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운명의 키(Wheel): 바꿀 수 없는 것을

제3부. 해언(海言)의 과거: 시간을 거스르는 항해자

by 산 사람

[부제 :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용기]

ㅡ 폭풍의 중심에서 키를 놓아야 할 때ㅡ


​등대의 오후는 기이할 정도로 조용했다. 그러나 그 고요함은 결코 평온의 안면을 하고 있지 않았다. 그것은 폭풍이 몰아치기 전, 모든 생명이 숨을 죽인 채 다가올 파멸을 기다리는 응축된 긴장에 가까웠다.


​사내는 노인이 낡은 나무 궤짝에서 꺼내어 준, 멈춰버린 회중시계를 손바닥 위에 올려두었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시계 유리에 간 금들은 마치 복잡하게 얽힌 운명의 손금처럼 서로를 물고 늘어지고 있었고, 초침은 살아 있던 어떤 존재가 내뱉은 마지막 숨결을 박제한 듯 그 자리에 얼어붙어 있었다.


​사내는 그 정지된 시간을 오래도록 응시했다. 시계의 멈춘 바늘이 마치 자신의 심장을 찌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는 더는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고개를 들어 노인을· 바라보았다.


​“노인장. 그럼… 그때 이후로는 요? 그 좌표의 지점, 그 비극 이후로는 어떻게 된 겁니까. 시간을… 정말로 되돌리려고 하셨다면서요. 그게 가능한 일이었습니까?”


​해언은 즉시 답하지 않았다. 그는 열려 있던 궤짝의 뚜껑을 천천히, 그러나 단호하게 덮었다. 쾅, 하고 나무가 부딪히는 소리가 지하실의 습한 공기를 가르며 짧게 울려 퍼졌다. 덮는 힘이 조금 과했는지, 노인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는 그 소음이 가라앉고 나서야 비로소 손을 거두었다. 마치 자신이 금기된 무언가를 건드렸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사람처럼, 그의 표정에는 당혹감과 슬픔이 교차했다.


​잠시 후, 해언은 등대 벽 한가운데에 장식처럼 걸린 오래된 나무 키(Wheel) 앞으로 걸어갔다. 그것은 한때 거대한 선박의 심장이었을 테지만, 이제는 소금기에 절어 박제가 된 채 벽에 매달려 있었다. 해언은 그 키 앞에 설 때면 늘 한 박자 늦게 숨을 쉬곤 했다.


​그는 거친 나무 손잡이를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어루만졌다. 마른나무의 결이 손바닥을 스칠 때마다 얇은 가시가 살을 찌르는 듯한 통증이 전해졌지만, 그는 손을 떼지 않았다. 사내는 해언이 지금 단순한 ‘물건’을 만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노인은 억겁의 세월 동안 놓지 못했던, 아니 놓을 수 없었던 생의 가장 찬란하고도 끔찍했던 한 순간을 다시 움켜잡고 있는 것이었다.


​한참 동안의 적막 끝에 해언이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먼바다에서 밀려오는 해무처럼 낮고 칼칼했다.


​“자네는 폭풍이 언제 끝나는지 알 수 있나?”

“... 모릅니다. 그건 누구도 알 수 없지 않습니까.”

“그렇지. 누구도 알 수 없지.”


​해언은 키를 아주 조금, 정말 아주 조금 돌렸다. 삐걱— 하고 비명 같은 마찰음이 등대 내부를 긁어 내렸다. 그 소리는 좁은 공간 안에서 불필요하게 크게 증폭되어 사내의 고막을 때렸다.


​“사람들은 폭풍이 오면 제일 먼저 ‘끝’을 찾네. 날짜, 시간, 기상 예보… 그런 확신이 없으면 인간은 1분 1초도 견디지 못하는 존재니까. 불확실성이라는 바다에 빠지는 것보다 차라리 확정된 파멸을 기다리는 게 낫다고 생각할 정도로 나약하거든.”


