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육지로 떠나는 간호사, 마지막 바다의 맛

시즌1]03:00 PM, 촛불 성의 괴물들

by 산 사람


​1. 뒷모습의 맛


​“지수야, 너는 떠나는 사람의 뒷모습에서 무슨 맛이 날 것 같니?”


​오후 3시 10분. 태풍 사장이 평소보다 반 옥타브쯤 낮은 톤으로 물었다. 이 인간, 또 시작이다. 그는 통유리창에 거의 코를 박을 듯 붙어서 먼바다를 응시하고 있었다. 오늘따라 파도는 유난히 잘디 잘게 부서지며 모래사장 위로 하얀 거품을 뱉어내고 있었다. 그 풍경이 꽤나 서정적이긴 했지만, 내 눈에는 그냥 ‘닦기 힘든 유리창’과 ‘축축한 모래’ 일뿐이었다.


​“뒷모습에 무슨 맛이 있어요. 그냥 시원섭섭한 맛이겠죠. 사장님, 제발 감성 잡지 말고 오늘 들어온 홍합이나 좀 같이 날라요. 이거 진짜 무겁거든요?”


​나는 툴툴거리며 발 앞에 놓인 거대한 아이스박스를 가리켰다. 오늘은 이 식당이 처박혀 있는 바닷가 마을의 유일한 보건지소 간호사, 현정 언니의 마지막 만찬 예약이 있는 날이었다. 그녀는 내일 아침이면 이 조용한 섬을 떠나 서울의 거대한 대학 병원이라는 정글로 향한다. 마을 사람들에게 그녀는 단순한 간호사가 아니었다. 할머니들의 고혈압 약을 꼼꼼히 챙겨주고, 할아버지들 손등에 핀 검버섯을 보며 딸처럼 웃어주던 이곳의 비공식 수호신이었다. 그런 그녀가 떠난다니, 온 마을이 초상집 분위기였다.


​주방 안에서는 장팔 아저씨가 이미 전투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그런데 평소와 좀 달랐다. 그의 입에는 담배 대신 빳빳한 로즈메리 줄기가 물려 있었다. 요리의 영감을 떠올리거나 극도로 집중할 때 그가 보여주는 해괴한 습관 중 하나였다. 마치 사냥을 앞둔 맹수 같은 눈빛이었다.


“오늘은 ‘브야베스(Bouillabaisse)’다. 이 바다의 모든 생명을 한 그릇에 응축해서 보내줄 거야.”


​2. 해산물 연금술과 샤프란의 마력


​장팔 아저씨의 장엄한 선언에 곰탱 아저씨가 묵묵히 거대한 동냄비를 가스레인지 위에 올렸다.


​“아저씨, 브야베스는 프랑스 남부 어부들이 먹다 남은 생선 때려 넣고 끓이던 잡어 탕 아니에요? 현정 언니 마지막인데 너무 소박한 거 아니냐고요.”


​나의 지적에 장팔 아저씨가 입에 물고 있던 로즈메리를 ‘퉤’ 하고 뱉으며 눈을 부라렸다.


​“잡어 탕이라니! 이건 ‘해산물의 영혼을 추출하는 연금술’이다, 이 무식한 알바생아! 잘 봐. 진짜 브야베스는 생선을 그냥 물에 넣고 끓이는 게 아냐. 도미 뼈와 가재 껍질을 오븐에 바짝 구워 ‘메일라드 반응’을 일으킨 뒤, 샤프란과 오렌지 껍질을 넣어 향을 입히지. 여기서 핵심은 ‘유화(Emulsification)’다.”


​아저씨는 국자로 냄비를 휘저으며 열변을 토했다.


​“생선의 지방과 육수가 강력한 불꽃 위에서 하나로 섞여 우윳빛처럼 뽀얗고 진한 액체가 되어야 해. 52가지 향미 분자가 혀 위에서 폭발하는 경험, 그게 서울 촌놈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모르는 이 바다의 마지막 선물이다. 알겠냐?”


​그는 말하면서도 손을 멈추지 않았다. 홍합, 가리비, 새우, 아귀, 도미 살이 장팔의 예리한 칼끝에서 정갈하게 정리되었다. 장팔 아저씨는 입술로 작게 성호를 긋고는 끓어오르는 육수에 금보다 비싸다는 샤프란을 한 꼬집 집어넣었다. 순식간에 주방은 이국적이면서도 황금빛 가득한 향기로 채워졌다.


