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소비
빠듯한 생활인데 사실 먹는 데 들어가는 돈이 대부분이다. 인생 별거 있나. 잘 먹으면 그게 행복이고 건강이다 싶다. 도시에 살 때는 파스타, 떡볶이 예의 그런 음식들에 환장했었다. 물론 지금도 도시에 가면 그런 걸 찾아 먹는다. 하지만 시골지역에 와서 신선한 제철식재료들의 맛을 알고 나니 갖은 양념도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삼삼하게 갓한 음식이 젤 맛있고 또 먹어도 맛있는. 적어도 내 주위에 귀농귀촌한 사람들 대개가 그런 거 같다. 식비에 돈이 가장 많이 들어가고 유기농, 무첨가, 자연산 이런 거에 열광하는.
영양의 비밀
찬 겨울에는 해산물들이 유독 땡겼다. 언젠가부터 겨울이면 꼭꼭 챙겨먹는 과메기, 꽁치로 말린 것과 청어로 말린 것 둘 다 먹어보았는데 알이붙은 노란 청어초밥을 너무 좋아하지만 과메기로는 꽁치가 더 기름이 많이 올라 맛나다. 과메기가 비리다고 하는 사람들은 청어가 더 담백하여 좋아할 수도. 어릴적부터 해산물을 먹어온 덕분인지 사주에 토가 많아 비위가 센 덕분인지 나는 비린내를 사랑한다. 요즘 과메기는 다시마와 물미역, 김, 마늘과 마늘쫑, 초장까지 세트로 팔기 때문에 그대로 접시에 보기좋게 담아 나눠먹기 좋은 음식이다. 호불호가 심해 몇 점씩만 먹어도 충분하다. 농장에 4만원짜리 한 상자 주문해서 한두점씩 나눠먹었는데 고맙다는 인사를 얼마나 들었던지 가격대비생색내기가 '갑' 이었다.
우쭐해진 나는 과메기를 질겅대며 겨울철의 또다른 별미인 살조개에 대해 신나게 떠들었다. '영양의 비밀'이라는 책에서 그 옛날 평원을 달렸던 호모 사피엔스들처럼 원소결핍을 느끼고 그때마다 다양한 음식을 섭취하랬는데 나는 온갖 영양제를 챙겨 먹으면서도 새롭게 먹고 싶은 게 생각난다. 사주에 식상이 많은 사람은 그것이 입과 관련된 말이거나 먹을 복이거나로 비유되는데 나는 식상이 세개나 되어 말도 많고 먹고 싶은 것도 많다. 맛난 걸 먹으면서 또 다른 맛난 걸 얘기하는 건 팔자인가봉가.
살조개는 원래 새조개를 부르는 이름이라지만 충남에서는 참꼬막을 의미하는 말로 노포에서 처음 들었다. 하얀 새꼬막과 달리 갯벌처럼 회색이 더 돌고 골이 깊은데 양식을 하지 못해 값이 두 배 가량 비싸다. 살조개 맛은 비릿하다고도 할 수 있는데 실제로 철분이 많이 들어있다고 한다. 임신하고 참꼬막이 엄청 땡겼으니 정말 몸이 필요한 음식을 찾았던 건지. 슬프게도 이제 동네에서는 살조개를 파는 곳이 없어서 올해는 인터넷으로 시켜서 집에서 박박 뻘을 씻어 삶아 먹었다. (포인트는 조개가 입을 벌리기 직전에 불을 꺼야 한다!!) 간도 없이 갓 삶은 꼬막을 따 먹으면 넘나 탱글하고 바다향이 물씬한데 이건 반찬가게의 꼬막무침이나 프랜차이즈 꼬막비빔밥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숟가락을 비틀어 입을 열고 후룹후룹, 순식간에 조개껍데기만 쌓였다.
그렇게 이번 겨울 굴과 과메기와 참꼬막을 잘 챙겨 먹었으니 이제 봄손님을 맞이해야 한다. 벚꽃이 피면 바지락에 살이 차오를 것이고 쭈꾸미가 낙지보다 맛난 계절이 온다. 하지만 그 전에!! 땅기운 받은 것들 먼저!!! 냉이와 도라지, 쑥 같은 봄나물들! 농장의 와일드루꼴라까지 들깨를 넣고 초무침을 해서 같이 먹으면 입안이 새콤달콤 쌉싸래 잔치다. 맛있는 거 먹는데 왠지 뿌듯한, 입에도 잘하고 몸에도 잘한 느낌.
