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곡의 말 안 되는 듯 말 되는 이야기 시리즈(1)
풍요 속에 배고픔을 기억하는 것
-버려지는 음식과 음식에 대한 신념 사이의 갈등
雲谷
언제부터인가 나는 내 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살아간다.
이른 새벽, 위장이 조용히 신호를 보낸다. 꼬르륵— 그 작은 소리에 눈을 뜬다.
정수기에서 온수 모드를 누르고 120cc를 셋팅한다. 평소엔 투박한 머그잔을 쓰지만, 몸에 대한 예의로 아내가 아끼는 크리스탈 컵을 꺼낸다.
따뜻한 물 한 잔이 목을 타고 내려가며 위장을 따뜻하게 감싼다 이 느낌이 나는 참 좋다.
작년 7월부터 하루 16시간 공복을 유지하는 간헐적 단식 덕분에 나는 늘 배가 고프다. 이 허기는 나에게 음식의 중요한 가치를 생각하게 하고 건강을 위한 필수 과정으로, 어느 틈엔가 나의 루틴으로 자리 잡았다.
요즈음은 모든 것이 차고 넘치는 세상, 특히 먹는 것은 풍요를 넘어 폭주를 하고 있는 듯하다.
나는 그 풍요 속에 의도적인 '배고픔을 선택한 것이다.
평소 나의 음식에 대한 생각은 단순한 절약 이상의 생활 신념이다.
1950~60년대 출생한 소위 베이비부 머라는 우리 세대는 음식뿐 아니라 거의 모든 것이 궁핍했다.
요즈음의 학생들은 학교에서 주는 점심을 먹으며 배고픔을 모르지만, 우리의 점심 도시락은 잡곡밥에 김치 한 조각이 전부였으며 심지어 그 조차도 사치라는 듯 점심을 거르는 친구들이 많았다.
참 가슴 아픈 시절이었다.
더욱이 우리는 질병 아닌 질병 같은 영양실조에 그대로 노출되어 아침 조회 시간에 픽픽 쓰러지던 친구들을 기억하는 나에게, 음식은 맛집 순례하듯이 가볍게 생각하는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라 굴곡진 삶 그 자체였다.
그 시절 우리는 쌀 한 톨을 '농부의 땀'이라 배웠고, 스님들의 발우 공양까지는. 아니더라도 음식은 남기지 말고 깨끗이 비워야 한다는 교육을 받고 자랐다.
그래서 음식을 많이 남기고 버리는 것은 거의 '범죄자(?) 취급'을 받던 시대였다.
가끔 아내와 함께 아들 집에 가면 정성 들인 집밥이 아니라 마치 배달 천국에 온 기분이 든다.
그러나 요즈음 어디 내 며느리뿐이랴,
아파트 현관문 앞에는 새벽 배송으로 온 듯한 햇반 박스가 바쁜 택배기사가 던져 놓은 대로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다.
며느리는 평소 착하고 시부모를 꼬박꼬박 챙기며 공손하니, 딱히 잔소리할 일은 없다.
식사 시간이 되면 고부가 다정히 부엌에서 요리를 하는 것이 아니고, 배달 앱의 메뉴를 보면서 밉지 않게 묻는다. “어머님, 뭐 드실래요?” 아버님은 요...
나는 젊은 시절부터 배달하면 짜장면이다 며느리는 그러는 나에게 언제나 아버님 좀 좋은 거 드세요 하면서 살갑게 챙긴다, 아들은 육회비빔밥을 좋아한다 찐만두, 탕수육, 육전 등등
각자 먹고 싶은 메뉴를 고르니 여러 식당에서 배달이 온다.
6인 식탁은 그 많은 음식을 다 감당하지 못한다. 몇 가지는 포개지고 먹는 사람 수보다 음식의 종류가 더 많다.
식사 중 며느리는 아이 밥 먹이고 물 떠다 나르고 이런저런 이유로 식사에 집중이 안 된다. 먹다 말다를 반복하다 결국 며느리는 밥을 반쯤도 못 먹고 젓가락을 내려놓는다.
아들 녀석이 내 눈치를 보며 며느리가 남긴 것을 슬그머니 제 앞으로 갖다 놓는다.
내 성정을 잘 아는 터라 나름 선방해 보지만 역부족이다. 결국 음식은 많이 남았다. 남은 음식들을 바라보며 문득 생각했다.
6.25 전쟁통에서 나라를 지켜낸 세대와 그들의 2세 베이비부머 세대가 잿더미에서 시작해, 배고픔을 견디며 산업화의 땀으로 쌓아 올려 만든 이 풍요와
이제 배고픔이 뭔지를 모르는 며느리의 풍성한 식탁을 보면 만감이 교차한다.
식사 후 며느리가 묻는다. “아버님, 차는 뭘로 하실까요?” 그래, 기름진 것을 먹었으니 연한 아메리카노로 하자꾸나. “어머님은요?” 나는 밤이라 커피가 부담스럽구나.
“어머님, 그럼 캐머마일 티 나 과일 음료는 어떠세요?” 그래, 과일 음료로 하자구나. 나는 당연히 “차”는 제 손으로 만들어 주는 거라 생각했는데 또 배달이다. 참 놀랍다. 정말 배달의 민족 후예답다는 생각이 든다.
차를 기다리는 동안 베란다 쪽으로 가서 밖을 쳐다보며 생각에 잠긴다.
아들의 키가 189cm이니 작은 키가 아니다. 결혼 전에는 필라테스 트레이너를 해서 80kg의 늘씬한 훈남이었다.
결혼 4년 차, 몸무게가 130kg가 넘는 거구가 되었다. 마치 내가 젊을 때 TV에서 보던 헐크를 연상시킨다.
이해가 간다. 아내가 남기고 아이가 남긴 것을 모조리 다 먹었을 것이다. 어릴 적부터 음식 남기고 버리는 것에 대해 철저한 교육을 받았으니...
조용히 아들을 불러 말을 건넨다. 요새는 “몸무게가 100kg를 넘으면 톤으로(t) 표기한다더라.
너는 이제 0.13t을 넘겼는데, 이제 더는 그러지 마라. 가능한 음식을 절제하고, 그게 안 되면 차라리 버려라.”
아들은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나는 아들의 불어난 몸을 볼 때마다, 나의 고집스러운 음식관이 애꿎은 아들을 희생시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미안한 마음이다.
"버려야 할 음식을 억지로 다 먹어 치우면,
결국 네 몸이 그 쓰레기를 대신 떠안게 되는 거다." 아들에게 말하는 동안에도 사실 나의 마음속은 “음식 낭비에 대한 불편함으로 가득하다..
나의 음식에 대한 오래 묵은 생각도, 이제 때로는 쓰레기통을 선택해야 되는 현실과 맞닥뜨리고 말았다.
음식 낭비를 보고 느끼는 나의 불편함이 베이비부머 세대와 풍요로운 신세대가 겪는 단순한 시각 차이로 보고 가볍게 넘길 일인지, 아니면, '음식에 대한 존중이라는 기본적인 가치를 단도직입적으로 가르쳐야 되는지, 아들 녀석의 늘어난 몸 무게만큼이나 무거운 고민을 안고, 커피를 마신다.
나는 남은 커피를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끝까지 다 마신다. 풍요 속에서 나만이라도 배고픔을 기억하는 일, 그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다.
雲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