​3. 눈물 젖은 황금빛 국물


​오후 7시 정각. 식당 문이 열리고 현정 언니와 그녀의 단짝 친구가 들어왔다. 언니는 평소의 빳빳한 흰 가운 대신 단정한 원피스를 입고 있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옷을 잘못 입은 아이마냥 어색해 보였다.


​“지수야, 진짜 오는구나. 여기가 그렇게 대단하다면서? 우리 원장님이 꼭 가보라고 신신당부하시더라.”


​언니가 촛불 성 앞에 앉으며 애써 밝게 웃었다. 태풍 사장이 그 특유의 능글맞은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다.


​“대단하다기보다, 좀 지독한 곳이죠. 특히 오늘 요리는 저희 셰프가 작정하고 바다를 통째로 냄비에 가둬버렸거든요. 떠나시는 길에 발목이라도 잡고 싶어서 말이죠.”


​첫 번째 코스로 가벼운 허브 샐러드가 나간 뒤, 드디어 오늘의 메인 요리 브야베스가 등장했다. 황금빛 국물 위에 눈부시게 하얀 생선 살과 선홍빛 새우가 꽃처럼 피어 있었고, 그 옆에는 마늘 향이 진한 ‘루이(Rouille)’ 소스를 듬뿍 바른 바게트가 곁들여졌다.


​“언니, 일단 국물부터 한입 먹어봐요. 장팔 아저씨가 아침부터 기도하면서 만든 거래요.”


​현정 언니가 수저를 들어 국물을 한 입 머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언니의 모든 동작이 일시 정지됐다.


​“…어머.”


​언니의 큰 눈에 순식간에 굵은 눈물이 고였다.


​“지수야, 이거 이상해. 분명히 처음 먹어보는 맛인데, 왜 이렇게 익숙하지? 할머니들이 보건소 올 때 챙겨주던 찐 옥수수 냄새 같기도 하고, 새벽에 잠 안 와서 방파제 나갔을 때 그 짠 냄새 같기도 해. 이 안에 이 바다마을 다 들어있는 것 같아.”


​주방 문틈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장팔 아저씨가 담배 대신 입에 문 이쑤시개를 굴리며 낮게 읊조렸다.


​“그게 바로 샤프란과 해산물 단백질이 결합했을 때 나오는 감칠맛의 마력이지. 뇌는 새로운 맛이라고 인지하지만, 몸은 이 바다에서 보낸 지독한 시간들을 기억하는 거야.”


​태풍 사장이 기다렸다는 듯 와인 잔을 채우며 거들었다.


​“서울에 가면 화려하고 비싼 음식은 널렸겠지만, 아마 이 국물처럼 진한 진심은 찾기 힘들 겁니다. 서울살이 힘들 때마다 이 맛을 떠올리세요. 이 바다가 당신을 키웠고, 이 바다의 모든 생명이 당신의 마지막을 배웅하고 있다는 걸요.”


​현정 언니는 결국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친구가 언니의 어깨를 토닥였고, 식당 안에 있던 다른 손님들도 약속이나 한 듯 조용히 언니를 향해 잔을 들어 보였다. 촛불 성의 불꽃이 언니의 눈물방울에 반사되어 보석처럼 빛나는 밤이었다.


​4. 마들렌과 구급함


​밤이 깊어지자 식당은 이별의 장소에서 작별 축제의 장소로 변했다. 장팔 아저씨는 쑥스러운 듯 주방에서 나와 직접 구운 ‘마들렌’ 접시를 내놓았다.


​“프랑스 소설가 프루스트는 마들렌 한 조각을 차에 적셔 먹으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았다고 하죠. 현정 씨도 서울에서 이 마들렌을 먹을 때마다 우리 식당의 지랄 맞은 아저씨들을 기억해 줘요. 우리가 여기서 기도하고 있을 테니까.”


​장팔 아저씨의 투박하고 쑥스러운 인사에 언니가 겨우 웃음을 되찾았다. 언니는 가방에서 작은 봉투 네 개를 꺼냈다. 세 남자와 나를 위해 준비한 휴대용 구급함이었다.


​“아저씨들, 맨날 싸우고 다치지 마시라고요. 지수 너도 알바하다가 데이지 말고.”


​태풍 사장은 구급함을 보며 “우리에겐 장발의 독설을 치료할 연고가 필요했는데 이게 딱이다”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장팔은 “네 입이나 다물어”라며 프라이팬을 잡는 시늉을 했다. 늘 보던 풍경이었지만 오늘은 그 풍경마저 코끝이 찡했다.


​밤 11시, 언니가 식당 문을 나설 때 장팔 아저씨는 평소처럼 담배를 물려다 멈추고, 언니의 등을 향해 아주 작게 성호를 그어주었다.

