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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씨네 Sep 30. 2019

두 개의 빛 : 릴루미노 감상평

강원, 영화학교 영화읽기 워크숍 1주차

영화 소개

<두 개의 빛 : 릴루미노>

감독 : 허진호

러닝타임 : 31분

장르 : 멜로 / 로맨스

출연 : 한지민(수영), 박형식(인수) 등




   영화는 광고가 아니다. 스스로를 ‘중딩’이라고 표현하는 중학생과 그려낸 듯한 가족, 빼어난 비주얼의 주인공과 너무 예쁘고 행복한 관계들, 겨냥이 명확한 웃음 포인트 등은 보면 볼수록 작위적이다.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현실’을 담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두 개의 빛」은 모든 장면 장면이 아름답게만 보이기 위해 만들어진 것 같다. 그래서 이 이야기에는 도무지 이입을 할 수가 없었다. 박형식이 잘생겨서 즐겁게 보았지만….

   또 마음에 걸렸던 지점 중 하나는, 주인공들이 담당하는 장면들이다. 수영(한지민)은 새로운 동료 인수(박형식)에게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들이대거나, 또는 무지하고 폭력적인 동정을 받는, 두 가지 방식으로 표현되고 있다. ‘초짜’인 인수의 감정선은 잘 보이지 않고, 대신 오히려 직업과 꿈에 대한 장면이 훨씬 두드러진다. 허진호 영화를 잘 보지 않았지만 여자 주인공들의 느낌이 다 비슷했던 것 같기도 하고. 흠좀불(편하군요).


새보미야




두 개의 빛 : 릴루미노, 시각장애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영화는 허진호 감독의 2017년 단편영화로, 삼성에서 만든 릴루미노 라는 시각 장애인을 위한 앱 광

고를 위한 영화였다. 영화 곳곳에 광고를 뜻하는 여러 장면이 있어서 조금 불편했지만, 어쨌든 대놓

고 광고를 찍은 거니까. 이런 영화가 나온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평소에 눈이 좋지 않아서 안경을 쓴다. 안경이 없으면 일상생활 하는데 매우 불편한 지경이다.

글자도 제대로 보이지 않아서 책도 잘 읽을 수도 없고, 웬만큼 가까이 있지 않은 한 사람 얼굴도 잘

못 알아보는 정도이니 나에겐 안경이 참 고마운 존재다. 하지만 이런 나를 시각 장애인 이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면 난 어쨌든 사물이 구별 가능하고 '잘 보이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나오는

시각 장애인들에게도 시각능력의 정도에 따라 각자 다른 정도차를 보인다. 남자 주인공은 시력을 잃

어가고 있는지 3년차인 '초짜'이고 여주인공은 어렸을 때부터 한쪽 눈이 잘 보이지 않는다. 과연 감

독은 영화 속에서 시각장애인들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표현한 걸까? 하고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현

실의 모습과 영화 속에서 묘사된 모습이 확연히 다를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 뿐 어느 하나 공감

가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시각장애인 스스로 절대로 하지 않을 것 같은 장난을 치는 장면과, 어떤

지나가던 할머니에게 원치 않던 도움을 받는 장면이 나에게 크게 다가왔다. 그 두 장면은 절대로 한

사람의 시각 장애인의 태도라고는 볼 수 없는, 두 사람의 인격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점에서

영화의 몰입이 깨지기 시작했고, (난 허진호 감독 작품을 ‘8월의 크리스마스’, ‘호우시절’ 밖에 보지

못했지만) 꽤나 올드하고 작위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시각 장애인들에 대한 조

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나 보다. 그렇지 않다면 위의 두 장면이 한 영화에 같이 나올 수는 없

을 것이다. 어쨌든 영화를 통해서 한 가지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시각 장애인의 느끼는 일상의 삶에

대해서 생각해 볼 여지를 주었다는 것이다. 작중의 등장인물들은 시각 장애인이지만 사진 동호회에

가입해 사진 활동을 한다. 영화 속에서 동호회 강사가 이런 말을 한다. '아름다움은 눈으로만 느낄

수 있는 게 아니다. 카메라에 아름다움을 담자' 고 했던가? 이 대사도 정말 마음에 안 들었다. 아름

다움이 시각에 없다고 한다면, 어째서 시각 장애인들이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서야 한단 말인가?

