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Om asatoma
Mar 01. 2020
일월 십사일 충무로 벙커일
서울 겨울은 춥기도 하더군요
신영복 선생님 4주기로만 알고 갔는데
아저씨가 나타나 기타 메고 노래를 불러주어서
나는 왈칵 쏟아지는 눈물을 삼켜야만 했습니다
혼자 교복 입고 어른들 사이 줄 서서 들어간 안치환 콘서트
그때처럼 강하게 밀려드는 무엇이 있었습니다
다른 것이 있다면
나는 그때 여고생이었고
이제는 기성의 세대에 속하는 나이가 되었는데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한 것이
아무것도 없어 죄스럽다는 것입니다
92년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요
장마의 종로거리는 왜 아직도 이어지고 있을까요
강가의 안개는 왜 또 여전히 가득한가요
젊은 사람 많이 사는 신도시 아파트 입주민 카페에서는
택배 받으면 비닐장갑을 낀 채 포장을 분리하고
현관 손잡이에 수시로 소독액을 뿌리라고 하는데
나는 그만 마스크도 없이 폐지 니어카 끄는 노인을 보아버렸습니다
가정들은 근근이 형태만 유지할 뿐
엄마의 따뜻함과 아빠의 든든함은 자본에 씻겨 내려가
아이들은 사랑 받지 못해 더 큰 방황을 하고
청년이 되어도 체온 없고 희망 없는 사회에서
가짜의 손길을 덥석 잡아버리는 일들이 많습니다
나는 누구의 무엇이 되고 있을까요
교과서를 가르쳐야 할까요 가짜 뉴스를 읽어내는 눈을 가르쳐야 할까요
김남주 시인의 사상의 거처를 읽습니다
그러면 멀지 않은 언젠가
아저씨와 같은 무대에서 시낭송을 하고
아저씨의 노래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외고 있습니다.
그 날이 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노래로 이렇게 누구의 마음을 온통 뒤흔들고
삶의 지향을 굳히는 아저씨라면
어떤 답이라도 해 줄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나이가 마흔이 넘었는데
나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요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정태춘; 북한강에서/ 92년 장마, 종로에서
*김남주, 사상의 거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