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같은 벽을 가져본 일이 없다
곧 허물어질 듯한 벽을 바라보는 일이 익숙한 풍경이었다
너머에 이리떼 승냥이떼 이글거리는 눈빛이 있는
벽이 무너지는 시간을 숨죽이고 지켜보았다
절벽에 지어진 집
그 벽이 스러져 맨몸으로 낭떠러지 앞에 섰을 때의 현기眩氣가 익숙한 삶의 조각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저녁에 기대어 울 곳이 없었다
작은 바람에도 멀리 떠가는 엷은 구름처럼 살았다
어느 날 달빛으로 지어진 벽을 갖게 되었다
시간 흘러도 허물어질 일 없는 벽이 생겼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더듬으면 그곳에 있다
어느 밤 달빛이 벽을 지어 올리더니
오늘의 달과 내일의 달이 서로 거드며
둥글고 따뜻하고 온유한 속을 가지고
매섭기도 하고 차갑기도 하나 결코 이지러질 일 없는 견고한 벽이 되었다
건조한 대지로부터 폭풍 치는 모래바람 막아주고
격랑의 밤바다에도 두 발 딛고 설 수 있게 해 주었다
지워지지 않는 이야기 그 벽에 옮겨 쓰게 하고
웅크려 울 수 있는 품을 내주었다
거친 밤 가슴을 문질러도 쓰라리지 않았으며 새살이 돋아났다
어느새 새들도 찾고 풀내 짙은 꽃담이 되었다
몇 광년 지름의 이 널따란 품에서
그 너머의 세상은 없는 듯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벽이 내게도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