​그는 말을 더 이으려다 멈추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수평선 너머의 바다는 거울처럼 잔잔했다. 그러나 해언의 시선은 그 평화로운 수면을 조금도 신뢰하지 않았다. 그의 눈에는 지금의 고요 아래 도사린, 수천 년간 굶주려온 바다의 식욕이 보이고 있는 듯했다.


​“나도 그랬네.”


​그제야 억눌려 있던 말이 터져 나왔다.


​“끝을 찾으려 했지. 시간을 억지로 되돌려서… 그 비극적인 ‘끝’ 자체를 아예 세상에서 지워버리려고 했어. 내가 가진 모든 기술과 집착, 그리고 광기를 동원해서 말이야.”


​사내는 마른침을 삼켰다. 해언은 키를 잡고 있던 손을 내려다보다가, 무심한 듯 소매를 걷어 올렸다. 앙상한 팔 안쪽에 새겨진 문신이 형광등 불빛 아래 다시 드러났다. 숫자와 기호로 이루어진 좌표. 바다 위 어느 한 점을 정확히 겨누고 있었고, 그 정교함이 오히려 보는 이로 하여금 잔인한 통증을 느끼게 했다.


​노인은 일부러 가리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오래 보여주지도 않았다. 소매는 다시 스르르 내려갔고, 좌표는 마치 파도에 휩쓸려간 발자국처럼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날 내 배를 가라앉힌 건 빙산이 아니었네.”


​해언의 목소리가 한 옥타브 낮아졌다.


​“태풍이었지.”


​‘태풍’이라는 단어가 뱉어지는 순간, 등대 안의 공기 밀도가 달라졌다. 사내는 단지 그 단어를 들었을 뿐인데, 폐부 깊숙한 곳이 눅눅하게 젖어드는 기분을 느꼈다. 태풍은 인간의 용기를 시험하지 않는다. 태풍은 인간이 스스로에 대해 믿어왔던 가느다란 자부심과 얄팍한 논리를 짐승의 발톱으로 낱낱이 벗겨낼 뿐이다.


​“그날 아침은 이상할 정도로 하늘이 맑았네. 바다는 지나치게 고요했고, 바람은 어머니의 품처럼 따뜻했지. 선원들은 모두 축제 분위기였어. 최단 기록으로 항구를 통과할 수 있을 거라며 웃었지.”


​해언은 잠시 말을 멈추고 눈을 감았다. 마치 그 투명한 고요를 다시 한번 통과해야만 하는 고행자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건 경고가 아니었어. 바다가 나를 완벽하게 무너뜨리기 위해 준비한 치밀한 ‘기만’이었지. 나는 그때 내 눈앞의 바다가 아니라, 내 머릿속의 ‘욕망’에 완벽히 취해 있었거든.”


​사내는 손바닥 위의 시계를 더 꽉 쥐었다. 금이 간 유리가 살점을 파고드는 것 같았지만 개의치 않았다.


​“돈이 필요했던 게 아니야. 나를 움직인 건 이름, 찬사, 그리고 나를 우러러보는 타인들의 시선이었지. ‘전설적인 항해사 해언’이라는 허울 좋은 명성… 그게 내게는 지독한 독주(毒酒)였어.”


​그는 키의 손잡이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렸다. 둥, 둥. 나무속이 텅 비어 있는 공허한 소리가 났다.


​“내 영혼이 썩어가는 줄도 모르고, 사람들의 눈에 비치는 내 껍데기가 더 중요해지던 시기였지. 내가 신이라도 된 양 착각했었어. 자연의 섭리조차 내 계산 아래 있다고 믿었으니까.”


​해언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리는 듯, 그의 눈가가 미세하게 파르르 떨렸다. 사내는 그 침묵이 백 마디의 고백보다 더 처절한 진실을 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군가가 내게 말했었네. 제발 이번만큼은 가지 말라고. 지금의 바다는 평소와 다르다고.”