정말 아이러니하다. 영화를 보고 이러쿵 저러쿵 떠드는 것은 쉽지만 역시 만드는 것은 헤아릴 수 없

을 만큼 어려울 것이다. 그저 한사람의 관람객으로서 아쉬웠던 점을 휘갈겼을 뿐이다.


솔마




   서울 북촌에는 일상에서는 쉽게 접하기 어려운 특이한 전시 체험 행사가 있다. 그곳에서는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내 앞을 걸어가는 사람이 누구인지 서로 알지 못한 채 때로는 모르는

사람의 손에 이끌려 걷거나, 벽을 짚으며 서서히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긴다. 다행히 로드

마스터라는 길잡이가 있어서 위험에 빠질 일도,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갈 일도 없다. ‘어둠 속

의 대화’라는 이 프로그램은 일종의 시각 장애인 체험 학습이다.

   약 1시간 30분가량의 짧은 시간일 뿐이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을 돌아다닌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일깨워준다. 평소보다 더 예민해진 다른 감각들이 쏟아내는, 어쩌면 시각

적 정보에 버금갈지도 모르는 다양한 정보를 온몸으로 받아들이기도 하고, 무언가를 만지기

전에는 방향조차 알 수 없어 두렵기도 하다. 그리고 체험의 끝에서 ‘본다는 것’의 소중함을 다

시금 느끼게 된다면 꽤 성공적인 교육 체험이자 간접 체험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체험은 앞이 완전히 보이지 않는 상황을 전제로 하지만 현실은 좀 다르다. 보건복지부의

장애 유형별 1급 현황에 따르면 국내 등록 시각 장애인 중 시력이 아예 없는 전맹 비율은 고

작 12%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전체 시각 장애인 중 12%에 해당하는 분들을 간접 체험하

는 셈이다. 반면에 릴루미노는 그 나머지인 88%의 시각 장애인들의 이야기였다.

   영화에서 묘사하듯이 우리나라 시각 장애인 대다수는 비록 가까이 가야 하지만 대부분의 사

물을 구별할 수 있고, 모르는 사람의 손길은 도움이 아니라 위협으로 느끼는 게 다반사인 경

우가 더 많다. 그들에게 비록 올바른 길을 알려줄 길잡이는 없을지라도 아무 준비 없이 무턱

대고 아무 곳이나 돌아다니지 않기에 위험에 빠질 일도 별로 없다. 그들은 마냥 도움이 필요

한 어리광쟁이들이 아니다.


   ‘빈곤 포르노’라는 신조어가 있다. 기아와 질병에 시달리는 아프리카로 묘사해 후원자들에게

동정심을 유발하는 광고들을 대상으로 하며, 도움받는 수혜자의 인격, 인권, 입장을 무시하는

일방적인 도움의 손길이 미치는 부작용에 관한 인식 필요성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조

금 자극적이기는 하지만 무척 공감되는 단어라고 생각되는 한편, 우리 사회가 장애인을 바라

보는 시각이 좀 더 성숙해지지 못한다면 어쩌면 머지않아 ‘장애 포르노’ 같은 거북한 단어마

저 생기는 것은 아닌가 걱정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앞으로 장애인을 만나게 되면 도움이 필요

할 것 같다고 지레짐작하지 말고 먼저 정중하고 조심스럽게 물어보면 어떨까?


   “혹시 도움 필요하세요?”라고.


가람




< 보는 것에 대한 시선 >


   영화는 시각장애인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는 것처럼 표현하지만, 한 편으로는 보이지 않는 삶에 대한 불편함을 강조하고 있다.

   영화 내내 남자와 여자는 둘 다 저시력인 상태에서도 계속해서 보는 것에 미련이 있어 보인다. 여자는 남자의 외모를 알기 위해 사진을 몰래 찍어 컴퓨터로 확대해보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그의 외모에 대해 물어본다. 남자는 시력을 잃음으로 인해서 좋아하는 음악을 포기했다. 그는 초반에 절망적인 음악을 연주했지만, 보조기기를 통해 시력을 찾자 그는 희망적인 멜로디로 연주한다.

