Ⅲ부 : 드디어 세상으로 — “태양과 바람의 첫 번째 초대”
벌집 어귀는 평소보다 훨씬 북적거렸다.
"아직 안 왔대?", "해지기 직전인데 어쩌면 좋아."
일벌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숲 쪽을 바라보았다. 알리다 선생님도 평소의 엄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안절부절못하며 날개를 떨고 있었다.
그때였다. 숲 저편에서 "부우웅—" 하는 낮고 웅장한 소리가 들려왔다. 평소 듣던 말벌의 위협적인 소리가 아니라, 커다란 악기가 울리는 듯한 기분 좋은 진동이었다.
"어머, 저게 뭐야?"
벌들은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노을을 등지고 나타난 것은, 꿀벌보다 서너 배는 큰 몸집에 잿빛 날개를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젓고 있는 신비로운 존재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조아와 친구들이 마치 호위를 받는 공주들처럼 나란히 날아오고 있었다.
"선생님! 저 왔어요!"
조아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알리다 앞에 내려앉았다. 조아의 뒷다리에는 예쁜 노란색 꽃가루 경단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알리다는 안도감에 울컥했지만, 곧이어 조아 뒤에 멈춰 선 거대한 손님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조아, 이분은… 누구시니?"
거대한 날갯짓으로 허공에 가만히 멈춰 서 있던 손님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용감한 일벌들의 스승님. 저는 숲의 떠돌이, 벌꼬리박각시라고 합니다. 겁먹지 마세요. 전 침도 없고 싸움을 좋아하지도 않는 평화주의자입니다."
박각시는 알리다의 긴장을 풀어주려는 듯, 긴 입을 도르르 말아 올리며 빙그레 웃어 보였다. 알리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박각시라고요? 소문으로만 들었는데… 실제로 뵙는 건 처음이군요. 우리 조아를 도와주셨다면서요?"
"별말씀을요. 우린 사실 사촌이나 다름없는 사이잖아요."
박각시는 공중에서 우아하게 한 바퀴 돌며 자기소개를 이어갔다.
"저는 나방의 일종이지만, 해가 쨍쨍한 낮부터 은은한 달빛이 비치는 밤까지 가리지 않고 활동합니다. 그래서 어떤 벌들은 저를 '낮에도 날아다니는 새'로 착각하기도 하죠. 저는 꿀벌들처럼 꽃가루를 바구니에 담지는 못하지만, 제 몸에 돋은 보송보송한 털에 꽃가루를 묻혀 이 꽃 저 꽃으로 옮겨줍니다. 꽃들 입장에서는 저나 여러분이나 고마운 친구들이지요."
알리다와 주변의 벌들은 박각시의 친절한 설명에 귀를 쫑긋 세웠다. 박각시는 꼬리 끝에 달린 털을 살랑거리며 말을 덧붙였다.
"보세요, 이 꼬리가 새 같아서 다들 벌새라고 부르기도 해요. 날개를 아주 빠르게 앞뒤로 저어서 공중에 딱 멈춰 설 수도 있고요. 전 이 기술로 좁은 틈에 핀 꽃들의 꿀도 쏙쏙 잘 찾아 먹는답니다. 오늘 조아를 구한 건, 이 아이의 날갯짓에서 꽃을 향한 진심을 느꼈기 때문이에요. 거미줄에 걸린 채로도 끝까지 꽃가루를 놓지 않더군요."
알리다는 조아의 엉망이 된 날개와 대견한 꽃가루를 보며 코끝이 찡해졌다.
"박각시님, 우리 아이를 지켜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우리 벌집의 문은 당신에게 언제든 열려 있을 겁니다."
"고마워요, 스승님. 하지만 전 숲의 바람을 따라 계속 여행하는 체질이라서요. 조아! 나중에 깊은 밤에 길을 잃거나 맛있는 꿀꽃이 어디 있는지 궁금해지면 언제든 내 진동을 불러줘. 내가 밤의 항로를 알려줄게!"
박각시는 화살처럼 빠른 속도로 노을 속으로 사라졌다. 벌집 입구에는 한참 동안 박각시가 남긴 기분 좋은 진동이 감돌았다.
알리다는 조아의 어깨를 살며시 감싸 안았다.
"조아, 오늘 고생 많았다. 네가 가져온 이 노란 꽃가루는 우리 벌집의 가장 소중한 보물이 될 거야. 그리고… 숲에 멋진 친구를 사귄 걸 진심으로 축하한다."
조아는 비로소 긴장이 풀려 벨라와 친구들 품에 폭 안겼다. 오늘 조아는 무서운 거미줄을 만났지만, 그보다 훨씬 더 크고 따뜻한 숲의 우정을 배웠다. 벌집 안으로 들어가는 조아의 마음속엔 내일 또 만날 숲의 풍경들이 무지개처럼 펼쳐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