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親舊)라는 이름

니가 그래도 내 친구 아이가..

by 운곡


雲谷


Prologue



여름이 서둘러 떠날 채비를 하고


바람결에 실려온 가을의 소식을 듣던 어느 날, 서랍 속에 잠들어 있던 빛바랜 사진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세월에 바랜 종이 위에서도 웃음과 눈빛만은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사진을 오래 들여다보니, 잊고 있던 목소리와 웃음소리가 귓가에 번져왔다.


청춘은 멀리 흘러갔지만, 그때의 설렘과 믿음은 아직도 내 안에서 따뜻하게 남아 있다.


가을의 운치 속에서, 나는 문득 그 시절의 우리와 마주하며 시간 여행을 떠난다.



검은 교복, 그 시절의 우리



검은 교복이 바람에 나부낀다. 학교 마당에 가득한 졸업식의 설렘과 들뜬 공기는 아직도 선명하다.


매서운 한파가 채 가시지 않은 2월의 교정, 졸업이라는 마지막과 새로운 시작이 교차하는 그 순간에 우리는 영화 친구의 한 장면처럼 박제된 채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사진 한 장 속의 우리는 웃고 있었고, 시간은 멈춰 있었다.



“나 이대로 살아도 되겠나.”



영화 속 준석의 물음은 단순한 대사가 아니었다. 인생의 무게를 처음 느끼던 그 시절, 우리 마음속에도 은근히 울려 퍼지던 질문이었다.


세상은 넓고 길은 험했지만, 친구와 함께라면 두렵지 않았다.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물었다.



“이 길이 맞을까? 우리, 잘하고 있는 거겠지?”



어설펐지만 진심이었고, 그 진심은 ‘친구’라는 이름으로 단단히 묶여 있었다.



친구라는 이름



“니가 그래도 내 친구 아이가.”


울고 웃고, 다투고, 때론 상처를 주기도 했지만 결국엔 서로를 끌어안았다.


친구란 그런 존재였다. 부족함을 덮어주고, 상처를 보듬어주는 사람. 뒤돌아보면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주는 사람.



사진 속 우리의 웃음도 그런 믿음으로 빛나고 있었다.


흩어져 각자의 길을 갔어도 마음 한구석에는 늘 서로가 있었다.


약속하지 않아도 지켜진 약속, 그것이 곧 우정이었다.



등대 같은 존재



“내 친구라서 참 고맙다.”


짧은 대사가 가슴을 두드린다.


희로애락을 함께한 친구는 인생이라는 거친 바다에서 길을 밝혀주는 등대 같은 존재였다.


어두운 밤 길을 잃을 때마다 우리는 서로의 빛으로 방향을 찾았다.


친구라는 이름은 말보다 큰 위로였고, 침묵보다 깊은 대화였다.



청춘의 영원



세월은 흘렀고, 검은 교복은 이제 추억의 옷장 한구석에 잠들어 있다. 그러나 그 시절의 기억은 여전히 선명하다.


사진 한 장을 들여다보면, 다시 그 마당에 서 있는 듯하다.


웃음소리, 장난스러운 대화, 그리고 서로를 향한 굳은 믿음....



그 사진은 단순한 종이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청춘이자 약속, 그리고 영원이다.



지금, 나에게로



세월이 흘러 이제 나는 인생의 뒤안길을 더 많이 걸어왔다.


그 시절의 물음 “나 이대로 살아도 되겠나”는


여전히 내 마음 한쪽에서 메아리처럼 맴돈다.



돌아보면, 살아온 길이 늘 정답은 아니었다.


돌아서기도, 멈추기도, 잃어버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때의 친구들, 그 웃음과 눈물이


오늘의 나를 지탱해 온 힘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인생에 대하여



친구를 떠올리면서 깨닫는다.


인생이란 결국 끝없는 경쟁이나 성취의 목록이 아니라,


누구와 함께 길을 걸었는가의 이야기라는 것을.



우리는 모두 언젠가 저마다의 종착역에 닿겠지만,


그 여정 속에서 나를 기억해 주는 사람이 있고,


내가 가슴 깊이 간직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삶은 이미 충분히 빛난다.



청춘의 친구들은 내게 묻는다.


“너는 지금 너답게 살고 있냐?.”



나는 여전히 그 물음 앞에 서 있다.


그리고 그 질문이 있는 한,


내 삶은 앞으로도 계속 길 위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운곡 김정익


긴 세월의 내공을 껴안고, 삶의 무늬를 또 다른 언어로 그려 내려고 고민합니다. 가슴에 조용히 웅크리고 있던 지나온 날들의 바람 소리, 잊히지 않는 얼굴들, 그리고 아직도 풀리지 않은 질문들을 물결로 엮어 실개천에 조용히 흘려보내고 싶습니다. 단순한 이야기가 아닌,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난 한 줄한 줄의 문장들이 바람처럼 스치고, 별빛처럼 가슴깊은 곳에 내려앉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