   주변인의 시선을 통해서도 보이지 않는 삶에 대한 불편함을 드러내는 부분이 있다. 바로 여자를 도와주려 했던 할머니의 등장이다. 할머니는 우리가 생각하고는 있지만 말하지 못하던 시각장애인들에 대한 연민을 노골적으로 표현한다. 이 때 여자의 감정도 극대화된다. 연민어린 시선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시각장애인으로써의 삶의 비참함을 각성하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는 남자와 여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 말고는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통제해놓고 있다. 단지 그들에게 불편한 것이라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VR기기를 통해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말하며, 앞을 볼 수 있을 때 남자와 여자의 사랑이 시작된다. 

 하지만 이것은 시각장애인들에 대한 혜택인가 아니면 또 다른 차별의 시선은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든다.


아침밥




<두 개의 빛 : 릴루미노 > 를 보고     


릴루미노는 라틴어로 빛을 돌려주다라는 말이다.

또한, 삼성에서 만든 시각보조 어플의 이름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삼성에서 저시력자들을 위해 개발한 어플을 널리 알리려는 목적이 확실한 광고영화다.

알고 보아도 솔직히 불편한 부분이 많았다.

어쩌면 보는 내내 비판만 하면서 심드렁하게 보았던 것 같다.

한편으로는 내가 너무 광고라는 선입견을 갖고 보고 있는건 아닌지, 감정이 너무 메말라 있는건 아닌지 염려도 되었다.

영화가 하고자하는 말이 무엇일까? 두 개의 빛은 무엇일까?

함께 보았던 사람들과 다각도로 대화를 나누면서도 완전한 해답을 얻지는 못 하였고, 찌푸려진 생각은 펴지질 않았다. 

분명 보면서 웃기도 하였고 30분이란 시간 내에서 아주 잠깐잠깐이지만 감동도 했던 것 같은데 말이다.

인터넷에서 다른 사람들이 써내려간 생각들을 보았다.

전부를 본 건 아니지만 감동을 하고 극찬을 하는 식의 글들이 대부분이었고 난 더 혼란스러웠다.

왜냐하면 그들이 써놓은 생각에 나도 어느정도 동의를 하고 있었고 틀린 말들을 하고 있는게 아니였기 때문이다.

결국 맴돌기만 하는 생각들과 사투를 벌였고 그 사이에 함께했던 사람들의 정리된 생각들을 만날 수 있었다.

비슷한 생각도 있었고 전혀 생각하지 못 했던 생각을 읽고 감탄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좀처럼 정리가 되지 않았다.

결국 난 다시 보기로 했다.

이 영화가 광고영화여서 그런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유튜브에서 무료로 볼 수 있게 되있었고, 단편이라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아도 되서 다시 보는 것에 부담이 없었다.

다시 보아도 생각의 큰 흐름이 바뀌거나 무릎을 탁 칠만한 무언가를 얻지는 못 하였다.

그래도 조금은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고 처음보다는 많은 걸 내려놓고 편히 보았다.

그래 그거였다. 광고라는 걸 알면서도 불편했던 것도 극에 몰입하지 못 했던 것도 전부 내 선입견이었던 것이었다.

광고라는게 나쁜 것은 아닌데 영화라고 다 좋은 것도 아닌데 말이다. 

혼자 내린 결정의 잣대로 오히려 내가 색안경을 끼고 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을 아닐까 싶기도 했다.

부족한 부분이나 단편이라는 제한들로 하여금 보는 이들에게 마음에 와닿게는 못 하였을수는 있지만 할 일은 했던 것 같다.

이 계기로 릴루미노가 필요한 분들에게 쓰여진다면 그거야말로 완전한 결말이지 않을까?

흔히 시각장애인이라고 생각했을 때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전맹을 많이 떠올렸을테지만, 현실적으로 전맹은 소수이고 대부분은 각각 보이는 정도의 차이가 있는 저시력자들이라고 한다.

