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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아니 Mar 29. 2023

단골 카페를 위한 10가지 기준

내돈내산

지역신문 기자였던 2012년에 카페에 대한 기사를 쓴 적이 있다. 5개 카페의 주인장들의 스토리와 카페들의 특징에 대해 썼었다. 그때 이미 대한민국의 커피 소비량은 전세계 3~4위라고 했었다. 하지만 지역의 나이드신 분들은 아메리카노를 마시지 않았다. 치즈케이크가 너무 먹고 싶었던 어느날 밤에 프랜차이즈 카페를 가서 냉동된 것을 사오며 기뻐하기도 했었다. 


10년이 지난 지금은 1인당 평균 하루 한 잔 마시는 수준이고 인구당 카페 수는 전세계에서 가장 높다고 한다. 그리고 그사이 시골 면단위까지 카페가 생겼다. 통계지리정보서비스의 생활업종 통계를 보니 우리 군에만 190개다. 인구 10만 지방도시에 190개 카페, 재밌는 건 호프 및 주점은 200여 개라고 한다. 


카페에 가보면 모든 연령층을 만날 수 있다. 중년의 여성들은 물론 아저씨들끼리도 삼삼오오 마시고 있다. 처음에는 소자본 창업 느낌의 1인 카페가 많았다면 지금은 대형화 추세다. 티켓다방으로 돈을 번 사장의 자녀가 가업(?)을 물려받아 프랜차이즈 카페를 연 경우도 있고, 퇴직하거나 귀촌한 중년들이 연 카페도 있고, 한옥이나 구옥을 리모델링해 인스타감성의 디저트를 파는 곳도 있다. 커다란 양곡창고를 개조해 만든 곳도 있고 전국 유행을 따라 4층 규모의 대형 베이커리 카페도 들어섰다. 바다뷰, 산뷰를 멋지게 담은 카페도 있다. 군 단위에 가장 많은 다방이 있던 곳이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스벅이 2개나 성업중에 있다는 게 동네부심이다. 일상 새로운 일이 없는 동네에서 새로 생긴 식당과 카페는 화제다. 나는 커피를 별로 즐기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니 지역의 카페를 대부분 가봤다. 그런데도 생각해보면 두 번 가게 되는 카페는 꽤나 한정적이다. 특히 혼자 작업을 하기 위해 카페를 찾을 때는 항상 고민하게 된다. 나름의 작업용 카페 기준이라는 게 있는 것 같아 문득 정리해봤다. 


1. 거리

생각보다 중요한 요소이다. 뷰가 좋고 예쁜 카페들은 거리가 있게 마련이다. 바람 쐬러 가기엔 좋으나 일하러 자주 가기엔 왕복 한시간들이 넘어버리니 이동에 부담이 생기더라. 일하는데 늦게 시동이 걸리는 편인 나는 집에 돌아올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집중이 잘 되는데 이동이 멀면 이 시간을 쓸 수가 없다. 자동차로 왕복 30분 이내 카페를 찾게 된다. 지방이라 주차에는 보통 큰 어려움이 없다.


2. 사람이 많은 곳

없는 곳이 아니다. 많아야 한다. 그렇다고 해봐야 지역 기준으로 붐빈다는 건 자리가 4테이블 정도 찾다는 뜻이다. 사람이 너무 없는 곳은 오히려 주인장 눈치가 보이고 이상학 내가 운영을 걱정하게 된다. 작업을 위해 오래 있기엔 사람이 적당히 있는 곳이 좋다. 아주 많아도? 좋았다. 나는 도시 감성을 느끼니까 일이 더 잘 되더라. 그런데 여러 사람들의 소음이 마구 뒤섞인 게 좋지, 특정 테이블의 이야기가 너무 잘 들리는 건 싫다. 괜히 귀를 기울이게 되어서;; 그리고 이 동네는 좁기에 건너가면 다 아는 사이이게 마련이다. 소음 속에서 이어폰을 꽂고 노트북을 하면 군중속의 고독 얼반갬성이 확 일어난다. 내향적이고 예민한 사람들은 소음과 사람들이 너무 자극적이라는데 워낙 안 붐비는 동네라 오히려 사람이 많은 곳이 반갑게 된다.


3. 뷰가 있는 곳

바다나 산이나 도로나 어쨌든 풍경이랄 게 있는 곳. 지방 소도시라 조금만 나서도 시야가 탁트인 곳이 많다. 이런 곳에서 사방이 막힌 아지트 같은 카페는 누군가와 수다를 떨기는 좋지만 혼자 일하기엔 적절치 않다. 주인장 눈치만 더 보게 되는? 다들 수다를 떨고 있으면 혼자서 자리를 차지하기도 뻘쭘하고. 그런데 생각보다 뷰를 잘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를 본다. 오늘 방문한 카페가 그런 경우인데 신록이 가득한 나무가 하늘거리고 바람에 부딪치는 갈대소리와 새소리가 너무 좋아 차를 세웠는데 카페에 들어서니 그쪽이 보이는 창은 너무 작고 흐릿하다. 창이 크게 난 쪽은 굵은 소나무가 몇 그루 보이는 도로뷰다. 밖에서 느꼈던 자연의 감성이 안에선 전혀 느껴지지 않아 아쉽다.


