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환 감독 <유리벽>
박주환
네 분한테 제안을 했어요. 여기 공간에서 마을을 기록하고 전시를 좀 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저는 영화감독으로 참여했고요. 그다음에 저는 다큐멘터리를 주로 만드는 사람이고요. 극 영화 작업을 하시는 분, 시 쓰시는 시인 그다음에 아카이빙 책을 쓰시는 분께서 총 네 명이 이 공간에서 10월 말에 한 2주 정도 전시를 하기로 기획을 했거든요.
그래서 그 공간과 마을을 취재하고 기록했던 영상입니다.
그때 당시에 이 전시했던 버전이랑은 좀 달라요. 제가 전시했던 영상에서 촬영을 조금 더 하고 정리를 하면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정리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올해 조금 더 작업을 해서 완성한 영화입니다.
고승현
이 영화 같은 경우에 이번에 서울독립영화제 상영과 같은 똑같은 상영본이죠?
박주환
9월에 처음 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라는 곳에서 처음 상영을 했고요.
그때 보고 조금 아쉽다는 부분이 있어서 새로 편집을 좀 더 추가한 부분이 몇 커트가 있고요. 다시 완성된 작업인데 제가 느낄 때는 이제 더 작업을 안 할 것 같고 이 버전으로 계속 이제 상영을 할 것 같아요.
새로 편집된 버전을 여러분들이 아마 처음 보실 거예요. 저를 제외하고는.
고승현
12월에 예정인 서울독립영화제보다 여러분들이 더 빨리 이 작품을 만나게 된 분들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서 이야기를 드리고요. 혹시 영화를 보시면서 궁금하셨던 지점이나 또 이제 이야기하고 싶으신 부분 있으시면 편안하게 말씀해 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역시 첫 질문이 제일 어려운 것 같아가지고 제가 조금 더 질문드려보도록 할게요.
확실히 이 동네를 기록하는 것 자체가 어떻게 보면 되게 또 이제 감독님도 처음 들어가 보시는 동네인 거잖아요.
그래서 처음에 들어갔을 때 느낌은 좀 어떠셨어요?
박주환
저도 이 동네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제가 남성이기도 하고요. 남성 다큐멘터리 감독이 카메라를 들고 이 공간을 촬영한다는 것 자체를 어떻게 생각하면 이걸 좀 폭력적으로 느낄 수가 있잖아요. 그래서 저기도 여기를 기록해야겠다 촬영해야겠다 뭐 이렇게 생각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거든요. 그런 제안을 주시고 제가 저를 제외한 아까 설명드렸던 세 분은 다 여성분들이었거든요. 이분들이랑 같이 이렇게 처음부터 카메라를 들고 기록을 했던 건 아니고요.
여기 경로당 아니면 상인분들과 두 달 세 달 정도 계속 이렇게 친해지는 과정이 필요해서 카메라가 가지고 있었지만 이렇게 본격적으로 촬영하지 않고 그냥 마을을 탐방한다거나 아니면 저기 상가에 가서 뭘 산다거나 아니면 카페 같은 데 가서 계속 대화를 하고 좀 익숙해지는 과정 후에 촬영을 진행을 했고요.
제가 그쪽 여성커뮤니티센터에서 이런 제안을 저한테 하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그 같이 활동하시는 분들이 여성이 아니라면 아마 이 작업을 하지 못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영화를 보면 밤 장면 몇 개가 있잖아요.
근데 그분들도 밤에는 그곳에 가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하시면서 그리고 그 영화 만드셨던 분이 저한테 뭐라고 말씀하셨냐면 당신이 남성 이래서 저렇게까지 찍을 수 있어라고 말을 하더라고요. 왜냐면 그러니까 저도 그걸 느끼긴 했는데 그 공간에서 이렇게 여성들이 이렇게 지나다니고 하면 약간 안 좋게 본다기보다는 느낌이 있어요. 저한테 동네 주민들이 경계는 하시긴 하셨지만 저한테 뭐라고 하시는 분은 한 분도 안 계셨거든요.
그러니까 제가 남성이기 때문에 딱 이 정도까지밖에 못 찍었지만 제가 남성이기 때문에 그래도 이 정도까지는 촬영을 하는데 같이 활동했던 예술인과 대화하면서 느낄 수 있었던 지점이 있었어요.
고승현
영화를 보면 제작 과정에 있어서 확실히 그런 젠더적인 이슈까지는 좀 생각을 미처 못했는데 감독님 말씀하신 걸 들으니까 진짜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는 느낌이 굉장히 많이 들더라고요.
확실히 그러면은 이 동네에 계시는 어르신분들 같은 경우에 다 이제 할머니분들이시다 보니까 밤에는 잘 많이 못 나오시겠어요 진짜.
박주환
저도 원주에서 한 30년 이상 살았기 때문에 이 동네를 존재를 알았지만 저는 저 동네가 원래 저런 동네인 줄 몰랐거든요.
근데 제가 거기서 촬영하면서 느꼈던 게 이렇게 제가 계속 등장했던 광명 경로당이라는 경로당이 있고 거기에 마을이 먼저 존재했고요.
근데 이 공간은 예전에 해방 후 그다음에 한국전쟁 이후에 피난민, 이주민이 이렇게 이 동네에 거주하며 살았던 공간인데 니은 자로 성매매 집결지가 들어선 상황인 거예요.
본인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그래서 그 마을 주민들이 먼저 거주를 했고 그리고 여기에 성매매 집결지구가 생겼던 여러 가지 요인 중에 하나가 역 근처라는 것 그리고 원주에 지금은 없지만 미군 부대가 존재했잖아요.