주변에 렌즈나 안경, 라식수술, 돋보기 등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으니 그들에게도 우리와 같은 도움수단인 생긴것이다.

익숙치 않은 것을 알리려는 방법을 그냥 단순한 광고가 아닌 짧지만 영화라는 방식으로 접근했다는 자체가 근사한 것 같고, 극중에서 수영(한지민)에게 요청하지 않은 일방적인 도움의 손길을 내민 할머니로 표현된 우리들 혹은 사회의 잘못된 배려보다 훨씬 더 배려있는 접근이었던 것 같다.

물론 시각장애인분들중에 얼마나 많은 분들이 이 영상을 볼 수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할 수 없었던 릴루미노라는 것을 개발한 자체만으로 좋은 생각이 현실화 된 것이니 그 부분까지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는 않겠다.

광고의 힘일수도 있다.

찌푸리고 보던 내가 생각을 좀 더 달리하고 인상을 폈으니 말이다. 아니면 영화라는 좋은 도구를 쓴 광고쟁이들의 통찰력이었을수도 있겠다.

아무렴 어떠나싶다. 견해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하겠지만 저시력자들이 좀 더 나은 삶을 살길 바라는 마음들은 같을테니 말이다.

아주 드라마틱한 결과는 아닐지라도 우리의 답답함을 해소시켜주는 안경이나 렌즈처럼 릴루미노가 정말로 그들에게 빛을 돌려주길 바란다.

두 개의 빛. 영화에서 그 의미는 다양할 것이고 말하고자 하는것도 각자가 느끼는 것만큼 여러개 일 것이다.

내가 처음에 영화를 보면서 가졌던 선입견처럼 우리 사회가 시각장애인들에대해 잘 알지 못해 생겨있는 벽들이야말로 우리가 정말로 보아야 할 것을 가로막고 있는 또다른 장애가 아니었을까 싶다.


우리선희




마음에 들지 않는 영화

<두개의 빛: 릴루미노>를 보고


   이 영화가 별로였던 것은 30분 남짓의 시간이 짧아서도, 영창이나 삼성을 꼭 꺼내야해서도 아니다. 영화를 만든 사람이 얼마나 조심성을 가지고 이 영화를 만들었나를 생각하면 불편하다.

   불편1 : 영화의 내용. 등장인물들은 한 데 모여서 자기 얘기하며 만나고, 한참 같이 찍은 사진으로 전시를 여는데도, 이들이 서로 얼마나 친밀한지, 어떤 이유로 그러한 지 감도 못잡겠다. 장애를 가진 사람은 모두 친밀한가? 같은 동아리 활동을 하는 사람은 모두 친밀한가? 혹은 그 두 가지 경험을 모두 공유한다고 해서  친밀한가? 상당히 불편.

   불편2 : 영화의 만듦새. 필터하나 입힌 듯한 아름다운 색감. 좋은 화질. 잔잔한 음악. 명확하게 들리는 목소리. 뭣보다 좋았던 건 한지민과 신신애의 연기. 그걸 보는 불편함에서 나의 찌질함 발견. (한지민과 박형식이 아닌 한지민과 신신애였다면?)

   불편3 : 영화 바깥의 이야기. 이걸 굳이 극영화로 만들어야 했나. 릴루미노는 그렇지 않아도 충분히 가치있던데. 

   한지민이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공감한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장애에 대해서 꽤나 무지하니까. 시각장애를 가진 사람 가운데 86%는 저시력자라는 거, 몰랐으니까. *우리나라 시각장애인이 가장 많이 즐기는(92%) 여가활동은 'TV보기'라는 거, 생각도 못했으니까.          

 


   배리어프리 영화를 본 적이 있다. '달팽이의 별' 이었다. 빈둥빈둥대던 어느날, 아빠를 교화시키기 위해 틀어준 영화. 올레티비 무료영화 어느 란에 있어, 배리어프리 버전인지도 몰랐던. 

   영화에서, 어떤 목소리는 장면을 계속하여 설명한다. 어떤 장면에서는 핵심을 짚어 짧게 설명하는 목소리의 방법이 더욱 마음에 들었는데, 그 방식이 아주 편안했기 때문이다.     

