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82년생 김지영을 보고
김지영은 도시 여자였다. 도시는 더 젊고 비혼녀도 많고 육아문화와 다른 결을 가지고 있을 거다. 혼자 즐겁고 전문성 가지며 사는 사람들도 많겠지. 그런 상황을 거의 만날 일이 없는 나라서 새삼 내가 도시에서 많이 떨어져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승진서열에 먼저 들고 비아냥을 감당하고. 민간 조직이라는 곳이 더 그런 시궁창인 걸 까? 난 여성들의, 작은 조직의, 공공조직에서 일해본 거라 덜한 걸까? 아님 적어도 조심하는 문화인 건가? 대기업 도시는 정말 더 심한 건지 궁금하다.
소도시 지역의 여자들은 그렇지 않다. 보통은 결혼을 한다. 결혼을 하지 않고 애를 낳지 않으면 이상하게 보는 게 아직도 지역 문화다. 혼자 사는 여자는 전문성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려고 해도 주변에서 안쓰럽게 바라보는 곳이다. 그래도 애 키우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화다. 공무원 조직은 참으로 가정적이기에 더하다. 내가 애를 가져 회사를 그만둔다 하니 모두가 이해한다. 그렇지 애가 더 중요하지. (응? 같은 맥락인가?)
그래도 지역에 비혼여성들을 좀 안다. 싱글맘이든 돌싱이든 모쏠이든 간에. 도시보다 좀 더 즐길 것들이 없을 것 같기도 하고 시선이 신경쓰일 곳이다. 기혼전업주부의 문화가 훨씬 쎈 곳이라 더 힘들까. 아니 아예 안 겹치는 것 같다. 내가 비혼에서 기혼으로 넘어와보니 그렇다.
근데 난 여자여서 더 비참하고 슬픈 건 아닌 거 같다. 그냥 비참하고 슬픈 상황인 것을 여자가 더 빨리 알아채는 것 같다. 자리에서 내려와보고 애 떄문에 쥐었던 걸 놓아보고 조직에서 나와보고. 그래서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남자는 퇴직할 때, 늦게서야 내려오는 것을 아는 것 같다.
그래도 갑자기 적을 잃고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여기저기 원서를 내면서 느낀 우울감은 비슷했던 거 같다. 내가 안 뽑힐 걸 알고 내는 건데도 그 수많은 이력서를 뒤지는 순간에는 결국 자존감이 떨어진다. 수많은 가능성 그리고 내가 아닐 가능성. 무수한 기회들은 종종 우울함을 준다. 사실은 경력도 있고 능력도 있고 일을 그만두는 남자들은 더할 수도 있고.
끝이 그래서 그런가 맘충이라는 단어가 계기가 되어 만들어진 것 같은 영화. 직접적으로 맘충이라는 말을 들은 적은 없는데 두번째 페미니스트도 그렇고 도시에서는 정말 이 말을 듣게 되는 건가.
근데 도시여도 직장인과 엄마들이 겹치는 시공간은 많지 않을 것 같은데. 엄마들은 12시에 움직이지 않는다. 엄마들이 움직이는 시간대는 가장 바쁜 시간대 이외의 시간들을 채우고 돌아다닌다. 시장에서 카페에서 마트에서.
일을 하며 빛났는데 일을 못해서, 그래서 다시 사회로, 조직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심정은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영화는 보통 글을 써서 자신을 표현하면서 회복된다. 나는 의외로 육아, 살림의 영역에서 자기 소질을 발견하고 창업 등을 해서 사는 사람도 많을 것 같은데. 아기 옷 브랜드를 만들고 공동구매를 하고 블로그를 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이 더 현실적이지 않나. 문학잡지에 글 연재한다고 해도 돈이 되는 건 아닐 거다. 그건 지금의 나처럼 그게 여자여서 육아를 하는 중이라서 그런게 아니라 그냥 그런 창작의 꿈을 꿀 기회를 다시 얻게된 것 뿐이다. 육아라는 계기로 그전의 것들을 벗어던질 기회를 얻게 된 것뿐.
그건 그냥 남자와 여자의 시선 같다. 내 경우 다시 일을 해보니 그게 그렇게 재밌지 않았다. 대기업 입사해서 빛남이라는 것도 사실 모르겠다. 결국 돈 벌려고 하는 일이다. 일이 재밌어봤자 일이다. 내가 조직에서 열심히 해봐야 받을 수 있는 보상은 일정한데 그것이 육아만큼 심리적 보상을 해주는 거 같지는 않다. 다만 점심 때 나와서 혼자 먹지 않는다는 것, 누군가의 말처럼 내 생각으로만 가득차지 않고 주변을 돌아보는, 다른 사람이 벌인 일이나 관심을 얻어듣는 것. 그런 것들이 더 일을 하는 것에 대한 효능감을 줬다. 육아에 대한 스트레스도 아이에 대한 미안함도 있고 보란듯이 일하면서 같은 조건으로 싸우자는 심정이 들 때도 없지 않았지만 결국은 내가 억울했다. 내 새끼 가장 예쁜 순간에 내가 집중하고 싶다. 경단녀, 세상의 시선을 의식해서 무소속으로 있는 상태를 외롭고 괴로워하는 것보다 나는 내 새끼가 더 예쁜 마음이 크다.
하지만 나도 지영처럼 내가 아이를 낳음으로 인해서 여자라는 이름으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새삼 느끼게 되긴 했다. 영화 속 회사에서 애는 엄마가 키워야지, 할머니가 키우면 버릇이 없지, 시집이나 가. 여자는 시집가며 끝이다. 남자가 든든해.
