넣고 정확히 52도의 물속에 집어넣었다. 이른바 ‘수비드’ 공법.


​“52도요? 목욕물보다 조금 따뜻한 수준인데, 그게 익긴 해요?”


​나의 합리적인 의구심에 장팔은 콧방귀를 뀌었다.


​“이게 바로 미식의 경계선이야. 생선의 콜라겐이 딱딱해지지 않으면서 단백질 입자가 수분을 머금고 젤리처럼 변하는 마법의 온도지. 1도만 높아도 지우개처럼 퍽퍽해지고, 1도만 낮아도 비린내가 진동을 해. 신이 인간에게 허락한 가장 관대한 온도가 바로 52도야.”


​성격은 지랄 맞은데, 칼을 잡은 손가락 끝은 피아니스트처럼 섬세하다. 곰탱 아저씨가 다져놓은 양파와 와인 식초를 졸여 ‘베르 블랑’ 소스를 만드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저 남자가 정말 천주교 신자가 맞는지 의심했다. 저건 신앙이라기보다 연금술에 가깝고, 사실은 주방에 숨어서 마약이라도 제조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의 집요함이다.


​3. 촛불 성과 사기꾼의 영업비밀


​그 사이 태풍 사장은 홀을 장식하고 있었다. 이 식당의 시그니처, 이름하여 ‘촛불 성’이다. 테이블 중앙에는 수개월 동안 촛농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기괴한 파라핀 덩어리가 에베레스트산처럼 솟아 있다. 태풍은 조심스럽게 그 위에 새 초를 꽂고 불을 붙였다.


​“지수야, 사람들이 왜 비싼 돈을 내고 이 구석탱이까지 오는 줄 아니? 맛? 에이, 그건 기본이지. 진짜 상품은 바로 ‘조도’야.”


​태풍이 초를 켜며 내 눈을 빤히 쳐다봤다.


​“촛불의 색온도는 인간의 마음을 가장 무방비하게 만들거든. 이 촛불 성 앞에서 와인 한 잔 들어가면, 사람들은 저 바다 깊은 곳에 묻어뒀던 비밀을 다 꺼내놓게 돼 있어. 그게 내 영업비밀이지. 한마디로 나는 마음을 해킹하는 셰프랄까?”


​“그냥 분위기 잡아서 바가지 씌우는 사기꾼 같으신데요.”


​“사기라니! 나는 정서적 치유자야. 장팔은 혀를 조지고, 나는 가슴을 뚫어주지. 그리고 곰탱은… 곰탱은 그냥 고기를 잘 굽고.”


​곰탱 아저씨는 주방 구석에서 묵묵히 안심의 지방을 걷어내며 허허 웃었다. 그는 이 식당에서 유일하게 화를 내지 않는 생명체이자, 장팔의 히스테리와 태풍의 허세를 묵묵히 받아내는 인간 완충지대였다.

​오후 6시 50분. 식당 안은 폭풍 전야의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 아니나 다를까, 주방에서 장팔과 태풍이 결국 한판 붙었다.


​“야! 소금이 왜 이래? 이거 내가 말한 천일염 아니잖아! 곰탱이 너 이거 어디서 샀어?”


“그게 그거지! 손님들 오기 10분 전이야. 그냥 대충 써!”


태풍이 맞받아쳤다.

​결국 장팔의 손에서 작은 소스 볼이 날아갔다. 태풍은 이런 일이 일상이듯 아주 익숙하게 고개를 ‘슥’ 숙여 피했고, 소스 볼은 벽에 부딪혀 산산조각 났다. 나는 한숨을 쉬며 빗자루를 들었다. 이게 이 식당의 루틴이다. 치열하게 개싸움을 하다가도 손님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우아하고 고독한 예술가가 된다.


​4. 관용의 온도와 눈물 젖은 대구


​7시 정각. 딸랑거리는 종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첫 번째 손님은 섬마을 간호사 언니였다. 일주일 뒤면 서울의 대형 병원으로 떠난다는 그녀의 얼굴에는 ‘내가 거기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공포가 서려 있었다. 뒤이어 중년 부부, 그리고 드디어 장팔이 목 빼고 기다리던 일본인 손님들이 들어왔다.


​“이랏샤이마세! 와타시와… 오이시이 데스!”


​장팔이 주방에서 튀어나와 또 ‘내가 맛있다’고 외쳤다. 일본인 손님들은 동공 지진이 일어났다. 그중 한 여성이 유창한 한국말로 대답했다.


​“저기… 한국말하실 줄 아는 분 계신가요? 저희 한국 음식 먹으러 왔는데, 여기 프랑스 식당인가요?”


​장팔의 얼굴이 한순간에 삶은 문어처럼 달아올랐다. 태풍 사장이 재빨리 끼어들어 그녀의 손을 살짝 잡으며 에스코트했다.


​“어서 오십시오. 프랑스 요리의 탈을 쓴 바다의 영혼을 대접하는 곳입니다. 저희 셰프가 방금 전까지 손님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거든요. 아까 외친 건 ‘내가 맛있는 요리를 준비했다’는 그만의 수줍은 암호입니다.”


​나는 뒤에서 걸레질을 하며 생각했다.


