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지금은 우리사회의 균형을 되찾을 때
해외 생활을 할 때 잠시 한국에 돌아올 때마다 반가운 친구들을 만나는 기쁨은 크다.
한번은 몇십 년 만에 만난 고교 동창과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내가 왼손으로 젓가락을 드는 모습을 본 친구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니 짝뻬이가?”(너 왼손잡이야?)
나는 오른손잡이지만, 10여 년 전부터 왼손을 의식적으로 훈련해 왔다.
처음에는 젓가락부터 시작해 숟가락, 칫솔질, 글씨 쓰기까지.
젓가락은 콩 한 알 집기부터 라면 먹기까지 비교적 수월했지만, 숟가락으로 접시 위 깨 한 톨을 떠올리는 건 고역이었다.
오른손의 동작을 관찰하며 왼손을 가르쳤고, 수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자연스럽게 만들었다.
왜 이런 노력을 기울였을까? 오른손잡이는 뇌의 좌반구를 주로 사용하지만, 왼손을 쓰면 우반구가 활성화되어 공간 인식, 창의적 사고, 시각 처리 능력이 향상되며 뇌 가소성을 높이고 인지 유연성을 키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건 오른손과 왼손의 '협력'이다.
오른손은 대부분의 일을 도맡지만, 왼손은 보조 역할로 필수적이다.
오른손의 노동 강도가 세다 해도, 왼손 없이는 균형이 무너진다.
2013년 갤럽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스스로 왼손잡이라고 밝힌 사람은 5%에 불과하다. 하지만 20대에서는 8%까지 늘어 세계 평균인 10%에 가까워지고 있다.
이는 곧 우리 사회에서 ‘왼손’의 존재가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사회도 마찬가지다. 비록 소수일지라도, 혹은 다수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더라도, 그 존재를 존중하고 역할을 인정할 때에만 진정한 건강과 균형이 가능하다.
공평이란 똑같은 일을 똑같이 나누는 것이 아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감당할 몫을 인정하고,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면서 협력할 때 비로소 공평은 실현된다.
오른손(다수)이 모든 역할을 독점한다고 치자. 왼손(소수)은 '무위도식'한다고 비난받지만, 실제로는 보조와 견제라는 순기능을 발휘한다.
그런데 만약 오른손이 "넌 필요 없어, 밥만 축낸다"라고 왼손을 잘라버린다면? 몸은 기형이 되고, 일상은 엉망이 된다.
또 왼손이 오른손과 똑같은 노동을 강요받는다면, 그건 '공평'이 아니라 '강제 균등'일뿐이다.
진정한 공평은 각자의 다름과 역할을 인정하는 데 있다. 5:95의 비율이 50:50처럼 느껴질 때, 균형이 잡힌다.
요즘 우리 사회의 양극화는 바로 이 오른손과 왼손의 싸움과 닮았다.
좌파와 우파, 부유층과 서민층, 젊은이와 기성세대가 서로의 역할을 부정하며 대립한다.
소셜 미디어에서 쏟아지는 극단적 의견들은 이런 분열을 부채질한다.
최근 정치적 사건들—예를 들어 선거철마다 벌어지는 진영 간 비방이나, 경제 정책을 둘러싼 갈등—을 보면, 대화보다는 적대가 우선이다.
하지만 역기능(대립)과 순기능(견제)이 공존해야 건강한 사회가 된다. 한쪽이 이기면 전체가 패배한다.
이제 경종을 울릴 때다. 극단적 대립은 사회의 '뇌 가소성'을 잃게 만들 뿐 아니라 창의성과 유연성이 사라지고, 고착된 사고만 남는다.
오른손과 왼손이 다르지만 결국 한 몸을 이루듯, 오늘 우리 사회도 서로를 배척하지 않고 견제하며 도우면서 함께 가야 한다.
극단의 대립을 멈추고 화합의 길을 찾는 것, 그것이야말로 건강한 사회로 가는 유일한 길임을 깨달아야 한다..
화합을 종용하자. 서로 보조와 협력을 통해 균형을 찾자.
오른손이 칼질할 때 왼손의 도움이 필수이듯, 사회도 이제 소수 의견의 역할을 존중해야 한다.
다름을 '적'이 아닌 '보완'으로 보는 시각 전환이 필요하다.
그렇게 될 때, 우리 사회는 더 강하고 건강해질 것이다.
이미 우리는 한 몸으로서 연결되어 있다.
이제 손을 맞잡을 차례다.
운곡 김정익
긴 세월의 내공을 껴안고, 삶의 무늬를 또 다른 언어로 그려 내려고 고민합니다. 가슴에 조용히 웅크리고 있던 지나온 날들의 바람 소리, 잊히지 않는 얼굴들, 그리고 아직도 풀리지 않은 질문들을 물결로 엮어 실개천에 조용히 흘려보내고 싶습니다. 단순한 이야기가 아닌,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난 한 줄 한 줄의 문장들이 바람처럼 스치고, 별빛처럼 가슴깊은 곳에 내려앉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