​해언은 끝내 그 사람의 이름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관계도, 얼굴의 묘사도 생략했다. 그러나 그 생략이 오히려 그 존재의 크기를 짐작게 했다.


​“그 사람은… 내 옆에서 늘 그림자처럼 조용했어. 하지만 내 인생의 가장 정확한 ‘나침반’이었지. 말이 많지 않았지만, 내가 방향을 잃고 비틀거릴 때마다 나보다 먼저 내 영혼의 북극성을 찾아내곤 했어.”


​노인은 아주 짧게 웃었다. 그것은 즐거움의 표현이 아니라, 과거의 어리석었던 자신을 대면할 때마다 튀어나오는 자조 섞인 습관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나침반의 바늘을 믿지 않았어. 내 귀에는 이미 등 뒤에서 들려오는 세상의 환호성과 박수 소리만 가득했거든. 그 천박한 소음들이 나침반의 고요한 경고를 완전히 덮어버렸지.”


​해언의 말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잊고 싶었던 기억이 댐이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태풍은 처음엔 바람의 형태로 오지 않았네. 돛을 찢고 배를 뒤흔드는 물리적인 바람이 아니라… 내 마음을 갈가리 찢어놓는 심리적인 바람으로 먼저 찾아왔지. ‘여기서 회항하면 너는 겁쟁이다’, ‘사람들이 너의 실패를 기다리고 있다’, ‘너의 전설은 여기서 끝날 것이다’… 그런 악마 같은 속삭임들이 바람이 되어 내 귓가를 맴돌았어.”


​사내는 심장이 조여드는 것을 느꼈다. 자신이 사업 실패로 파산하기 직전, 사무실 창가에서 들었던 그 환청 같은 바람 소리와 너무도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파멸의 바람을 내 편이라고 착각했지. 나를 더 높은 곳으로 올려줄 상승기류라고 믿었어. 그리고… 스스로 태풍의 심장부로 배를 몰고 들어갔네.”


​해언의 목소리가 떨렸다. 키를 잡은 그의 손등에 푸른 핏줄이 성난 파도처럼 솟아올랐다.


​“태풍의 중심은… 소름 끼칠 정도로 조용하더군. 그 정적 속에서 나는 승리감에 도취해 있었어. 보라고, 내가 이겼다고. 자연의 재앙조차 나를 비껴간다고 말이야. 하지만 그건 태풍이 나를 위해 준비한 가장 잔인한 함정이었네.”


​노인은 고개를 숙였다. 어깨가 미세하게 들썩였다.


​“그 사람은 그 죽음 같은 정적 속에서도 내게 말했어. 지금이라도 키를 돌려야 한다고. 이건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고. 하지만 나는… 나를 가장 아끼던 그 손을 거칠게 뿌리쳤네. 내 오만을 방해하는 걸림돌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사내의 손에서 회중시계가 미끄러질 뻔했다.


​“그 순간, 나는 이겼다고 생각했지. 내 뜻대로 키를 쥐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바다는… 나의 그 오만한 승리를 지켜보고 있었어. 그리고 단 1초의 오차도 없이, 자신이 삼켜야 할 제물을 골라냈지.”


​해언은 키에서 손을 떼었다. 힘없이 떨어진 그의 손이 허공을 휘저었다.


​“바다는 결코 인간을 심판하지 않네. 선악을 구분하지도, 구구절절한 설명을 늘어놓지도 않지. 바다는 그저 차가운 ‘결과’만을 우리 앞에 던져줄 뿐이야. 내가 붙잡고 있었던 건 배의 방향을 결정하는 키가 아니라, 얄팍한 ‘체면’과 썩어 문드러진 ‘자존심’이었다는 걸… 배가 뒤집히고 차가운 물이 폐부로 들이닥치는 그 순간에야 깨달았네.”


