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단편소설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이 모든 것은 오로지 하루키 때문이라고 밝히면서 글을 시작하겠다.
한동안 소설을 읽지 않았고, 평소에 영화나 드라마를 보지도 않으며, 개인적인 관계들은 더더욱 갖지 않는 성향상 생활이 조금은 건조하게 생각되어 동네 작은 마을 도서관에서 필요한 책이 서가에 꽂혀있지 않아 사서가 책을 찾는 동안 오랜만에, 아주 오랜만에 소설을 한 번 읽어볼까 하다가 충분히 예측가능한 범위에 있는, 그래서 실망할 것도 없을 것 같은, 긴 기간 편안하게 연애하다가 오래전에 헤어진 연인을 재회하듯 어떤 편안함이 있는 하루키의 단편선이 하필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또 마침 이 계절에 하는 머플러가 오래전에 선물 받았던, 정확히 말하자면 결혼 전에 선물 받았으니 이십 년이 다되어 가는 머플러이기에 백 퍼센트 캐시미어라고 되어 있지만 지블링 가공이 된 소재가 아니라 가볍게 직조되어 푸른색과 브라운이 조화롭게 페이즐리 문양을 이루고 있는 그 머플러를 보면서 이 머플러를 선물한 키가 크고 호리 하며 지적인 서울대 영문과 나온 그 남자를 가끔 생각한다는 사실을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 그 남자가 생각이나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가볍게 웃을 때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루키의 단편 소설 <여자 없는 남자들>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한밤중 한시가 넘어 걸려온 전화가 나를 깨운다." 두 번째 문단은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 나지막한 남자목소리가 내게 전한다, 한 여자가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졌음을."
단편집의 가장 마지막에 있던 소설인데 그냥 읽지 않는 편이 나을 뻔했다. 표제작이어서 첫 문장을 읽은 나를 탓한다. 나는 그냥 사랑 이야기를 쓴 책 한 권 낼 수 있으면 출판 기념회 같은 곳에 그들을 모두 한자리에 모아보고 싶다는 생각만 해왔을 뿐이다. 글을 써서 책을 내기도 힘듦을 받아들이고,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출판 기념회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며 그들을 한 자리에 모으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현실을 받아들인 지 한참이 지났는데 다른 꿈을 꾸게 한 문장이 눈앞에 나타난 것이 아닌가.
물론 나는, 나는 스스로 세상을 저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갑자기 사라질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리고 소설에서와 같이 남편을 통해 과거의 남자에게 자살 사실을 알리는 일을 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남편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성으로서의 사랑이라기보다는, 나는 남편을 나의 자식과 같은 위치에 놓아두었다. 내가 보호해야 할 대상이고, 웃음을 잃지 않게 지켜주어야 할 대상이다. 그런 시련을 겪게 하고 싶지는 않다. 처음부터 나를 알지 못했듯이 끝까지 나를 모르는 채로 끝내면 더 좋을 것 같은 관계 속에 있다. 안다고 해서 재미가 있지도 않고 제대로 알 수도 없으면서 사회적 기준에 따라 이런저런 오해를 하느니 차라리 모르는 편이, 정확하게는 적당히 본인이 알고 싶은 만큼만 아는 편이 더 낫지 않겠는가.
완벽한 남편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괜찮다. 그럭저럭 괜찮다는 말은 내가 감지덕지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 키우고 가정의 형태를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을 그가 아니면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심지어 아이들에게 다정다감한 아버지이지 않은가. 그걸로 충분하다. 이를테면 아직도 내가 모르는 척하고 있는 리프레시 휴가이면서 회사 가는 척 나가서 어디에선가 시간을 보내다가 온다던가 그의 아버지 자동차를 바꾸는데 적지 않은 금전적 지원을 드렸다던가 회식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장소에 있었으면서 야근을 하고 온 척을 하는 등의 일들은 충분히, 충분히 이해가 가능한 영역이다. 설사 내가 알지 못하는 이해가 불가능한 영역이 있다고 하더라도 나는 아마 이해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따라서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차마 활자화하지 못하는 아쉬운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그 역시도 괜찮다. 그에게 아픔을 줄만한 이유는 전혀 없다.
