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부. 항해의 재개: 바다는 멈추지 않는다
[콘크리트 숲에서도 파도는 친다]
도시는 늘 먼저 소리를 냈다.
아침의 도시는 밤보다 시끄러웠고, 낮보다 잔인했다. 지하철 개찰구를 통과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빠르고 날카로웠다. 누구도 멈추지 않았고, 멈춘 사람은 곧 장애물이 되었다. 전광판에서는 여전히 성공과 소비가 번갈아가며 번쩍였다. 숫자와 속도, 비교와 순위. 도시의 파도는 바다보다 훨씬 규칙 없이 몰아쳤다.
사내는 그 파도 한가운데에 섰다.
낡은 배낭 하나를 멘 채였다. 배낭은 가벼웠지만, 어깨에 전해지는 감각은 분명했다. 그는 개찰구 앞에서 잠시 멈췄다. 뒤에서 누군가 짜증 섞인 숨을 내뱉었다.
“앞에 좀 가시죠.”
사내는 반사적으로 발을 옮기려다, 멈췄다.
등대의 계단을 내려오던 마지막 밤이 떠올랐다. 한 계단, 한 계단. 서두르지 않아도 무너지지 않았던 그 감각. 그는 숨을 한 번 고르고 천천히 발을 내디뎠다. 도시의 리듬과 자신의 리듬이 처음으로 어긋나는 순간이었다.
밖으로 나오자, 찬 공기가 얼굴을 스쳤다.
사내는 무의식적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바다 쪽이었다. 습관처럼 굳어진 동작이었다. 물론 이곳에서는 등대가 보이지 않았다. 대신 회색 건물 사이로 흐릿한 하늘만이 걸려 있었다. 그는 그 하늘을 잠시 바라보다 고개를 내렸다.
가장 먼저, 예전에 운영하던 회사 건물 앞으로 갔다. 간판은 사라졌고, 유리문에는 다른 회사의 이름이 붙어 있었다. 내부는 텅 비어 있었다. 예전 같으면 손잡이를 붙잡고 한참을 서 있었을 것이다. 안으로 들어가지도, 완전히 돌아서지도 못한 채.
그러나 그는 이번엔 문 앞을 지나쳤다.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이건 끝이 아니다.
물이 빠진 자리일 뿐이다.
노인의 목소리가 겹쳐졌다.
나간 물을 붙잡으려 애쓰지 말라고. 썰물은 실패가 아니라 정리라고. 바닥을 드러내는 시간이라고. 사내는 화려한 대로를 피해 시장 골목으로 들어섰다.
기름 냄새, 생선 비린내, 사람들의 낮은 목소리가 섞여 있었다. 이곳에서는 누구도 성공을 증명하지 않았다. 대신 오늘을 넘기는 것이 목표였다. 그는 이곳이 좋았다. 등대 아래 마을과 닮아 있었다.
시장 끝자락, 버려진 목재 상자들이 쌓여 있던 작은 창고를 빌렸다. 문을 열자 습기와 나무 냄새가 함께 밀려왔다. 그는 작업대부터 닦았다. 렌즈를 닦듯, 반복적이고 조심스럽게. 작업대 한쪽 구석에는 노인이 건네준 작은 나무 조각을 올려두었다. 별다른 쓸모는 없었지만, 그는 그 조각을 옮기지 않았다. 손에 닿는 위치에 두었다. 부적처럼.
첫 손님은 생각보다 빨리 왔다.
중년의 남자가 깨진 서랍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거, 오늘 안에 되죠? 급해서.”
사내는 서랍을 들여다보았다.
나무가 많이 상해 있었다. 하루 만에 끝낼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시간이 좀 필요합니다.”
남자의 얼굴이 굳었다.
“아니, 이 정도면 그냥 붙이면 되는 거 아니에요? 돈은 이만큼밖에 못 드려요.”
사내의 가슴이 순간적으로 조여 왔다.
예전 같으면 설명했을 것이다. 자신의 실력과 상황을 증명하려 들었을 것이다. 혹은 욱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말하지 않았다.
대신 숨을 한 번 고르고, 서랍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오늘은 어렵습니다.”
짧은 문장이었다.
남자는 투덜거리며 서랍을 들고나갔다.
사내는 잠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 박동을 밀어내지 않았다. 태풍의 외곽이 아니라, 중심에 머무르려 했다. 노인이 가르쳐준 그 자리였다.
그날 저녁, 한 노파가 다리가 부러진 의자를 끌고 왔다.
“이건… 고쳐질까요?”
사내는 의자를 들어 올렸다.
나무의 결을 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됩니다.”
노파는 미소를 지었다.
“기다릴게요.”
사내는 대패를 들었다.
나무를 깎는 소리가 창고 안에 울렸다. 급하지 않은 소리였다. 그 소리는 도시의 소음과 다르게, 목적을 숨기지 않았다. 밤이 되면 그는 창고 문을 닫고 옥상에 올랐다.
도시의 불빛이 바다처럼 흐르고 있었다. 그는 습관처럼 바다 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곳에 등대는 없었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지금도 누군가는 불을 밝히고 있을 거라는 것을.
주머니에서 낡은 회중시계를 꺼냈다.
시계는 여전히 멈춰 있었다. 그는 시계를 보며 시간을 재지 않았다. 대신 오늘 하루의 리듬을 떠올렸다. 숨을 고른 순간들, 말하지 않은 선택들, 버텨낸 침묵들.
그는 알았다.
등대는 섬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누군가를 서두르지 않게 만드는 한마디에도, 부서진 것을 함부로 버리지 않는 손길에도, 자기 리듬을 지키는 침묵 속에도 등대는 있다.
사내는 창고 불을 끄고 문을 잠갔다.
도시는 여전히 소란스러웠다. 내일도 파도는 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제 안다.
항해는 끝나지 않는다.
다만, 중심을 잃지 않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