태장동이라는 공간에 미군 흔히 말해 기지촌이라고 표현을 하잖아요.
그렇게 해서 생겼던 공간인데 이 분들은 이게 자기가 먼저 살았는데 이것들이 조금씩 조금씩 생겼지만 이거를 뭐 예전에 반대하거나 이런 분위기는 이런 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굉장히 좀 싫지만 티를 안 내시고 그냥 익숙하게 굉장히 지냈던 공간이고 마을에 들어가는 입구가 3개가 정도가 되는데 첫 번째와 두 번째 입구는 완전히 성매매 집결지에 가까운데 마지막 입구는 좀 멀거든요. 그러니까 낮에는 그냥 아무 입구로나 다니지만 밤에는 그냥 마지막 좀 먼 입구에서만 이렇게 다니신다고 하긴 하시더라고요.
고승현
확실히 어르신 분들 같은 경우에도 의도하지 않았던 거주 지역이 형성된 것에 대해서 자기가 원하지 않는 동네가 됐다는 것에 대해서 좀 되게 아이러니함도 있었고 그러면서 또 어떻게 보면 막 싫어하면서도 또 싫은 척을 하시는 건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또 막 좋아하시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러면서 또 그것을 통해서 김밥을 팔면서 또 이제 돈을 벌었다 뭐 이런 얘기도 또 많이 말씀을 하시니까 되게 양가적인 감정이 드는 그런 상황이겠구나라는 것이 굉장히 좀 이제 마음에 와닿더라고요. 진짜 그런 부분이 있었어 가지고 좀 한번 말씀을 드립니다.
또 혹시 궁금하시거나 이야기하고 싶으신 부분이 있으실까요?
관객 1
몇 년도에 찍으신 거예요?
박주환
이게 23년도 5월부터 10월까지 촬영을 했고요. 올해 조금 추가 촬영을 하고 싶어서 했는데 상황이 달라졌던 걸 말씀드리면 지금 가면 지금 시간에 그러니까 저기에 보면 경찰들이 순찰하고 이런 게 안 나오잖아요. 근데 전국에 이런 성매매 집결지를 전업형 성매매 업소라고 표현을 하는데 이게 뭐냐 하면 저도 이거를 만들면서 공부를 했는데 성매매 업소가 전업형과 겸업형 두 가지로 나눌 수가 있어요.
전업형은 뭐냐 하면 술 노래방 이런 형식이 아니라 말 그대로 여성만 있어서 성매매를 하는 업소가 전업형 업소고요.
그 이외에 어떤 술, 노래방을 같이 하면서 하는 이런 것들을 겸업형이라고 표현을 하거든요. 근데 이 전업형 업소 그러니까 저렇게 유리방 형식으로 됐고 빨간 불이 흔히 말해 홍등가라고 표현을 하잖아요. 그런 형식은 우리나라의 한 20개가 좀 안 되게 18개 정도가 남아 있거든요.
근데 그 윤석열 정부에서 저것들을 자기 임기 내에 어떻게든 없애겠다는 방침을 정했고 그래서 각 광역 경찰청에 단속을 강화하라는 지침이 내려왔어요. 올봄부터 지금 강원도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공간이 저기거든요. 그러니까 춘천도 있었지만 춘천도 없어졌고 원주만 남아 있어서 지금은 제가 23년 후에 갈 때에도 경찰이 뭔가 이렇게 순찰하거나 하진 않았지만 지금은 경찰이 한 30~40명 정도가 밤마다 계속 순찰하시더라고요.
저번 주에 원주 MBC에 뉴스가 하나 나왔는데 그 업소 사장님들이 시청을 찾아가서 항의를 했어요. 찾아보면 그분들이 유튜브에 찾아보면 나오실 텐데 좀 유예 기간을 줘야 되는 것 아니냐 막 이렇게 말씀을 하셨는데 또 정부는 이 또 지자체 입장을 몇 년 동안 계속 유예를 줬는데 변한 게 없으니까 하지 않냐 이렇게 해서 뭔가 좀 대립되고 있는 상황이고요.
좀 더 설명을 드리면 이런 업소가 이렇게 사라지는 과정을 한국에서 두 가지 사례가 있더라고요. 하나는 뭐냐 하면 지금도 파주의 용주골이라는 공간은 파주시장에 엄청난 의지를 갖고 권력으로 계속 밀어붙이고 있거든요. 그래서 막 소방 점검하고 거기가 일반 업소로 사업자로 해놨을 거 아니에요 그럼 막 맨날 가서 단속하고 막 이래요. 거기서 사람들을 완전히 차단하고 진입을 막아서 폐쇄하는 경우가 있고요. 대부분의 경우는 부동산 이 개발되면서 동네 주민들이 막 이렇게 해가지고 사라지는 경우가 있는데 원주의 저쪽 공간이 저는 부동산 개발될지 모르겠지만 지금 한 경찰들이 저렇게 한 1~2년 몇 년 하면 하다 보면 이게 그 구매자들이 오지 않으니까 자연스럽게 사라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는데 그것 저도 잘 모르겠어요.
왜냐면 이게 몇 년 동안 반복됐던 상황이에요.
어떤 권력이 와서 저런 공간을 사라지게 하겠다는 방침을 하면 조금 수그러드는 것 같다가 또 경찰들도 왜냐면 그 행정력을 계속 거기에 투자할 수 없잖아요.