따라서 만약 소설 속의 그 여자와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나는 적어도 남편에게는 그러한 일을 시킬 수 없다. 대신 그런 일을 맡길만한 한 아이가 있다. 아이라기에 그도 이제 중년이 되었으니 한 사람이라고 하자. 오래전 그가 아일랜드에 있었을 때, 숙소 사진 속 책상 위에 하루키의 <상실의 숲>이 있었으므로 나의 이런 부탁을 순순히 받아들여 줄 것이다. 맡길만한 사람이 그 밖에 없다.
그가 전화를 걸어주어야할 사람, 가장 먼저.. 롯데 선배. 기댈 수 있는 아주 큰 언덕이었다. 그때는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어쩌면 이성 간 사랑의 영역에 속할 수도 있는 것이라는 것을 한참 뒤에 알았지만 끝까지 한참 나이 차이 나는 후배에게 일정한 거리에서 응원을 보내 주신 것, 그 덕분에 나는 한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다음으로 성선배. 글 <초밥 도시락>의 주인공이도 한 선배. 그가 보여준 나에 대한 존중이 내가 스스로 나를 유지할 수 있게, 최소한의 품위를 잃지 않게 해 주었다. 선배가 있어서 버틸 수 있는 순간들이 많았다.
유선배. 너는 보석 같은 아이이니 갈고닦으면 분명히 빛이 날 거라고 말해줬다. 사회에서 일정한 역할을 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는데, 그 시간을 견디게 해 준 것은 오로지 유선배의 그 말 때문이었다. 언니들이 은근히 엮어주려고 할 때 언니들이 조금만 더 열심히 해주길 속으로 바라기도 했는데 저 한 문장 만으로 평생 지워지지 않는 사람이 되었으니 충분하다.
윤선배.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봐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려주었다. 귀하게 여겨준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려주었다. 내게 좋은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말해주고 싶은 사람이다. 그 반대의 소식이라도 가장 먼저 말해주고 싶다. 진심으로 빌어줄 것이다. 행복이든, 명복이든.
유선배. 모조인간. 시마다마사히코. 푸른 안개 같은 사람. 실론티, 블루마운틴, 담배냄새, 그가 찍어준 한 장의 사진. 소식을 전해 듣는다면 그는 아마 그럴 줄 알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서점에서 만났던 김 군. 하루키를 함께 읽었던 위인. 결혼 후에도 함께 영국 가자는 말을 했다. 그렇게 말해줘서 좋았다. 그리곤 통역사인가 하는 여자와 결혼을 했다. 소식을 전해 듣는다면 어쩌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송.... 송. 언제나 미안하다. 지금도 그의 행복을 빈다.
그리고 K대 룸메이트 김지연, 종달새 최윤정, red bug.
그러나 선생님께는 알리지 않는 것으로.
남편이 그들을 안다고 해도 변하지 않는 최초의, 최후의, 유일한 승자는 자신임을 알 것이기 때문에 상관없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남편에게는 그런 수고를 시키고 싶지 않다. 수고를 해야 한다면 capellin. 스펠링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괴상한 글을 쓰는 것은 순전히 하루키 때문이다. 나는 그럴 생각도 없고, 이런 글을 쓸 생각도 없었다. 그런데 아이디어가 너무 탐나지 않은가. 어느 날 걸려온 전화 한 통, 그리고 전해주는 그 소식이. 그냥 독후감이라고 하자. 이 글을 읽어야 하는 건 capellin인데 읽힐 방법이 없다. 언젠가는.
놀라운 건 그 순간순간에 나를 지키고 있던 수호신 같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 신께서 가여이 여겨 보내주었거나, 이런 생을 실게 해 너무 미안해서 보내 주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그들의 존재감이나 내 생에서의 의미를 생각하면, 이런 생각을 잠시도 품어서는 안 될 것 같은데, 어디서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을 알려야 할 텐데.
안 되겠다. 하루키는 하루키일뿐이고 나는 현실 가능성은 적으나 이상적인 기존의 계획대로 가는 걸로 해야겠다. 글은 너무 안 써지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