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곡의 고사성어 첫 번째 이야기..
-feat. 원숭이의 생존 본능
우리는 조삼모사를 원숭이의 어리석음으로 배웠다. 아침에 도토리 세 개, 저녁에 네 개를 받든,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를 받든, 결국 하루에 일곱 개라는 결론은 같다.
원숭이는 눈앞의 숫자 차이에 집착하며 어리석게도 소란을 피웠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나는 이 고사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본다. 어리석은 쪽은 원숭이가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무심함일지도 모른다.
바둑판을 떠올려보자. 같은 돌이라도 어디에, 언제 어떤 순서로 두느냐에 따라 판세는 완전히 달라진다. 덜 아픈 곳에 돌을 놓으면 상대는 무시하고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급소를 정확히 찌른다면, 상대는 반드시 반응할 수밖에 없다. 이 수순(手順)의 차이는 승패를 가른다.
조삼모사의 원숭이도 어쩌면 이 미묘한 수순의 가치를 본능적으로 알아챈 것은 아닐까?
아침에 하나라도 더 쥐는 것이, 그 순간의 생존을 보장하는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삶도 이와 다르지 않다. 만약 아침에 네 개의 도토리를 받고 저녁을 맞지 못한다면? ‘총합 일곱 개’라는 계산은 허공에 떠도는 숫자놀음일 뿐이다.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아침의 네 개는 당장의 배고픔을 달래주고, 생존의 불확실성을 조금이라도 줄여준다. 원숭이는 본능적으로 그 가치를 알았다.
반면, 인간은 총합의 논리에 갇혀 눈앞의 차이를 무시한다. 우리는 종종 미래의 합계를 믿으며 현재의 기회를 놓친다.
투자의 세계에서도 이 원리는 빛난다. 같은 수익이라도 언제, 어떻게 확보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시장의 흐름, 타이밍의 선택은 단순한 숫자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지금 손에 쥔 한 푼이 내일의 불확실한 약속보다 값질 때가 있다. 조삼모사의 원숭이는 어쩌면 이 타이밍의 지혜를 몸으로 이해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조삼모사는 어리석음의 우화가 아니다. 오히려 수순의 미학, 타이밍의 본질을 일깨우는 이야기다.
원숭이는 눈앞의 한 개 차이를 선택하며 생존의 본능을 따랐다. 반면, 인간은 추상적인 계산에 매달리며 현실의 날카로운 엣지를 놓친다.
삶의 국면에서 중요한 것은 총합이 아니라, 언제 무엇을 쥐느냐의 선택이다.
우리는 과연 지금 무엇을 손에 쥐고 있는가? 그리고 그것이 정말 내일까지 기다릴 만한 가치가 있는가?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어떤 수순을 밟으며 하루를 채워가고 있는지 묻고 싶다.
운곡
-오늘부터 생활 속에 잘 사용하던 고사 성어를 생각해 보는 시리즈를 10편에 걸쳐 연재하며 고찰해 보고자 합니다..
오늘 그 첫 편으로 조삼모사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운곡 김정익
긴 세월의 내공을 껴안고, 삶의 무늬를 또 다른 언어로 그려 내려고 고민합니다. 가슴에 조용히 웅크리고 있던 지나온 날들의 바람 소리, 잊히지 않는 얼굴들, 그리고 아직도 풀리지 않은 질문들을 물결로 엮어 실개천에 조용히 흘려보내고 싶습니다. 단순한 이야기가 아닌,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난 한 줄 한 줄의 문장들이 바람처럼 스치고, 별빛처럼 가슴 깊은 곳에 내려앉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