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1]03:00 PM, 촛불 성의 괴물들
1. 도둑놈 소굴의 양심 가책
“지수야, 너 우리 식당 1인당 식사비가 얼마인지 알지? 대충 봐도 이 동네 웬만한 집세 한 달 치다. 사람들은 우리더러 고급 요리 팔아먹는 날강도, 도둑놈이라고 손가락질해. 근데 왜 굳이 이 구석까지 예약이 밀리는 줄 아니?”
오후 3시 20분. 태풍 사장이 평소보다 더 거만한 포즈로 가죽 소파에 길게 누워 물었다. 며칠 전 폭풍으로 유기견처럼 젖어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다시 빳빳하게 각을 세운 실크 셔츠와 번들거리는 포마드 머리로 돌아와 있었다. 역시 사기꾼의 회복력은 광어보다 질기다.
“글쎄요. 장팔 아저씨 요리에 마약이라도 탔거나, 아니면 세상에 돈 버리는 법을 모르는 부자들이 생각보다 많아서겠죠. 솔직히 저도 여기서 알바비 받으면서 가끔 양심의 가책 느껴요. 스테이크 한 접시에 제 일주일 치 식비가 날아가니까요.”
나의 팩트 폭격에 태풍 사장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창밖을 가리켰다. 거기엔 평소와 달리 곰탱 아저씨가 커다란 보온 도시락 가방들을 낡은 트럭 짐칸에 싣고 있었다.
“오늘 월요일이지? 지수야, 너 오늘은 홀 세팅 천천히 하고 저 곰탱이 따라가서 배달 좀 돕고 와라. 알바비 외에 특근 수당 현찰로 쏴줄게.”
2. 산동네에 흐르는 은빛 소스
트럭은 평소 우리가 식재료 장을 보러 가던 번화가와는 정반대로, 바닷가 마을 안쪽의 가파르고 울퉁불퉁한 비탈길을 따라 올라갔다. 도착한 곳은 쓰러져가는 판잣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마을 끝자락이었다.
곰탱 아저씨가 낡은 문을 두드리자, 허리가 기역 자로 굽은 할머니 한 분이 내다보셨다.
“아이고, 고기 총각 왔는가.”
곰탱 아저씨가 건넨 도시락 용기를 열자, 좁고 어두운 방안에 고급스러운 크림 향이 확 퍼졌다. 할머니의 밥상 위로 장팔 아저씨가 정성껏 다진 안심 스테이크와 입 안에서 녹아내리는 매시드 포테이토가 놓였다. 치아가 약해 고기를 못 드신 지 오래라는 할머니는, 숟가락으로 부드러운 고기를 뜨며 아이처럼 웃으셨다.
“이게 뭔 맛이래. 꼭 구름을 씹는 것 같구먼. 지난번에 준 그 허연 국물(콩소메) 덕분에 내가 무릎 아픈 게 싹 가셨어.”
다음 집은 평생 배를 타다 한쪽 다리를 잃었다는 할아버지의 방이었다. 곰탱 아저씨는 할아버지의 부은 다리를 슬쩍 주무르며, 장팔 아저씨가 이틀 밤낮을 우려낸 투명한 콩소메 수프를 그릇에 부어드렸다.
“이게 그냥 물처럼 보여도, 소 한 마리 기운이 다 들어간 겁니다. 꼭 다 드셔야 해요.”
무뚝뚝한 곰탱 아저씨의 목소리에 진심이 묻어났다.
우리는 그렇게 다섯 가구를 더 돌았다. 기름때 절은 벽지와 낡은 이불이 전부인 공간들에, 장팔 아저씨가 만든 미슐랭급 요리들이 보석처럼 놓였다. 할아버지는 스테이크 소스를 밥에 슥슥 비벼 드시며
"이게 내 인생 마지막 호강일지 모르겠다"며 곰탱 아저씨의 거친 손을 꼭 잡으셨다.