저도 깜짝 놀란 게 저번에 여성 커뮤니티 센터 밤에 이렇게 차 타고 지나가는데 거기 만에 경찰차 한 4대랑 경찰분이 10명이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아니 무슨 사고 났나 그리고 저도 신기해서 쳐다보고 있는데 그게 아니라 그냥 계속 순차를 도시는데 어떻게 보면 경찰 행정 낭비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들긴 들었어.
고승현
어떻게 보면 홍등가라고 하는 동네를 쇠퇴시켜야지 사람들이 나와서 다른 공간으로 변모할 수가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요즘 같은 경우 학성동에 도시재생사업도 병행하고 있는 만큼 여성 커뮤니티센터라고 하는 것, 건물이 새로 지어지는 것이 도시재생의 일환일 텐데 그런 것을 목표로 한다라고 저는 이제 알고 있거든요.
도시재생사업이 촬영을 진행하시면서 그런 쪽으로 효과가 있었는지, 아니면 또 다른 사업들이 몇 개가 더 있었는지 그런 것도 좀 궁금해가지고요.
박주환
일단 거기에 여성 커뮤니티센터가 생긴 거는 도시재생 사업 국토부에서는 도시재생 사업으로 할 때 원주시에서 저 공간에 여성 커뮤니티 센터를 만들겠다는 어떤 사업 계획이 있었던 부분이고요. 그리고 여성 커뮤니티센터 근처에 한 50m 되는 곳에 도시재생 센터도 있어요.
근데 그 두 기관이 중점적으로 했던 건 하드웨어를 바꾸는 사업들, 그러니까 그 공간에 공원을 만든다든지 이런 건물을 일단 만드는 사업에 좀 집중을 했던 게 있고요.
그러니까 저도 여기 공간에 한 1년 정도 이렇게 있으면서 느낀 게 이 공동체가 있고 이런 마을 주민 간의 커뮤니티가 있는 상황인데 이 관계가 없이 뭘 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리고 성매매 업소가 운영될 때는 포주가 있고요. 그리고 여성이 있거든요. 근데 그 포주들은 대부분 낮에는 식당을 하시거나 카페를 하시거나 미용실을 하시거나 이렇게 하시더라고요. 하시면서 그 어차피 그 마을 공동체의 일원일 수밖에 없는 상황인 거예요.
그러니까 굉장히 좀 아이러니한 상황들이 좀 많이 일어나게 되는 것 같더라고요. 제가 느낄 때는 그래서 그분들을 또 이렇게 무시하면서 뭘 할 수도 없는 상황이고 그래서 굉장히 좀 여러 가지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저도 느끼면서 그 공간을 계속 지나다녔던 것 같아요.
고승현
그 포주라는 분들도 그 지역 커뮤니티 내에서 일원이신 거잖아요.
박주환
그러니까 오히려 저 공간이 70년대 이럴 때부터 형성됐기 때문에 더 오랫동안 이렇게 자리를 잡은 것도 있고 저기에 지금은 없지만 새마을금고가 있었거든요.
광명 새마을금고 거기는 이 성매매 포주들이나 여성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은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하긴 했지만 왜냐면 아까 영화에서 잠깐 나오지만 여기는 대부분 현금을 이용하는 공간일 거 아니에요.
그러다 보니까 그렇게 운영했던 마을금고 이런 데도 그래서 뭐 함부로 할 수가 없는 뭔가 되게 그런 공간이죠.
고승현
현금이라는 키워드를 말씀해 주셔서 생각이 났는데 확실히 동네 입구 한가운데 ATM기가 있는 장면을 보고서는 또 되게 아이러니하긴 했었거든요.
박주환
입구에 보면 ATM기가 이렇게 딱 있어요. 거기.
고승현
뭔가 되게, ATM기가 뭐라고 해야 되지? 그러니까 보기 어려운 길가에 한복판에 그렇게 있다는 게 좀 되게 아이러니했었다.
신기했었다고 말씀을 드리는데 또 혹시 궁금하시거나 이야기하고 싶은 신 분들이 계실까요?
관객 2
빈집들이 많이 생기거나 생길 것 같은데 빈집 문제는 없었나요? 마을 안쪽에서요.
박주환
중간에 빈집 장면 나오는 거 기억하시나요? 영화에 잠깐 나오는데, 그걸 제가 9월에 상영했던 DMZ 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넣지 않았어요.
장면 중간에 고양이가 거리 가운데 서 있고, 검은 고양이인가. 그다음 장면에 빈집의 문을 찍고, 그다음에 빈집 안을 제가 촬영을 했던 공간인데, 그때 당시만 해도 빈집이나 이런 공간이 있었는데 지금은 다 철거되고 공원을 만들고 있어요.
그러니까 지금 남아 있는 마을이나 아니면 건물들은 대부분 어떤 성매매에 종사하지 않더라도 마을 주민이나 누가 살고 계시고요. 작년까지만 해도 존재했던 빈집들은 대부분 다 사라지고 철거됐고 공원을 만드는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고요.
그전에 어떤 빈집을 탐방하면서 사진을 찍었는데 제가 제 영화에서 다 영상이 사용했는데 그 부분만 사진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건 그게 그 공간에 제가 나중에 영화를 만들겠다고 생각하고 다시 갔는데 철거되어서 없었거든요.
근데 그 공간이 뭐냐 하면 성매매 업소로 사용했던 공간이에요. 그래서 굉장히 좁은 공간이기도 한데 제가 거기에 놀랐던 건 콘돔 박스 같은 게 있었는데 보건복지부에서 나눠준 거예요.
고승현
한터연합회라고
박주환
맞아요. 한터연합회나 보건복지부라고 쓰여있던 건 뭐냐면 그 콘돔의 생산 연도가 2010년 5월이었거든요.