AI bing에게 봄날 카페 이미지를 만들어 달라하니 이렇게 근사한 이미지를 만들어 줬다. 이런 뷰가 있음 맨날 가겠네.


4. 1인용 테이블과 플러그

위의 뷰의 여부에 따라서 인테리어가 가늠되는 게 있는데 방문고객이 차별화되는 것 같기도 하다. 뷰에 신경을 쓰지 않고 수다떨기 좋은 곳들의 의자란 대개 소파 같고 전자제품 플러그를 꽂을 곳도 없기 마련이다. 당연히 혼자 일하는 사람들도 잘 없다. 뷰가 있는 곳은 넓은 창가에 1인용 좌석이 있고 플러그도 있다. 의자는 편한 의자가 아닌 경우가 많지만 작업을 할 때는 의식적으로 거북목 방지 꼿꼿하려고 노력하므로 크게 게의치는 않는다. 누군가를 만나서 카페에 갈 때는 소파, 의자가 중요해진다.


5. 음악이 거슬리지 않는 곳

생각보다 중요한 요소다. 다른 테이블 소리가 너무 시끄럽거나 카페 음악이 귀에 거슬리면 아무리 이어폰을 끼고 있어도 오래 있기 어렵다. 너무 트렌디한 음악이 나오거나 주인장의 취향이 반영되어 작업하는 데 매우 거슬린다. 음악이 나쁘지 않은데 볼륨이 너무 큰 경우도 많다. 요즘 음악 소개에 카페, 잔잔한, 작업하는 데 듣기 좋은, 이런 태깅들은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6. 음료와 디저트가 맛있는 곳

생각보다 작업할 때는 크게 중요하지 않는 부분이다. 공간 사용료라고 생각하기에 후순위로 둔다. 하지만 음료나 디저트가 너무 달거나 기대이하의 커피맛이면 망설이게 되기는 한다. 우리 동네에서 커피맛만 생각하고 가게 되는 곳은 한 군데, 베이커리와 디저트로 두 군데가 떠오를 뿐이다. 그런데 이 두 군데는 또 작업환경으로는 좋지 않아서 테이크아웃을 주로 한다. 이렇게 보니 그 많은 카페들도 차별화의 지점이 있네.



7. 이색적인 공간

새로운 곳은 한번쯤 가고 싶다. 카페는 지방소도시에서 다양한 공간을 경험하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지방소도시의 공간들은 획일적이다. 아파트들이야 전용면적의 효율화를 도모하고 있으니 다 똑같고, 주택이나 구옥들은 거주자를 반영해 예전의 감성에 머물러 변화가 없다. 땅콩집, 세모빌딩 등 비싼 땅값만큼 고민의 흔적들이 묻어나는 도시와는 다르다. 상품 하나를 위해 갤러리화 되는 대도시 백화점이나 숍들과 달리 지방은 옷가게조차 아울렛이다. 공공건물을 이색적으로 만들면 좋겠지만 지방에서 이런 경우는 손에 꼽는다. 그래도 다른 지방소도시들에서는 도시재생사업 등으로 이색 공간이 많이 만들어지는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지방의 대형카페는 동네유지?들이 트렌드를 좇아 만든 것처럼 크기만 한 경우도 많다. 대신 많이 붐비지는 않고 내외부 공간이 널찍해 주로 날씨가 좋지 않은 날 아이와 가보고는 한다. 


8. 키즈 프렌들리

아이와 갈 때는 외부 공간, 어린이 메뉴, 키즈 프렌들리한 점을 중요하게 여긴다. 내가 사는 곳은 엄마들이 주요 고객이라 노키즈카페는 없다. (노키즈존이 있는 곳들은 있다) 아이들도 카페를 가 버릇해서 밥 먹고 카페를 가자고 한다. 아이들용 놀이터나 야외 텐트, 키즈 쿠킹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도 있다. 목적지로는 아니고 경로상에 있으면 한번씩 들르게 된다. 대개 아이를 주요 대상으로 한 카페는 금액이 비싼 편이어서 아이까지 수용하는 카페가 좋다. 노키즈존이 있는 카페는 왠지 괘씸해서 아이가 없이도 가지 않게 된다. 남의 아이는 동식물과 같다. 작업하다가도 아장아장 돌아다니는 아이를 보면 웃게 된다. 한껏 차려입고 만난 엄마들, 몇 걸음을 걷는 아이, 혼자서 음료를 마시며 유아차를 살살 밀고 있는 걸 볼 때면 애틋한 마음에 말을 걸고 싶어질 정도다.   


