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집, 아파트 문화 이대로 괜찮은가?
(feat. 30년 만에 낡아버리는 집, )
雲谷의 수요칼럼
1. 세월이 기품이 되는 집
찬 바람이 창가를 스치는 계절이 오면, 나는 늘 두 곳의 풍경을 떠올린다.
어릴 적 부산 바닷바람 속 옛날 기와지붕 마을, 그리고 젊은 시절 출장길에 자주 찾던
프랑스 파리의 오래된 석조 건물들이다.
우리 조상들은 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기와를 얹어 집을 지었다. 비바람에 삭으면 손을 보태고 대를 이어 살며 집과 함께 세월을 견뎌냈다.
그 집은 ‘낡음’이 아니라 ‘삶의 흔적’이었으며, 시간이 쌓일수록 더 단단하고 고풍스러운 멋을 더해갔다.
파리도 마찬가지였다. 18세기 오스만 시대에 지어진 건물들에 여전히 사람들이 살고 있다.
정부는 이 오래된 고택을 단순한 ‘보존 대상’이 아닌 ‘살아 숨 쉬는 집’으로 관리하고 있었다.
2. 이라크의 모래바람 속에서 배운 것
전쟁 이후 나는 또 한 번 이라크로 향했다.
바그다드 근교 아파트 10만 호를 짓는 한국 기업의 대형 건설 현장에서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정확히 4년간을 보냈다.
그 시기는 이라크 현대사에서 가장 험난한 시절이 아니었을까?.
IS의 위세가 극에 달했고, 폭탄 테러와 내전이 곳곳에서 이어졌다.
외국 기업들은 하나둘 철수했지만, 한국 기업은 떠나지 않았다.
이라크 정부가 우리를 신뢰했고, 우리는 그 믿음에 응답하듯 테러와 납치, 내전의 공포 속에서도 일손을 멈추지 않았다.
우리 모두 더 나은 내일을 향해, 삶의 터전을 세우기 위해 묵묵히 일터를 지켰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집이란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라,
절망 속에서도 인간의 생존과 추억을 담아 희망을 이어가는 마지막 형태라는 것을.
모래바람에 뒤덮인 황무지 위에서 벽돌 한 장, 철근 한 줄은 단순한 자재가 아니었다.
그것은 삶의 끈이었고, 건축은 산업이 아니라 삶을 지탱하는 철학이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한국인의 손으로 새로운 이라크의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었다.
3. 한국의 현실: "못 짓는 게 아니라, 안 짓는 겁니다."
귀국 후, 한국의 아파트 현실은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다. 고작 30년이 지나면 ‘노후화’라는 이름으로 재건축 대상이 된다.
나는 물었다. “왜 우리는 100년을 견디는 집을 짓지 못합니까?” 돌아온 대답은 간명했지만 충격적이었다. “못 짓는 게 아니라, 안 짓는 겁니다.”
기술은 이미 100년 이상 내구연한을 가진 철근콘크리트 구조물을 설계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해 있다.
하지만 현실은 공사 단가, 분양 수익, 빠른 회전율이 모든 판단의 기준이 되어버렸다.
결국 우리들의 집은 ‘삶의 터전’이 아니라 ‘소비되는 상품’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4. 통계로 본 우리의 '30년 수명' 주택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한국 공동주택의 평균 수명은 30년 이하다.
반면 유럽 선진국들은 대부분이 100년에 근접하거나 그 이상이다.
1931년 완공된 미국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여전히 건재하다.
이 차이는 기술이 아니라 정책과 인식의 문제다.
사실 우리나라에도 2014년 ‘장수명 주택 건설 기준’이 이미 마련되어 있다.
구조체 수명 100년, 가변형 설계, 설비 교체 용이성 등이 법적으로 명시됐지만,
실제 시행률은 전무했다.
결국 정부는 2022년과 2024년 두 차례에 걸쳐 관련 법규를 완화했지만 아직 현장 적용률은 3% 남짓 미미하다.
장수명 설계는 공사비가 더 들고, 당장의 이익이 줄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전히 ‘빨리 짓고 빨리 허무는’ 건축의 악순환 속에 살고 있다.
5. 대안을 찾아서 ― 오래 사는 집, 깊어지는 도시
(1) 정책의 시선 전환
이제 분양 중심 정책에서 거주 중심 정책으로 전환해 집을 ‘팔기 위한 상품’이 아닌 ‘살기 위한 공간’으로 바라보는 인식의 변화가 출발점이다.
단기 수익이 아니라 세대 간 자산으로서의 가치로 봐야 한다.
100년을 내다보는 건축에는 공공의 투자와 장기 비전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2) 장수명 주택의 보편화
기둥식 구조, 모듈형 설계, 배관·전선 교체가 용이한 가변 구조 등 100년 이상 사용 가능한 설계를 표준화하고, 장수명 인증 주택에 과감한 세제 및 용적률 인센티브를 제공하여 시장에 실질적인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
(3) 문화의 복원
집은 단순한 콘크리트 덩어리가 아니다.
그 안에는 세대의 기억과 가족의 온기, 그리고 시간의 결이 흐른다.
화려함보다 지속되는 아름다움, 새것보다 깊은 것을 중시하는 미학으로
우리의 건축 문화를 되돌아볼 때다.
6. 맺음말 ― 세월이 머무는 집을 꿈꾸며
이라크의 모래바람 속에서 보았던 낡은 담벼락 하나,
그 위에 덧칠된 시멘트 자국이 유난히 아름다워 보였던 이유를 이제야 안다.
그것은 낡음이 아니라 ‘살아 있음’의 증거였다.
집은 그렇게 세월을 품고, 사람은 그 안에서 세월을 견디며 살아간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30년 만에 낡아버리는 집이 과연 우리의 세월을 담아낼 수 있을까?
시간이 흐를수록 멋이 깊어지고,
세대가 바뀌어도 이야기가 남는 집.
그런 집이 다시 우리 곁에 세워질 때,
비로소 우리의 도시는 백 년의 세월 속에서도
품격과 기억이 함께 머무는 건축 문화를 되찾게 될 것이다.
雲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