2010년 5월, 추측을 하면 2010년 5월까지 보건복지부나 보건소 이런 데서 관리 감독을 했기 때문에 이게 나눠졌을 거 아니에요 그래서 그걸 보면서 저도 아이러니했는데 다음에 이렇게 촬영을 또 하러 가야겠다고 했는데 바로 철거해서 없어가지고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다가 그 사진이라도 넣자, 그래서 사진을 여기서 활용해서 넣었어요.
고승현
질문드리고 싶었던 것 중에 하나 였어서 박스 같은 경우에는 발렌타인이라고 적혀 있어서 뭔가 양주 박스인가 그렇게 생각을 했었는데 알고 보니까 상표명이 그렇게 적혀 있다는 것을 설명을 듣고 나니 확실히 더 이해가 되더라고요.
근데 진짜 말씀하신 것처럼 아이러니한 것 중에 하나가 이게 보건복지부에서 이제 나눠준 거라면 그것도 이제 시민들의 예산이고 행정력인 거잖아요. 그런 부분이 어떻게 보니까는 되게 양가적인 감정이 되게 굉장히 많이 드는 다큐멘터리다라고 말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관객 3
저는 감독님 촬영하신 것을 옆에서 많이 봤었지만 그전에 1년 정도 저는 동네 아카이빙하고 그전에도 계속 기록을 해서 빈집들이랑 이런 거 많이 찍어놨었는데 저는 이제 도시재생사업으로 한 1년 정도 일을 해서 동네를 계속 쳇바퀴 돌듯이 계절별로 찍고, 없어진 공간들을 기록했던 사람이었는데 이 영화를 이렇게 보니까 진짜 지금은 가보시면 아시겠지만 시에서도 밀고 있고 중앙에 센터가 진짜 거의 많이 올라왔거든요.
그래서 흔적은 조금 찾아보기 힘들겠지만 아직 도로변에 아직 많이 남아 있어서 이제 몇 곳 안 남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결국은 진짜 나라에서 추진하는 것만큼 빨리 없어지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리고 아까 말씀하신 대로 저도 여기 다니면서 아카이빙하고 인터뷰하고 하면서 정말 다양한 얘기를 들었거든요.
감독님도 많이 들으셨겠지만 근데 이런 역사들이 또 아픈 역사이기도 하지만 너무 쉽게 없어지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좀 이런 느낌도 있어서 양가감정이 좀 드는 것 같아요.
감독님은 이 공간을 기록하실 때 어떠셨는지요? 없어지는 과정도 지금 보고 계시고 하셔서.
박주환
저번 주에도 그 공간을 촬영하러 갔다가 느낀 건데 이 공간이 진짜 몇 년 후에 사라질 수도 있겠다란 생각이 들었어요. 작년이랑은 다른 느낌을 굉장히 받았거든요. 어떤 느낌이 들었냐면 지금 경기도 동두천에 있는 성병관리소라는 공간이 있거든요. 그 성병관리소가 왜 생겼냐면 동두천도 미군이 주둔했던 공간이고 미군이 주둔하는 데는 다 기지촌이라고 이렇게 어떤 성매매 업소들이 다 생겨요.
근데 기지촌에 있는 여성들의 성병을 국가에서 관리했던 공간이거든요. 그 공간을 지금 동두천 시장은 없애려고 해요. 그걸 시민단체에서 몇 명 이렇게 없애면 안 된다, 이거는 어떤 역사적인 과정이었고 굉장히 중요한 공간이기 때문에 보존해야 된다고 굉장히 싸우고 계시거든요. 근데 이게 그 공간에 딱 가보면 동네에 있는 상인들은 빨리 철거된다고 그러면서 굉장히 좀 혐오스러운 발언의 현수막이 굉장히 많아요.
이 공간이 사라지고 없어지고 어떤 깨끗한 건물을 지으면 그 역사 자체가 사라진다고 생각을 하시는 것 같아요. 근데 그렇지가 않잖아요. 저도 느끼는 게 원주에 있는 저 성매매 집결지 공간이 사라지고 없어지고 세대가 지나면 그 공간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거기가 그 공간이었다는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잖아요.
그리고 공간이 그렇게 구성될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인 맥락이 있잖아요. 이게 해방 후 그다음에 6ㆍ25 이후에 가난한 피난민이 조금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공간에 미군 기지가 들어오면서 기지촌이 생겼던 그런 역사적인 과정이 다 있었던 건데 그것들을 저는 어떻게든 기록하고 남겨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거든요.
왜냐면 부끄러운 역사이건 뭐건 존재했던 사실이고 그게 부끄러울 수밖에 없는 어떤 맥락들이 있을 거 아니에요. 근데 그거를 이렇게 깨끗이 치운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잖아요.
그래서 저는 어떤 형식이라도 저거를 조금은 그래도 남겼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어요. 이렇게 건물 자체를 남긴다 이런 디테일한 그것까지 잘 모르겠지만, 그전에 종사했던 분들의 기록들, 구슬들, 아니면 이미지들, 이런 것들을 좀 남기지 않으면 제가 아까 말했던 전업형 성매매 집결지는 제가 볼 때 몇 년 후에 다 사라질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근데 그렇다고 해서 제가 말씀드렸던 겸업형 성매매 집결지까지 사라질까? 저는 그렇지 않다고 보거든요. 그러니까 그런 어떤 것들에 대한 거를 남겨야 되지 않을까라고 하는 생각입니다.