9. 식물의 유무

굳이 넣자면 식물도. 반들반들 식물이 잘 가꿔져 있는 카페는 뷰가 좋지 않아도 좋다. 식물을 가꾸는 것이 얼마나 힘들지 알기 때문에. 야외를 넓게 식물원처럼 꾸민 곳도 좋지만 이런 곳은 대개 거리가 멀게 마련. 작업용으로는 적절치 않다.다만 조화가 있는 경우에는 다시 잘 안 가게 되더라. 조화가 있는 곳은 희한하게 음료나 디저트도 딱 그만큼만 하는 느낌이든다고 해야 하나. 조화라면 그냥 없는 게 좋다는 생각이 든다. 


10. 주인과 친한 곳

사실 가장 중요한 순위일 수도 있는데 지금은 가장 후순위가 되었다. 10년 전만 해도 내가 아는 카페 주인장은 2명이었다. 지역카페를 소개하면서 친해진 카페 주인들이 있었고 다른 곳에서 만날 정도로 친해졌다. 처음 소도시에 카페를 연 만큼 도시 감성의 친구들이었고 잘 맞았다. 카페가 아지트였고 주인과 수다를 떨거나 누군가에게 소개시켜주려고 무던히도 갔었다. 그 친구들은 지역 카페의 폭발적인 증가 기간에 서둘러 가게를 넘기거나 그만두었다. 그 친구들에겐 잘 된 일이나 단골 카페를 두 곳이나 잃어버린 나는 그 뒤로 이렇게 전전하고 있는 셈이다. 사람이 적은 카페를 자주 드나들다 보면 또 단골이 될 수 있긴 할 텐데 지금은 작업 위주라 다른 사항들이 중요해지면서 오히려 후순위로 두고 있다.


이런 여러 가지 점을 고려해 볼 때 우습게도 작업하러 가장 많이 찾게 되는 곳은 스타벅스다.

1. 거리면에서 집이 벅세권이라 걸어서 갈 수 있다. 

2. 사람이 정말 많다. 번화가라는 게 없는 한낮의 신도시에 빈자리가 없이 줄을 서서 테이크아웃을 해가는 유일한 곳이다. 멋진 오피스룩을 차려입은 젊은 남녀, 인스타 갬성의 옷을 입은 엄마들까지 사람 구경하기 매우 좋다.

3. 스타벅스의 뷰는 신기하다. 별로 볼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들어와 보면 너른 창으로 들어오는 풍경과 햇살, 붐비는 사람들로 대도시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준다. 요즘 스벅들은 해의 뜨고지는 각도까지 고려해서 창을 낸다고 한다. 뷰가 맛집인 곳은 대개 음료가 맛이 없는데, 스벅은 음료에 대한 기대값이 고정적이기에 적어도 실패할 확률은 없다.

4. 지방소도시 카페에서 작업하는 1인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곳이 스벅이다.

5. 적당히 깔아주는 스벅 음악은 귀에 거슬리지 않는다. 돌아서면 무슨 음악인지 생각은 안나는데 볼륨이나 그런 게 지나치게 느껴지지 않는다. 소음 정도에 따라 음량을 조절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다. 대기업의 디테일인가.

6. 음료는 기대하는 맛이고 요깃거리도 대충 있다. 밀가루가 너무 많은 빵보다는 찍어먹을 비스킷이 나오는 스프 정도가 적당하다.

7. 스벅 공간이 이색적이라고 할 수 없지만 뷰, 높은 층고와 큰 창이 대도시의 공간감을 준다.

8. 굳이 식물로 인테리어 하지 않는다.

9. 유아의자, 메뉴 등 키즈프렌들리 하기도 하다.

10. 주인은 모르지만 앱에 등록해 놓은 내 별명을 부르며 음료를 준다. 자본의 힘과 디테일을 새삼 느낀다. 사이렌 등 새로운 서비스까지 지방에 잘 없는 자극들을 경험한다.


다 쓰고 보니 그냥 스벅 찬양인가. 그러고 보면 스벅이 주는 것은 문을 여는 순간 후각적인 커피향과 시각적으 세련된 사람들의 옷차림과 붐비는 풍경, 세련된 음악과 깔리는 소음, 모바일 서비스 등 대도시로 온 듯한 총체적인 경험인 것 같다. 지방에 있지만 전세계 대도시 누군가와 같은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하고 있구나, 뒤쳐지지 않았구나 하는 안도감. 다국적 프랜차이즈가 주는 카페의 경험이 이런 것이라면 로컬카페들은 어떻게 차별점을 가질 수 있을까? 골목상권 학자는 로컬의 반격에서는 카페에서부터 밀어내기를 한다는데. 카페의 천국이라는 제주도나 망원, 성수 같은 곳들은 오히려 이런 대기업 카페가 밀려난다는데 어떤 점이 그런지 경험해보고 싶기도 하고. 아, 어쩌면 대도시에 접속하고 싶은 지방러들은 스벅으로 가고 새로움을 느끼고 싶은 도시러?들은 로컬카페를 찾는 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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