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을사년(乙巳年)이 저물어간다.

by 운곡

雲谷

2025 을사년(乙巳年)이 저물어간다.

한 해의 끝자락에서, 병오년(丙午年)의 불기운을 기다리며 을사년(乙巳年)이 저물어간다.


문과 방송은 상투적 표현으로 다사다난을 언급하며 ‘역대급이라는 다소 과장된 표현을 쏟아내지만, 정작 올 한 해를 몸으로 버텨낸 사람들의 지친 마음은 다사다난이라는 한 단어에 담기엔 그 결이 너무 복잡하고 무거웠다.


어느 해보다 격심한 정치적 격랑과, IMF나 코로나 팬데믹 때보다 더 혹독했다는 경제 한파만큼이나 부쩍 길어진 겨울밤의 냉기가 올해의 을씨년스러움에 한몫을 보탰다.


리 일상에서 흔히 쓰이는 ‘을씨년스럽다’는 말은 그 어원이 여러 설이 있으나

1905년 을사늑약이 있어 국권이 침탈되고 민중의 참담한 심정과 우울한 사회 분위기를 떠 올리며 그런 우울하고 스산한 분위기가 느껴질 때 ‘을사년스럽다’고 했었고 세월이 흘러 음운이 부드러워지며 을씨년스럽다로 변했다는 설이 널리 알려진 정설이다.


한 해 연초부터 거리는 좌우가 분열된 목소리로 넘쳐 나고, 대통령 탄핵 정국과 혼란스러운 정치는 그 방향을 가늠하기 어려웠으며, 팍팍한 장 바구니 물가는 서민들에게 생활고를 가져다주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계속되는 전쟁이나 트럼프 미 대통령의 경제 전쟁 선포 등의 어지러운 국제 정세까지 더해져 사람들의 마음은 마치 서서히 굳어가는 석고 붕대처럼 딱딱해져만 갔다.


지어 계절의 기운조차 사람들의 굳어버린 마음을 닮은 듯, 봄은 스치듯 짧았고, 윤유월을 품은 여름은 폭풍처럼 거칠었으며, 가을은 화사한 빛을 잃은 채 서둘러 겨울로 밀려났다.

세상사는 늘 그렇고 그렇게 반복되는 듯하지만 올해는 유난히 그 그림자가 살을 에는 듯 짙게 마음을 덮었다..


리 없는 해고의 통보를 받아들인 가장이 있었고, 무너지는 장사를 망연자실하게 넋 놓고 볼 수밖에 없었던 상인이 있었으며, 취업 시장이 얼어붙어 책상 앞을 지키며 연명하는 젊은이들도 있었다.

하나하나의 발버둥이 올해를 더욱 을씨년스럽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럼에도 우리 역사상 을사년에 일어난 조선 중종 때 을사사화의 피비린내나, 망국으로 가는 1905년 을사늑약의 절망에 비하면 올해 을사년을 이 정도로 넘어가는 것이 어쩌면 감사한 일 아닐까 생각해 본다.


돌아보면 우리 각자의 일상 속에서 작게나마 고군분투하며 견뎌낸 것이 을사년을 ‘그나마 다행스러운 해’로 만든 것 같다.


제 달력은 마지막 며칠을 남기고 있다. 새해는 병오년(丙午年) 불의 해가 온다.

오행상 병화(丙火)는 하늘의 태양을, 오화(午火)는 대지 위의 활활 타오르는 불을 뜻한다고 한다.


화와 오화의 두 불기둥이 만나면 얼어붙은 땅이 비로소 녹고 숨죽였던 생명들이 다시 꿈틀거리라. 나는 그 상징이 마음에 와닿는다.


치도, 경제도, 얼어붙은 사람들의 마음도 다시 녹아내릴 때가 되었다.

겨울 아침, 유리창 밖을 내다보면 밤새 내린 서리가 하얗게 세상을 덮고 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보이지 않게 이미 미세한 물방울이 생기고 있다. 겨울 햇살이 닿으면 금세 녹아 흘러내릴 것이다. 나는 새해에 그런 장면이 우리의 현실 삶에서도 펼쳐지길 바란다.


랫동안 얼어붙은 불신과 냉소의 얼음이 녹아내리고, 사람들의 말과 마음이 따뜻하게 이어지길 바란다.

병화(丙火)의 불처럼 환하게 타오르는 태양이 다시 떠올라 우리 사회에 빛과 온기를 되돌려주기를, 오화(午火)의 기운처럼 생명력 넘치는 활기가 나라 곳곳에 퍼지기를 염원한다.


이상 을씨년스럽다는 말이 우리의 마음을 덮지 않았으면 좋겠다.

밝음을 상징하는 병오년, ‘병(丙)’의 기운이 우리의 일상에 가득하여 “올해는 참 따뜻한 해였다”라고 말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가 좋아하는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원두커피 한잔을 앞에 두고 달력을 쳐다본다.

역사는 반복되지만, 그 반복 속에서도 우리는 나름의 새 길을 만들어간다.


쩌면 그것이 우리가 을사년을 보내며 얻는 가장 큰 위안일 것이다.

을사년의 그늘을 지나, 병오년의 불빛으로 향하는 이 길목에서, 나는 조용히 손을 모은다. “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을사년 동짓달 김포금들에서

雲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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