고승현
감독님께서 말씀하셔서 한 가지 홍보를 드리면 이 동두천 성병관리소와 관련된 감사 청구, 시민고발단을 준비를 하고 있어요.
그래서 오늘 혹시 보시고 마음이 동하셨다고 하면은 저희 티켓 나눠드려서 2층 공간에 서명받고 있습니다.
가시는 길에 마음 통하시면 서명 한 번씩 부탁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어서) 확실히 그런 말씀 주신 것처럼 그 공간 자체가 그러한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그 역사는 지울 수 없다고 생각이 들고, 이렇기 때문에 기록의 힘이 굉장히 중요한 것이 아닌가 또 말씀을 드립니다.
미군이 들어서는 곳이 있었기 때문에 성매매 업소들이 많이 또 들어서는 것이 어떻게 보면 보인 희매촌이나 동두천이나 같은 맥락이지 않을까 생각이 드네요.
관객 4
제목을 <유리벽>으로 지으신 이유가 있을까요?
박주환
제가 원주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면서 이 공간은 저한텐 어떤 느낌이냐면, 제가 만약 그곳에 이렇게 지나다 보면 왠지 성구매자의 낙인찍힐 수 있는 공간들인 것 같아요. 그래서 보이지 않는 벽이 저한테도 존재했던 공간이기도 하고요.
대부분 보면 유리방이라는 방식으로 이런 유리가 다 있어서 사람이 거기 앉아서 이렇게 자기를 볼 수 있는 그런 형식으로 된 공간이거든요. 그런 맥락으로 생각했었고요.
그리고 성매매 집결지에 관련된 영화이기도 하지만 제가 이거를 촬영하고 편집하면서 느꼈던 게 뭐냐면 내가 가지고 있는 어떤 편견에 대한 것들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거든요. 왜냐면 저는 저 공간에 마을 주민이 살 거라고 상상을 한 번도 안 해보고 살았어요.
작년에 여성커뮤니티센터에서 활동하기 전까지 저기 마을 주민이 산다라는 상상을 한 번도 못 했는데 마을 경로당도 있고 보면서 저도 너무 놀란 거예요.
그래서 내가 가지고 있는 편견이 이렇게 무서웠구나. 당연히 성매매와 관련된 분들만 사시는 공간이겠지라고 생각을 했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것들, 그 자체가 저한테 어떤 벽 같은 것들이 있었구나 라는 생각이 있어서 그렇게 했고요.
유리벽이라는 것, 유리라는 건 굉장히 잘 보이잖아요. 잘 보이는데 이걸 벽이 있는지도 모르는데 굉장히 두껍기도 하는데 한편으로 보면 괜히 잘 깨지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저 공간이 어느 순간 공간이 깨지고 그 공간에 있었던 여러 가지 편견들이 어느 순간 좀 깨지지 않을까라는 의미도 있는 영화입니다.
관객 5
저도 공감돼 가지고 아까 말씀하신 거 저도 거기 지나다니면서 항상 보는데 거기 사람이 산다는 걸 이 영화를 통해서 처음 알았거든요. 그 부분이 되게 공감이 돼가지고 되게 신기했고 네 처음 알게 된 것 같아요.
관객 6
영화 많이 찍으시면서 혹시 그 유리벽 너머로 그들의 애환을 좀 들어보고 싶다는 그런 생각은 없으셨을까요?
박주환
제가 포주분도 만났고요. 촬영하다가 맨날 고양이 밥 주시는 여성도 만나고 했는데 일단 제가 판단하고 느꼈던 건 제가 그분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 자체가 굉장히 폭력적일 수 있다고 저는 봐요. 그건 저의 호기심 같은 거잖아요. 그러니까 이런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 그런 문제로 저한테 문제 제기를 하셨던 분도 계신데 일단 그분들을 제가 인터뷰하면 제가 남성인 것도 있고 여러 가지 맥락상 이분들을 대상화할 수밖에 없거든요.
그러니까 이분들이 여기에 속해 있는 처지들을 막 이야기 할 수밖에 없잖아요.
근데 제가 이 영화를 정리하고자 했던 건 아까 선생님 말씀하셨듯 이 공간에 마을 주민이 살고 있구나라는 거에 굉장히 중심을 두고 싶었고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거든요.
저번 주도 갔던 건 조금 더 이 말을 기록해야겠다는 좀 욕심이 있고 한데 좀 자연스럽게 되다 보면 카메라에 담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들지만, 촬영을 가게 됐을 때는 분명히 그분들은 굉장히 거부감 그리고 저의 개인적인 호기심으로 어떤 한 인간을 대상화하고 이용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게 뻔하기 때문에 함부로 접근할 수 없는 공간이지 않을까라는 판단이 들었어요.
제가 근데 성매매 포주분을 만나면서 들었던 생각은 뭐냐면 이게 어떤 구조로 되냐면 성구매한 남성이 만약에 10만 원을 주면 그 포주는 그 공간에 운영하고 운영비 이런 걸 대면서 5 대 5, 6 대 4 이렇게 나눠가져요.
굉장히 좀 희한한 저는 그런 구조로 운영된다고 생각을 안 했거든요. 그런 상황인데 이 포주들은 어떻게 보면 여기서 자기들이 착취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성매매 여성들이나 대부분의 분들과 만나면 공통된 얘기는 자기가 좀 나아지고 돈을 많이 벌면 여기를 떠날 거다 그리고 다른 직업을 찾을 거다라는 공통된 이야기에 말씀을 하셨거든요.