당뇨약을 먹으면서 예전보다 배부름은 빨리 인지하게 되었지만 (그래서 처음에 주사에서 먹는 약으로 바꿨을 때 메슥거림을 한참 겪었다) 너무 맛나고 먹는 순간이 행복한 건 여전하다. 오히려 길티 플레저로 한 입 넣었을 때 전보다 더 집중하고 소중하게 음미하게 되는 것도 있다. 아이를 키우면서 남이 해주는 밥이 얼마나 감사하고 맛난 것인지 알게 되었기에 직접 기른 농산물을 손질해서 해주시는 나물반찬과 국, 찌개 육해공 오색 집밥은 매일매일 받는 선물이다.
어느날부터 급격히 떨어진 체력과 이상증상은 당뇨 때문인지 노화 때문인지 봄 때문인지 코로나 때문인지 아니면 내가 모를 병이 생긴 건 아닌지, 최근들어 나를 지나치게 위축시키고 있었다. 이런 건강염려는 코로나로 인해 "혹시 내가? 하며" 보다 섬세하게 몸의 이상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면서 겪고 있는 전 국민적인 증상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통증이란 놈은 촉각이나 후각처럼 자극이 세질수록 둔해지는 보통의 감각들과 달리 한번 아프고 나면 더 예민해지는 별종의 감각이라 내가 예민해진 건지도. 40대에 마녀체력을 기르는 사람들도 한참 어린 아이를 키우며 일하는 나에게는 먼 얘기같다. 점점 더 넘치는 아이의 에너지와 감정기복을 받아내는 것만으로도 벅참을 느낀다. 애 다 클 때까진 건강해야 하는데. 괜히 조손가정 아이 돕기 광고 같은 거에 마음이 찡하고...
이상한 두통과 손발 저림 등으로 요며칠 더 그랬는데 농장서 밥 먹고 나서 봄볕광합성&커피 타임에 50대 언니(역시 언니들은 지혜를 나누어준다) 한 명이 "봄이라서 그런가 요즘 왜이렇게 졸리죠?"하는 순간 "저도요!" 하면서 마음이 풀리더니 "주변이 죄다 코로나인 걸로 보아 나도 앓았을 법한데, 체력도 없는데 맛난 거 먹고 버틴 것 같다"는 말에서 퍼뜩 기운이 났다.
18년 살다 세상을 뜬 내 첫 고양이는 마지막엔 시력을 잃었고, 몇 번을 쓰러졌었다. 안락사 생각도 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 건 그 아이의 식욕 때문이었다. 앞도 안 보이고 줄줄 설사를 하는데도 어찌나 끝까지 열심히 찹찹찹 와그작와그작 꼴딱꼴딱 맛나게 먹던지. 둘째고양이보다 작고, 잘 안 움직이고, 잔병치레도 많이 했었는데 예상과 달리 둘째가 13살에 먼저 가고 이 녀석 혼자 더 오래 살았다. 사료 가리는 것도 없었고 인간 음식도 꼭 맛을 보아야 했다. 먹겠다는 의지는 곧 살고자 하는 의지인 걸까. 골골 백년이라고, 내 분신 같던 그 녀석을 생각하니 힘이 난다. 내 먹성이 나를 장수로 이끄리라.
다정함의 과학
최근에 하지현의 오디오클립에서 '다정함의 과학'에 대한 책 소개를 하는 걸 들었다. 토끼 효과. 기름진 음식을 먹이며 일부러 살을 찌운 실험실 토끼들 중에 유난히 건강한 집단이 있었는데 확인해보니 새로운 연구원이 애지중지하며 키운 실험토끼들이었다고 한다. 같은 음식을 먹어도 자주 안아주고 쓰다듬고 애정을 준 토끼들이 더 건강했다는 실험, 먹는 것보다 애정이 더 중요하다는 실험. 그리고 캥거루 효과. 약이 없어 열심히 안아주기만 한 보육원? 영아들이 병을 잘 이기고 자란 사례들. 그래서 무엇을 먹는지도 중요하지만 누구와 어떻게 지내는지도 중요하다는 이야기. 영국 노인의 75%는 일주일 동안 안부인사를 건네는 사람조차 없다고.
