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장. 벌집의 심장: 여왕벌의 미소

​Ⅲ부 : 드디어 세상으로 — “태양과 바람의 첫 번째 초대”

by 산 사람


​박각시와의 짧지만 강렬했던 만남이 지나고, 벌집 안은 조아의 이야기로 술렁였다. 하지만 조아에게는 그보다 더 심장을 뛰게 하는 소식이 전해졌다. 벌집의 모든 생명을 품은 어머니, 여왕벌이 조아를 직접 보고 싶어 한다는 전갈이었다.

​"선생님, 정말 여왕님께서 저를 부르신 게 맞나요? 제가 혹시 무슨 실수라도 한 건 아니겠죠?"

​조아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알리다 선생님의 뒤를 따랐다. 평소 엄격하던 알리다 선생님도 오늘만큼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조아를 돌아보며 대답했다.

​"실수라니, 오히려 반대란다. 너의 용기 있는 행동이 여왕님의 귀에까지 들어간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다만, 그곳은 우리 벌집의 가장 신성한 곳이니 몸가짐을 바르게 해야 한다."

​알리다 선생님을 따라 도착한 곳은 평소 조아가 일하던 거칠고 분주한 통로와는 차원이 달랐다. 공기 중에는 코끝을 마비시킬 만큼 진하고 달콤한 로열젤리 향기가 안개처럼 자욱하게 깔려 있었다. 드디어 마주한 여왕의 방. 그곳에는 조아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압도적이고 눈부신 존재가 자리하고 있었다.


# ​[생명의 근원과 마주하다]


​여왕벌의 몸은 일벌인 조아보다 두 배는 더 길고 매끄러웠다. 특히 금빛으로 빛나는 거대한 배는 보는 것만으로도 경외심을 불러일으켰다.

​"세상에... 저렇게나 크시다니."

​조아는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알리다 선생님이 조그만 목소리로 덧붙였다.

​"여왕님은 일생의 대부분을 알을 낳는 데 바치신단다. 전성기에는 하루에 2,000개에서 3,000개에 달하는 알을 낳으시지. 매일 자신의 몸무게와 맞먹는 양의 생명을 몸 밖으로 밀어내시는 거란다. 저 거대한 배는 우리 종족의 미래를 품고 있는 셈이지."

​여왕벌 주위에는 '시녀벌'이라 불리는 젊은 일벌들이 그림자처럼 붙어 그녀를 돌보고 있었다. 시녀벌들은 쉴 새 없이 여왕의 몸을 핥고 영양분을 공급했다.

​"선생님, 시녀벌들이 왜 저렇게 한시도 쉬지 않고 여왕님을 보살피는 건가요?"

​조아의 물음에 알리다가 속삭였다.

​"여왕님은 스스로 음식을 먹거나 배설할 시간조차 아껴가며 알을 낳아야 하거든. 그래서 시녀벌들이 입에서 입으로 '로열젤리'를 전달해 드리는 거야. 오직 생명을 만드는 일에만 전념하실 수 있도록 말이지."

​그때, 조아는 여왕벌의 거대한 겹눈과 마주쳤다. 무서운 권위를 예상하며 고개를 숙였지만, 전해지는 눈빛은 뜻밖에도 깊은 자애로움이었다. 말소리가 들린 것은 아니었지만, 여왕의 몸에서 배어 나오는 은은한 향기가 조아를 포근하게 감싸 안았다.

​'이 향기는 뭐지? 마음이 너무 편안해져...'

​조아가 느낀 것은 '여왕 물질'이라 불리는 페로몬이었다. 이는 벌집 안의 수만 마리 일벌이 서로를 가족으로 인식하고 질서를 유지하게 만드는 신비로운 화학 신호였다.

​"고개를 들거라, 어린 딸아. 네가 밤의 항해사에게 길을 물었던 그 용감한 아이로구나."

​여왕벌의 목소리는 입이 아니라 공기의 떨림을 타고 조아의 가슴으로 직접 스며들었다. 조아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여왕님... 부족한 제가 감히 박각시님의 도움을 받아 돌아왔습니다."

# ​[고귀한 헌신, 그리고 축복]

​여왕벌은 조아의 뒷다리에 묻은 빛바랜 꽃가루 흔적을 가만히 응시하며 미소 지었다.

​"부족하다니, 당치 않다. 너는 오늘 아주 귀한 일을 해냈어. 내가 이 어두운 방에서도 숲의 계절을 느끼고 끊임없이 동생들을 길러낼 수 있는 건, 너처럼 용기를 내어 밖으로 나가는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란다. 너희의 힘찬 날갯짓이 곧 나의 호흡이지."

​조아는 가슴 밑바닥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여왕벌은 화려하게 군림하는 왕이 아니었다. 스스로를 거대한 생명 공장으로 내던진 채, 평생 어둠 속에서 알을 낳으며 공동체를 지탱하는 가장 고독하고 숭고한 존재였다.

​"여왕님은 얼마나 오랫동안 이곳에 계시는 건가요?"

​조아가 조심스레 묻자 여왕이 인자하게 대답했다.

​"나는 약 3년에서 5년이라는 시간을 산단다. 일벌인 너희보다 훨씬 긴 시간이지만, 그동안 단 한순간도 알 낳기를 멈추지 않지. 내가 멈추면 우리 벌집의 심장도 멈추기 때문이란다."

​"조아, 밤의 길을 배운다는 건 우리 종족에게 아주 특별한 지혜가 될 것이다. 빛을 사랑하되 어둠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는 법을 익히거라."

​여왕벌의 몸짓에 시녀벌 한 마리가 다가와 조아에게 로열젤리 한 방울을 건넸다. 입안에 닿는 순간 번지는 황홀한 맛에 조아의 피로가 씻겨 내려갔다. 그것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여왕이 자신의 생명력을 나누어주는 축복의 의식이었다.

# ​[단단해진 비행의 결심]

​"가서 쉬어라, 어린 항해사여. 네가 가져온 꽃가루는 내일 태어날 네 동생들의 튼튼한 날개가 될 것이다."

​방을 나오며 조아는 다시 한번 뒤를 돌아보았다. 수많은 시녀벌에 둘러싸인 채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며 알을 낳고 있는 여왕벌의 뒷모습이 보였다. 조아는 이제 알 것 같았다. 왜 알리다 선생님이 그토록 엄격했는지, 그리고 왜 수만 마리의 벌이 이 거대한 심장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거는지 말이다.

​벌집 입구로 돌아온 조아는 깊어가는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여왕님, 약속할게요. 어둠 속에서도 절대 길을 잃지 않는 튼튼한 날개를 가질게요."

​여왕벌의 축복과 박각시의 약속을 가슴에 품은 조아의 날개는, 전보다 훨씬 단단하고 무거워진 기분이었다.

조아의 봄을 향한 진짜 비행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Ⅲ부: 드디어 세상으로 — 태양과 바람의 첫 번째 초대]를 마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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