그럼 이 직업과 이런 것들이 본인이 느끼기에도 별로 행복하거나 좋은 직업이 아니라고 느끼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을 하실 거 아니에요. 근데 거기에 포주 분들은 굉장히 많은 돈을 벌 수밖에 없는 구조로 있다고 저는 느꼈어요.
고승현
그렇죠 이야기에서 나온 것처럼 뭐 한 30명 60명
박주환
맞아요. 그러니까
고승현
이야기를 조금 전환을 해보자면 저도 경로당이 있다는 것 자체가 되게 신기하고 흥미로운 지점이었어요.
그래서 첫 장면이 동네 어르신들이 다 같이 모여서 밥 먹는 장면이었는데 그런 행사나 일들이 되게 많은지, 마을 주민분들의 분위기는 어떤지 그런 것도 조금 궁금해가지고요.
박주환
이 마을에 60대도 젊으세요. 70대도 젊은 분에 속하시고요.
나온 할아버지는 90대이시고, 여기 경로당에서 밥 하셨던 두 어르신도 79세 거의 80세 이렇게 되신 분들이고 요. 그러니까 대부분 혼자 사시는 분, 아니면 부부가 둘이 사시는 분이 많아요. 경로당이라는 공간이 제가 그 공감 느낀 게 단순히 노인분들이 그냥 여가를 지내는 공간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더라는 걸 너무 많이 느꼈어요. 가족이기도 하고요. 친인척이기도 하고 누가 아프면 돌봐주기도 하고요. 이게 커뮤니티가 엄청 강력하구나, 되게 웃긴 건 그래서 여기 이 공간은 명절 때도 문을 열어두시고요.
그리고 왜냐하면 그날이 아니면 혼자 있는 어르신들은 혼자서 집에서 밥 먹기가 너무 힘드신 상황인 거예요.
이 공간은 문을 계속 열어놓으시고 그 대신 두 분이 식사를 하시는 건 여기 노인 일자리 사업의 일환으로 하시는데 그거는 주말이나 이럴 때는 운영하지 않거든요.
그럴 때는 그냥 공간을 열어놓고 냉장고에서 꺼내서 자연스럽게 와서 식사하는 공간인데 제가 여기 경로당을 보면서, 여성커뮤니티센터 그리고 여기 성매매 업소를 보면서 이곳이 늙고 쇠락하고 있구나 이런 느낌을 너무 많이 중첩된 이미지로 받았거든요.
첫 장면 보면 할머니가 되게 힘들게 유모차를 밀고 가잖아요. 그게 그런 의미거든요. 이 공간이 굉장히 고령화됐고 늙고 쇠락해 있는데 어떻게든 조금씩 조금씩 조금씩 유지되고 있는 공간이구나라는 것들을 제가 많이 느꼈는데 이 마을 자체도 좀 그래요.
근데 왜 그러냐 보면 영화에서 나왔지만 자제분들은 이 공간을 굉장히 싫어하세요. 그래서 그런 얘기도 하잖아요. 여기 상인분들 따님이 일부러 버스 정류장도 거기서 내린 게 아니라 두 정거장 앞에까지 내려서 걸어왔다고 하고 나는 여기서 이사 안 가면 시집 안 갈 거야 하기 때문에 근데 그게 그분만 그런 게 아니라 그 첫 번째 나왔던 경로당에서 음식 하시는 분 그분도 그렇고 대부분 그런 어떤 생각이 있기 때문에 여기가 자기 부모님이 거주하고 있지만 그렇게 오고 싶은 공간이 아닌 거예요.
부모님들은 이 공간에서 젊었을 때부터 크고 자라고 자식을 낳고 키웠던 공간이라서 좀 덜하지만 자녀들은 낳자마자 이 공간이 이런 공간이 돼 있고 거기 사는 것만 해도 놀림을 받았던 공간이기 때문에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지 않죠.
그러니까 이 공간에 살고 싶지 않으니까 어르신들만 이렇게 남게 되고 그럴 수밖에 없는 굉장히 아이러니한 상황인 거죠.
고승현
어르신들은 왜 떠나지 못하실까요?
박주환
제가 아까 말씀드린 대로 경로당에 밥 하시는 분도 있고 그 밥 하시는 분의 남편분도 거기 사는 게 아니라 다른 공간에 사는데 그 공간의 가족 같은 커뮤니티가 너무 좋으신 거예요.
그리고 이 공간에서 만약에 다른 공간에 떠났을 때 거기에 또다시 적응을 하거나 아니면 누군가와 또 친해지는 과정들이 있잖아요. 그리고 저도 몰랐는데 이 경로당에 새로운 사람이 오면 텃세가 엄청 심하대요.
굉장히 끄덕거리시는데
관객 7
저희 할머니가 당해 가지고
박주환
이사 간다고 해서 새로운 경로당을 간다고 한들 그분들을 막 받아들이고 이런 분위기가 아니고 경로당만의 문화와 그 네트워크가 있는데 거기에 누가 들어온다고 이렇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 같아요. 그래서 이분들 입장에서는 다른 공간에 가는 것보다 여기서 남아서 이렇게 소소하게 사시는 것들이 더 행복할 수 있으니까요.
고승현
저희 할머니도 경로당 옮길 때 굉장히 스트레스받아하셨어서 그런 지점이 좀 많이 공감되는 것 같습니다.