“지수야, 장팔 저 인간이 밤마다 소뼈 수백 번 걷어내며 잠 못 자는 이유가 저거야. 홀 손님들한테 비싸게 받는 돈의 절반은 사실 이 도시락으로 들어가는 셈이지. 가격의 균형을 맞추는 거야.”
3. 가치 환산의 법칙
다시 식당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백미러에 비친 낡은 식당 건물을 보며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오후 5시, 주방으로 들어가자 장팔 아저씨는 땀범벅이 된 채 다시 담배를 물고 있었다.
“아저씨, 콩소메 수프… 그거 만드느라 잠 못 잔 거예요?”
“잠이 무슨 대수냐. 이 짠 바다에서 평생 고생만 한 노인네들이 죽기 전에 제대로 된 요리 한 번은 먹어봐야 할 거 아냐. 지수야, 요리의 가치는 접시 위의 가격표가 아니라 그 요리가 누구의 허기를 어떤 마음으로 채우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거다. 이건 '가치 환산의 법칙'이지.”
오후 7시 정각. 오늘의 예약 손님들은 명품 가방을 든 화려한 중년 여성들이었다.
“어머, 여기 정말 비싸네? 돈값 못하면 항의할 거예요.”
태풍 사장이 촛불 성에 불을 붙이며 우아하게 등장했다.
“손님, 저희 스테이크에는 이 마을의 시간과 셰프의 밤샘 기도가 담겨 있습니다. 아마 세상에서 가장 '비싼' 맛을 보게 되실 겁니다. 그 가격 안에는 누군가의 생존과 누군가의 위로가 보험료처럼 포함되어 있거든요.”
장팔 아저씨는 오늘 메인 요리로 '트러플을 곁들인 오므라이스'를 내놓았다. 평범해 보이지만 속에는 세계 3대 진미가 숨겨진, 인생의 반전을 닮은 요리였다.
4. 고추장과 트러플의 공존
손님들은 한 입을 먹자마자 탄성을 질렀다.
“말도 안 돼! 이 돈이 전혀 아깝지 않네요!”
태풍 사장은 비싼 와인을 따르며 손님들을 응대했다. 평소라면 사기꾼 같아 보였을 그의 뒷모습이 오늘따라 촛불 성보다 더 든든해 보였다.
밤 11시. 모든 영업이 끝나고 세 남자는 평소처럼 식탁에 둘러앉았다. 그런데 그들의 식탁에는 트러플도, 푸아그라도 없었다. 커다란 양푼에 남은 찬밥과 고추장을 퍽퍽 비벼 먹는 그들의 모습은 누가 봐도 시장통 논팽이들이었지만, 나는 더 이상 그들을 한심하게 볼 수 없었다.
“야, 태풍. 오늘 도시락 배달 간 집 할머니가 너 장가 언제 가냐더라. 다음엔 같이 가자. 할머니가 너 참하게 생겼대.”
곰탱 아저씨의 말에 태풍 사장이 콧방귀를 뀌었다.
“미쳤냐? 마음만 먹으면 장가가는 건 일도 아냐. 지수야, 너 오늘 특근 수당은 현찰로 줄까, 아니면 장팔이 만든 명품 마카롱으로 줄까?”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씩씩하게 대답했다.
“현금으로 주세요. 저도 나중에 아저씨들처럼 좀 지랄 맞긴 해도 근사한 어른이 되고 싶거든요. 그 종잣돈으로 쓸래요.”
내 말에 세 남자가 동시에 박장대소했다. 베르나르도 기분이 좋은지 내 발등에 부드러운 몸을 비벼댔다.
[지수의 주방 관찰 일지]
3시의 요새는 도둑놈 소굴이 아니라, 가치를 옮겨 심는 정거장이었다. 가격표 뒤에 숨겨진 0의 개수보다 더 많은 진심이 주방 안에서 펄펄 끓고 있는 곳.
낡은 단칸방에서 떨리는 손으로 스테이크를 드시던 할머니의 미소는, 그 어떤 화려한 리뷰보다 정직한 훈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