마을 이장님과 사모님이 부엌을 하시면서 당뇨 등의 위험수치 등이 나아진 건 이장님의 식성에만 맞춰왔던 식단이 여러 사람을 대상으로 다양해진 것도 있고 물리적으로 작게는 수 명에서 많게는 수십 명을 먹이느라 부엌 안에서 쉴새없이 다듬고 움직이신 덕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매일 같이 여러 사람이 서로의 안부를 묻고 이야기를 나누는 덕분도 크지 않을까. 책 ‘행복의 기원'에서 말하듯 '모여서 맛난 걸 먹는 것' 그것이 우리 뇌가 알고 있는 행복의 원형이기 때문에.
나 역시 농장에서 제철음식을 먹으며 맛난 얘기를 떠들고 일상적으로 안부를 주고받는 것이 행복하다. 일상의 맥락을 알고 있어 1부터 10까지 일일이 얘기하지 않아도 어제 4까지 했으니 오늘은 5만 얘기해도 되는, 아니 10까지 다 얘기해도 처음인 척 또 들어주는 무심한 듯 다정한 여럿. 속으로 질병을, 나이듦을 생각하며 침울해하다 사람들과 그 얘기를 나누는 순간 기분이 나아지는 건 그래서였을까. 내가 아프다는 건 다를 게 없는데 같이 그런 걸 겪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나는. 그래서 농장에서 다정한 사람들과의 수다는 나에게는 돈주고도 살 수 없는 귀한 건강식품이다.
아이아빠와 갈라서기를 결심한 것중에 큰 이유도 그거였다. 같이 먹는 밥상이 즐겁지 않았다. 편하지 않았다는 게 더 맞겠다. 입맛이 없어졌고 매끼가 스트레스였다. 먹는 것이 까다로운 사람이 두 사람인 건 돌봄초보자인 나에게 너무나 힘들었다. 아이 외에 대화가 없었고 내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다. 어느 순간 내가 뭘 먹고 싶은지도 몰랐다. 그냥 이번 끼니도 넘어갔구나였다. 나는 그렇게 먹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이었는데. 인생 처음으로 밥맛을 잃어서 살이 빠졌다. 마지막으로 같이 먹은 음식에 나는 체했고 아이는 토했다. 집에서 차리건 밖에서 먹건 그 밥상으로 돌아갈 자신이 도무지 안 났다. 우울증을 겪은 친구가 해준 말이 있다. 퇴근하고 집에 와 혼자 하는 맥주 한 잔이 하루의 낙이었는데 한동안은 생각도 안 났다고, 그러다 약을 먹고 상담을 하며 나아지고 있구나를 느낀 게 다시 그 맥주 한 잔이 생각나서였다고.
지금은 농장에서 여럿이 떠들며 내가 고르지 않아도 가장 맛나고 가장 먹고 싶었던 것들을 먹는다.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농장에 가지 않는 날이면 사람들을 만나 당뇨약 하나 삼키고 맛난 외식을 한다. 너무 힘이 없는 저녁엔 배달을 하지만 보통은 아이가 먹을 수 있는 간단한 것을 만들고 샐러드를 정기 구독해 곁들여 먹는다. 샐러드는 지역대학을 나온 청년들이 창업한 곳으로 내가 아는 농장들에서 난 풀을 주재료로 매번 드레싱과 메뉴를 바꾸어 준다. 아이는 못 먹지만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주문하기도 한다. 별다른 요리가 필요없는 살조개나 과메기 같은, 또는 밀키트. 요리의 스트레스는 줄이고 먹는 즐거움을 만끽하는 방향으로 소비한다. 그렇게 마련된 저녁시간엔 아이가 오물거리는 걸 보기만 해도 행복하다. 아이는 별것도 아닌 계란프라이며 즉석튀김 요리를 두고도 엄마에게 '최고'라고 엄지를 내밀어준다. 밥상머리 교육이 중요하다 생각해서 저녁시간을 함께 즐길 수 있을 때까지는 자리에 바로 앉아 스스로 먹는 교육의 장으로 집중한다.
맨처음 지역에 내려와 텃밭 있는 농가주택을 얻었던 때가 생각난다. 지역신문기자와 텃밭일을 하며 기사도 엄청 써대고 온갖 농산물도 재배하고, 아궁이에 나뭇가지 태우고 참 유무형적으로 생산적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농사를 지을 때도 씨앗이며 농기구며 소비는 일어난다. 시골집의 겨울난방비는 얼마나 비쌌던가. 그때 나는 엄청나게 생산성이(?) 높았지만 돈과 건강의 잔고는 점점 더 바닥이 났었다.
지금은 아파트에 살면서 농촌을 소비한다.
소비로 위안을, 다정함을, 건강을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