관객 8
예술인들이 같이 들어가셨다고 했는데, 혹시 서로 영향을 받으셨는지
박주환
굉장히 많았죠. 왜냐면 제가 작업을 할 때 만약 저 혼자 들어갔으면 이거랑 굉장히 결이 다른 작업이 나왔을 것 같아요. 그리고 굉장히 조심해야 될 지점들에 대해서 저한테 계속 말씀을 해 주시는 거죠. 감독이 남성이니까 굉장히 조심을 해야 된다 이런 말씀을 많이 하셨고 그리고 그분 중에 한 시인 분은 문화예술계 성폭력 성희롱 강사도 오래 하셔서 그분들도 그런 맥락의 이야기들을 저에게 많이 해 주셨고요.
예술인들 자체가 성향이 굉장히 좀 자유롭고 뭔가 제도를 깨려는 욕구들이 굉장히 많잖아요. 그래서 이 성매매와 관련된 것들에 대해서 단순하게 찬성, 반대 무엇일까 입장을 내보면 노동과 직업적인 문제에서 그래도 좀 어쩔 수 없지 않을 부분이 있지 않을까라고 저는 생각을 했는데, 여러 가지 맥락들을 찾아보면서 그런 문제가 있는 것 같더라고요.
성매매, 돈을 주고 성을 사는 행위를 하다 보니까 이 남성이 여성을 함부로 대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화적인 게 퍼질 수밖에 없는 구조이긴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그런 것들을 같이 하는 예술인이나 이런 분들이 저한테 말씀을 굉장히 많이 하시고 예술인 중 한 분도 저랑 약간 비슷한 맥락의 입장이셨는데 여러 가지 강의를 듣고 생각이 많이 바뀌는 지점도 저한테 있었던 것 같긴 해요.
고승현
확실히 오늘 이야기하고 싶었던 키워드가 다 나온 것 같아요. 오늘 이 영화를 선정하면서 좀 나누고 싶었던 키워드는 '지역', '여성', '성매매'이 세 가지였는데 확실하게 아우를 수 있는 그런 대화였다고 생각이 들어요.
관객 9
저는 예술인 분들이 참여하신 여성커뮤니티센터에서 작년에 했던 전시랑 행사를 가서 제가 봤었어요.
근데 이제 오늘 본 이 영화에도 거의 초중반은 제가 아마 작년에 그 공간에서 봤었던 장면들이 꽤 많이 보였고 후반부는 근데 오늘 제가 처음 본 장면이긴 했고요.
어떻게 이 작업에 참여를 하시게 되는지 설명을 해 주셔서 듣고서 저는 영화 볼 때 여성커뮤니티센터가 주요 거점 스폿으로 많이 나오고 그리고 그 센터 내에서 이제 다양한 어떤 클래스를 운영하셔서 그런지 이용하신 분들도 나오고 하는데 영화를 보면 볼수록 이런 사업이나 이런 제안을 그런 의도를 센터라고 하셨지만 그냥 영화만 봤을 때는 여성커뮤니티센터랑 주민과 그리고 이 업소가 크게 이 세 타입이 커넥션이 전혀 없는 것처럼 각자 그냥 다 따로 노는 것처럼 이렇게 되게 느껴졌거든요.
근데 뭔가 주민과 여기 업소의 어떤 맥락이나 서사는 충분히 공감이 되고 이해가 됐는데 여성커뮤니티센터는 지금 업소나 혹은 주민들이랑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그게 이 영화 내에서는 그게 충분히 와닿지 않아서 그 부분이 좀 궁금하긴 합니다.
고승현
조금 더 제가 과격하게 질문드리면 혹시 이 센터가 재기능을 하고 있는지도 궁금하긴 해요.
박주환
저희한테 이런 제안을 했던 이유의 맥락이 그런 거예요. 하드웨어적으로 공간을 만들어줬는데 동네 주민이나 이런 분들한테는 저게 뭐야 약간 이런 느낌 있잖아요. 근데 이게 대부분의 도시재생을 하는 공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긴 하거든요. 제가 그래서 접점이 안 보인다고 하는데 이런 붓글씨 클래스 하시는 분들은 다른 공간 다른 지역에 사시는 분들인데 이런 문화 강좌를 무료로 한다 하니까 이렇게 오시는 분들이고 그러니까 그런 거죠.
이렇게 동네 주민은 그냥 일상을 살고 있는데 이 공간이 딱 생겨버린 거죠. 거기서 자기들의 삶에서 득 되는 걸 안 하는 것 같으니까 그렇게요. 그런 고민이 굉장히 많으신 게 경로당에서나 아니면 이 동네 상인분들에게 뭔가 제안을 해도 그분들의 시선과 관점은 어떻게 그 여성커뮤니티센터를 바라보시냐면, 도시재생 일환으로 여기 만들어줄 거 있으니까 저기 돈이 많은 기관인데 우리한테 뭐 좀 해줬으면 좋겠다. 시의적인 입장으로 계속 접근해서 우리 뭐 해줘, 뭐 해줘 이런 식이요. 근데 이 공간은 설립 취지가 있고 목적이 있고 그리고 운영비나 예산이 그렇게 많지가 않아요.
그러다 보니까 곤란했던 이런 상황들도 많아서 갈등까지는 아니지만 되게 좀 그런 분들이 있죠. 그래서 이 공간에 여러 가지 클래스를 했던 여러 가지 이유 중에 하나가 처음에 생겼을 때 정말 아무도 안 왔어요.