   잠시 눈을 감고 그 말을 보기도 했다.                


*출처: 

-출처:2017.12.29. 이투데이-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1579158 


고래




너를 기억해

- 영화 <두 개의 빛: 릴루미노>를 보고 -


   영화 읽기 수업 첫 시간, 허진호 감독의 <두 개의 빛 : 릴루미노>를 봤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찾아본 것은 최소 5번은 될 것이다. 다시 봐도 같은 이유로 역시나 좋았다.

   처음 이 영화를 찾아보게 된 것, 이후에도 종종 이 영화가 생각나서 전체 혹은 일부 클립을 찾게 된 유일한 이유는 배우 박형식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박형식이 아름답게 나오며 그것만으로도 나에게 이 영화는 볼 가치가 충분하다. 

   우리가 특정 영화를 오랫동안 열렬히 좋아할 때 그 작품을 음미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내용과 형식의 완성도를 따져가며 작품 전체를 조망하거나 특정 장면에 꽂혀서 그것만 무한 반복하며 열광할 수 있다. 혹은 이런 나름의 기준이 무색할 정도로 내가 사랑하는 배우의 아름다운 리즈시절이 담긴 작품이니까 평점이나 전문가의 의견은 기꺼이 아웃오브안중하는 유연함이 발휘되기도 한다.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는 비운의 아이돌, 제국의 아이들 출신인 박형식은 무대보다 스크린에서 훨씬 돋보이는 자신의 진가를 뒤늦게 발견하면서 이후 배우의 길로 전향한다. 선한 인상인 그의 얼굴에서 나는 서늘한 매력을 느낀다. 이전 작품들에서 주로 맡던 살갑고 만인의 사랑둥이와 같은 역할이 아니었기에 이 작품에 더 눈길이 갔다. 개인적으로 나는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인수(박형식)를 좋아한다. 사진 동호회 모임에 참여하기 위해 수영(한지민)과 처음 계단에서 만났을 때 보이는 특유의 까칠함이 좋다. 도와주려는 그녀의 팔을 뿌리치거나 친해지려는 데 무안하게 혼자 들어가는 것, 서로 호감을 보이다가도 그녀의 농담을 단순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며 정색하는 장면도 아낀다. 반대로 마지막 하트 그리는 장면은 너무 했다. 기억에서 지워야지.

   나는 주로 특정 장면으로 영화를 기억하고 연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예컨대 락에 미친 소년이 초 단위로 기타를 휘갈길 때 날리는 머리카락, 하얀 소면을 삶아 빨간 양념장에 버무리는 손길, 진실과 마주한 부부가 침묵하던 그 순간, 굵은 웨이브 파마의 한 여인이 피는 담배 연기 같은 것들. 

   <두 개의 빛 : 릴루미노> 훗날 내가 이 영화를 회상할 때 인출의 근거는 배우 박형식이 될 것이다. 시각 장애인의 삶이라던가 대기업의 상술 의도로 이 영화를 읽고 싶은 마음은 사실 없다. 이 영화에서 내가 가장 기대하는 면이 일차적으로 충족되었으므로 오히려 다른 차원에서의 비평에 너그러운 편이다. 영화는 태생 자체가 매우 산업적인 것으로 과장 조금 보태면 광고와의 연결은 운명 공동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통, 배급에서 중요시되는 상업적인 관점이 제작에서는 엄격히 배제되어야 할 이유를 딱히 모르겠다. 예술성과 상업성이 영원히 평행노선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 이런 점에서 보면 오히려 이 영화는 꽤 기특하기도 하다. 광고를 이런 식으로 풀어내려는 시도는 여러 방면에서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니까.

   마지막으로 한 가지 고백하자면 이 영화를 여러 번 보았지만, 매번 제목을 틀린다. 정확하게 영화명을 검색해본 적이 없다. 일루미노, 룰루미노, 루루미노, 경계를 넘어 노미노까지, 더 가면 피자집까지 나올 판. 

결국,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내가 정확하게 입력할 수 있는 검색어는 ‘박형식 영화’이다. 

   그래, 사람이 중요하지. 뭐 이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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