"기도는 무슨, 담배만 세 대 피웠으면서."


​만찬이 시작되었다. 촛불 성이 빛나고, 와인이 잔을 채웠다. 장팔의 요리는 인정하기 싫지만 예술이었다. 아까 그 52도에서 수비드 했던 대구 살은 접시 위에 놓이자마자 손님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이거 생선 맞아요? 포크만 댔는데 그냥 무너져요.”


​간호사 언니가 대구 살을 한 점 입에 넣더니 갑자기 멈췄다. 씹을 필요도 없이 혀 위에서 사라지는 그 부드러움이 그녀의 긴장을 건드린 모양이었다.


​“간호사님, 서울 병원은 춥고 딱딱하겠죠. 하지만 오늘 드신 이 대구 살처럼, 세상엔 억지로 버티지 않아도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순간이 반드시 있습니다. 서울 생활도 이 대구처럼 부드럽게 풀릴 겁니다.”


​태풍 사장의 멘트가 촛불 사이로 흘러갔다. 평소엔 극혐 하던 그 느끼한 말들이, 묘하게 그 순간만큼은 식당 안의 공기를 따뜻하게 데웠다. 간호사 언니는 결국 대구 소스 위로 눈물 한 방울을 툭 떨어뜨렸다. 장팔은 주방 문틈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며 다시 묵주 반지를 만졌다. 이번 성호는 아마 진짜였을 것이다.


​5. 영업 종료, 괴물들의 휴식


​밤 11시. 마지막 손님이 나가고 식당엔 정적이 찾아왔다. 촛불은 거의 다 타들어 가 새로운 촛농의 층을 만들었다. 세 남자는 주방 바닥에 주저앉아 남은 와인을 병째로 들이켰다.


​“야, 오늘 얼마 벌었냐? 월세 내고 남냐?”


장팔이 물었다.


“많이 벌었지. 우리 내일모레는 장사 안 해도 돼. 내일 파도 좋다던데 서핑이나 갈까?”


태풍이 답했다.


“비싸게 받으니까 좋네. 이 맛에 주 3일 일하지. 지수야, 너도 고생했다. 여기 알바비에 보너스 얹었다.”


​곰탱 아저씨가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나는 그걸 챙기며 속으로 생각했다. 할아버지는 이들을 놈팡이 집합소라고 부르지만, 사실 이들은 세상에서 가장 성실하게 노는 사람들이다. 오후 3시에 깨어나 새벽 3시까지 미친 듯이 불태우고, 남은 시간엔 바다에 몸을 던진다.

​나는 설거지를 마치고 앞치마를 벗었다. 게으른 고양이 베르나르는 어느새 장팔의 무릎 위에 올라가 가르랑거리고 있었다.


​“아저씨, 내일모레는 일본어 공부 좀 해와요. 창피해서 원.”


​나의 마지막 공격에 장팔은 바보처럼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하이! 하이!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나는 어두운 바닷길을 걸어 내려왔다. 등 뒤로 촛불이 꺼진 ‘03:00 PM’ 레스토랑이 파도 소리에 잠기고 있었다. 효율과 수익만 따지던 내 경영학 원론에는 없는, 세상에서 가장 비효율적이고 가장 따뜻한 3시가 그렇게 저물어갔다.



대구 수비드와 베르 블랑 소스

[출처 네이버]



​[지수의 주방 관찰 일지: 오늘의 요리]


​메뉴: 대구 수비드와 베르 블랑 소스 (Cod Sous-vide with Beurre Blanc)


​1. 52도의 마법, 수비드(Sous-vide)

장팔 아저씨가 "신이 허락한 관대한 온도"라고 부르는 52도는 대구 요리의 정점입니다. 생선 살을 진공 팩에 넣어 52도의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는 '워터배스(Water Bath)'에서 장시간 익히면, 단백질이 수축하지 않고 수분을 그대로 머금게 됩니다. 소설 속 묘사처럼 포크만 대도 젤리처럼 결대로 무너지는 그 부드러움은, 불 위에서 직화로 구워서는 절대 도달할 수 없는 ‘기다림의 미학’이 만든 식감입니다.


​2. 하얀 버터의 우아함, 베르 블랑(Beurre Blanc)


곰탱 아저씨가 팔 근육을 떨며 화이트 와인 식초와 차가운 버터를 휘젓던 모습, 그 결과물이 바로 ‘하얀 버터’라는 뜻의 베르 블랑 소스입니다. 산미가 강한 식초와 고소한 버터가 분리되지 않고 하나로 엉키는 에멀션(Emulsion) 과정을 거치면, 소스는 벨벳처럼 부드러운 윤기를 얻습니다. 새콤하면서도 진한 풍미가 담백한 대구 살을 감싸 안으며 맛의 균형을 완성합니다.


​3. 요리에 담긴 ‘간’


이 요리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관용과 위로'를 상징합니다. 서울이라는 차가운 현실로 떠나는 이에게, 팍팍한 세상에서도 당신의 마음만큼은 이 대구 살처럼 부드럽게 녹아내리길 바라는 장팔 아저씨의 무뚝뚝한 응원이 담겨 있습니다.


03:00 PM 추천 음악

Norah Jones - Don't Know W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