이 공간에 동네 주민들한테 와서 하라고 해도 처음에 뭐 차 한 잔씩 드릴 테니까 오세요 하라도 그거를 하루 이틀이지 매일매일매일 내가 가는 자주 가는 공간처럼 이용하지 않을 거 아니에요. 그러다 보니까 일단 여러 가지 수업들을 하면서 이 공간에 사람이 올 수 있는 공간이라는 걸 인식시켜 줄 필요가 1차적으로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저런 활동들을 하게 됐고, 저희한테 부탁했던 건 마을 주민과 어떤 관계를 쌓으면서 마을 주민들이 이 공간을 조금 더 편안하게 올 수 있는 전시 같은 행사를 부탁하셔서 그 동네에 사는 어르신들과 관계를 맺고 그 기록을 했고 영상을 찍고 사진을 찍고 인터뷰를 해서 그분들이 이 공간에서 뭔가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 싶었던 지점이 있죠.
이런 공간이 낡고 허름한 공간을 싹 다 없애고 하드웨어만 딱 만든다고 해서 거기가 운영되지 않아요.
그 공간을 공동체가 이용할 수 있게 해 줘야 되잖아요. 근데 아직 그런 것들이 잘 안 되는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저는 그래서 이게 되게 중요했던 문제인데, 처음에 만들었을 때 이 마을 주민과 관계를 쌓고 같이 참여시켰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지 못했죠. 그게 또 힘든 게 시간도 오래 걸리기는 하지만 마을의 단위마다 이권이 또 달라요. 이해관계가 굉장히 다르거든요. 극명하다 보니까 이걸 또 조율하고 하다 보면 굉장히 시간도 걸리고 노력적인 문제도 있고 하다 보니까요.
저거는 국토부에서 사업비를 받고 올해 2024년 말까지 올해 말까지 어떤 사업의 일환으로 해야 될 부분이 있기 때문에 한계점도 많긴 했지만 저는 그래도 저 공간, 여성커뮤니티센터는 그래도 역할은 하지 않았나 생각해요. 왜냐면 이런 작업도 나오고 그리고 그 공간에 좀 더 편안하게 갈 수 있는 거점이 생겼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변화의 시작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고승현
이야기 감사합니다. 마지막 질문 하나만 좀 받아보고 자리를 마칠까 싶기는 하는데 혹시 있으실까요?
관객 10
다른 예술인 분들은 시랑 아카이빙, 극영화도 하셨다고 하셨는데 그거는 이제 더 볼 수 없는 건가요?
박주환
아카이빙북 하셨던 분은 책자를 만들었고요. 저는 한 네 분 정도의 중점적인 인터뷰 형식의 이야기를 담았다면 더 많은 분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자가 있긴 있는데 그게 어디 판매되거나 하지 않고요.
'광명 마을 기록' 맞아요. 그렇게 책이 있고요. 그리고 그 시인이 하셨던 건 영화에 잠깐 나오는데 동네를 돌고 그 동네에 대한 이미지 같은 거를 단어로 만들어서 했던 것을 여성커뮤니티센터 유리벽에 인쇄해서 붙여놨고요.
그리고 극영화 감독님이 만든 건 뭐냐면, 저는 인물 위주의 어떤 공간을 찍고 기록을 했다면 공간을 좀 더 세밀하게 기록하셨어요. 저는 성매매 집결지 위주로만 했다면 여기 47계단인가요?
47계단도 있고 공간을 좀 더 디테일하게 촬영해서 그것들을 전시를 했어요.
원래는 여성커뮤니티센터 저 공간에서 전시를 하고 그 공간에 1층과 2층에 계속 그 영상을 틀어 놓을 계획이었는데 거기 운영 주체가 바뀌어버렸어.
그러니까 그게 시 위탁으로 운영되는 기관인데 시 위탁하는 기관이 기간이 좀 남아 있었는데 그냥 시로 바로 바꿔버렸어요.
직영으로 바로 바꿔버려서 그전에 했던 것들을 다 남겨놓긴 했는데 활용 안 하시고 그냥 다른 방식으로 운영을 하시더라고요. 그래도 지금은 아까 제가 말했듯이 이렇게 작년만 해도 마을 주민이나 아니면 다른 분들이 와서 여기서 차도 먹고 그래서 커피도 2천 원, 3천 원에 되게 저렴하게 운영하고 자연스럽게 오가는 공간이었는데 지금은 되게 딱딱한 분위기로 바뀌었거든요.
그래서 저도 그래서 안 간 지 되게 오래됐거든요. 그래서 좀 분위기가 많이 바뀌긴 했어요.
고승현
여성커뮤니티센터 같은 경우에 직영으로 바뀌면서 한 차례 이슈가 있었어 가지고요. 그런 이슈와 관련된 것도 어제 뉴스 자료나 여러 보도 자료들이 있으니까 한번 같이 보시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 오늘 짧지만 깊은 이야기 영화 러닝 타임보다 긴 감독과의 대화 시간이었습니다.
정말로 깊은 이야기 많이 나눴는데요. 오늘 함께해 주신 관객분들에게 이야기 한마디 하면서 마치면 어떨까 싶습니다.
박주환
이 영화를 제가 원주에서 처음 상영해요. 제가 DMZ 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세 번 정도 상영을 했는데 원주분들이랑 꼭 같이 보고 싶었거든요. 왜냐하면 그분들은 이 공간을 잘 모르잖아요. 근데 영화에서 나오지 않는 다른 배경이나 이야기들을 여기 계신 분들은 알 거잖아요. 당연히 같이 나누고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굉장히 저한테도 의미 있고 소중한 시간이었고요.
늦게까지 이 영화 봐주시고 함께 이야기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고승현
함께해 주신 여러분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유리벽> 상영은 이제 지금부터가 시작입니다.
앞으로 원주에서나 다른 지역에서 많이 공개될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리고 여러분들이 좋은 후기 또 남겨주시면 이 영화가 입소문이 잘 나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늦은 시간까지도 이렇게 자리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