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와 버려짐의 아이러니 토사구팽(土俵狗烹)

운곡의 고사성어 연재 6편(6-10)

by 운곡


雲谷

토사구팽(土俵狗烹)

권력의 냉혹함


토끼를 다 잡으면 사냥개를 삶아 먹듯, 필요할 때는 요긴히 쓰이다가 일이 끝나면 무참히 버려진다는 뜻이다.


정치판에서는 특히 자주 등장하는 장면이다. 선거철에는 간절히 찾던 참모와 동지가, 권력이 굳건해지는 순간 한순간에 내쳐진다.


역사 속에서도 한때 ‘공신’이라 불리던 인물이 또는 충성을 다한 장수가 왕의 의심을 사 목숨을 잃는 일도 다반사였다.


정치판만의 일이 아니다. 직장에서도, 인간관계에서도 필요할 때는 불러 세우고, 일이 끝나면 연락 한 통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람이 도구로 취급받는 순간, 인간의 존엄은 가장 값싸게 떨어진다.


버려진 자의 역설


그러나 역사는 또 다른 장면을 보여준다. 버려진 자가 다시 필요해지는 기묘한 아이러니 말이다.


내쳐졌던 인물이 위기의 순간에 다시 불려 오고, 버림받았던 참모가 ‘구원투수’처럼 등장한다.


때로는 철저히 버려졌던 자가 스스로 힘을 키워 돌아와 버린 자들을 무너뜨리기도 한다.


부메랑의 교훈


토사구팽의 칼날은 언제나 한 방향만을 겨누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단지 필요의 도구로만 여기는 태도는 결국 자신을 향해 되돌아온다. 이용당했다는 상처와 배신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차갑게 잘려나간 기억은 오래 숙성되어 복수, 저항, 혹은 다시금 필요해지는 역설적 상황으로 모습을 바꾼다.


토사구팽은 어찌 보면 지혜로운 권력술이 아니라 결국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어리석음, 부메랑 같은 행위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버리지 못하는 마음



그럼에도 나는 꿈꾼다. 사람을 도구로만 대하지 않는 세상. 필요가 끝나도 곁을 지켜주는 관계. 끝내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기억해 주는 우정과 신뢰 말이다.


나는 무엇이든 쉽게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다. 다 쓴 물건도, 제 역할을 다한 도구도, 케케묵은 잡동사니까지 차마 버리지 못한 채 집 한켠에 모아둔다. 언젠가 쓸 일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세월이 흘러도 손끝 한 번 타지 않은 채, 그저 쌓이고 쌓일 뿐이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보통은 인연이 다하면 자연스레 멀어진다. 그러나 나는 연락처조차 잘 지우지 못해, 해외 살던 때 알았던 세계 각국 친구들의 연락처가 아직 남아있다.


한 번은 평소 알던 분과 사소한 의견이 차이가 있어 조심스레 내 뜻을 밝혔을 뿐인데, 그 뒤로 그분은 나를 모른 척하기 시작했다. 내가 인사를 해도 눈을 피하고 고개를 홱 돌렸다.


나는 그 단호함에서 오히려 묘한 경외심을 느꼈다.


인생을 저렇게까지 결단력 있게 살아갈 수도 있구나 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관계를 끊은 그의 이름조차 나는 여전히 연락처에서 지우지 못한다.



나의 아이러니



세상은 용도가 다한 것들을 가차 없이 버린다. 어쩌면 그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일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본능적으로 그 냉혹함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못하는 성정, 어쩌면 나는 여전히 사라진 인연조차 언젠가는 다시 쓸모 있을지 모른다고 믿는 착각 속에 사는지도 모른다.


아내는 내 집착을 가끔 농담 섞어 타박한다.


“당신 죽기 전에 전원주택으로 이사 가서 창고 크게 하나 지어야지. 온 동네 고물단지 다 쓸어 담아 넣어야 속이 시원하겠지요.”


나는 웃지만, 속으로는 뜨끔하다. 정말 그런 창고가 있다면 나는 또다시 채우는 데 바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것은 단순히 물건 문제가 아니다. 아내의 보물 상자에는 많지는 않지만 진짜 반짝이는 금은보화가 들어 있다면, 내 보물 상자에는 빛바랜 것들이 가득하다. 오래된 물건, 지워지지 않은 이름들, 다 닳아버린 흔적들. 남들에게는 고물일지라도, 내게는 세월이 빚은 보석 같은 추억이다.


나는 그것들을 버리지 않는다. 아니, 버리지 못한다. 빛바랜 조각들을 품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나의 아이러니이자 내 삶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숙제로 남겨진 질문



토사구팽은 분명 냉혹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치열한 생존의 현장에서 어쩔 수 없는 질서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그것을 비난해야 할 배신의 다른 이름이라 하고, 또 누군가는 받아들여야 할 적자생존의 법칙이라 말한다.


나는 아직도 그 경계에서 서성인다.


토사구팽은 끝내 비난받아야 할 냉혹함일까, 아니면 인정해야 할 생존의 방식일까.


정답은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우리 또한 언젠가는 필요의 이름으로 누군가를 곁에 두고, 필요의 끝에서 누군가를 놓아버린다는 사실이다.


그때 나는,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그 질문이야말로 우리 모두에게 남겨진 숙제일 것이다.




연재 7편. 예고


우공이산(愚公移山) ― 끈기와 지속의 힘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꾸준함으로 가능해진다.


장기 투자, 건강, 글쓰기, 삶의 목표 달성을 통해 끈기와 장기적 안목의 가치를 이야기한다.



운곡 김정익


긴 세월의 내공을 껴안고, 삶의 무늬를 또 다른 언어로 그려 내려고 고민합니다. 가슴에 조용히 웅크리고 있던 지나온 날들의 바람 소리, 잊히지 않는 얼굴들, 그리고 아직도 풀리지 않은 질문들을 물결로 엮어 실개천에 조용히 흘려보내고 싶습니다. 단순한 이야기가 아닌,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난 한 줄 한 줄의 문장들이 바람처럼 스치고, 별빛처럼 가슴 깊은 곳에 내려앉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