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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야 Jan 10. 2024

기쁨보다는 두려움으로 먼저 다가온 임신

2023년 11월의 일기

#1.


지금으로부터 몇 달 전, 짝꿍과 “부모들은 아이들이 언젠가는 이 세상을 떠날 걸 알고 낳는 거잖아. 본인보다 더 오래 살 수도 있지만, 먼저 갈 수도 있는 거고. 그걸 알면서도 낳겠다고 용기를 내는 건 어떤 마음일까?”라는 내용의 대화를 했었다. 조카처럼 작고 예쁜, 그렇지만 쉽게 부수어질 수 있는 작은 존재들을 보면 나는 마음이 시렸다. 


그리고 그로부터 몇 달 후, 나는 내 안에 또다른 생명이 깃들었단 걸 알게 됐다. 병원에 가서 소식을 듣고, 짝꿍을 출근시키고, 집으로 혼자 들어오는 길에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기쁨이라기보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내 안에 있는 생명이 한없이 위태롭게만 느껴졌다. 나는 이 연약하디 연약한 생명의 고락―아이가 많이 아플 수도 있고, 나보다 먼저 세상을 뜰 수도 있다는 생의 무거운 이면―을 감당할 수 있는 존재일까.


출처: unsplash


#2.


임신 사실을 알고 3주간은 이 무거운 생의 진실에 짓눌려 산 것만 같다. 현실을 회피하고자 SNS 공간을 부유하며 떠다니다, 이런 글을 발견했다. 수명이 인간보다는 짧은 고양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김하나, 황선우 작가가 고양이와 함께 살며 느낀 점에 대해 이야기했다는 대목이었다.


“평생 아프지 않고 건강한 존재와 사랑한다면 상처받을 일도 없겠지만, 그건 생명이 아니겠죠. 살아있는 존재와 관계를 맺는 건 약해지고 병들고 소멸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거고 그 시간을 함께하는 것도 고통이라기보다는 사랑의 과정인 거죠.” (팟캐스트 <여둘톡> 중에서)


부모, 형제자매, 배우자, 친구… 언젠가는 이별할 존재들과 살아가는 일이 조금씩 실감이 될 때가 있다. 상상만으로도 억장이 무너지지만, 부정한다고 부정할 수 있는 사실이 아닐뿐더러 상처를 피할 수도 없는 일이다.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더 아플 테지만, 그렇다고 사랑하지 않을 수도 없다. 생명의 본질이 본디 “약해지고 병들고 소멸하는 과정”임을, 그 행복하고도 고통스러운 시간을 함께해야 비로소 사랑이 완성된다는 것을 조금씩 배워 가는 것 같다.


#3.


2주 연속 아이의 심장소리를 들었다. 1~2주에 한 번 방문하던 것에서 이제는 1달에 한 번 방문하는 것으로 주기도 늘어났다. 다음번 방문 시에는 기형 검사를 한다며, 내가 고령산모이기에 비용을 더 들여서라도 더 정밀한 검사를 할 것인지 고민을 해보라 했다. 그 검사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없어 함께 유튜브로 검색을 해보았다. 다운증후군과 에드워드증후군인 태아를 미리 '선별'하는 내용의 검사였다(임신중지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사실 나는 정밀한 장애 선별 검사를 원치 않는 입장이었지만, 함께 책임질 사람인 짝꿍에게 정밀 검사를 원하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짝꿍은 오히려 내게 되물었다. “혹시 우리 아이가 다운증후군이라고 하면 포기하고 싶어?” 형식은 질문이었지만, 그 말 속에는 어떤 의지 같은 것이 느껴졌다. 나도 바로 대답했다. “아니.” (*물론 나는 여성들이 다양한 삶의 조건 속에서 택하는 임신중지를 지지한다)


아주 짧은 대화였지만, 나는 이 대화 속에서 우리가 한층 더 강해짐을 느꼈다. 우리가 새 생명의 기쁨과 취약함을 동시에 받아들였구나, 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날부터 이런 지향의 기도를 올리기로 했다.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날 수 있기를. 그리고 설사 아이가 건강하지 않더라도 사랑으로 키워낼 수 있는 힘을 우리에게 주시기를. 생명의 고락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우리에게 주시기를.



- 2023년 11월 20일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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