​긴 침묵이 등대를 채웠다. 파도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지하실에서 노인의 거친 숨소리만이 벽을 타고 흘렀다.


​“그 사람은… 마지막 순간까지 나를 원망하지 않았네. 오히려 나를 살리려 했지. 그 기억이… 그 눈빛이 나를 평생 이 등대라는 감옥에 가두었어.”


​그 뒷이야기에는 어떤 수식어도 필요치 않았다. 사랑하는 이를 잃고 혼자 살아남은 자의 삶이 어떠했을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끔찍했기 때문이다. 사내는 조심스럽게, 아주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 뒤로는요… 어떻게 견디셨습니까?”


​해언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 눈동자에는 깊은 심연의 슬픔이 서려 있었지만, 동시에 모든 것을 태워버린 뒤 남은 하얀 재와 같은 초연함도 깃들어 있었다.


​“미쳤었지. 제정신으로 살 수 있는 날이 하루도 없었네.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 준비가 되어 있었어. 그래서 시작했지. 시간을 수선하고, 멈춘 시계들을 모으고, 과거의 좌표를 헤매는 항해를… 그건 사랑이 아니라 지독한 ‘광기’였네.”


​그는 다시 벽에 걸린 키를 응시했다.


​“그렇게 수십 년을 광기 속에서 살다가, 어느 날 문득 깨달았어. 내 손이 멈춘 거지. 더 이상 키를 돌릴 수가 없었어.”


“왜요? 무엇이 노인장을 멈추게 했습니까?”


​해언은 한참 동안 침묵하다가, 마치 평생의 무게를 털어내듯 무겁게 대답했다.


​“키를 돌리고 있는 게… 나인지, 아니면 나를 집어삼킨 ‘후회’라는 괴물인지 구분이 안 되더군. 내가 시간을 되돌리려 했던 건 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었어. 그저 나의 죄책감을 씻고 싶었던, 나의 오욕을 덮고 싶었던 비겁한 ‘소유욕’이었다는 걸 알게 된 거지.”


​그는 키를 손끝으로 톡, 하고 건드렸다.


​“시간을 되돌리려는 행위는 결코 사랑이 될 수 없네. 그것은 이미 흘러간 생명의 고귀함을 부정하는 행위일 뿐이야. 그래서 나는… 마침내 키를 놓았네.”


“그게… 운명을 받아들이는 용기였습니까?”


​해언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용기라기보다 ‘항복’에 가까웠지. 내가 더 이상 이 인생의 키를 제멋대로 조종할 자격이 없다는 사실을, 나는 그저 흘러가는 시간의 일부일 뿐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받아들인 거야.”


​그는 키 위에 손바닥을 살포시 얹고, 마치 오래된 친구의 체온을 느끼듯 잠시 머물렀다.


​“그런데 신기한 건 말일세. 내가 키를 놓자마자 배가 바로 가라앉을 줄 알았는데… 아니더군. 배는 오히려 자유로워졌어. 파도의 흐름에 몸을 맡긴 채, 조용히 수면 위를 떠 있었지. 내가 억지로 키를 부여잡고 싸울 때보다 훨씬 더 평온하게.”


​사내는 손바닥 안에서 멈춰 있던 회중시계의 뚜껑을 닫았다. 딸깍, 하는 작은 금속성 소리가 고요한 지하실에 울려 퍼졌다.

​그 소리는 마치 아주 오랫동안 멈춰 있던 거대한 톱니바퀴가 다시 맞물려 돌아가기 시작하는 신호탄처럼 들렸다. 사내는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바꿀 수 없는 과거를 받아들이는 진정한 용기는, 무언가를 꽉 움켜쥐는 강한 손아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피눈물을 흘리며 부여잡고 있던 ‘후회’라는 이름의 키를 가만히 놓아버리는 손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사내는 오늘, 노인의 상처를 통해 비로소 인생이라는 거친 바다에서 표류하지 않고 흐르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