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Om asatoma
Aug 30. 2024
1.
아무리 그날의 기억을 떠올려봐도
했는지 안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걸 보면
했더라도 감명이 없었던 것이 분명하므로
하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굳이 기억해내려 하지 말자고
2.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발로나 초코라떼를 만나
홀로 사모하듯 들르는 카페에서
오랜만에 마신 첫 모금에
미세하게 농도가 옅어졌음이 느껴져
왠지 모르게 식어가는 애인 눈빛 같아
서운해졌다
3.
만약 다시 제목을 지으라면
그것 대신 '첫'이라고 고쳐쓸 것이다
시의 첫 구절이
나의 피붙이들에게는 아픔이 될 것 같아
굳이 독자의 상상력을 제한했다
사실 원제목은 '첫'이다.
4.
생애에 지면으로 나간 첫 구절이
내가 가장 말하고 싶은 두 마디여서
나를 표현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표현이어서
무척 만족 또는 매우 흡족
5.
사운드로 하는 사우나
도로변 반지하여서 문밖으로 들리는 차 소리까지도
파도소리처럼 들리게 하는 마법의 도시
그와 나 사이 가득 들어찬 사운드
우리를 채우고 있는 것이 동일하다는 사실이 주는
묘한 쾌감
이 순간 몸에 흐르는 피의 속도가 같을 것이다
들이마시는 숨과 내쉬는 숨의 속도와 양도 비슷할 것이다
자석처럼 가까워져서 붙어버린다고 해도
이질감 없이 하나의 몸이 될 것이다
6.
그 봄, 내리던 비를 모두 시로 만들어준 남자를
어제 만났고
많은 사람들 속에서 아주 오랜 응시로 안부를 주고받았고
헤어질 때의 악수에 안녕을 담았고
놓지 못해 다시 잡은 손 잠깐의 사이 깊은 밤이 흘렀다
아름드리나무를 꼭 껴안듯 와락 안아버리고 싶었는데
끝이 되어버릴까 봐 다음을 남겨두고 돌아섰다
참 많이도 흔드신 것
지금은 큰 나무로 이 안에서 쉼을 안겨주시는 것 아실까.
더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여기에서 거기에서 행복을 빌기만 .
7.
사실은 누구의 시에, 누구의 그림에 들어가는 여자가 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철없던 새내기 시절 선배의 닉네임과 생일축하 문구를 써서 11월 29일 중앙도서관 앞 나무 사이에 현수막을 건 것처럼
겁 없이 정동진으로 가는 야간열차표를 9월 30일 2장 발권한 것처럼
언젠가의 고백의 순간을 위해 첼로를 배운 것처럼
그러한 장면 속에 내가 들어가고파서
글 비슷한 것의 여기저기에 그들을 그들 모르게 초대한다
8.
고개를 돌려보니
작은 창으로 들어온 햇빛이 바닥에 부딪혀 눈부시다
바닥에 내쳐진 햇빛 한 줌도 저리 눈 부신 걸 보면
이렇게 많은 사랑받는 것도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에 속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바닥에 떨어진 꽃잎도 고운 향이 나므로
짓밟히면 그 향 더 짙어지므로
異常한 일이 아닌 걸로.
9.
사람을 醉하게 하는 것은 결국 感想
잘 느끼게 하기 위한 갖가지 수단이 동원될 뿐
感, 닿아서 움직이고 흔들어서 생각하고 느끼고 깨닫게 하는 것.
感, 모든(咸) 감각을 통해 마음(心)이 움직이게 하는 것 마음이 움직이는 상태
낮은 조도와 건조한 공기와 느리게 흐르는 음악과 세상에서 가장 근사한 남자처럼 깔끔한 발로나 초코.
그래서 취했음을 정성스럽게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