​손님들이 모두 떠난 뒤, 우리 넷은 남은 브야베스 국물에 딱딱한 빵을 찍어 먹었다. 식어버린 국물이었지만 그 속에는 여전히 바다의 짠기와 온기가 뭉근하게 남아 있었다.


​“야, 태풍. 간호사 가니까 이제 우리 아프면 어떡하냐?” 장팔 아저씨가 물었다.

​“어떡하긴. 네가 요리에 술 좀 덜 넣고, 내가 구라 좀 덜 치면 건강하게 살겠지.”


​태풍 사장이 남은 와인을 들이키며 답했다. 곰탱 아저씨는 구급함에 든 밴드 하나를 떼어 장팔 아저씨의 낡은 주방화 찢어진 부위에 붙여주었다.


​“지수야, 너도 나중에 떠날 때 저 간호사처럼 울 거니?”


​태풍 사장의 물음에 나는 괜히 목이 메어 설거지통만 쳐다봤다.


​“모르죠. 근데 아저씨들이 오늘처럼 맛있는 거 해주면… 생각 좀 해볼게요.”


​바다 위로 밤안개가 낮게 깔리고 있었다. 육지로 떠나는 사람과 바다를 지키는 사람들. 그 사이를 연결하는 것은 3시의 요새에서 피어오른 황금빛 국물 향기뿐이었다.


​나는 식당 문을 잠그며 마지막으로 촛불 성을 보았다. 오늘 밤, 성의 높이는 한층 더 높아져 있었다. 누군가의 눈물과 이별의 온기를 먹고 자란 파라핀의 성이 밤바다의 등대처럼 고요히 빛나고 있었다.


​[지수의 주방 관찰 일지: 오늘의 요리]

​메뉴: 바다의 영혼을 농축한 연금술, '브야베스(Bouillabaisse)'

​1. 메일라드 반응과 유화의 미학

장팔 아저씨가 오늘 유난히 히스테리를 부리며 동냄비를 볶아대던 이유를 알았다. 도미 뼈와 가재 껍질을 오븐에 바짝 구워 '메일라드 반응'을 이끌어내는 건, 단순히 색을 내는 게 아니라 재료가 가진 감칠맛의 끝판왕을 소환하는 의식이었다. 펄펄 끓는 육수 위로 기름과 물이 하나로 섞이는 '유화' 과정을 거칠 때, 주방의 공기는 이미 인간의 영역을 벗어나 있었다.


​2. 1g의 샤프란, 그리고 1초의 성호

금보다 비싸다는 샤프란 한 꼬집이 들어가는 순간, 국물은 영롱한 황금빛으로 변했다. 장팔 아저씨는 그걸 넣으며 아주 작게 성호를 그었다. 평소의 니코틴 섞인 루틴이 아니라, 떠나는 사람의 앞날이 이 국물 색처럼 환하길 바라는 주방장의 진짜 기도였을지도 모른다.


​3. 위로라는 이름의 레시피

서울로 떠나는 현정 언니의 눈물 한 방울이 브야베스 국물에 섞였다. 52가지 향미 분자가 혀를 때린다는 아저씨의 잘난 척은 허세가 아니었다. 언니에겐 그 국물이 단순히 '맛있는 요리'가 아니라, 이 섬에서 보낸 지독하고도 따뜻했던 시간들을 통째로 삼키는 경험이었으니까.


​[지수의 사담: 03:00 PM 뒷이야기]

​태풍 사장이 촛불 성에 초를 하나 더 얹으며 그랬다. "떠나는 뒷모습에선 짠맛이 난다"라고.

경영학 전공자인 내가 보기엔 그저 인건비 안 나오는 비효율적인 송별회였지만, 이상하게 오늘은 그 계산기가 두드려지지 않았다.

​언니가 남기고 간 구급함 속 밴드 하나를 곰탱 아저씨가 장팔 아저씨의 낡은 신발에 붙여주는 걸 봤다. 이 아저씨들, 진짜 대책 없는 낭만주의자들이다. 나도 언젠가 이 '유리 감옥'을 떠나는 날, 장팔 아저씨의 황금빛 국물을 먹으며 저렇게 펑펑 울게 될까?

​"아저씨, 근데 다음엔 샤프란 말고 진짜 금을 한 돈 넣어주면 안 돼요? 그게 내 서울 생활엔 더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 같은데."

​라고 말하려다 참았다. 오늘만큼은 이 비효율적인 온도가 꽤 괜찮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