거기에 하나 더. 왜 여자들은 남자의 몰카를 의식하고 살아야 하나. 그런 걸 보고 있는 놈들이 더 이상한 거 아닌가. 난 그냥 내 똥누는 거 보는 사람 있으려나? 하는 마음으로 그냥 눈다. 누는 내가 이상한 거냐 보는 새끼들이 이상한 거지.
김지영보다 엄마의 시선이 더 아팠던 건 괜찮다고 병들어가는줄도 모르던 딸이 아프다는 걸 알았을 때 내 새끼 왜 이러냐며 울던 때. 그때 눈물이 났다. 선생님이 되고 싶었지만 봉제공장에서 바느질을 해서 손에 상처가 생기고 남자형제들을 키워내고 딸둘에 아들하나 키우면서 아들을 더 낳아야 한다는 시어미의 성화를 들으며 공무원인 남편의 보수적인 시선 속에. 죽집을 하면서 사는. 교사인 큰딸, 시집간 둘째딸, 막내까지 어쩌면 걱정없을. 왜 하나밖에 없는 한약은 항상 아들 것만 챙겨오냐고. 왜 시집이나 가냐고 가만히 있지 마라고 더 나다니라고. 너 하고 싶은 거 다 하라고. 지금의 딸들보다 지금의 엄마들이 더 안쓰럽다.
만삭일 때도 부산을 가던 남편은 아내가 아프면서 정신을 차린? 듯 하다. 무섭겠지. 근데 넘 착한 척하는 듯하고 혼자 다 고민하는 것처럼 그려져서 몰입에 방해됐다. 부인 쉬라 하면서도 애 밥먹이는 거 옷 개고 쉴새없이 뭔가를 하는 와중이 자신은 탁자에 앉아서 맥주를 마시거나 지 밥을 먹고 있다. 집에 가자 하면서도 여동생이 오니 슬그머니 자리에 앉는다. 풍경으로는 편안한. 그냥 화면을 보면서 자꾸 아 나도 풍경으로는 참 평화롭겠구나 하는 마음이 많이 들었던. 서울공대 나와서 공부방 하는 애기 엄마나 괴물이 된 워킹맘 이야기.
나도 문득 그러고 싶더라. 이서방 그러지 마 나아니도 엄마 보고 싶을 거 아냐.
뒤따라오는 남자가 무서워 불렀을 아빠는 니가 더 조심했어야지 하는 타박을 하고.
그래도 그런 상황을 이해해주었던 버스 안의 아줌마 같은 여자들이 주변에는 항상 있었을 거다.
서로가 그 감정을 두려움을 알기에 알아채고는 용기을 내어 서로를 위해주는 여자들.
별나다. 유난한다. 그 말은 참 그렇다.
사실 다들 아픈데도 아픈 줄 모르고 사는 것 뿐이다. 모른다고 멍이 안 드는 건 아니다.
너도 영화를 보면 좋겠다 했더니 그 말 들으니까 보기 싫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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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현아, 요즘 지영이 많이 힘들 거야. 저 때가 몸은 조금씩 편해지는데 마음이 많이 조급해지는 때거든. 잘한다, 고생한다, 고맙다, 자주 말해 줘
은영아빠가 나 고생시키는 게 아니라 그냥 우리 둘이 고생하는 거야.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니까 혼자 이집안 떠메고 있는 것처럼 앓는 소리 좀 하지 마. 그러라고 한 사람도 없고, 솔직히, 그러고 있지도 않잖아.
우리 엄마는 요리 잘 못하거든. 그래도 나는 잘 사 먹고, 잘 시켜 먹고, 가게에서 싸다 준 거 잘 먹고 건강하게 잘 컸어.
남자들은 아무리 막내고 신입사원이라도 시키지 않는 한 할 생각도 안해. 왜 여자들은 알아서 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나는 젊음도 건강도 직장도 계획도 미래도 다 잃을지 몰라. 근데 오빠는 뭘 잃게 돼?
(와 좋겠다, 이제 늦게 출근해도 되겠네.) 그럼 너도 계속 구역질하고 제대로 먹지도 싸지도 못하면서 피곤하고 졸립고 여기저기 아픈 상태로 지내든지.
주어진 권리와 혜택을 잘 챙기면 날로 먹는 사람이 되고 날로 먹지 않으려 악착같이 일하면 비슷한 처지에 놓인 동료들을 힘들게 만드는 딜레마.
(빨래는 세탁기가 다하고 청소는 청소기가 다하지 않나? 요즘 여자들은 뭐가 힘들다는 건지.) 요즘 의사들은 뭐가 힘들다는 건지. 요즘 회사원들은 뭐가 힘들다는 건지.
나도 대학까지 나온 사람이에요.
하고 싶은 일이야? 진로의 최우선 조건은 지원이를 최대한 자신이 돌볼 수 있는 것, 도우미를 따로 고용하지 않고 어린이집에만 보내고도 일할 수 있을 것.
수학 문제 푸는 게 너무 좋아. 지금 내 뜻대로 되는 게 이것밖에 없거든.
아무리 괜찮은 사람이라도 육아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여직원은 여러가지로 곤란한 법이다. 후임은 미혼으로 알아봐야겠다.
좋으면 괴롭히는 남자아이, 남자 번호가 1, 여자가 2, 남자아이들은 편하게 입고, 변태 잡은 여자일진 들 되려 욕먹고, 씹던 껌, 남자가 항상 회장, 택시 기사 첫손님.
한국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20~29세 63.8프로가 참가하다가 30대 58%로 하락하다 40대 다시 66.7프로 14년도 5명중 1명 그만둠. (통계청)
0~2세 전업주부의 여가시간은 4시간 15분(기관에 보내는 주부의 시간 4시간 25분. 아이를 데리고 집안일을 하느냐 마느냐의 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