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의 등불을 다시 켜라-
운곡(雲谷)의 일요 논단(論壇)
雲谷
1. 인간의 품격을 가르는 감정, ‘부끄러움’
인간의 품격을 가르는 경계에는 하나의 감정이 서 있다.
바로 부끄러움이다.
문명이 아무리 발달해도, 부끄러움을 잊은 사회는 끝내 무너진다.
부끄러움을 안다는 것은 도덕의 체온을 잃지 않는다는 뜻이며,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짐승과 다른 유일한 징표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는 이 가장 인간적인 감각을 잃어가고 있다.
"파렴치(破廉恥)"와 "후안무치(厚顏無恥)",
염치를 깨뜨리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이 두 단어가 사회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전자는 염치를 짓밟고 타락한 행위를 아무렇지 않게 저지르는 행태이고,
후자는 얼굴이 두꺼워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태도다.
하나는 양심의 퇴화요, 다른 하나는 도덕의 붕괴다.
이 둘이 함께 퍼지면 공동체는 방향을 잃고, 사회의 온도는 차갑게 식는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가 바로 그 위태로운 경계 위다.
2. 어른들의 침묵과 지도층의 타락
사회를 지탱하는 두 축이 있다.
한 축은 세대의 지혜를 전하며 기준을 세우는 어른,
다른 한 축은 시대를 이끌며 길을 개척하는 지도층이다.
예전에는 어른의 말 한마디가 도덕의 지표였고, 그 품격이 세대의 질서를 이끌었다.
그러나 이제 어른의 가르침은 ‘꼰대’의 잔소리로 밀려나고, 젊은 세대는 도덕의 거울을 잃었다.
지도층의 도덕 해이는 더욱 깊다.
‘아빠 찬스’가 난무하고,
자리 나눠먹기식 일탈이 묵인되며,
권력은 책임이 아닌 이익의 도구로 변했다.
기업의 탐욕은 능력으로 포장되고, 부정과 청탁은 관행의 이름으로 둔갑한다.
어른들의 자리에는 침묵이,
지도층의 자리에는 양심이 아닌 계산이 대신 앉아 있다.
윗물이 흐려지면 아랫물도 탁해진다.
노동의 땀보다 수단의 교묘함이 더 큰 가치를 얻고,
대화보다 폭력이, 상생보다 경쟁이 앞서는 사회—
그것이 오늘 우리가 마주한 풍경이다.
3. 법이 아닌 양심이 사회를 지킨다
이 시대의 위기는 외부에서 오지 않았다.
내면이 무너진 자리에서 시작된, 보이지 않는 붕괴다.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사람들은 법보다 ‘남사스러움’을 더 두려워했다.
그 말에는 단순한 민망함이 아니라, 공동체의 신뢰를 저버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 단어조차 낯설어진 지 오래다.
공동체의 윤리가 식었다는 뜻이다.
법과 제도는 이미 저지른 악행을 다스릴 뿐, 선을 낳지는 못한다.
법이 사회를 유지한다면, 양심은 사회를 성장시킨다.
법은 사후의 처방이지만, 양심은 사전의 예방이다.
칸트는 인간을 “도덕법칙을 마음속에 품은 존재”라 했다.
인간은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알 때에만 자율적 존재가 된다.
그 법칙은 외부의 강제가 아닌, 내면의 부끄러움에서 태동된다.
부끄러움 없는 자유는 방종이고,
양심 없는 성공은 폭력에 지나지 않는다.
효율과 실리를 좇느라 우리는 도덕의 근육을 잃었다.
사회가 지속 가능하려면 계산이 아니라 신뢰가, 법이 아니라 양심이 앞서야 한다. I
4. 이제 다시, 양심의 등불을 켜야 한다i
양심 없는 권력은 반드시 무너지고,
부끄러움 없는 사회는 결국 제 얼굴을 잃는다.
공정과 상식은 구호가 아니라 행동의 언어여야 한다.
그것이 곧 국가의 품격이다.
이제라도 최고지도자는 양심을 사회의 가장 깊은 기반으로 세워
모럴 해저드를 바로잡고,
부정과 거짓에 단호히 맞서야 한다.
정직이 제도보다, 양심이 이익보다 앞서는 새로운 신뢰의 질서를 세워야 한다.
그리고 어른들은 다시 별이 되어, 이 시대를 비추는 길잡이가 되어야 한다.
오늘, 이익의 무게가 양심의 무게를 짓누르는 시대에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 부끄러워할 줄 아는가?
우리의 마음엔 아직 양심의 등불이 켜져 있는가?
이 질문이 불편하다면,
그 불편함이야말로 아직 우리가 사람으로 남아 있다는 마지막 증거일 것이다.
운곡
긴 세월의 내공을 껴안고, 삶의 무늬를 또 다른 언어로 그려 내려고 고민합니다. 가슴에 조용히 웅크리고 있던 지나온 날들의 바람 소리, 잊히지 않는 얼굴들, 그리고 아직도 풀리지 않은 질문들을 물결로 엮어 실개천에 조용히 흘려보내고 싶습니다. 단순한 이야기가 아닌,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난 한 줄 한 줄의 문장들이 바람처럼 스치고, 별빛처럼 가슴 깊은 곳에 내려앉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