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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야 Mar 02. 2024

임산부의 비효율적인 삶?! 오히려 좋아!

2024년 3월의 일기


임신 중기로 접어들고 몸이 점점 더 무거워지면서, 예전보다 모든 일에 얼마간의 시간이 더 필요하게 되었다. 샤워할 때에도 미끄러지지 않게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옷을 입거나 양말을 신을 때에도 예전만큼 몸이 빠릿빠릿하게 움직여주질 않는다. 살이 트지 않도록 튼살 크림도 잘 발라 주어야 하고,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머리도 더 바싹 말려 주어야 한다. 그런가 하면 짧은 거리도 뛰어갈 수 없는 처지가 되니(뛰기는커녕 조금이라도 빨리 걸으면 배가 금세 뭉치는 기분이 든다), 평소 도보 시간의 1.5~2배 정도 시간을 잡고 일찍 출발해야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크고 작은 돌발 상황들을 고려해서 평소보다 넉넉 잡아 1시간은 더 일찍 준비하는 습관이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재택 형태로 일을 할 때에도 여러 돌발 상황을 고려하는 습관이 생겼다. 정신력과 의지로 주체할 수 없는 잠이 쏟아진다거나(우스갯소리로 ‘아가가 마취총을 쏘는 것 같아’라고 말하곤 한다), 배가 갑자기 뭉친다면, 일을 더 하고 싶고 해야만 하는 상황이라도 곧바로 누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업무에 드는 시간을 예전보다 더 여유 있게 계산하는 습관이 생겼다. 때로는 여느 직장인보다도 일찍 아침 7시부터 일을 시작할 때도 있다. 밥을 챙겨 먹거나 쉬는 시간을 제대로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전까지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버리는 시간(?) 없이 꽉꽉 채워 살고자 했다. 또, 항상 마감 시간, 약속 시간에 딱 맞게 준비하고 헐레벌떡 뛰기 일쑤였다. 돌아보건대, 나를 위해 여유를 갖는다거나, 대기나 준비하는 데 시간을 많이 쓴다거나 하는 일들이 죄다 비효율적으로 느껴졌던 것 같다.


예전의 기준에 비추어 보자면, 지금의 삶은 꽤나 비효율적인 삶이다. 예컨대 ‘약속 장소에 간다’라는 똑같은 행위를 하는데, 남들보다 1시간을 더 써야 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 어떤 바쁘고 긴급한 상황에서도 끼니와 휴식을 제1순위로 두어야 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예전의 나였다면 쉬는 시간 따윈 안중에도 없이, 급하면 급한 대로 무조건 내달렸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요즘의 나는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만족을 느끼고 있다.


여유 있게 준비를 하니 몸에 바디로션을 정성스럽게 바르고 좀 더 단정하게 드라이할 수도 있게 되었다. 뛰지 않고 천천히 걸어가며 주변을 둘러볼 여유도 생겼다. 일의 진행을 지체시키는 조금의 돌발 상황에도 조바심이나 짜증이 나던 과거와 달리, 작은 돌발 정도는 관대하게 넘길 수 있게 되었다. 이미 나는 그러한 상황들까지 고려해서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돌발 상황’들을 디폴트로 두니, 돌발 상황 없이 지나는 하루에 더 감사함을 느끼게 되었다.


임신 중에도 이럴진데, 아이가 태어난 이후의 삶에는 얼마나 많은 돌발 상황들이 생겨나게 될까. 하루 24시간 중에 내 마음대로 컨트롤할 수 있는 시간보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시간이 더 많아질 것이다. 육아에 대해서 공부하고 미리 대비하면서부터는 ‘아이는 여기저기 아픈 것이 디폴트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앞으로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아픈 아이를 돌보는 일이 내게 있어 1순위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 사실을 인정하고 대비하지 않는다면, 항상 허겁지겁 살게 되거나, (최악의 경우) 본인이나 아이를 원망하는 기분을 지울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들의 가지를 계속 쳐 나가다 보면, 사실은 이런 비효율(?)까지도 우리 인생의 중요한 일부분인데, 왜 자꾸만 이런 것들을 제하는 방향으로 삶이 구성되고 있는지 아이러니하게만 느껴진다. 결국은 팍팍한 삶을 조장하는 장시간 노동의 문제일까..? 부디, 사회여! 우리에게 비효율적인 삶과 돌발적인 상황들을 허하라!  


    2024년 3월의 일기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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