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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해여자 Apr 04. 2024

혼자서 종이우산을 쓰고 가다

에쿠니 가오리

이제

혼자서는 울기가 싫어서

한적한 공원 주차장이나

대형화물차 옆 나란히 차 세워두고 우는 그곳이나

조용한 호텔방은 뒤로하고

한낮에도 조명 어두운

주문할 때만 얼굴을 마주하는

울다가 울다가 가만히 나와도 되는

풍성한 소리의 음악이 나오는 스피커가 있는

바의 형태로 누구와도 얼굴을 마주할 일이 없는

소리 없이 눈물만 흘리기에 최적화된

울음방 같은 어둠의 동굴 같은 그 커피숍이

목요일에 문을 닫는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시동을 걸고 향할 곳이 사라져

넋을 놓고 있다가

파도치는 바다까지는 운전할 힘 없어

경남대표도서관을 찾았지만

읽지도 않는 책 펼쳐 들고 있다가

눈물 닦으려 책을 덮었는데

책의 뒷 표지에

갖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보고 싶은 사람도

이곳엔 이제 하나도 없다는 글귀를 보고

이 책은 내가 오늘 읽을 책이 못되구나

에쿠니 가오리의 가벼운 연애소설이나 읽어볼까 했던 것이

호텔방에서의 세 노인의 엽총 자살 사건에 관한 글이었다니

혼자서 종이우산을 쓰고 간다는 제목이

지금의 나라며 집어 들었을 뿐인데

혼자 울기 싫어서 찾기는 했지만

더 크게 울어버렸다



아침에 전화 걸지 말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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